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늘 우주여행을 꿈꿔 왔다. 1천억개의 별이 모인 은하, 그리고 이런 은하가 1천억개 모인 우주공간에서 지구에만 고등생물이 있다는 것은 도저히 믿기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미래학회(World Future Society)가 지난해 11월 미국 조지 워싱턴대학의 예측을 빌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별탐사는 2042년에 가능할 것이고(가능성은 51%), 광속에 가까운 우주선은 2062년에 만들어질 것이라고 한다(가능성은 43%).
그러나 그때가 되고 우주 어딘가에 고등생물이 산다고 하더라도 그들과 대화할 방법은 막혀 있다. 지구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프록시마(켄타우루스자리 알파별)까지의 거리는 40조km. 이 거리는 빛의 속도로 4.3광년이 걸리는 거리다. 만약 우리가 그들에게 안부를 묻는 신호를 보낸다면 4.3년 후에 도착할 것이고, 답신은 8.6년 후에 받을 수 있다.
그래서 1930년대부터 빛보다 빠른 물질을 찾겠다는 과학자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빛보다 빠른 물질을 타키온(tachyon)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타키온을 찾으려는 노력들은 번번히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1950년대부터 빛보다 빠른 초광속(superluminal velocity) 현상이 나타나면서 타키온에 대한 논의가 불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광속보다 4.7배나 빠른 현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타키온이란 무엇이며, 초광속 현상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보자.
아인슈타인의 인과율
1905년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움직이는 물질(입자)의 질량은 아래와 같이 표시된다.
m=$\frac{{m}_{0}}{\sqrt{1-(\frac{V}{C})²}}$
(m은 v 속도로 움직이는 물질의 질량, m0는 물질의 정지질량, c는 광속도이다.)
만약 질량을 가진 입자가 빛의 속도와 비슷하게 된다면 (1식)에 따라 운동하는 입자의 질량은 엄청나게 커진다. 따라서 이 입자의 속도보다 더 가속하려면 엄청난 힘이 들기 때문에 빛보다 빠른 물질은 생겨날 수 없다. 결국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빛보다 빠른 물질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박은 셈이다. 물론 질량을 조금이라도 지니고 있는 전자도 예외는 아니다.
자연계에는 두가지 입자가 있다. 하나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 양전자와 같이 작지만 정지질량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쿼크도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아무리 가속해도 빛의 속도에 도달할 수 없다. 이런 입자들을 물리학자 빌라뉴크는 타르디온(tardion)이라고 불렀다.
또 하나의 입자는 광자와 중력자와 같이 정지질량이 영(0)인 입자들이다. 이들은 빛의 속도로만 움직이고, 그보다 작거나 큰 속도로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런 입자들은 '빛'이란 뜻을 지난 룩손(luxon)이라고 한다.
만약 빛보다 빠른 입자, 즉 타키온이 존재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우선 타키온의 질량은 허수(虛數)가 돼야 한다. 또 에너지를 얻을수록 속도가 느려진다. 그래서 에너지가 가장 클 때 빛의 속도가 되고, 에너지를 모두 잃게 되면 그 속도는 무한대가 된다. 실수(實數)의 질량을 가진 입자는 에너지를 얻을수록 속도가 커지지만, 타키온은 그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타키온이 존재한다면 과거로의 시간여행도 가능해지고 블랙홀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원인보다 결과가 앞설 수 없다. 이를 인과율(causality)이라고 한다. 따라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가능케 하는 타키온은 인과율과 위배되기 때문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믿음이다.
타키온을 찾아서
빛보다 빠른 물질에 대한 아이디어는 독일의 수리물리학자 아놀드 좀머펠트(1868-1951)가 처음 생각해냈다. 그리고 제럴드 파인버그가 '빠르다'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 '타키스'(tachys)에서 유추해 타키온의 이름을 지었다.
타키온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으며 수학적으로나 상상해볼 수 있는 입자지만, 이를 자연에서 발견해보려는 시도는 여러번 있었다. 1968년 스웨덴의 물리학자 알버거는 감마선으로부터 타키온 한쌍(타키온과 반타키온)을 만들려고 시도했다.
감마선을 물체에 쏘면 전자와 양전자가 생겨난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알버거는 납 용기에 감마선을 내는 코발트 동위원소를 넣었다. 감마선이 납용기에 의해 막히면 타키온과 반타키온이 생기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었다. 만약 타키온이 만들어진다면 물질이 빛보다 빨라지면 나오는 체렌코프광을 검출해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실험을 통해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1970년 미국의 물리학자 발티는 타키온의 질량이 허수라는 점을 주목했다. 그래서 가속기를 이용해 입자실험을 할 때 질량의 제곱이 음(-)인 입자들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허수를 제곱하면 음이 되고, 그런 입자가 존재한다면 바로 타키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티의 실험은 허사였다.
지구 밖에서는 우주선(cosmic ray)이 끊임없이 온다. 이들은 20km 상공에서 대기원자와 충돌하면서 전자와 감마선들을 만들어낸다. 1974년 미국의 실험물리학자 클레이는 전자와 감마선이 만들어질 때 타키온도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여기서 만들어진 입자들 가운데 입자의 비행시간을 확인해 빛보다 빠른 물질이 있는지를 알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소득은 없었다.
양자역학의 개가
자연계에서 타키온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모두 실패했지만, 양자역학에서는 빛보다 빠른 현상이 존재한다는 연구결과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1932년 벨 연구소에 근무하던 맥콜은 입자가 어떤 장벽을 통과할 때 시간지연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발표해 초광속 현상이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후 1955년 프린스턴대학의 유진 비그너와 아이센버드는 어떤 환경 하에서 장벽을 통과하는 입자들은 실제로 빛보다 빠르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이는 양자장벽투과(quantum barrier penetration), 혹은 터널링(tunelling)이라는 현상이다.
1980년대 말 AT&T 벨 연구소에 근무하던 스티븐 추와 스티븐 웅은 흡수물질을 통과하는 빛이 초광속으로 움직이는 것을 직접 측정했다. 그러나 이것은 주목받지 못했다. 양자 터널링이 아닌 흡수현상이었기 때문이다.
1991년 이탈리아의 아네디오 란파그니 연구팀은 전자기파를 이용해 양자 터널링 현상에 가까운 것을 재현해냈다. 이때 장벽을 뛰어넘은 전자기파의 속도는 거의 광속에 접근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콜로그네 대학의 귄터 님츠가 마침내 마이크로파가 초광속으로 움직이는 것을 목격했다고 보고했다. 왜 란파그니팀은 실패했는데, 님츠는 성공했을까. 란파그니팀이 설치한 장벽이 얇았기 때문이었다. 장벽의 두께가 증가할수록 터널링 속도는 증가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1993년에는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분교의 치아오, 스타인버그, 퀴애트 등이 초광속을 측정했다. 그들은 광학 필터를 사용해 이를 통과한 속도와 그냥 공기 속을 통과한 빛을 비교했다. 그랬더니 광학 필터를 통과한 빛이 광속보다 1.7배나 빨리 도착했다.
여기서 빛보다 빨리 진행된 것은 파속(wave packet)이었다. 양자역학적으로 해석하면 입자는 파동이 한곳에 몰려있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일반적인 파동은 전체적으로 흩어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파속은 파동이 마치 입자처럼 한곳에 뭉쳐있어 입자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치아오는 "파속의 초광속현상이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위배되지 않고, 이 실험에서 사용한 것은 빛보다 빨리 정보를 전달하는 신호(signal)를 의미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장벽을 통과한 광자는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터널링 현상은 확률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어떤 광자가 먼저 도착했고 어떤 것이 늦게 통과했는지를 알 수 없다. 따라서 이를 신호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 치아오의 설명이었다.
모차르트 40번 교향곡의 비밀
1995년 3월 우타주 스노우버드에는 초광속 양자현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님츠는 빛의 속도보다 4.7배나 빠른 신호를 보냈다고 발표했다. 이때 논의됐던 내용은 영국의 과학주간지 뉴 사이언티스트 1995년 4월 1일자에 잘 정리돼 있다.
님츠 연구결과는 극초단파의 초광속현상을 발견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빛보다 빠른 신호를 보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그 신호는 모차르트 40번 교향곡으로, 12cm 장벽을 빛보다 4.7배나 빠른 속도로 통과했다. 님츠는 학자들이 자신의 연구결과를 의심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터널링한 교향곡을 다시 녹음해 이날 청중들에게 들려줬다.
이제 논란의 초점은 빛보다 빠를 수 있는가가 아니라 빛보다 빨리 전달된 것이 과연 정보를 담고 있는 '신호'인가로 옮겨갔다. 많은 학자들은 모차르트 40번 교향곡은 신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인과율의 신성함과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을 믿기 때문이다.
앞서 초광속 현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던 치아오도 여기에 앞장섰다. "음악은 신호가 아니다. 짧은 시간 동안 장벽을 통과한 양은 매우 적다. 따라서 장벽을 통과한 음악이 원래의 음악과 같은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아인슈타인의 인과율은 빛보다 빠르게 신호를 보내는 것을 허용하지 않지만, 전자기파의 그룹 속도(파속의 속도)가 빛보다 빠른 것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치아오와 마찬가지로 스타인버그도 "모차르트 40번 교향곡은 점차 변하는 파동이기 때문에 신호로 볼 수 없다"고 님츠를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