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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지능 엄마가 물려준다?

'에세이성'기사를 새 연구결과인 듯 호들갑

 


한국부모들은 자녀들의 교육과 지능에 관심이 많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요즘 ‘잘 생긴 여자’ 보다는 ‘똑똑한 여자’ 가 신부감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7월 초 신문에 게재된 “아들의 지능은 엄마가 물려준다” 는 가십성 기사 때문. 오스트레일리아 뉴캐슬에 있는 헌터 유전학연구소의 연구원인 터너가 영국의 의학잡지 랜셋에 실은 원고를 로이터-연합기사를 통해 한국의 주요 언론이 모두 받았던 것이다.

아이들의 머리가 좋고 나쁨에 한국 부모들은 관심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이 기사의 파장은 적지 않았다. 결혼을 앞둔 사람들이 한번씩 다시 생각해보았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올해 초에는 IQ 1백40 이상인 학생들을 월반을 허용한다고 해서 학부모들을 한껏 자극시켰던 일이 있다. IQ를 자주 측정하면 지수가 높아지지 않을까 해서 여러번 반복해서 측정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측정 결과가 평균 100을 훨씬 웃도는 1백20이 나오기도 해서 점수를 하향 조정해 발표하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들렸다.

“아들의 지능은 엄마가 물려준다” 는 기사를 주요 일간지들이 빠뜨리지 않고 앞을 다투어 보도한 것은 바로 이러한 ‘열화같은 국민적 관심’ 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풀이된다. 하지만 이 기사의 신뢰도를 정확히 체크한 신문은 하나도 없었다. 헌터유전학연구소가 어떤 곳인지, 이 기사를 게재한 의학잡지 랜셋은 어느 정도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지, 잡지에 실린 기사의 성격이 연구논문인지, 아니면 에세이성 기사인지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 결과 기사는 ‘흥미’ 만을 강조, 가십성으로 흘렀다. 어떤 신문은 제목을 아예 ‘아들 머리 나쁜 것은 엄마 책임’ 이라고 ‘작문’ 을 하고 나섰다. 이 때문에 부부 싸움을 한 집안도 꽤 있었으리라고 생각된다.

지능, 즉 인간의 지적 능력은 아직 개념조차 제대로 정의돼 있지 않다. 또 지능이 유전하는지, 아니면 후천적으로 습득된 것인지도 아직 논쟁 중이다. 이밖에도 지능을 과연 측정할 수 있는가, 지능은 변하지 않는가 등 여러가지 논의들이 아직도 용광로처럼 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얼마전 미국에서 불같이 번졌던 ‘벨커브논쟁’도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지능 유전에 대해서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는 점을 터너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터너는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70% 이상 지능적 연관관계가 있다” 고 말하면서 “남성이 여성보다 지능 편차가 심하며, 남자는 수학과 운동능력, 여성은 언어능력에서 우월하다는 것은 이미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고 주장했다.

 

터너 주장의 핵심은 지능유전자가 존재하며 그 유전자는 성역샘체의 하나인 X염색체에 포함돼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는 정신지체증이 나타나는 10가족의 가계도를 조사한 결과 정신지체증을 앓고 있는 수가 여자보다는 남자들이 많았다는 것을 들고 있다.

또 IQ 분포도에서 남자쪽의 변이가 여자보다 크다는 사실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즉 남자가 여자보다 머리좋은 사람도 많지만 상대적으로 저능아도 많다는 것이다. X염색체가 두개인 여자보다는 한개인 남자가 유전자가 손상받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이 주장을 터너가 처음 한 것은 아니다.

터너는 실례로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의 가계를 들고 있다. 이 가계는 우수한 인재를 많이 배출해 유전 연구에서 자주 인용된다. 찰스 다윈의 3대 가계를 살펴보면 23명 중 10명이 뛰어난 인재로 알려져 있는데, 그 흐름을 잘 살펴보면 대부분 모계로부터 우수한 지능이 유전됐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기사에 새로운 연구결과는 없었다. 다만 그동안 논의됐던 바를 근거로, 지능은 유전하며, X염색체에 지능유전자가 존재할 것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말미에 X염색체에 지능유전자가 존재한다면, 남성들은 배우자를 선택하는데 지금까지와는 달리 외모만을 볼 것이 아니라 다른 면을 고려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개인적인 의견을 개진해 놓았다.

이와같은 ‘에세이성’ 글이 로이터-연합기사를 거쳐 한국의 언론들에 등장하면서 마치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온 것처럼 인용됐고, 흥미로움까지 덧붙여져 아들이 머리 나쁜 것은 모두 엄마의 책임인 것처럼 각색됐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매우 복합적인 요소다. 수만가지나 넘는 직업이 존재하는 것처럼 인간의 능력도 여러가지다. 지능은 단순히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능력이 아니라 △변화된 환경에 적응 할 수 있는 능력 △목적을 향한 열정 △문제 해결 능력 △다양한 경험에서 보편적인 법칙을 추출 할 수 있는 능력 등이 복합화된 것이다. 이러한 능력은 유전으로만 획득될 수 있는 형질이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배우고 습득하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설혹 인간의 지적 능력 중 많은 부분이 유전된다고 하더라도 특정 유전자로부터 유래되는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그럴진대 정신지체증을 앓는 소수의 연구결과를 놓고 성염색체(X염색체)에 지능유전자 모두가 존재한다과 주장하는 것은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그렇기 때문에 아들의 지능은 아빠를 닮지 않고 엄마만 닮는다는 논리는 비약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아이들의 지능에, 정확히 표현하면 지능지수(IQ)에 관심이 많은 한국의 부모들은 외국 연구원의 수필 하나로 '비과학적인 상식' 하나를 더 갖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 언론들의 무책임한 보도 태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앞으로 인체게놈프로젝트에 의해 인간의 유전자지도를 완벽하게 해독해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미지수지만, 지금처럼 신빙성 없는 이야기가 회자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능이 유전하는가'라는 문제는 아직도 논쟁 중.
 

1996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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