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여름 중미 코스타리카의 몬테베르데라는 고산지대를 찾았을 때 일이다. 그곳에서 개미를 연구하고 있던 한 박사의 귀뜸으로 작은 트럼핏 나무를 쪼개 보았다. 그런데 대나무처럼 속이 비어 있는 줄기의 마디마다 애즈텍 여왕개미들이 제가끔 살림을 차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때론 여왕개미 혼자서, 또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심지어 피부색이 다른 종의 여왕들과 함께 신생국가를 만들고 있었다. 필자는 생일 파티에서 온갖 선물 꾸러미들을 찢어 푸는 아이처럼 작은 트럼핏 나무들을 정신없이 풀어 헤쳤다.
그로부터 1년 후 하버드대학의 실험실 동료 댄과 함께 본격적으로 애즈텍 개미들의 국가 건립 과정과 그에 따른 왕권 다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필자는 이미 다른 연구 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시작한 지라 우리의 공동연구는 훗날 댄의 박사학위 논문이 됐다. 댄은 이 연구를 위해 아내와 함께 1년이 넘도록 몬테베르데에서 살면서 연구에 전념했다.
재미 뒤에 숨겨진 무용담
다른 학문도 그렇지만 특히 동물행동학의 경우 남이 다 해놓은 연구 결과를 얘기로 들을 때면 더할 수 없이 흥미 진진하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재미있는 얘기가 엮어지기까지는 모든 것이 불편한 오지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각고의 경험을 거친 무용담이 숨어 있다. 그래서 TV로 보는 신기한 동물 세계에 매료돼 동물행동학에 뛰어들었다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도중하차하는 친구들이 많다.
어려서부터 공부보다 산이나 들로 쏘다니기를 워낙 좋아한 필자였지만 장기간에 걸친 열대의 생활이 늘 신명나는 것만은 아니다. 워낙 습기가 많은 곳이라 축축하게 젖어있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 것이 제일 싫었다. 어려서 요를 적시던 기억도 나고 속옷으로 흥건히 젖어드는 습기를 피부로 느끼며 잠을 청하기란 쉽지 않았다. 어쨌든 앞으로 동물행동학을 전공하고 싶은 후학들을 위해 실제로 야외에서 하는 연구란 어떤 것인가를 들려주고자 한다.
동물행동학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동물을 되도록이면 그들이 사는 환경 그대로에서 관찰하고 실험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애즈텍 여왕개미가 트럼핏 나무를 찾는 순간부터 하나의 국가로 자립하는 과정을 자세히 관찰하기로 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웠다.
한바탕 소나기가 뿌린 후 후덥지근한 어느날 오후 혼인비행을 마친 여왕개미가 작은 트럼핏 나무를 찾아 내려 앉았다. 여왕개미는 나무의 줄기를 따라 위아래로 두어번쯤 오르락 내리락하고 난 다음 스스로 자기의 날개를 부러뜨린 후 곧바로 나무 줄기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한다. 이때 여왕개미는 줄기의 아무 곳에서나 구멍을 뚫지 않는다. 트럼핏 나무가 여왕개미를 위해 미리 특별히 얇게 준비해 놓은 곳이 있다. 여왕개미가 이 부위에 작은 구멍을 뚫고 비대한 몸을 비집고 들어가는데 30분에서 길면 두 시간까지 걸린다. 일단 안으로 들어간 여왕개미는 줄기의 안벽을 긁어 자기가 들어온 구멍을 막는다.
아주 어린 나무라면 모를까 여왕개미는 대개 다른 여왕개미들이 이미 입주해서 살고 있는 고층 아파트에 도착한다. 아래층에는 상당히 오래 전에 입주한 여왕들이 현관문을 꽉 잠근 채 살고 있다. 여왕개미가 뚫고 들어간 구멍 부위를 식물이 새로운 물질을 분비해 오히려 다른 부위보다 더 두툼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 이상의 진입이 불가능하다.
색소 먹여 알 종류 구분
이에 비해 중간층에 사는 여왕들의 현관은 닫혀 있기는 해도 잠겨 있지는 않다. 먼저 들어간 여왕이 구멍을 막아 놓기는 했지만 뒤에 도착한 여왕이 그 문으로 밀고 들어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관찰에 따르면 그저 5-12분 정도면 충분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여왕개미에게는 주거형태를 선택할 여지가 있다. 이미 입주해 있는 아파트로 들어가 동거를 시작하거나 아니면 혼자 애써 구멍을 뚫고 꼭대기층에 입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현관문을 걸어 잠근 후에는 여왕들이 어떻게 사는 지 알 길이 없었다. 우리가 사는 고층 아파트처럼 큰 유리창이 있으면 들여다 보기라도 하겠지만 나무를 죽이지 않은 채로 관찰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무를 쪼개 여왕개미들을 모두 잡아 실험실에서 키우며 관찰할 수도 있지만 자연 그대로에서 관찰하는 것과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다.
그래서 나무를 그대로 두고 종이를 뚫을 때 쓰는 간단한 기구를 사용해 줄기에 구멍을 만들었다. 그리곤 여왕들을 구별하기 위해 일일히 한마리씩 꺼내 이름표를 달아주었다. 다시 조심스레 여왕개미들을 줄기 속으로 넣은 후 구멍마다 고무마개를 박았다. 일단 장기적인 관찰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된 셈이다. 그 후론 일정한 계획에 따라 주기적으로 그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하지만 들여다 볼 수 있는 구멍을 뚫기는 했어도 어두컴컴한 줄기 속에서 벌어지는 여왕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의사들이 쓰는 내시경을 사용하기로 했다. 내시경이란 긴 튜브 끝에 작은 렌즈가 달려 있고 그 주위로 열을 내지 않는 광섬유전원(fiberoptic light source)이 배열돼 있어 좁고 어두운 곳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든 기계다. 인류 문명의 그림자도 비추지 않는 오지에서 최첨단의 의학 기술을 이용해 예전엔 아무도 들여다 보지 않은 애즈텍 사회를 엿보게 된 것이다.
한 집에 모여 함께 있다고 해서 꼭 협동하며 산다는 보장은 없다. 실제로 모든 여왕이 다 알을 낳고 공동으로 자식을 키우는 일에 가담하는지 여부를 밝혀야 했다. 여왕개미들은 모두 알을 품고 있어 배가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알을 품고 있다고 해서 다 알을 낳아 같이 기르는지 알 수 없다.
물론 주야로 이들을 관찰하면 누가 알을 낳고 누가 낳지 않는지 밝힐 수 있지만 그러기는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다. 또 지나치게 그들의 생활을 방해하는 일이기도 해서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과연 누가 알을 낳느냐를 알기 위해 여왕개미들이 먹는 음식에 각기 다른 색소를 섞었다.
결과는 신기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다른 색의 음식을 먹은 여왕들이 모두 다른 색의 알을 낳은 것이다. 여왕개미들이 모두 협동해 알을 기른다는 명확한 증거였다.
실험실에서 마무리
일단 야외에서 대략적인 생활사가 밝혀진 다음에는 그들을 실험실에서 배양하면서 관찰할 필요가 있다. 개미는 실험실에서 웬만한 수준의 환경만 제공하면 잘 자라고 그들이 자연환경에서 보이는 거의 모든 행동을 거침없이 보여준다.
거의 4백마리나 되는 여왕개미를 채집해 하버드대학 실험실로 운반하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마이애미 공항의 검역관 아주머니가 큰 여행 가방 하나 가득 여왕개미가 들어 있다는 말에 가방은 열어보지도 않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소를 금치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