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여성연구에서는 역사를 통틀어 성차별의 뿌리가 가장 깊은 분야 중의 하나가 과학기술이었다는 결론을 내리는데 서슴치 않는다.
동서를 막론하고 그랬다는 사실이 다소 의아스럽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살피면 '과연 그랬구나'를 실감하게 된다. 저 유명한 마리 퀴리와 과학아카데미에 얽힌 일화는 그 대표격이다. 심지어 20세기에 들어서까지, 그것도 남녀 평등에서 가장 앞서간다는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일이기에 더욱 시사적이다.
1910년 유서깊은 프랑스의 '과학아카데미'(Academie des Sciences, 1666년 창설)에서는 마리 퀴리를 정회원으로 추대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미 1903년 방사능 연구로 부부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거니와, 다시 '금속 라듐의 분리'라는 업적으로 1911년의 노벨 화학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노벨상 역사로는 최초로 두차례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게 될 마리였으나, 그녀를 뽑느냐 마느냐를 놓고 프랑스 학사원은 시끌시끌해졌다. 단지 그가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편견
논란은 단순히 마리 퀴리를 회원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에 그치지 않았다. 그때까지 '금녀(禁女)구역'이었던 프랑스 학사원의 각 아카데미에 여성들을 들여 놓을 것인가의 문제로 번지면서, 남성 회원들은 학사원장에게 퀴리를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탄원서까지 낭독하는 열성을 보였다.
그들은 그 동안 누구누구도 입회가 거부됐다는 사실을 집요하게 캐내면서 기존의 관행을 깨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 에피소드는 한마디로 20세기에 들어서도 여성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과학자 대접을 받지 못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에서 여성에 대한 평가가 공평치 않은 예는 몇세기 전에도 있었다. 프랑스는 18세기 말 교육제도 개혁의 일환으로 에콜 폴리테그닉을 설립했고, 이후 과학·수학의 체계적 교육을 통해 '전문직화된 과학'을 역사상 최초로 실현시킨 나라다.
그런데 프랑스의 이 유명한 학교가 여성에게 문호가 개방되고 여학생이 입학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하게 되자, 그 일등생을 지능의 최고명예라 취급하던 전통에 제동이 걸렸다. 즉 여성은 남성과 달리 시키는대로 학과목 공부를 열심히 파고 들기 때문에 일등이 될 수 있었다고 풀이한 것이다.
여성은 어째서 과학자 축에 끼지 못했을까? 과학은 여성이라는 성을 어떻게 보았는지, 역사 속에서 그 근거를 찾아보자.
근대에 이르기까지, 즉 16-17세기 무렵까지도 여성에 관한 생물학적 이해에서 가장 권위있는 전통은 히포크라테스의 '4체액설'에 뿌리하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갈레노스를 거치면서 그 틀을 더욱 굳건히 했던 이 생물이론 체계는 생리의 기본으로 '4체액'을 중시했고, 사람의 기질은 온·냉·건·습의 혼합비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었다.
그런데 여성에게는 완전함에 이르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 열이 부족하다고 보아 여성을 '열등한 인간'이라고 규정했다. 때문에 뜨겁고 건조한 태양을 나타내는 이집트의 신 오시리스는 남성다움의 상징이었고, 차고 습함을 나타내는 아이시스는 여성다움의 상징이었다.
이런 열의 차이는 생식기에 대한 설명에서도 마찬가지 구실을 했다. 즉 여성의 생식기는 남성보다 열등하고, 그 이유는 열의 부족 때문이었다. 그리고 남성다움은 운동을 일으키는 것이며, 여성다움은 수동적인 것으로 규정됐다.
서구과학의 2천년 전통을 이루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믿음에서는 두뇌에 대해서도 성차이가 매겨져 있었다. "여성의 두뇌는 남성에 비해 수분이 많고 부드러워서 감수성이 크기 때문에 학문적 능력이 결여돼 있다"는 것이 여성이 열등한 이유였다.
'리퍼블릭'(Republic)에서 남녀 사이에는 지능의 차이가 없으며, 재능있는 여성이라면 공직에도 나갈 수 있다고 말한 플라톤 역시, 웬일인지 그의 자연철학(自然哲學) 내용을 담고 있는 '타마이우스'(Timaeus)에서는 여성을 열등한 성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성이 열등한 성이라는 주장에 대해 반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르네상스기에는 여성의 뇌가 남성의 것에 비해 작지 않음이 강조되고, "여성의 두뇌는 부드럽기 때문에 단단하고 건조한 남성보다 지적인 활동에 더 적합하다"고 내세워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을 뒤집으려는 노력까지 보였다.
16세기 기독교에서도 성차별을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했다. 예컨대 영혼만이 살고 있는 사후세계에서는 종족 번식이 필요없는 까닭에 성차이가 의미가 없고, 따라서 "영혼에는 성이 없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단지 피부 한겹 차이?
17세기 근대과학의 성립 이후, 생물과학 분야도 큰 변화를 겪었고, 그 속에서 새로운 해부학과 생리학의 이론적 발전이 나타난다. 예컨대 16-17세기 해부학은 이전과 달리 여성의 자궁이 불완전한 고환에 불과한 것이 아니며, 만병의 근원지도 아니라는 점을 밝혔다. 당대 해부학의 거장 베잘리우스는 성에 따른 외양의 차이는 '단지 피부 한겹의 차이일 뿐' 그 속의 구조는 근본적으로 같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사회적 위상은 근대과학의 발전에 의해 덕을 보기는 커녕, 과학의 전문화에 따라 여성을 과학자사회로부터 밀어내는 결과를 빚었다. 새로운 생물학의 발견은 여전히 이러저러하게 여성은 남성과 다르다는 쪽으로 나아가면서, 그 차이는 결국 여성의 능력과 활동을 어느 한쪽으로만 몰아넣는 불평등 구조를 합리화하는데 이용되고 있었다.
이때 매우 교묘한 형태로서 사회적으로 가장 널리 퍼진 신화가 상보론(theory of complementarity)이다. 상보론은 얼핏 보기에 매우 합리적으로 보였고, 여성에게조차도 그럴 듯하게 들렸다. 기본적으로 남과 여의 특질이 어느 하나가 다른 것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동등하다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남녀의 특질은 단지 다를 따름이라서 서로 비교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고, 이 두 특질은 조화로운 삶을 위해서 마땅히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 여성들의 자리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이었고, 남성들의 자리는 바깥 세상의 사회였던 것이 함정이었다.
따라서 상보론은 여성이 전문직에서 제외되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이론적 기틀이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인간의 활동 영역에는 각기 논리와 규범이 존재하는데, 여성은 과학 활동에 부적합하므로 거기에 적합한 남성들로 제한하는 것이 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단 여기서 여성이 과학적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다만 실제 과학기술의 현장에서 활동을 하는데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으므로, 여성들에게도 그러려니 하고 수용됐던 것이다.
과연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지능의 차이가 존재하는가? 만일 남성과 여성이 지적 능력에 있어 동등하다고 주장하는 경우, 어째서 인류 역사에서 여성 과학자들은 그렇게 '가뭄에 콩나기 격'으로 소수였는가?
여성학 연구 쪽에서는 이 물음에 대해 두가지 해답을 제시한다. 하나는 여성에게 과학 교육과 활동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여지껏 역사를 기록해 온 사람들이 남성이었고, 따라서 그들의 손에 의해 그나마 여성의 업적조차도 사료 선택의 과정에서 누락됐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는 아직 충분히 매듭지어지지 않은채 계속되고 있어 단적으로 결론짓기 어렵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와 미래다. 여기서는 '과학활동'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살펴보면서 여성이 과학활동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금녀구역의 문을 여는 여성들
과학활동은 항상 번뜩이는 창조적 행위라기보다 오히려 조각그림맞추기나 글자맞추기와 같은 암호 풀이의 성격을 지닌다. 또한 과학자는 예술가와 비슷해서 일 자체의 희열뿐 아니라 그 분야 과학자단체에게 인정받고자 한다. 과학활동은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응분의 보상을 요구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모든 과학자들이 아인슈타인이 될 수도 없으려니와 그럴 필요도 없다. 21세기 과학기술이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능과 창의력만으로 훌륭한 과학자와 경쟁력있는 과학기술이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주어진 주제에 쏟는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력, 추진력이 아울러 요청되는 작업이 바로 과학활동이다.
이런 관점에서 현대의 과학기술에 대한 페미니즘적 시각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 즉 오늘의 과학기술은 이른바 여성성으로 표현되는 직관적인 통찰력을 필요로 하고, 자연에 대한 남성적 정복보다는 조화를 중시하는 순응 성향, 위계적이고 일방적인 인과론적 사고보다는 상관관계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사물을 보는 여성적 특성이 더욱 소중하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종래의 남성 위주의 사고체계를 벗어나 여성 특유의 자질과 능력을 과학기술에 반영시키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오히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기본토양이라는 것이다.
80년대 UN은 과학기술연구회의(UNCSTD)를 통해 '과학기술과 여성'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세계 공통의 문제점과 대안을 도출했다. '여성은 어려서부터 적절한 과학기술 교육을 받지 못한다' '고급훈련의 기회가 제한된다' '전문직에서 고용과 승진에서 차별되며' '과학기술정책 결정에 관여하지 못한다' 등이 장애요인으로 꼽혔다.
이에 따라 '남녀가 동등한 교육을 받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하라' '고용·승진과 연구지원·시설 등에서 동등한 혜택을 받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라' '과학위원회·국제회의·과학행정·정책수립회의에 여성 과학자들을 참여시켜 훈련기회를 갖게 하라' 등의 대안이 제시됐다.
나라 바깥에서 불기 시작한 바람은 우리에게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으며, 현장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완연하다. 예컨대 여학생의 입학이 허용된 지 4년만인 1992년 과학고등학교의 여학생 진학율은 약 19%로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른바 '금녀구역'으로 구획됐던 공학분야에서까지 여학생의 진출이 놀랄만큼(?) 늘어나고 있다. 예컨대 공학 여학사 인력은 '81년(199명) 대비 '87년(958명)에는 약 5배로 늘어났고, 이후 급신장돼 '90년(2천명)에는 약 10배가 됐다. 즉 공학 전체 인력의 2%로부터 7%로 늘어난 것이다(그러나 미국 MIT의 여학생 비율이 30%인 것과 비교하면 선진국과의 격차가 실감난다).
새로운 파트너십 필요
21세기 사회는 남성과 여성의 파트너십을 기다리고 있다. 급속한 정보기술 전파의 시대 변화 속에서 여성성, 감성, 상상력이 신산업의 최강의 무기로 등장하고 있다. 산업의 소프트화, 재택.유연.변형근무 등 일터의 개념이 바뀌고 있어 여성을 밖으로 끌어내는데 유리한 여건이 형성되고 있다.
실제로 기존의 남성분야로 여성의 진입이 늘어가는 것도 분명한 흐름이다. 따라서 이 유리한 조건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적극적 전략이 필요하다.
부존자원이 없어 '사람'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비싼 돈을 들여 양성한 고급인력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장하고 있는 처지에, 무르익어가는 정보사회 속에서 여성성이 유리한 자질이 될 수 있는 시대적 추이 속에서 여성인력은 하루빨리 사각지대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