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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가상현실 기술을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적용하는 예가 많이 등장했다. 지난 4월 11일 15대 총선 개표 방송 때 방송 3사가 ‘매직 룸’이니 ‘버추얼 스튜디오’라는 이름으로 가상 스튜디오를 선보였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일기예보 방송에서 볼 수 있는 크로마키(chroma keying)기법도 가상현실 기술의 초창기 모습이다.

관찰자의 시각, 청각, 촉각 등 감각기관을 인위적으로 자극함으로써 인지된 세계를 가상의 세계라고 한다. 컴퓨터의 발전은 이런 가상의 세계를 컴퓨터 내부에서 구축하고 실제의 세계처럼 입체적으로 보면서도 그 세계의 객체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게 만들어 우리를 가상의 세계로 몰입시킨다. 즉 관찰자는 가상의 세계를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서 보는 차원을 넘어 그 세계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가상 세계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임장감이라고 하고, 현실감있는 가상 세계를 창출시키는 기술이 바로 가상현실 기술이다.
 

가상현실과 인터페이스를 가능하게 하는 데이터 장갑.


감각신호가 얽히면 멀미가

가상현실을 창출하는데에는 컴퓨터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변기기가 필요하다. 3차원 입체 영상 표시기(Head-mounted Display, Stereo Glass, Holography 등), 3차원 음향 표시기, 3차원 물체를 조작하는 데이터 장갑, 관찰자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추적 센서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 가상 세계를 입체로 3차원 시청각 표시기에 그려주고 추적하는 기능을 컴퓨터에서 수행하고, 참여자의 입력과 반응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져야 하므로 고성능 그래픽 기능과 병렬 기능까지 갖춘 고성능 컴퓨터가 필요하다.

이런 요구조건은 현재의 컴퓨터 기술로는 만족시키기 어렵다. 한 예로 시각세계를 구현하는 컴퓨터 그래픽 분야를 보면, 한 화면을 다면체로 표현하는데 8천만개의 다각형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의 기술로는 약 9만개의 다각형만 그릴 수 있기 때문에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컴퓨터가 2배 빨라지는데 약 1.5년 걸린다면 15년 후에나 실물의 영상에 가까운 합성 화면을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그래픽 컴퓨터가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실세계를 그대로 모사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가상현실 창출 시스템의 원조라는 비행기 조종훈련 시뮬레이터에서 훈련한 조종사 중 일부는 시뮬레이터를 탄 후에 멀미증상이나 현기증 등의 부작용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시뮬레이션 멀미현상은 숙련된 조종사일수록 더욱 심하다고 한다. 이런 부작용의 원인은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는 않지만 감각기관 사이의 혼돈된 신호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가상현실 시스템 화면을 보는 시각은 움직이는 신호을 보내는 반면, 세반고리관(움직임을 감지)에서는 몸이 정지되어 있다는 신호를 주게 되고, 이런 신호들이 얽히면서 발생하는 혼돈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운동판(motion bed)이 시뮬레이터에 도입됐다. 그러나 운동판이 가지는 운동 폭과 자유도의 한계는 실세계를 그대로 모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멀미현상을 오히려 가중시키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맹목적인 현실감 창출은 시뮬레이터의 구축 비용만 상승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임장감과 현실의 간략화 정도 사이의 연관성은 더욱 연구돼야 할 분야다.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를 쓰고 가상현실을 체험한다.


원격존재로 로봇 활용 극대화

가상현실 기술이 우리에게 다가선 것은 불과 몇년전에 불과하다. 80년대 후반 미항공우주국(NASA)의 무인우주선이 행성을 탐험하면서 보내온 혹성 탐험 기록을 판독하고 행성의 지형을 지구에서 재현하는데서 시작됐다.

우주나 깊은 바다와 같이 인간이 거주하기 어려운 극한세계에 무인우주선이나 잠수함을 투입해 획득한 정보를 원격지에서 판독하고 새로운 지시를 내리는 분야에 가상현실이 도입되고 있다. 조종자는 가상 환경 속에서 극한 상황을 경험하고 있으므로 그 상황에 본인이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그 세계에 존재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탐사 장비는 시각 감지기, 청각 감지기, 조작기 등을 갖춘 로봇일 수 있다. 로봇이 있는 극한 세계를 원거리에서 보고, 듣고, 조작함으로써 그 세계에 존재하는 것 같이 재현하는 기술을 원격존재(telepresence)라고 한다. 원격존재 기술은 가상현실 기술을 로봇분야에 활용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원격존재 기술은 현재 로봇공학에서 가장 어려운 분야인 인식이나 자율기능을 로봇 대신 인간이 인식하고 조작함으로써 로봇이 활용될 분야를 크게 넓히고 있다. 즉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지역에 로봇을 투입해 수리하는 일이나, 산불이 났을 때 소방 로봇을 투입해 불을 끄고 인명을 구조하는 일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방송국의 가상 세트

현재로서는 가상현실 기술이 일상 생활에 활용되는 예는 세계적으로도 그리 많지 않다. 국내에서는 일부 건설 업체에서 가상 모델 하우스를 구축해 입주자에게 주거 환경을 검증하는 시스템이 개발되고 있다. 국내에 세계적인 굴지의 건설업체가 밀집돼 있기 때문에 가상현실 기술 같은 첨단 기술을 토목, 건축분야에 접목시키는 시도를 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앞으로 이 분야에 지속적인 연구 개발이 이루어져 산업화에 성공한다면 세계적으로 한국이 가상현실 산업화 기술 분야에서 앞설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사용된 가상현실 기술은, 물리적으로 세트를 제작하는 시간과 노력없이 컴퓨터 내에서 세트를 설계하고 구축해 실제의 연기자가 가상의 세트로 들어가 연기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기존의 일기예보에서 사용하는 크로마키기법과 가상현실 기술이 혼합된 형태이다. 일기예보를 할 때 사회자가 푸른 바탕의 세트에서 위성 데이터나 일기 관련 정보를 푸른색으로 표시한 후 푸른색은 보이지 않도록 처리하는 것이 크로마키기법이다. 가상 스튜디오는 크로마키기법을 사용하면서 알파 체널에 키값을 사용해 화소를 프로그램 상에서 선택적으로 교체함으로써 사회자가 3차원 가상 세트안에 존재하는 것 같은 현실감을 창출하는 기술이다. 이를 혼합현실(mixed reality)기술이라고 한다. 실제의 영상과 가상의 영상을 합성하는 기법을 칭한다. 이러한 가상 스튜디오 기술은 방송기법의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가상현실 기술 개발이 촉진되고 있는 이유는 초고집적 반도체 개발에 따른 컴퓨터 연산능력의 획기적인 발전과 더불어 초고속정보통신망이 구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중매체 기술이 접목돼 컴퓨터와 영상 매체의 대융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동안 가상현실 기술이 군사 분야에서 특정한 기능과 용도에만 적용되던 시대에서 컴퓨터의 눈부신 발전으로 범용화, 대중화되는 추세이다. 가상현실 분야는 선진국에서도 범용화 차원에서 개발을 시작한지 3-4년도 안되는 신생분야이므로 지금 개발을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된다.

가상현실 기술의 속성은 어떠한 단위 기술이라기보다는 정보산업의 다양한 분야가 조합해 이루어진 인간 위주의 인터페이스 기술이다. 20세기의 자동차 공업이 중화학 공업의 요소를 종합하는 기간 산업이라면, 정보 산업의 요소 기술을 종합하는 가상현실 기술은 21세기의 기간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용어설명

크로마키 기법

텔레비전의 화상 합성을 위한 특수 기술로 빨강, 녹색, 파란색의 3원색 신호를 이용한다. 청색 스크린 앞에 인물이나 피사체를 배치하고 카메라로 촬영한 후 피사체의 상을 다른 화면에 끼워 맞춘다. 피사체에는 청색계통의 색을 사용하면 안되지만, 일부러 청색계통의 색을 사용해 투명인간같은 특수효과를 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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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고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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