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기의 흐름 속에 쌓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 최고의 걸작품이라는 전기는 수력 화력 원자력 발전을 이용해 대량으로 공급된다. 그런데 전기는 집에서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들고 다니면서 사용한다. 휴대용 전원이 바로 전지다. 볼타전지로 시작한 화학전지는 휴대용 전자제품의 에너지원부터 자동차, 우주왕복선의 동력원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1년에 팔리는 건전지의 개수는 약 10억개.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건전지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건전지를 하나 만드는데 필요한 에너지량이 건전지가 제공하는 에너지의 50배나 된다니 전 지구적인 에너지 차원에서는 건전지는 매우 에너지 소비적인 물건이다.
화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꾼다
산화-환원반응으로 전자가 이동
화학전지는 이탈리아의 과학자 볼타가 처음 만들었다. 볼타전지라 불리는 이 최초의 전지는 묽은 황산 용액에 아연판과 구리판을 담근 후 두 금속판을 도선으로 연결해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화학전지는 이온화 경향이 다른 두 종류의 금속(전극)을 전해액(전기가 잘 통하는 액체나 점상물질)에 담가놓고 두 금속을 도선으로 연결하면 전류가 흐르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이온화 경향이란 어떤 물질이 고유전자(e-)를 내놓고 양이온이 되려는 성질을 말한다. 즉 볼타전지에서는 묽은 황산용액이 전해액이고, 이온을 잘 받아들이는 구리가 양극(환원반응)이 되고, 이온을 잘 내놓는 아연이 음극(산화반응)이다. 그런데 주의할 점은 전자는 음극에서 양극으로 흐르지만 전류는 양극에서 음극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동그란 모양의 전지는 전해액을 내장해 사용한다. 그런데 이 전해액은 묽은 수용액이 아니고 약간 젖어있는 분말가루 상태이기 때문에 건전지(dry cell)라고 부른다.
한번 사용하고 버리는 건전지는 아연-탄소전지가 시초였고 요즘은 아연-망간전지와 알칼리전지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망간전지 vs 알칼리전지
단위체적당 반응면적 큰 알칼리전지
한번쓰고 버리는 전지를 1차전지라고 한다. 대표적인 1차 전지는 망간전지와 알칼리전지가 있다. 두 종류의 건전지 모두 기본적으로 양극은 이산화망간, 음극은 아연을 사용한다. 망간전지는 양극에 이산화망간을 사용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망간전지가 약산성이나 중성에 가까운 염화암모늄, 염화아연을 전해액으로 사용하는데 반해, 알칼리전지는 강알랄리성인 수산화칼륨을 전해액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알칼리전지라고 부른다.
알칼리전지가 망간전지보다 수명이 긴 이유는 건전지 구조에 있다. 망간전지는 아연을 봉 형태로 사용하고 이산화망간을 일정 압력으로 눌러 찍어내지만(성형), 알칼리전지는 이산화망간을 성형할 때 고압을 가하고, 아연도 봉이 아닌 분말형태를 사용한다. 그래서 알칼리전지가 망간전지에 비해 단위체적당 들어가는 반응물질도 많고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면적도 넓어진다. 그래서 동일한 조건에서 망간전지보다 알칼리전지의 수명이 3-8배 정도 길다.
알칼리전지 중에는 이산화망간의 종류를 약간 조정해 재충전이 가능한 RAM전지라는 것도 있다. 그러나 보통 알칼리전지는 전세계적으로 재충전이 안되게 제조되므로 무리하게 재충전하는 것은 위험하다.
건전지 전압은 무엇이 결정하는가
전극과 전해액에 따라 결정
건전지를 보면 1.5V, 9V 등의 표시가 돼있다. 어떻게 이런 숫자가 나올 수 있을까. 전지를 구성하고 있는 두 전극이 전해액과 접촉함으로써 생기는 고유한 전위차를 가지고 있다. 두 전극의 전위차를 합한 것이 전지의 전압이 된다. 그래서 전지를 구성하는 물질에 따라 각각 1.2V, 1.5V, 3V 등으로 나타낼 수 있다.
전극과 전해액이 바뀌지 않은 한 전지를 아무리 크게 만들어도 전압은 바뀌지 않는다.
사용목적에 따라 전지를 직렬이나 병렬로 연결해 사용할 수도 있다. 직렬연결을 하면 전지수만큼 높은 전압을 사용할 수 있고(예: 1.5V전지 2개를 연결할 경우 1.5V×2=3V), 병렬로 연결하면 수명이 늘어난다.
아연-망간전지의 경우
아연(Zn)의 전해액에 대한 전위차 0.76V + 이산화망간(MnO₂)의 전해액에 대한 전위차 0.8-1.10V = 건전지의 전압 1.56-1.76V
천태만상의 모양과 크기
사용목적에 따라 골라 써야
사람마다 각자의 이름이 있듯, 전지에도 크기와 재료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대표적으로 원통형 건전지는 전지의 사용목적과 크기에 따라 분류된다. 제조회사마다 서로 다른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어떤 규격표준을 따르냐에 달려있다. 국산건전지는 국제표준회의(IEC)와 일본공업표준규격(JIS)을 혼용하고 있고, 수입건전지는 미국규격협회(ANSI)의 기준에 따라 건전지를 분류한다.
건전지 이젠 모으지 마세요
단추형 수은 건전지만 분리회수
자연방전이라고 해서 건전지를 사용하지 않아도 수명이 다한 것처럼 되는 현상이 있다. 이 자연방전을 막기 위해 예전에는 수은을 첨가했었다. 그러나 수은이 인체뿐 아니라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이 밝혀지면서 건전지에는 수은을 사용하지 않고 방식제라는 다른 화학물질을 사용하고 있다.
현재 수은을 사용하는 것은 단추형 수은건전지 밖에 없다. 시계, 보청기, 컴퓨터에 사용되는 것들이다. 이런 것만 분리수거를 하면 된다. 보통 원통형이나 랜턴용전지에는 무수은이라는 표시가 있다. 이런 건전지는 모으지 않고 버려도 상관없다. 또 재충전이 가능한 니켈-카드뮴전지도 토양을 오염시키므로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
사용량 알 수 있는 건전지
기능성색소이용
건전지를 사용하다 얼마나 사용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혹은 다 써버린 건전지와 새 건전지를 구별하지 못해 불편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제 그런 불편은 사라질 전망이다. 건전지의 용량을 알 수 있는 게이지가 달린 건전지가 나올 예정이기 때문. 올 상반기 내에 미국과 일본을 필두로 한국에는 내년쯤 시판될 이 건전지는 특허 분쟁을 일으키고 있어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건전지 위아래로 달린 조그만 스위치를 누를 때, 만약 건전지의 용량이 남아있다면 전류가 저항단자에 흐르면서 가열된다. 이 열이 건전지에 얇게 도포돼 있는 열변색성 색소의 색깔은 변화된다. 듀라셀의 제품은 온도계처럼 생겼고 에버레디의 것은 25%이상 용량이 남아 있으면 'Good'd이라는 글자가 나타난다. 가격은 종전의 것과 같다.
재충전 가능한 슈퍼에너지
초경량·초소량이 목표
전지기술은 획기적인 성능향상이 어렵기로 유명하다. 소재산업이니만큼 기존의 공정에 맞추면서도 새로운 소재를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들어 핸드폰, 노트북PC, 캠코더 등 휴대용 전자제품의 발달은 더 작으면서도 더 가벼운 고성능의 전지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1-2년간 급성장한 니켈-카드뮴, 니켈-수소, 리튬이온전지들은 재충전이 가능하면서도 강력한 에너지원으로서 차세대전지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