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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생사를 넘나드는 생명의 조절자

얼마전 한 친구로부터 "왜 사람의 수명은 백년정도 밖에 안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대답은 간단했다. "사람과 지구생물은 기본골격이 탄소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재질의 사용기간이 대략 백년 정도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친구는 다시 "생체는 세포가 성장해 계속 재생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사실 대부분의 생체구성물은 세포의 성장으로 계속 교체되지만, 가령 눈의 수정체같이 한번 만들어지면 평생동안 교체가 되지 않는 생체 장기들이 많다. 그래서 교체되지 않는 생체 부품이 낡아지면 사람의 수명은 다 할 수밖에 없다. 지구상에 탄소원소가 없었다면 생물이 존재하지 않았겠지만, 그 때문에 사람의 수명이 짧다는데 서운함이 있는 것 같다.

생물은 지구 표면에 있는 수많은 원소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성원소를 살펴보면 탄소, 수소, 산소, 질소, 유황, 인 등이 있고 철, 칼슘, 마그네슘 등의 금속이온도 있다. 물론 어느 원소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으나, 그 중 탄소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생체구성물의 기본 골격이 탄소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른 원소들은 이 탄소에 연결돼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탄소는 생명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적인 원소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탄소를 중심으로 지구환경과 생명체와의 일반적인 관계를 얘기하고자 한다.

생명의 원소인 탄소는 지구 환경에서 생명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여러 생명조건을 충족하고 있다. 첫째 생체 구성물은 에너지를 함유하고 전환하는 작업이 용이해야 한다. 둘째 생체 구성물의 조립과 분해가 용이해야 한다. 셋째 생체 구성물은 구조적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생체 정보인 두뇌정보, 유전정보, 구조정보 등을 수용하고 처리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다섯째 지구상에 풍부하게 존재해야 한다. 사실 탄소는 생명체가 필요로 하는 제반 조건을 완벽히 갖췄다고 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탄소화합물로 구성된 생명체가 생명현상을 유지하고 있는 방식을 보고 이러한 해석을 내릴 수 있다.
 

수명과 탄소의 관계^사람의 수명이 1백년인 이유는 사람을 이루고 있는 기본 물질인 탄소의 사용기간이 대략 1백년이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생체구성물은 세포가 계속 재생되지만 눈의 수정체처럼 평생 교체되지 않는 장기들이 많아서 수명은 무한하지 않다.


에너지 순환은 탄소 순환

에너지는 순환하고 있다. 이를 다른 말로 '탄소순환'이라고도 한다. 즉 공기 중의 탄산가스는 식물의 탄소동화작용을 거쳐 탄수화물과 같은 에너지 함유물질로 전환된다. 그리고 다른 생물은 이를 먹고 저에너지 함유물인 탄산가스를 방출한다. 이러한 순환과정을 통해서 지구상의 생물은 에너지를 얻고 살아간다.

중요한 점은 탄소가 여러 형태로 존재하면서 에너지순환의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식물은 탄산가스에 태양의 빛에너지를 실어 탄수화물과 같은 화학에너지 형태로 전환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다. 이 에너지의 전환 기능이 없었다면 지구상의 생물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태양의 빛에너지는 만질 수도 없고 보관할 수도 없는 에너지 형태이나, 일단 화학에너지 형태로 바꿔 놓으면 만질 수도 있고, 보관도 가능하다. 그래서 생물은 식물이 만들어 놓은 탄수화물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에너지 함유물인 탄수화물은 지구상에 가장 많은 탄소고정물로 생물이 살아가기에 필요한 에너지와 생체구성물을 제공하고 있다. 이 에너지 분배과정인 탄소순환에는 생물들간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 이뤄진다. 즉 생물의 생존경쟁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지구상의 생물은 탄소순환에 절묘하게 편승해 에너지를 얻어 살아가고 있다.

한편 지구환경에는 또 다른 형태의 탄소순환이 있다. 어패류와 산호 같은 해양생물은 바닷물 속에 존재하는 탄산가스를 이용해 탄산칼슘(석회석)의 생체보호막을 만든다. 이 탄산칼슘은 또 다른 형태의 탄소고정화 산물로서 보다 장기적인 탄소순환에 해당한다. 한편 어패류의 탄산칼슘은 바닷물 속의 탄산가스량과 수소이온농도(pH)를 조절해줌으로써 지구의 환경 조건을 일정하게 유지해주기도 한다. 결국 지구상의 탄소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전환되면서 생명체에게 에너지와 먹이를 제공하는 생명의 원소임에 틀림없다.
 

탄소화합물들은 구조적인 변환과정을 통해 생체에너지를 만든다. 사람이 평생동안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는 것에도 이러한 에너지가 쓰이고 있다.


우리 몸에서 어떤 일 하나?

고에너지를 함유한 탄소화합물이 생체 내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소위 생체내의 탄소순환인 대사과정(metabolism)을 거치게 된다. 즉 1차로 체내에서 필요한 생체분자들을 만들고, 또 생체가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한다. 다시 말해 대사과정은 생체촉매인 효소가 생체분자들을 합성하는 일련의 생화학반응체계이자 에너지 전환 과정이다. 이러한 탄소화합물의 구조적 변환과정을 통하면서 필요한 구성물과 에너지를 만들고 또 이를 이용하여 생명현상을 가동한다.

좀더 자세히 보면 생물은 여러 형태의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가령 사람의 경우 항상 열에너지를 발생하여 체온을 유지한다. 만약 체온이 유지되지 않으면 모든 생체기능이 마비된다. 또한 생체 컴퓨터인 두뇌는 전기화학에너지의 공급을 받아 생체기능의 감지와 통제기능을 유지시켜 준다. 한편 근육은 전기화학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전환시켜 사람을 움직이게 해준다.

이러한 탄소화합물들의 구조적인 변환과정을 통해 여러 형태의 생체에너지를 만들어가는 대사과정은 경이롭지만 그 에너지 전환의 핵심 매개체로 탄소 원소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생체내 탄소 순환 과정은 생명체이니까 당연히 구사해야할 생체기능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정교한 대사과정과 에너지의 통제기능은 현대과학으로도 이해하기 힘든 생명현상의 영역이다. 이러한 탄소를 포함한 생체분자의 생화학적 유연성 때문에 외부환경이 변해도 그때 그때마다 대처해가며 살아간다.

여기서 생화학적 유연성의 한 사례를 들어보자. 미생물에게 탄소원으로 포도당 한가지와 무기염들만 준다면 그 미생물이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사실 실험실의 대장균은 포도당으로부터 수천 가지의 생체분자를 단 30분이면 모두 만들고, 또 세포분열까지 한다. 즉 포도당에서부터 모든 생체분자들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대사 경로는 생체의 모든 구성물간에 밀접한 연계성이 있다. 다시 말해 필요시 어떤 생체분자라도 다른 생체분자로부터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생체내 대사조절은 생명현상의 한 단면이지만 경이적인 제조능력과 조화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생체의 유연성을 생화학적인 용어로 항상성(homeostasis)이라고 한다. 즉 생체조건을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기능이다. 예로 수많은 생체분자 중 단 한가지가 부족하면 바로 그것을 감지하고 생합성체제를 작동시켜 곧바로 만들어준다.

생체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예로 사람의 체온이 평생동안 37℃를 유지하고 있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실제로 항상성이 어떻게 통제되고 조절되는지 현대과학은 별로 아는 것이 없다. 어쨌든 이러한 생합성과 항상성을 지켜주는 구조적인 근간이 탄소화합물의 유연성 때문이라는 사실밖에.

조립과 분해 쉬워

생체분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구조적 다양성이 있다. 이것은 두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로 생체분자는 조립과 분해가 용이하다는 점이다. 생체분자의 구조적 변환이 쉬워야 그 많은 생체분자의 합성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생체 대사과정이 용이하지 않으면 생체구성물의 제조와 에너지 생산이 사실상 차단돼 생명현상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탄소를 기본골격으로 하는 생체분자는 구조적 변환이 쉬워서 생물이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다. 또 탄소간의 결합이 너무 견고하여도 문제가 된다. 즉 생체분자가 분해되지 않는다면 생체기능의 유지는 물론 지구의 탄소순환이 차단된다. 다시 말해 지구생물이 존재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이러한 생체 탄소화합물의 조립과 분해라는 상호 상반된 기능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면서 생명현상이 유지되고 있다.

두번째로 생체분자의 구조적 다양성과 함께 구조의 기능적 선택성이 있다. 모든 생체 구성물들은 그 나름대로 특정한 모양(구조)을 갖추고 있다. 그 구조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 생체부품의 구조가 유지돼야 생체기능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생명현상이 유지되기 어렵다. 그런데 탄소화합물은 이 구조적 다양성을 잘 수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생체분자의 구조적 규칙과 그에 따른 선택성이 잘 지켜지고 있다. 예로 생체에 존재하는 아미노산은 두가지 광학적 이성질체인 D형과 L형이 있다. 그러나 생체 단백질은 어김없이 L형의 아미노산만 사용하고 있다. 또한 생물의 1차 에너지원인 포도당도 광학이성질체가 있는데 D형 이성질체만 사용한다.

생체분자의 구조적 선택성은 생체기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 구체적인 사례로 생체분자의 인식에 의한 신호전달이다. 이는 생체분자간에 접촉을 통해 인식되면서 신호가 전달된다. 가령 인슐린은 간세포 표면에 부착된 인슐린수용체에 접촉하면서 혈당저하작용의 신호를 전달한다. 그러나 인슐린수용체의 구조가 틀리면 상호인식을 못하므로 포도당이 세포 안으로 유입시키라는 신호를 전달하지 못해 당뇨병이 발생한다.

이렇게 생체분자의 구조적 선택성은 신호전달에 중요한 요건임을 알 수 있다. 다행히 생체분자의 구조적 다양성을 수용하기에 탄소원소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렇게 탄소는 수많은 생체분자를 손쉽게 만들 수 있게 해주면서 생체의 엄격한 입체화학구조의 요건을 충족시켜주고 있다.

생명의 반도체

탄소화합물은 생명의 반도체다. 동물의 두뇌작용은 컴퓨터의 반도체같이 분자스위치가 존재해야 한다. 아직 현대과학은 두뇌작용과 같은 생체내 전기화학적인 현상을 총체적으로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알려진 사례를 살펴보자. 가령 동물의 눈은 감지한 시각정보를 전기화학신호로 바꾸어 두뇌에 보내고, 두뇌에서는 그 시각정보를 처리 분석해 정보내용을 판독한다.

또 필요하다면 두뇌에서는 장기간 시각정보를 저장해 놓고 필요시 꺼내 사용한다. 최근 알려진 생체분자 스위치로는 동물의 안구에 있는 로돕신(rhodopsin)이 있다. 이 생체분자는 옵신(opsin)과 레티날(retinal)이라는 두 생체분자가 결합해 분자스위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즉 로돕신은 빛에너지를 받아 레티날의 구조를 변화(trans구조에서 cis구조로 변화시키거나 그 반대로 작용)시키면서 전기화학에너지로의 전환과 제어기능을 한다. 이때 이 분자스위치의 제어기능은 색이나 물체를 인식한 광에너지 정보를 전기화학적 신호로 바꾸는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살펴보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의 정보처리 장치와 전기신호의 처리방법에 유사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현재 컴퓨터의 핵심부품인 '규소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동물의 두뇌에도 탄소화합물로 이루어진 생체 반도체가 존재한다고 본다. 최근에 원통형 탄소반도체가 과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것이 생체의 탄소화합물 반도체 개념과 일맥상통하는지는 기다려봐야 한다.

결과적으로 생체내 탄소화합물 반도체의 존재를 추정할 수 있으나, 현대과학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과학지식을 아직 정립하지 못했다. 단지 탄소가 규소와 함께 원소주기율표의 4족에 속해 있기 때문에 연관성을 찾아볼 뿐이다.
 

외계생명체는 규소화합물일 가능성이 있다. 규소는 탄소와 같이 주기율표의 4족에 위치하면서 물리화학적 성질뿐 아니라 구조도 유사해 다양하고 경고한 규소화합물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외계생명체는 규소화합물?

다음으로 탄소화합물은 생체정보를 수용하고 유지하며 전달하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생체정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유전정보다. 이는 생체분자의 구조와 생물 자체의 외형을 결정해주고 또 그에 따른 기능을 유지하면서 자손을 번식케 한다. 탄소를 기본골격으로 구성된 생물은 DNA(deoxyribonucleic acids)라는 이중나선형의 생체고분자를 통해 유전정보를 수용하고 유지해 간다. 이 유전정보 자체는 무형정보이나 DNA에 수록되면서 생명의 정보가 표현되고 전달된다.

그런데 무형의 유전정보가 다른 원소로 구성된 화합물에도 저장이 가능할까. 제반 요건을 고려해 본다면 규소(Si)가 제일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규소는 탄소와 같이 원소주기율표 4족에 위치하고, 탄소와 유사한 물리화학적 성질과 구조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간혹 식물 내에 규소화합물이 포함돼 있는 것이 보고되고는 있으나 유전정보 자체를 수용하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엉뚱한 생각이지만 지구밖 다른 행성에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이는 규소화합물로 이루어진 외계 생명체일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규소화합물은 외계의 극한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구조적으로 다양하고 견고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탄소는 지구 생물이 충분히 사용하고도 남을 정도로 풍부하다. 탄산가스와 천연생물자원, 석회석 외에도 탄소자원으로는 석유와 석탄이 있다. 고대 생물이 땅속 깊숙이 매장돼 변환된 탄소화합물이다. 그런데 지난 1세기 동안 인류는 석유 자원을 남용해 너무도 많은 탄소가스를 대기권으로 방출했다. 그로 인해 지구생물과 환경생태계가 요구하는 적정수준이상으로 탄소화합물이 배출됐다.

그 결과 탄소순환의 균형이 깨져서 기후와 환경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이제 인간은 탄소자원을 잘 관리해야할 시점에 이르렀다. 아니면 인간과 생물의 생존이 도전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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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이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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