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무게 4배 이상의 흙덩이를 10억번 이상 끌어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3백kg의 짐을 입에 문 채 시속 24km로 달리는 잎꾼개미. 철저한 분업으로 단칸방에서 시작해 지하 대도시를 건설하는 억척스런 살림꾼의 모습을 살펴보자.
필자는 '동물 행동학' 분야의 젊은 권위자다. 1977년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니아대 하버드대에서 각각 생태학과 생물학 석사과정을 마친 후 1990년 하버드대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하버드대 터프대 미시간대 등의 교수직을 거쳐 1994년부터 서울대에서 재직하고 있다. 현재 미시간대 동물학박물관 연구원. 국제 학술지(Journal of Insect Behavior) 편집위원으로 활발히 활동중이다.
개미연구는 주로 하버드 대학원에 입학한 84년 이후 5년 간. 중미 코스타리카에서 수행했다. 지도교수는 세계적으로 개미연구의 권위자로 인정받는 명망가였다. 필자는 이외에도 딱정벌레 벌 박쥐 등의 생태에 조예가 깊다.
인류가 최초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약 1만년 전이다. 이는 산업혁명과 더불어 우리 인간을 이 지구에서 가장 막강한 종으로 만들어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수렵채취 시기에 수적으로 그다지 우세한 종이 아니던 인류가 농경사회에 접어들면서부터 또 그후 산업혁명을 일으키면서 엄청난 속도로 성장, 급기야 오늘날에는 인구 증가를 막기 위해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까지 이르렀다.
인간은 어떻게 이 엄청난 일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산과 들에 이곳 저곳 흩어져 있던 열매나 씨앗들을 찾아 먹다가, 그들을 땅에 심어 길러 먹을 생각을 하게 됐을까. 인간의 위대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다.
이파리 따다가 버섯농사 짓는다
그러나 최근 미국 코넬 대학 곤충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보다 무려 5천만년 전에 이미 농사를 시작한 동물이 있었다. 미국 대륙의 열대 전역에 걸쳐 서식하는 잎꾼개미(leafcutter ants)가 바로 '지구 최초의 농사꾼' 이다.
중남미의 열대림에 가면 자기 몸보다 더 큰 이파리를 입에 물고 집으로 돌아가는 잎꾼개미들의 긴 행렬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 행렬은 때로 수백m에 달하는 장관을 이룬다.
필자는 1984년 여름 중미 코스타리카(Costa Rica)의 라쎌바(La Selva) 지방 열대림 속에서 난생 처음 잎꾼개미 행렬을 봤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시각이 미치는 끝까지 길게 이어진 행렬. 이를 멀리서 바라보니 어느새 작은 개미들의 모습은 간데 없고 크고 작은 이파리들만이 언뜻 언뜻 숲 속으로 새어드는 햇빛에 반사돼 출렁이며 흐르고 있었다.
어느 날 밤에는 이파리 대신 꽃잎을 나르는 잎꾼개미의 행렬을 발견했다. 마치 꽃들의 축제를 보는 것 같았다.
이 이파리들은 그대로 개미들의 식탁에 올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이 경작하는 독특한 종류의 버섯을 키우는 배양매체로 쓰인다. 개미는 버섯에게 혼자 힘으로는 구경도 하지 못할 양의 먹이를 제공하고, 버섯은 그것을 먹으며 빠른 속도로 성장해 단백질과 당분이 듬뿍 들어 있는 균사체를 만들어 개미에게 제공한다. 몇년 전 미국 워싱턴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웨터러(James Wetterer) 박사에 따르면, 잎꾼개미는 이파리에서 나오는 식물의 즙을 일부 섭취하지만 대부분의 잎들은 버섯농장의 거름으로 쓰인다.
지구에는 현재 약 2백종의 개미들이 각기 크고 작은 버섯농장을 경영하고 있다. 그 중 규모나 기술면에서 가장 발달된 농장을 갖는 것은 애타(Atta)와 애크로머멕스(Acromyrmex)라는 속(genus)에 포함되는 개미들이다. 이 두 속에 약 40종이 존재한다고 알려졌는데, 모두 미국 루이지애나주와 텍사스주로부터 남미 아르헨티나에 걸쳐 분포한다. 다른 버섯개미들(fungus ants)이 동물의 분비물이나 시체를 썩혀 그 위에다 버섯을 기르는 것과 달리 이 잎꾼개미들은 신선한 채소 위에 버섯을 키운다.
잎꾼개미는 마치 파괴와 부흥을 상징하는 힌두교의 신 '시바'(Shiva)와 같다. 우리나라 시골 마을 어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큰 정자나무 정도의 나무도 일단 잎꾼개미가 덤벼들어 잎을 따기 시작하면 이틀만에 벌거숭이가 되고 만다.
아프리카 초원을 휩쓸며 온갖 식물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코끼리떼의 왕성한 식욕도 잎꾼개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열대지방 사람들이 온대지방 사람들처럼 농사를 짓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도 바로 잎꾼개미 때문이다. 오랫동안 정성스레 가꿔온 밭이 잎꾼개미에게 걸리면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쑥밭이 되고 만다. 생태학자들의 계산에 따르면 중남미 열대림에서 잎꾼개미가 소비하는 잎의 양은 전체의 약 15%에 달한다.
지하에 만리장성 쌓는다
그러나 이렇듯 무자비한 약탈자들이 땅 속으로 들어가면 더할 수 없이 양순한 농부가 된다. 고도로 조직화된 버섯농장에서 각기 자기 부서를 지키며 맡은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한다. 지상의 파괴가 지하에서는 에덴 동산으로 부활하는 셈이다.
생태계 전체를 볼 때 잎꾼개미들의 파괴는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온대 지방에서 지렁이가 땅을 일궈 다시 비옥하게 만드는 것처럼 열대에서는 잎꾼개미가 땅을 기름지게 한다.
잎꾼개미 군락 하나가 파내는 흙의 양은 평균 20㎥가 넘는다. 무게로 따지면 무려 44t. 몸무게의 4-5배나 되는 흙덩이를 적어도 10억번 이상 굴 밖으로 끌어냈다는 얘기다. 이를 인간사에 비유하면 마치 만리장성을 쌓는 격이다.
잎꾼개미 사회는 고도로 조직화한 계급사회다. 몸 길이가 2-3mm에 불과한 농장의 정원사개미로부터 그들보다 무려 3백배 가량 무겁고 머리 폭도 6mm나 되는 병정개미, 그리고 중간 계급으로 이파리를 집으로 옮기는 개미와 이를 가공하는 개미 등 몸 크기에 따라 4계급의 일개미가 있다.
병정개미는 말 그대로 잎꾼개미 사회의 군대에 속한 병정들이다. 적이 나타나면 지체없이 출동, 막강한 이빨로 가차없이 물어 뜯는다. 그들의 이빨은 사람의 살갗은 물론 웬만한 가죽 정도는 간단히 찢어버린다. 필자도 파나마에서 한 잎꾼개미 군락을 파헤치다 어느 병정개미에게 왼쪽 새끼 손가락을 물렸는데, 출혈이 적지 않아 한 동안 작업을 중단해야 했다.
병정개미보다 한 계급 낮은 일개미들이 바로 이파리를 잘라 집으로 운반하는 잎꾼이다. 이 개미는 한쪽 뒷다리로 잎 가장자리를 잡고 그곳을 축으로 삼아 날카로운 이빨을 마치 전기식칼처럼 사용해 동그랗게 자른 뒤 이를 옮긴다.
이들이 이동하는 속도는 걸음을 재촉하는 정도가 아니다. 사람에 비유하면 약 15km 정도의 귀가길을 시속 24km의 속력으로 달리는 셈이다. 마라톤 선수를 방불케 하는 속력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3백kg이 넘는 짐을 입에 물고 달린다는 사실이다. 이 마라톤은 폭우가 쏟아질 때를 제외하곤 거의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된다.
그런데 잎꾼개미 행렬을 관찰하다 보면 언뜻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다. 자기 몸무게의 4-5배에 가까운 짐을 나르는 동료를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아예 짐 위에 올라탄 작은 일개미를 종종 볼 수 있다.
파리 쫓는 일개미
시골에서 감자를 캐는 날 삼촌이 끄는 리어카를 뒤에서 밀다 가끔씩 슬쩍 올라타던 필자의 어린 시절처럼 얌체짓을 하는 것일까. 오랜 관찰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작은 일개미는 마음 좋은 큰 일개미가 열심히 짐을 나르는 동안 장난치며 노는 것이 아니라 큰 일개미를 기생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망을 보는 보초다.
잎꾼개미 주변에는 흔히 이파리를 운반하느라 여념이 없는 일개미의 머리 밑에 내려앉아 재빠르게 알을 낳고 날아가는 파리들이 있다. 파리에게 '당한' 개미는 오래지 않아 알에서 깨어난 구더기들에 의해 온 몸을 먹히고 만다. 그래서 무거운 짐을 지고도 파리를 쫓을 동료를 등에 업고 다니는 것이다.
잎꾼들이 이파리를 굴 속으로 운반해오면 조금 더 작은 일개미들이 톱날같은 이빨로 잘게 썬다. 그 후 이보다 더 작은 일개미들이 잔 잎조각들을 잘근잘근 씹어 마치 종이를 만들 때 쓰는 펄프처럼 만든 다음, 효소가 듬뿍 들어있는 배설물과 잘 섞는다.
이렇듯 잘 반죽된 '잎죽'은 다음 방으로 옮겨져 미리 깔아둔 마른 잎들 위에 가지런히 펼쳐진다. 그러면 조금 더 작은 일개미들이 이미 버섯을 키우던 다른 방으로부터 버섯을 조금씩 떼어다 이파리 반죽 위에 심는다.
새로운 배지에 옮겨진 버섯은 제철 만난 들풀마냥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다. 버섯의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워낙 잘 알려져 있다. 유럽인들은 버섯을 신이 준 선물로 여긴다. 밤새 비가 내린 후 전날 흔적도 없던 곳에 쑥쑥 솟아오른 버섯을 보면 정말 밤새 천사들이 내려와 심어놓고 간 선물인 듯 싶다.
버섯농장의 정원사는 잎꾼개미 사회에서 가장 작은 꼬마 일개미다. 그들은 농장 주변을 늘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은 물론 김매는 일, 수확하는 일 등 실제 농사일을 도맡아 한다. 잎을 잘라 물어오는 일부터 버섯을 기르고 수확·저장하는 과정까지 잎꾼개미의 작업 현장은 현대 인간사회의 제조공장에서 볼 수 있는 어셈블리 라인(assembly line)을 방불케 한다. 몸 크기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 자기가 맡은 임무에만 몰두하는 잎꾼개미야말로 인간사회 어느 곳에도 볼 수 없는 분업의 극치다.
그렇다면 버섯농장의 종자는 어디서 구하는 것일까. 인간사회의 여러 문화권에서 여자가 시집갈 때 친정에서 지참금이나 소중한 물건을 품에 안고 가듯 잎꾼개미의 여왕들은 혼인 비행을 위해 어머니 집을 떠날 때 씨버섯 한 줌을 입 안의 조그만 주머니에 넣어 둔다.
씨버섯은 혼인 지참금
숫개미와 교미한 후 좋은 터를 골라 굴을 파고 새 살림을 차리자마자 여왕개미는 씨버섯을 뱉어 새 농장을 일구기 시작한다. 이렇게 마련한 조그만 정원은 일개미들이 태어나 잎을 물어들이기 시작하면서 급속도로 성장, 거대한 규모의 농장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이처럼 어머니로부터 딸로 이어진 모계사회의 전통 덕택에 미국 남부로부터 중남미 대륙 전역에 걸쳐 분포하는 잎꾼개미 군락 모두가 같은 종류의 버섯을 재배하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미국 코넬 대학의 연구진에 의해 밝혀졌다. DNA 분석법을 이용해 조사한 결과 잎꾼개미들과 버섯의 관계는 거의 2천5백만년 전부터 이어졌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마치 인간이 요구르트를 대대로 물려받아 배양하는 것과 흡사하다.
초창기의 잎꾼개미는 집 주변에 자라는 버섯을 이것 저것 길렀을지 모른다. 그러나 일단 가장 훌륭한 품종을 찾은 후에는 오로지 그것만을 전통적으로 경작해온 것이다. '신토불이' 도 이쯤은 돼야 하지 않을까.
잎꾼개미 사회의 규모는 실로 엄청나서 큰 군락에는 5백만-8백만 마리의 개미들이 산다. 브라질에서 발견된 한 군락에는 주먹만한 크기에서 축구공 크기까지 무려 1천개가 넘는 방들이 있었다. 버섯은 이 중 약 4백개의 방에서 자랐다.
여왕개미 한 마리가 평생 낳는 알의 수는 최대 1억5천만개. 가끔 차세대 군락을 세울 여왕개미들과 숫개미들도 발생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일개미로 태어난다.이처럼 많은 알을 낳기 위해 여왕개미는 혼인비행 동안 여러 마리의 숫개미들과 교미, 적어도 2억개 이상의 정자를 받아들인다. 여왕개미는 이를 저정낭(spermatheca)이라는 정자주머니 속에 평생 저장해 놓고 조금씩 꺼내 알을 수정시킨다.
잎꾼개미 여왕들은 과연 얼마나 오래 살까. 자연 상태에서 어떤지 정확히 모르지만, 하버드 대학 연구실에서 키우던 여왕개미는 그곳에서만 최소한 14년을 살았다. 생리학적으로 연구할만한 재미있는 과제는 정자들을 어떻게 그 오랜 세월 동안 체온 상태에서 건강하게 유지하는가이다. 시험관아기를 비롯해 인공 수정을 목적으로 정자를 액체 질소 속에 넣어 얼렸다가 필요할 때마다 다시 녹여 쓰는 인간의 기술과는 비교가 안되는 수준이다.
단칸방에서 대도시로
여왕개미가 새살림을 차리는 방은 지름 12-15mm 크기의 굴을 수직으로 약 30cm 정도 파고 들어간 지점에 수평으로 만들어진 반지름 3cm 정도의 공간이다. 작고 보잘 것 없는 단칸방이지만 훗날 주민 수백만이 모여 사는 엄청난 규모의 대도시로 발전한다.
이 대도시에는 버섯을 경작하는 방들은 물론 중앙 냉난방과 환기를 위해 설치해 놓은 많은 환풍통로들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땅 속 깊숙한 곳의 큰 방들에 모아둔 식물 찌꺼기나 쓰레기들이 썩으면서 나오는 뜨거운 공기는 환풍통로를 타고 올라가 굴 밖으로 빠져나간다. 동시에 산소가 풍부한 찬 공기가 다른 통로로 들어와 환기와 함께 실내 온도가 유지된다.
철저한 분업제도를 바탕으로 어셈블리 라인과 같은 농장을 경영함은 물론 도시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제반 시설까지 건설하고, 이를 조직적으로 운영하는 잎꾼개미들의 사회는 인간 문명에 버금가는 기가 막힌 진화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