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십만년 전 아프리카 케냐의 골짜기에는 사람의 조상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옷은 물론이고 무화과 나뭇잎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살았으며, 불은 커녕 돌도 다듬어 쓸 줄 모르는 말 그대로 원시인이었다. 그런데 무슨 수로 힘이 센 사자한테 잡혀 먹히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 낮에는 나뭇가지를 흔들어 쫓아버렸다고 해도 동굴 속에서 잠을 자야하는 밤에는 어떻게 무사할 수 있었을까.
학자들은 가시나무가 놓인 길은 피해 돌아가는 맹수의 습성을 이용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다른 가설을 내놓은 학자들도 있다. 동굴 속에 옹기종기 모여 잠자는 사람들을 잡아 먹으러 몰려온 짐승들이 굴 입구에 와서는 킹킹, 킁킁 콧소리를 내면서 발길을 돌렸다는 것이다.
사람 몸에서 나는 냄새, 즉 체취가 매우 역하고 독해서 짐승들이 얼씬도 못했다는 이야기다. 과일 냄새에 가까운 에스테르 물질과 땀에 섞인 지방산이 분해된 부틸산의 역한 냄새에다, 인돌(indole), 스카톨(skatol), 황화수소(H2S) 등이 혼합된 방귀 냄새가 짐승들을 쫓아냈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람의 몸냄새는 종족 보존에 지대한 역할을 해냈음이 틀림없다. 또 사람의 몸내음이 타 동물에게는 구역질을 나게 만든다는 사실은 몸냄새 자체가 훌륭한 방어용 화학무기임을 보여준다.
스컹크의 경고, 방귀
이 액은 멀리는 3-4m나 날아간다고 한다. 장난기 많은 학자들은 그 성분을 분석해 사람의 방귀와 비슷한 티올, 에스테르화합물에 탄산, 스코톨, 인돌 성분이 들어 있음을 밝혀냈다. 이 액체가 다른 동물의 눈에 들어가면 일시적으로 눈이 어두워져 공격을 할 수 없게 된다.
비슷한 경우로 습진 응달에 사는 쥐며느리가 있다. 쥐며느리는 만델로니트릴이란 물질을 갖고 있는 샘이 있다. 적의 위협을 받으면 여기에 효소가 작용해 자극성 물질인 벤즈알데히드와 독가스인 시안화수소를 만들어 방출한다. 한 마리의 쥐며느리는 한 마리의 쥐를 죽이기에 충분한 양의 시안화수소를 만들 수 있다.
어느 생물이나 제 몸을 방어하기 위한 물리적, 화학적 무기는 다 가지고 있다. 동물들의 예리한 이빨과 강한 뿔은 식물의 잎 가장자리에 나있는 톱니 같은 거치(鋸齒), 줄기의 가시, 잎의 솜털과 같은 물리적인 방어장치와 비교될 수 있다.
사람이 흘리는 침, 눈물, 콧물만 해도 단순한 외분비물이 아니다. 모두가 뮤신이라는 항세균 물질을 가지고 있어서 세균을 죽이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침은 지네까지도 맥을 못추게 한다. 또 위액은 강산으로 소화에 관여하는 것 말고도 내장으로 들어온 세균, 곰팡이 등을 살균시킨다.
동물들의 방어수단, 독
뱀의 독도 벌의 성분과 매우 유사하다. 양서류인 두꺼비는 귀뒤에 있는 귀샘(이선, 耳腺)에 서 부포톡신을 분비하는데 여기에도 심장을 다치게 하는 부파긴, 환각현상을 일으키는 부포테닌, 혈관을 수축시키는 세로토닌 등의 물질이 들어 있다. 두꺼비를 항아리에 잡아넣고 자극을 주면(작대기로 등을 내리친다) 이선에서 하얀 액이 나오는데 이것이 부포톡신이다.
이것은 한방에서 순환계 치료제로 쓰이는데 이독제독(以毒制毒) 작전으로 볼 수 있다. 참고로 부포(Bufo)는 학명으로 두꺼비의 속명(屬名)이고 톡신(toxin)은 독이라는 뜻이다. 또 청개구 리의 살갗에서도 바트라코톡신, 세로토닌, 히스타민이 분비되는데 부포톡신과 그 하는 일이 다를바 없다.
물에 사는 동물들도 하나같이 방어 물질을 가지고 있다. 복어의 알이나 내장에 많은 테트라오돈톡신은 한 번 복어를 먹은 포식자가 다시는 곁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 물론 사람에게도 치명적인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바다 고둥 무리가 가지고 있는 테트라민과 시구아톡신도 복통, 설사를 일으키고 환각 현상을 유도한다. 해파리에 쏘이면 아픈 것도 테트라민계의 물질 때문인데 어떤 해파리는 심장에 손상을 입히는 카디톡신을 갖는 것도 있다.
여기에 쓴 이야기는 사람을 기준으로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동물 사이에는 독이 훨 씬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하나는 포식자로 잡아 먹으려하고 또 다른 것은 어떻 게 해서라도 먹히지 않으려고 독성물질을 개발하고 있는 대치국면인 것이다. 단세포인 원생생물(쌍편모충류)도 독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먹은 홍합이나 진주담치에 쌓여 사람이 먹으면 토사곽란을 일으킨다. 이 역시 삭시톡신(saxitoxin)같은 독성물질 때문이다.
나무도 텃세
"거목 밑에 잔솔 크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훌륭한 부모 밑의 자식이 되레 치어서 잘 되지 못한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그러나 큰 나무를 베고 나면 어느새 수많은 애솔이 싹을 틔운다. 그 동안은 큰 소나무의 그림자 때문에 잘 자라지 못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식물의 씨가 싹을 트는데는 햇빛이 필요 없다. 그렇다면 어찌된 일일까. 나무가 살아있을 때는 뿌리에서 화학물질을 분비해 씨의 발아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참 매정한 세계라 하겠다.
그리고 소나무 밑에는 새끼솔 말고도(다른 나무 밑도 그렇다) 다른 식물이 거의 자라지 못한다. 이 역시 일정한 영역 안에서는 딴 식물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갈로탄닌이라는 물질을 뿌리가 분비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물들간의 저항관계를 알레로파시라 한다.
소나무 송진의 터펜스같은 물질은 병원균의 침입을 막고 다른 식물의 접근을 막아낸다. 또 상처를 입으면 사람의 피와 같은 것이 흘러나와 굳어서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침투를 막아낸다. 여기서는 소나무의 예를 들었을 뿐 다른 풀과 나무들도 비슷한 기작을 가지고 있다.
세포속의 알린
식물이 무슨 신경이 있기에 자극을 받거나 다치면 냄새를 풍기는 것일까. 화분에 키우는 제라늄은 보통 때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 않으나 손을 대면 미모사가 잎을 오므리듯이 즉각 독가스를 뿜어낸다. 벌레가 침입하는 것을 막으려는 반응이다.
잘 알다시피 마늘이나 양파도 가만히 두면 절대로 독한 냄새를 내지 않으나 껍질을 벗기거 나 칼로 자르면 곧바로 눈물을 흐르게 만든다. 세포 속의 알린이란 물질이 알리나제라는 효소의 도움을 받아 알리신으로 바뀌면서 밖으로 뿜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것이 마늘, 양파 (파, 부추, 달래 등)의 향인 셈이다. 사람의 눈코가 매울 정도이니 다른 세균 바이러스에도 항균 작용이 있음은 물론이다.
맛 떨어뜨려 포기하도록 유도
더 절묘한 식물의 방어체계가 있다. 아프리카 사막을 스쳐지나간 메뚜기떼(풀무치 떼가 옳 다)가 오직 한 종의 풀은 먹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아주가 레모타(Ajuga remota)이다. 이 식물의 즙을 내어 다른 곤충들에게 먹였더니 애벌레들은 입이 막혀버리고 비정상 발생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풀무치의 혀는 어찌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이렇듯 식물은 곤충에게 먹히지 않으려고 독성물질을 생성하고 있다. 또 곤충에게 먹히더라도 곤충의 알이 유생이나 번데기가 되지 못하게 한다. 토마토의 한 종류는 곤충이 잎을 갉아먹으면 바로 그 자리에 단백질 분해 억제물질을 만들어 잎을 먹어도 소화가 안되게 한다. 그래서 다시는 공격하지 못하게 한다니 어찌 이들을 풀 따위라고 과소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더 지혜로운 식물들도 많다. 사릭스(Salix)무리의 버드나무는 곤충의 침입을 받으면 갑자기 영양 상태를 떨어뜨려 맛이 없도록 만든다. 벌레들이 스스로 포기하도록 해 자신을 보호한다.
박주가리무리는 흰 액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동물의 심장을 마비시키는 카데노리드라는 독극 물질을 가지고 있어서 벌레는 물론이고 쥐도 먹고는 혼쭐이 난다고 한다. 그러나 이 박주가리를 먹는 곤충은 반드시 있으니 이런 것이 자연의 조화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향긋한 흙냄새의 정체
눈에는 안보이지만 자신을 지켜내려는 노력은 미생물도 만만치 않다. 버섯은 눈에 보이지만 분류상 곰팡이로 세균과 함께 ‘미생물’에 포함시킨다. 버섯 또한 식용이 아닌 것은 사람 에게 치명적이다. 무스카린, 아마니틴, 지로미트린같은 독성분은 색이 고운 독버섯에 많다. 그런데 이런 독버섯을 뜯어먹는 민달팽이들이 끄떡 않는 것을 보면 해독기능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놀랄만하다. 이런 것이 동식물간에 먹고 먹힘이 서로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곰팡이들이 가지고 있는 독소는 아플라톡신, 에르고탁신, 스포리테스민 등이 있는데, 이들의 독성도 버섯에 버금간다. 그러나 이런 독들도 약이 되는 항생제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항생제는 한마디로 곰팡이나 세균들이 자기를 보호하거나 다른 세균을 죽이기 위해서 분비하는 화학물질이다.
세포막의 형성을 방해하거나 효소기능을 억제시켜 물질대사를 못하게 해 상대를 죽인다. 사람들은 이런 미생물을 배지에서 대량 배양해 페니실린, 스트렙토마이신, 크로로마이신 등의 항생제를 얻어서 약으로 이용한다.
항생제제조의 효시로 1941년 플레밍이 페니실리엄 노다툼(Penicillium nodatum)에서 페니실린을 뽑아낸 것. 이는 하나의 혁명적인 대업으로 인류의 건강에 큰 공헌을 했다. 항생제는 곰팡이와 함께 세균에서도 얻어낸다. 1943년 스트렙토마이스 그리세우스(Streptomyces griseus)라는 토양 세균에서 스트렙토마이신을 추출하는데 성공했다. 이 토양세균은 5백종이 넘으며 흙이나 물에서 낙엽을 썩히고 유기물을 분해하는 세균으로 땅을 기름지게 하는데 향긋한 흙냄새는 이 세균 때문에 생긴다.
과거 어릴 때 낫에 손을 베이면 상처에 흙을 듬뿍 뿌렸던 기억이 있는데 아마도 원시적인 항생제 치료를 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흙에 미생물들이 만들어 놓은 항생제가 들어있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