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마술 스타 카퍼필드는 현대 마술의 경지를 한차원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그의 능력은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다시 자신의 창의력과 결합시키는데서 빛을 발산한다.
'현존하는 최고의 마술가’는 과연 누구일까.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는 수준의 마술가들은 저마다 자신의 마술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현존하는 최고의 마술 스타’를 꼽으라면 답은 쉬워진다. 바로 데이비드 카퍼필드다.
1956년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12살 때부터 ‘다비노’라는 예명으로 무대에 서기 시작한 이래 고전적인 마술의 내용을 새롭게 해석해 무대에 올림으로써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1990년 발간된 ‘미국인명사전’은 그를 ‘프로젝트 마술의 창시자’로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좁은 무대에서 행해지던 마술을 오늘날 환상적인 예술의 경지로 성장시킨데는 그의 공이 컸다.
그는 자유의 여신상 사라지게 하기(1983년), 만리장성 걸어서 통과하기(1986년) 등의 초대형 마술을 구사하면서 자신의 연기를 매스미디어와 결합시켜 이전의 어떤 마술사도 얻지 못했던 부와 명성을 거머쥐었다.
그렇다면 신출귀몰하는 카퍼필드 마술은 과연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사람들은 저마다 그 비밀을 풀기 위해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겠지만(이것이 마술 관람의 행복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결코 초능력자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그의 마술 중 ‘죽음의 톱날’이란 공연에 숨겨진 비밀을 해부해보자.
전문가 집단이 연출한 마술무대
무대 양쪽의 가장자리에서 피어난 하얀 연기가 중앙으로 모여들면서 무대는 신비함을 전한다. 중앙에는 보기에도 섬뜩한 지름 2.5m 정도의 거대한 톱니 칼날이 허공에 매달려 있다. 칼날에는 타이머가 장착돼 있고 시계의 초침은 0을 가르키고 있다. 칼날과 정조준된 부분에는 한사람의 성인이 누우면 꼭 맞을 만한 침대가 놓여 있으며, 여기에는 들어간 사람이 혼자 힘으로 나올 수 없도록 자물쇠가 달려 있다.
관객들에게 인사를 전한 뒤 카퍼필드는 열쇠 대신 5cm 가량의 철사 하나를 들고 침대에 엎드린다. 엎드린 그의 양팔과 다리는 견고한 자물쇠를 사용해 침대에 묶인다. 카퍼필드를 자물쇠로 모두 묶은 후 보조진행자들은 타이머의 스위치를 작동시킨다.
곧이어 날카로운 톱니는 조명을 받으며 살벌한 기세로 카퍼필드의 허리로 빠르게 떨어진다. 그러나 카퍼필드는 아직도 수갑과 발에 채워진 자물쇠를 풀지 못하고 있고, 한순간 타이머는 멈추고 만다. 그리고 죽음의 톱날은 카퍼필드의 허리를 두동강으로 잘라버린다.
미동조차 없는 카퍼필드의 정적에 눌려 무대 주변과 관객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이때 서서히 움직이는 카퍼필드. 무대의 보조진행자가 나와서 두동강난 카퍼필드의 몸을 상체와 하체로 분리해 카퍼필드의 눈이 잘리워진 자신의 허리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돌려놓는다.
“세상에 이럴 수가……” 모두 넋을 잃고 만다. “아무리 마술이라지만 좀 심한 거 아냐?”라는 말이 나올 법하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한다.
마술은 환상이며 공연예술이다. 무대의 연기자인 마술가는 연극이나 영화의 연기자처럼 실수없이 자신의 역할을 해내야만 한다. 이것이 연기자의 의무다. 그러나 공연예술은 한 사람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언제나 주인공을 돕는 스태프가 있다는 말이다.
카퍼필드의 마술에 동원되는 스태프는 어느 한 부분을 가리기 위해 등장하는 엑스트라를 제외하고도 최소 80명에서 최대 2백명에 이른다. 이들은 정교하게 꾸며진 각종 무대장치와 조명, 분장, 음악 등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8t 트럭 두 대 분량의 장비가 그의 연기를 뒷받침해주는 것이다.
카퍼필드는 인조인간인가
한사람을 실제로 잘랐다가 다시 붙이는 것은 첨단을 자랑하는 현대의술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마술이란 초능력이 아니므로, 있는 것을 잘 감추었다가 기술적으로 나타나게 하는 것이지, 전혀 없는 것을 만들어 낼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두동강을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주인공은 하체가 안보이게 하고, 한사람은 상체가 안보이게 해야 한다는 것이 죽음의 톱날이 가진 핵심이다. 카퍼필드는 허리를 잘리기 위해 침대 위로 올라가면서 옆으로 비스듬히 들어가며 엎드린다. 이와 때를 같이 해 다른 한사람도 침대로 들어간다. 카퍼필드는 침대에 달린 받침대 속으로(침대 받침대의 기둥은 속이 비어 있다) 두 다리를 집어넣고 웃몸 굽혀펴기 동작과 비슷한 자세를 취한다. 이를 외부에서 본다면 상체만 보이고 하체는 사라진 상태다. 동시에 들어간 사람은 반대로 머리와 상체를 침대 받침대 속으로 굽혀 넣는다.
이런 모습이 갖춰지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길어야 1분 이내. 이 부분은 매우 짧은 시간에 진행돼야만 한다. 마술의 특징은 과정을 보여주는 법 없이 극도로 정제된 결과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마술가들은 어떤 경우에도 관객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는다. 만일 마술가가 무대 위에서 관객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면 그 마술은 실패한 것이다. 이것이 마술이다.
카퍼필드가 자물쇠에 갇히는 순간에는 이미 모든 세팅이 끝난 셈. 그러나 무대 보조진행자가 나와서 마무리 세팅을 하는 것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보조진행자는 카퍼필드가 미리 바지 밖으로 내놓은 와이셔츠의 아래부분(허리)으로 카퍼필드의 세팅부분인 허리 아래와 분리되어 있는 다른 사람의 등쪽을 잘 덮어야 한다.
이와 함께 그는 혹 있을지 모르는 실수(이를 테면 와이셔츠가 걷어져 이미 잘려있는 부분이 노출되거나, 톱니로된 칼날이 이상 조준돼 사람을 다치게 되는 상황 등)에 대비해 와이셔츠의 아래부분을 단단한 쇠벨트로 채우고 카퍼필드의 허리쪽에도 쇠벨트를 채운다. 죽음의 톱날은 정확하게 이 벨트와 벨트 사이를 가르는 것이다. 두 사람이 한몸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매우 익숙한 동작으로 보조진행자가 이 장면을 진행해야 한다.
벨트와 벨트 사이를 정확하게 갈랐다면 마술은 성공한 것이다. 시침떼기의 명수인 카퍼필드는 비명을 지르면서 연기를 시작하고 관중은 숨을 죽인다.
만일 죽음의 톱날이 이 원칙을 벗어나면 누군가는 유명을 달리하는 희생을 치르게 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수많은 마술가들이 이와 유사한 마술을 행해 왔지만 아직 두동강 나서 죽은 마술가는 한명도 없다.
사실 이 공연은 이미 오래 전부터 해온 마술의 하나로, 우리 나라에서도 15년 이전에 선보인 적이 있다. 당시는 나무로 통을 만들어 그 안에 사람을 눕히고 수동으로 큰 칼을 허리쪽에 넣어 자른 다음, 자신의 잘린 허리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카퍼필드와 차이점이 있다면 두사람을 사용하지 않고 하체부분, 즉 발을 모조품으로 만들어 여기에 DC모터를 달아 저절로 움직이게 했다는 점이다.
필자를 비롯해 이 마술을 알고 있는 마술가들이 “다소 낡았다”는 생각 때문에 아예 고전으로 묻어두었던 것을 카퍼필드는 현대과학의 성과물과 자금을 동원해 근사한 모습으로 재생시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