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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일생동안 약3백번 감기를 앓는다고 한다. "그냥 두어도 7일이면 낫고, 치료하면 1주일에 낫는다"라는 말처럼 건강한 사람이면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병이 곧 감기다. 그러나 감기는 만병의 근원, 특히 어린이와 노약자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
 

독감을 옮기는 인플루엔자바이러스


지난해 미국에서 독감 때문에 병원을 찾은 사람은 수백만명, 사망한 사람은 약 2만명에 이른다. 프랑스에서는 3천만명이 독감 때문에 고생을 했다. 역사를 뒤져보면 감기의 위력은 더욱 대단하다. 1918년 발생한 스페인독감은 10억명에게 고통을 안겨줬고, 2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당시 인도에서는 1천2백50만명이, 미국에서는 55만명이 죽었다.

얼마전 독일의 인플루엔자연구소가 ‘죽음’의 감기가 곧 닥칠지 모른다고 경고한 것은 그런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1918년 이후 전인류를 죽음으로 몰고갔던 감기가 1957년과 1968년에도 창궐한 바 있다. 우리를 초조하게 하는 것은 1968년 이후 30년 동안 휴지기였다는 사실이다. 어떤 전쟁보다 많은 사망자를 낼 수 있는 감기가 내년, 아니면 10년 후에 올지는 아무도 모른지만 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쯤 되면 감기가 대수롭지 않은 병이라고 치부하기엔 왠지 꺼림칙한 노릇이다. 평소 약국을 드나드는 환자 중에서 감기환자가 가장 많다. 의료보험관리공단이 1995년 한해동안 약국을 찾은 사람들을 조사해 본 결과 기침(25.1%), 인후통(14.3%), 콧물(10.7%) 등 감기증상으로 약을 지은 사람이 50.1%에 이른 것만 봐도 그렇다.

물론 감기 때문에 치명적인 단계에 이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약자, 어린이들이다. 특히 수술을 앞둔 환자에게 감기는 천적이나 다름없다. 마취과 의사들은 감기환자의 전신마취를 피하고 있는데, 감기환자를 전신마취한 경우 합병증에 걸릴 확률이 약 3분의 1에 이르기 때문이다. 즉 3명 중 한사람은 합병증으로 고생한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종종 의사와 환자의 보호자 사이에 수술일정을 놓고 말다툼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보호자는 수술을 서두르고, 의사는 수술을 미루기 때문이다. 환자가 감기에 걸린 경우 성인은 완치된 후 2주, 어린이는 3주 후에 수술을 한다.

감기와 추위

콧물이 나고, 목이 붓고, 기침을 심하게 하며, 열이 나면 흔히 감기에 걸렸다고 말한다. 의학적으로는 코, 인두, 후두, 기관, 기관지 등을 포괄하는 상기도에 바이러스나 세균이 침투해 감염된 것을 말한다.

과거에는 추위 때문에 감기에 걸린다고 생각했다. 영국에 있는 한 감기연구소의 실험이 있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곳에서는 사람들을 온탕에 집어넣어 땀을 흠뻑내게 한 후 몸을 닦지 않은 채 바람이 심한 복도에 서 있게 하는 실험을 실시한 바 있다. 그런데 감기에 걸린 사람은 한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또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감기가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돼 발생한다는 사실은 1932년 미국의 세균학자 리차드 쇼프의 의해 발견됐다. 그는 감기에 걸린 돼지의 분비물을 다른 동물에 발라 항체실험한 후, 돼지의 독감(인플루엔자)이 바이러스 때문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감기는 바이러스와 세균 때문에 생긴다. 특히 세균보다 바이러스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영국의 의학전문지 랜셋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세균에 의해 발생하는 감기는 20% 정도다. 바이러스는 크기가 1만분의 1mm 정도인 작은 유전자 조각으로 DNA와 단백질로 이뤄져 있다. 다른 생물의 몸을 빌어야 생명을 유지하기 때문에 바이러스는 가끔 생물인지 아닌지 논란이 일지만, 자기증식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생물로 보기도 한다.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약 1백여종. 이중 라이노 바이러스, 아데노 바이러스, RS 바이러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등이 대표적인 감기 바이러스다.

감기가 추위와 무관하다고 하지만, 감기 바이러스가 있는 경우 추위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 기도에서는 이물질을 몸밖으로 내보내는 섬모운동이 일어난다. 날씨가 춥고 건조한 겨울철에는 섬모운동이 위축돼 병균을 몸밖으로 내보내지 못한다. 또 난방이 발달한 요즘 바깥 기온과 방안 공기의 기온차가 커서 몸의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것도 감기를 앓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여기에다가 어린이와 노약자와 같은 연령적 요인, 영양부족, 과로, 스트레스, 비타민 결핍 등도 감기의 원인으로 덧붙일 수 있다.
 

 감기는 바이러스와 세균 때문에 생김로 겨울철에는 집안을 자주 환기하는 것이 좋다.


지구촌을 휩쓰는 인플루엔자

감기 중에서 가장 ‘독종’인 감기를 독감(influenza 또는 flu)이라고 한다. 의학적으로는 감기를 옮기는 바이러스 중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을 말한다. 독감에 걸리면 39℃ 이상의 고열과 누구한테 얻어맞은 듯한 심한 근육통이 일어난다. 또 사계절 어느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드는 일반 감기와 달리 주로 가을과 겨울에 찾아드는 것이 독감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증상만 가지고 감기와 독감을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 의사들의 견해다.

독감을 옮기는 감기 바이러스에는 인플루엔자 A형, B형, C형 등 3가지 유형이 있다. 그러나 인플루엔자는 뛰어난 변신능력을 가지고 있어 “똑같은 인플루엔자는 하나도 없다”고 한다. 인플루엔자의 변신은 매년 또는 몇 년마다 조금씩 변하는 ‘소유행’과 10-15년마다 크게 바뀌는 ‘대유행’이 있다. 스페인독감, 홍콩독감, 일본독감 등은 이런 유행을 지칭한다.

독감은 겨울철에 3-4차례 크게 유행하고 지나간다. 특히 전염성이 뛰어나 지구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는 2년마다 인플루엔자의 유형을 조사해 이에 맞는 예방백신을 맞을 것을 권한다. 그러나 예상을 뛰어넘는 인플루엔자의 대유행이 지구촌을 휩쓸 때면 예방백신도 효력을 잃는 경우가 많다.
 

(그림)바이러스 감염 부위와 감기의 증상


■코가 감염됐을 때
흔히 코감기라고 하며 감기 중에서 가장 많다. 감기를 옮기는 바이러스 중 가장 많은 것은 라이노('코'라는 뜻)바이러스다. 그러나 라이노바이러스가 코감기만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코감기에 걸리면 코의 점막이 붓고 재채기와 콧물이 나온다. 2-3일이 지나면 점액같은 콧물이 나오고 코가 막힌다.

■인두가 감염됐을 때
흔히 목감기라고 한다. 인두(입과 식도 사이)의 점막이 빨갛게 건조해진다. 목이 칼칼해지고 기침이 나는 것이 주요 증상이다. 음식을 삼킬 때 아프고 가벼운 열이 나며 때로 콧물이 흐르기도 한다.

■후두가 감염됐을 때
후두는 기관의 앞에 있다. 후두가 감염되면 목이 쉬고 심하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열은 거의 나지 않는다.

■편도선이 감염됐을 때
주로 세균에 의해 감염된다. 편도선이 붓고 목이 몹시 아프다. 오한과 함께 고열이 발생하며, 근육통이 따르기도 한다. 심하면 음식이나 침을 삼키기도 힘들다.

가장 좋은 처방은 물

감기가 인류 최대의 재앙이라고 일컬어지는 까닭은 치료약이 없기 때문이다. 감기 바이러스는 워낙 종류가 많을 뿐더러 변종도 많은 게 치료약을 만들기 어려운 이유다. 그래서 예방이 최선책이다. 감기 바이러스는 주로 호흡기를 통해 몸안으로 침투하기 때문에 흔히 마스크를 쓰면 감기 예방이 되는 줄 알지만, 이는 오산이다. 감기 바이러스는 공기 중에서 직접 감염되는 것이 아니라 손을 통해 코나 입으로 옮긴다. 그러므로 면역성이 약해 감기에 잘 걸리는 어린이의 경우 놀이방에서 돌아오면 손을 깨끗이 씻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겨울철에는 집안을 자주 환기시켜야 감기를 예방할 수 있다. 춥다고 방문을 꼭꼭 닫아놓으면 감기 바이러스가 오히려 더 설친다. 적절한 온도와 습도의 유지야말로 감기 예방의 지름길이라는 게 의사들의 충고다.

전염성이 뛰어나긴 하지만 독감에는 일반 감기와 달리 예방백신이 있다는 점이 매우 다행스럽다. 인플루엔자 유행시기는 1-3월이므로 예방백신은 10-11월에 맞는 것이 적기라고 한다. 주사를 맞은지 4주를 넘어야 예방백신은 효과를 본다. 그러나 누구나 예방백신을 맞을 필요는 없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적당한 휴식과 몸을 깨끗이 씻는 것만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면역능력이 약한 어린이와 65세 이상의 노인, 감염되기 쉬운 의료계 종사자들, 환자들은 예방백신을 맞는 것이 좋다.

그동안 우리 민족은 감기를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단방약들을 써 왔다. 유자차나 모과차를 달여 먹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유자와 모과에 풍부하게 들어있는 비타민 C는 노폐물을 제거하고, 피로를 회복시키는 등 인체 내에서 많은 일을 한다. 그래서 비타민 C가 많은 음식은 대체로 감기예방에 좋다고 할 수 있다.

한방에서는 녹차, 홍차, 갈근차, 오미자차 등이 감기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감기 초기에는 고기를 피하고 야채를 많이 먹어야 하며, 감기가 나은 다음에는 고기를 많이 먹어 체력을 보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북한 노동신문은 “감기를 예방하려면 식초 냄새를 쏘여보라”고 권한 바가 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한 번에 15-20분씩 방안에 식초냄새를 쏘이면 병균을 죽이기 때문에 건강관리에 이롭다”는 게 그 요지다. 또 감기 예방과 치료책으로 민들레 뿌리를 달여먹는 방법도 널리 유행한 바 있다.

감기보다 더 고통스러운 감기약

이처럼 감기에 대해 수많은 민간요법들이 내려오지만 가장 좋은 음식은 물이라고 한다. 물은 각종 병균을 몸밖으로 씻어내고 인체가 병원균과 싸우는 동안 남은 노폐물을 몸밖으로 밀어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따듯한 물을 자주 먹을 것을 의사는 권한다.

건강한 사람의 경우 1주일 정도 지나면 감기가 자연적으로 치유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동안 겪는 고통은 실로 크다. 특히 직장인이나 수험생의 경우 최상의 치료책인 휴식을 제대로 취하기 어렵다. 그래서 병원이나 약국을 찾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스스로 진단해 약을 사먹는 경우다. 종합감기약의 경우 만병통치약처럼 모든 감기증상에 맞는 처방을 모두 넣고 있다. 그래서 코감기인데도 목감기약이나 몸살감기약까지 먹어야 한다. 일례로 목감기에 콧물을 멈추게 하는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하면 코나 목, 입안의 분비물을 마르게 할 수 있다. 감기보다 감기약 때문에 고생하는 경우가 이런 경우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라는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또 약에 대해 조금 안다고 약사의 도움없이 스스로 처방하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병원에서는 자세하게 증상을 살펴 그에 맞는 처방을 내린다. 물론 수많은 감기 환자의 분비물을 현미경으로 관찰해 바이러스 종류를 검사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약국에서 약을 조제할 때는 환자의 증언에 따라 감기약이 조제된다. 여기서 환자의 증언이 과장되면 종합감기약을 사먹는 경우와 마찬가지의 일이 벌어진다. 그래서 약사는 환자의 말만 듣고 감기약을 조제하지 않는다고 한다.

감기약을 먹을 때 주의할 점은 또 있다. 이곳 저곳 옮겨다니며 약을 조제해 먹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감기약 중에는 장기적으로 먹어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콧물을 멈추게 하는 점막수축제를 많이 먹게 되면 오히려 약물성 비염에 걸릴 수가 있다.

종합감기약에 들어있는 성분들

●아세트아미노펜:해열진통제로 열을 내리고 통증을 없애며 염증을 소독하는 효과가 있다.

●말레인산클로르페나라민:항히스타민제로 맑은 콧물이 흐르고 가렵고 재채기가 날 때 쓴다. 이 약을 복용하면 졸리운 효과가 있다. 감기약에 취하는 까닭은 이 성분 때문이다.

●디엘염산메칠에페드린과 구아이페네신:진해거담제로 가래나 기침을 멎게 한다. 이 성분을 과다하게 먹으면 환각상태에 이른다. 그래서1997년 10월부터 조제시에 이 약을 쓸 경우에는 환자의 주민등록번호 등을 자세하게 적게 돼 있다.

●무수카페인:약효를 상승시키고 두통을 멈추게 하는 효과가 있다.

●파라옥시안식향산메칠과 파라옥시안식항산프로필:약성분을 녹이는 용매다.
 

종합감기약에 들어있는 성분들


조제약의 예

콧물과 재채기가 나고, 목과 몸이 쑤시고 열이 날 경우 감기약을 지어봤다. 이는 환자의 연령, 상태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 없음을 밝힌다. 예시된 성분 밖에도 병원에서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 스테로이드(점막의 부종이 심한 경우), 점막수축제(코가 막히는 경우), 진해거담제(가래와 기침이 심할 경우), 구강청정제(목안을 세척하기 위해 사용, 소금물로 대신할 수 있음)등을 처방하기도 한다.

●소염제:염증을 해소한다.
●해열진통제:열을 내리고 통증을 줄인다.
●항히스타민제:콧물을 멈추게 한다.
●항생제:세균에 의해 2차 감염됐을 경우 폐렴이나 기관지 경련 등과 같은 합병증을 막기 위해 사용한다.
●소화제:소화를 돕는다.
 

조제약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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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홍대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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