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축구공 / 가죽에 주입한 인조 거품의 요술 트리콜로
96년 가을 "축구공이 노벨상을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에이즈 치료제는 물론 첨단산업에 새바람을 일으킬 신소재인 탄소중합체 풀러렌의 구조가 정육각형 20개와 정오각형 12개로 총 32면체의 축구공과 완전히 똑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하얀색 육각형들 사이에 검은색의 오각형이 박혀있는 점박이 공을 공식적인 축구공으로 여긴다. 그러나 FIFA(국제축구연맹)의 규정 어디에도 공의 색깔과 가죽조각의 개수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다만 FIFA는 "둥근 모양으로 가죽 또는 알맞은 재질로 무게 410-450g, 둘레 68-70cm"로 공에 대한 규정을 정해 놓았을 뿐이다. 공의 압력은 0.6-1.1기압으로 표준화돼 있다.
월드컵에서 공식구가 사용된 것은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이 처음이다. 이때 처음으로 아디다스에서 텔스타라는 가죽 공을 선보였는데, 이 공이 바로 흰색 육각형에 검은색 오각형 점박이 공이었다. 이때부터 점박이 공은 축구공의 대명사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오늘날 32조각 축구공의 원형으로 자리잡았다.
그 후 1974년 독일 월드컵에서 아디다스는 완전한 흰색공을 내놓고,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오각형이 흰색이고 육각형 안에 검은색 삼각팬티 모양을 그려 넣어 변화를 시도했다. 가죽은 12조각, 18조각, 26조각, 32조각, 48조각 등으로 다양한 공이 나왔지만, 32조각 공이 아직도 가장 선호되고 있다.
원조는 동물 오줌보
축구가 시작된 처음에는 주로 소나 돼지의 오줌보에 바람을 넣은 공이나 동물가죽에다 털을 집어넣은 공이 많이 사용됐다. 그 후 1872년 영국 축구협회가 공식으로 발족하면서 더 완전한 구형을 만들기 위해 가죽 내부에 고무를 넣어 만들게 됐다. 하지만 1960년대까지도 축구공은 차는 순간 발이 아플 정도로 무겁고 딱딱해 기술적으로는 낮은 수준이었다.
1930년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에서는 공에 대한 규정이 없어서 결승전에서 주최국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가 서로 자기 팀에 익숙한 공을 사용해야 한다고 우기는 바람에 두 나라의 공을 전 후반을 번갈아 썼던 일도 있었다.
축구공에는 월드컵의 역사와 함께 첨단 기술의 역사가 숨쉰다. 공은 우선 부드러울 것, 컨트롤이 잘 될 것, 속도가 빠를 것, 질길 것, 방수가 잘 될 것 등 크게 다섯 가지의 요구를 만족해야 한다. 그런데 크기, 무게, 공기압 등은 이미 규정돼 있어서 공의 개발은 주로 고무튜브의 바깥을 감싼 가죽에 맞춰졌다.
아디다스에서는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탱고'라는 공을 선보였다. 32개의 가죽조각을 하나의 실로 꿰매고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한 통풍실험을 하는 등 이때부터 축구공에 하이테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어 아디다스는 1982년 가죽의 꿰맨 자리를 막아 방수처리를 한 공을 공급하면서 다시 한번 신개념의 축구공을 선보였다. 이때부터 물에 젖어도 공은 그다지 무거워지지 않았고, 빗속에서도 경기를 무리 없이 계속할 수 있었다. 1986년 아디다스는 최초로 인조가죽을 도입해 완전한 방수를 실현했다.
좋은 공 싫어하는 골키퍼들
90년대 들어 공의 개발은 공격수에게는 희소식이었지만, 골키퍼에게는 악몽의 연속이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골키퍼는 실제로 눈에 띄는 수난을 당했다. 이때 아디다스가 공급한 퀘스트라라는 공은 공의 가죽에 미세한 폴리우레탄 거품을 넣어 반발력을 증가시킨 것이다.
공은 슈팅하는 순간 미세하게 이 거품들이 수축했다가 팽창하면서 골키퍼에게 다다를 때는 예측불허의 스피드와 방향으로 휘어져 나갔다. 설상가상으로 골키퍼들은 이번 프랑스 월드컵에서 지난 대회에서보다 더욱 처절한 수난을 각오해야 할 것 같다. 이번에 공식구가 된 아디다스의 '트리콜로'라는 공은 아디다스 기술의 결정판으로 골키퍼를 악몽에 떨게 하기에 충분하다.
트리콜로는 퀘스트라와 달리 가죽 내부의 폴리우레탄 거품을 더 강화하고 규칙적으로 배열해 수축력과 반발력을 높였다. 트리콜로의 거품은 미세한 구에 가스가 채워진 강하고 규칙적인 층상구조를 형성했다. 미세거품들은 발의 충격을 받고 순간적으로 수축했다가 팽창하면서 강한 반발력을 발휘한다. 거품은 강한 폴리우레탄 거품으로 독립돼 있어서 차는 힘이 강할수록 요술을 부린다.
이용수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월드컵 대표팀 선수들도 트리콜로로 적응훈련을 해왔는데, 대부분 이 공이 정확도와 스피드에서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는 느낌을 피력했다고 한다. 특히 골키퍼 김병지 선수는 스핀이 많이 걸려 잡는데 여간 애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FIFA의 정책이 골이 많이 나는 박진감 있는 경기를 유도하는 쪽으로 가고 있으므로, 앞으로도 가벼운 스피드로 패스를 할 때는 보통의 강도와 스핀으로 정확성을 살리고 강한 슛을 할 때는 강한 반발력으로 예측불허의 궤도를 만들 수 있는 공이 개발돼 골키퍼들의 수난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2. 축구화 / 신어도 안 신은 듯, 월드컵은 신발 전쟁
1954년 스위스 월드컵 결승전에서 독일은 헝가리를 상대로 3:2로 승리한다. 그런데 이 승리 뒤에 독일팀이 신었던 축구화가 있었다는 것이 화제가 됐다. "글 잘 쓰는 선비는 붓을 탓하지 않는다"는 우리 옛말이 있지만, 이때부터 축구선수는 축구화 탓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때 독일은 아디다스사의 창업주인 아디다슬라가 설계한 새로운 축구화 덕을 톡톡히 보았기 때문이다.
축구화의 얼굴 징
이전의 축구화는 오늘날의 보통 운동화처럼 평평한 바닥의 신발이었다. 그러나 아디다슬라는 축구선수의 움직임이 빠른 방향전환과 순간 스피드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 착안해 신발 밑창에 육상선수들의 스파이크처럼 징(stud)을 박았다.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이 축구화는 이때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징은 축구화의 필수품이자 상징이 됐다.
초기에 징은 앞축에 4개 뒤축에 2개로 모두 6개로 제작됐으나, 갈수록 축구 선수들의 동작에 대한 분석과 연구를 토대로 징의 위치와 개수, 모양 등이 개선됐다. 선수들은 수제화의 경우 자신의 발 버릇에 따라 징의 위치를 조정하기도 한다.
대체로 공격선수의 경우 부드럽고 정교한 몸놀림을 필요로 하므로 섬세한 움직임에 적당하도록 징의 개수가 많고 접지 면적이 다소 넓은 축구화를 선호하고, 수비선수의 경우 순간적인 파워를 필요로 하므로 땅을 박차고 파워를 낼 수 있는 징의 수가 적은 축구화를 선호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편 공격수는 공을 드리블하며 여러 가지 세밀한 기술을 발휘해야 하므로 축구화 가죽이 얇고 발에 착 달라붙어 착용감이 좋은 신발을 선호한다. 이 때문에 최근까지 캥거루 가죽으로 제작된 축구화가 최고급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캥거루가죽은 착용감이 좋은 반면 잘 닳고 쉽게 찢어지는 고가품이다. 수비수들은 몸싸움이 잦고 힘있는 플레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가죽이 조금 두툼하고 딱딱한 것을 선호한다.
국내 상표 키카가 선전중
이번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세계적인 스포츠 메이커들의 첨단 축구화 경쟁도 볼만할 것으로 보인다. 70년대부터 지금까지 월드컵에 축구공을 공급해온 아디다스에서는 이번에 새로 개발된 트리콜로 공에 맞춰 프레데터 엑셀러레이터라는 신 개념의 축구화를 함께 내놓고 타 업체를 따돌릴 심산이다.
아디다스에 따르면 이 축구화를 신고 트리콜로를 차면 공의 속도와 회전력이 20% 정도 증가해 중거리 슛과 바나나킥이 쉬어지며 공의 정확도가 증가한다고 한다. 아디다스 축구화는 발등을 감싸는 가죽 표면에 우툴두툴한 돌출형 인조가죽을 덧대서 공과의 마찰력을 높이고 이로 인해 다양한 구질의 슛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축구용품 분야에서는 비교적 후발주자에 속한 나이키는 이번 월드컵을 겨낭해 브라질의 호나우도 선수를 모델로 머큐리얼이라는 축구화를 내놓았다. 이 축구화는 첨단의 인체공학적인 설계를 채용했다. 인조가죽을 채용해 천연 캥거루 가죽 못지 않은 부드럽고 착용감이 좋은 질감을 실현했다.
또한 인조가죽 표면에는 폴리우레탄 코팅처리를 해 공이 닿을 때의 감촉이 발에 잘 전달되도록 했다. 징 끝을 스텐레스 스틸로 처리해서 더욱 견고하게 하고 미끄럼을 방지했으며, 징과 스파이크 부착면이 양옆으로 넓게 퍼지도록 해 지면의 충격을 바닥판 전체로 분산되도록 했다. 농구화의 에어 붐을 일으켰던 줌 에어기술을 바닥 안창에 채용해서 쿠션은 물론 징의 압력을 분산하도록 설계한 것도 자랑이다.
밖에 이탈리아의 디아도라, 움브로 등의 축구메이커들까지 가세한 월드컵 축구화 시장에서 국내상표인 키카의 분투도 눈길을 끈다. 국내보다는 외국에서 더 잘 알려진 키카는 지난해 독일 경제일간지인 '한델스블라트'에 축구화가 소개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붉은 악마의 원조가 된 83년 세계청소년 축구대회에서 우리나라 청소년대표팀이 이 축구화로 세계 4강의 신화를 창조하면서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키카는 축구화의 생명을 발에 딱 맞는 축구화에 두고 아직도 천연 캥거루가죽을 고집한다. 또한 동서양 선수들의 발에 고루 맞출 수 있도록 발의 폭을 4단계로 나누고 사이즈 또한 전통처럼 굳어있는 5mm 편차를 2.5mm 편차로 세분했다. 또한 키카는 축구화 바닥에 특수 우레탄 창을 넣고 징의 접지면에 탄소섬유를 덧대 충격흡수력을 배가시키고 발의 피로를 최대한 억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