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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의 후예 께로족

만년설 속에서 묻혀 있던 5백년

 

추아추아족이 기르는 주된 가축 라마와 알파카(작고 흰것).


페루의 남쪽 안데스 산맥 한가운데 있는 왈까왈까 마을 근처에는 사방카야 산과 암파토 산이 마주보고 서 있다. 지난 93년 사방카야 봉우리가 화산으로 인해 격렬한 분출을 시작하면서 뜨거운 화산재가 주변을 뒤덮었다. 근처에 있던 암파토 산은 화산 분출시 발생한 열로 5백년 동안 덮여 있던 만년설이 녹아 없어지면서 표면층이 노출됐다. 그곳에는 붉은색과 흰색의 망토에 싸여 있는 소녀가 얼음 속에 갇힌 채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옛 잉카인들은 순결하고 깨끗한 소녀를 신에게 바쳤다. 12살난 후아니따는 그렇게 제물로 바쳐진 희생물이다. 몸을 싼 망토를 손에 꽉 쥐고 튀어나온 광대뼈와 고운 머리칼을 그대로 드러낸 채 냉동상태로 발견된 후아니따는 고고학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페루 안데스 암파토산 정상에서 발견된 미라 후아니따. 5백년 전 잉카시대 제물로 바쳐진 12살의 소녀로 냉동상태로 발견됐다.


유일한 문자 , 퀴프

잉카의 옛 수도였던 쿠스코 남동쪽 해발 5천m 안데스 깊은 산 속에 현대 문명을 등지고 살고 있는 께로족. 잉카는 과거로 사라졌지만 그 후예들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쿠스코에서 자동차로 꼬박 하루를 달려 작은 마을 꽁가떼에 도착했다. 더 이상 자동차가 갈 길이 없다. 일행은 말 15필, 산악 전문 짐꾼 7명과 동행하기로 했다. 거대한 산무리 사이로 굽이굽이 끝없이 이어진 비탈진 산길을 돌면서 계곡 을 넘고 또 넘었다. 5천2백m의 우리꽁까와 3천m가 넘는 15개의 산을 넘어 사흘만에 께로족이 살고 있는 추아추아라는 마을에 어렵게 도착했다. 마을에는 사방이 5천m의 산들로 둘러싸인 비탈에 초가를 이고 있는 집들이 소담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해발 4천8백m의 마을에는 22가구에 께로족 60여명이 살고 있었다. 감자 농사와 목축을 하는 께로족의 남자들은 새벽녘에 라마와 알파카를 끌고 마을을 떠나 저녁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온다. 남자들이 나가면, 여인들은 줄곧 옷감을 짠다.

잉카는 문자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지금까지 잉카의 역사나 문화 속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많은 것도 문자로 남겨진 어떤 기록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안데스 산골에서 잉카가 쓰던 문자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목축 일을 나가기 전, 께로족은 알파카의 수를 세어 둔다. 방목을 하다가 한 마리라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다. 나무 막대에 끈을 매달고 알파카의 수를 매듭으로 표시한다. 바로 퀴프라는 결승문자. 매듭의 모양과 색깔을 달리해 수를 표시하는 것이다. 이것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잉카 문자의 흔적이다.

라마와 알파카가 유일한 재산

아침마다 수를 세는 수고를 해야 할만큼, 께로족에게 알파카와 라마는 없어서는 안될 더없이 중요한 재산이다. 이들은 1년에 한 번 라마를 위해 일종의 의식을 치른다. 깨끗한 코카잎과 말린 감자. 께로족이 중요하게 여기는 식량을 조심스레 떼서 흰 종이에 싼다. 의식을 치르기 위해 마련한 음식들이다. 그런 후 그것을 태워 잉카 신에게 올린다. 해발 2천5백m 이상에서만 사는 라마는 안데스에서 없어서는 안될 교통수단이요 식량이기 때문이다. 그 라마가 아무 탈없이 잘 자라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것이다.

의식이 끝나면 라마를 치장하는 행사가 시작된다. 굵은 바늘에 털실을 끼운 후 라마 귀를 뚫어 털실 귀걸이를 해준다. 께로족은 1년에 한 번씩 이렇게 라마에게 귀걸이로 치장을 해준다.
어느 시대, 어느 민족에게나 축제와 놀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민족문화의 정수다. 매년 음력 섣달 그믐날이면 께로족들은 마을 한가운데 모여 나흘간의 큰 축제를 연다.

안데스의 풍요와 평화를 기원하는 축제로, 태양신에게 가정의 화목과, 부락의 평화를 춤과 노래로 간구한다. 남자들의 춤은 나흘간 계속되고, 남자들이 춤을 추는 동안 쉬지 않고 단조로운 노래를 부르는 건 여자들의 몫이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는 라마와 알파카의 소리를 닮았다. 그들이 유일하게 볼 수 있는 동물의 소리를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유일한 악기인 ‘삐꾸이뇨’와 ‘팔라와파’라는 피리로 흥을 돋운다. 남자들의 춤도 알파카의 걸음걸이를 닮았다. 이렇게 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고 께로족은 믿는다.

‘잉카의 꿈’을 간절히 기원

해가 지고 마을에 저녁이 찾아들자 목축 일을 나갔던 사람들이 하나 둘 마을로 돌아온다. 안데스를 누비고 다니던 께로족은 보금자리로 돌아와 아이들과 부인이 준비한 저녁을 먹는다. 이들의 저녁밥은 보관하기 쉽게 짓이겨서 냉동 건조시킨 감자로 만든 죽이다.

저녁반찬은 잉카의 전설. 노인은 저녁때마다 아이들을 모아 놓고 "옛날 잉카 왕이 금 옥수수를 던졌는데 그 옥수수가 닿은 곳을 '팔카'(축복받은 땅)라고 하고, 옥수수가 닿지 못한 곳을 '께로'라고 한다. 우리 추아추아 마을에도 언젠가는 그 행운이 올 것이다"라고 얘기한다. 지금껏 전통을 고집해 온 노인은 그 꿈으로 고산지대의 힘겨운 생활을 이겨 나가고, 아이들은 그 꿈을 먹는다. 그들은 옛 찬란했던 잉카가 다시 온다고 믿으며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

잉카문명

남아메리카의 안데스를 중심으로 16세기 초까지 잉카족이 이룩한 청동기 문화. 잉카족은 12세기에 쿠스코를 수도로 삼아 잉카제국을 건설했다. 1535년 스페인에 의해 정복될 때 까지 태평양 연안과 안데스 산맥 고원지대를 따라 지금의 에콰도르 북부 국경지역에서 칠레 중부 마울레 강에 이루는 제국을 통치했다. 잉카문명은 직물, 금세공, 석조기술, 농업문화가 발달시켰으며 태양산을 중심으로 자연숭배의 다신교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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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김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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