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도자도 부족한 잠. 자려해도 오지 않는 잠. 인생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잠은 그냥 버리는 시간일까.
1. 잠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데…
복잡하고 능동적인 메커니즘
몇십년 전에는 포유류의 생활이 두가지 상태로 돼 있다고 생각했다. 두 가지란 각성과 수면. 수면은 단순히 각성이 없는 수동적인 상태로 간주됐다. 그러다가 1953년 렘수면이 시카고 대학의 생리학자 아세린스키와 클라이트만에 의해 발견된다. 그들은 자는 아이의 눈을 관찰하다가 눈이 급속하게 움직이는 때가 있음을 보고 이를 렘수면(Rapid Eye Movement sleep, REM sleep)이라 명명했다. 결국 수면은 비렘수면과 렘수면으로 나뉘며, 단순히 각성이 없는 수동적인 상태가 아니고 능동적인 과정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렘수면은 여러 면에서 비렘수면과 다르다. 이 후 인간에게는 3가지 다른 상태,즉 각성 렘수면 비렘수면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정상적인 수면인 경우 비렘수면에서 시작하게 되고 수면이 시작된 지 90분을 전후하며 처음으로 렘수면이 나타난다.
이렇게 렘수면과 비렘수면은 90분을 주기로 반복하게 된다. 서파수면 (slow wave sleep, 깊은 잠을 말함)은 수면시간 앞쪽 1/3에 주로 나타나고, 렘수면은 뒷쪽 1/3에 주로 나타난다. 즉 잠들고 초기에는 깊은 잠을 자고, 깰 때 쯤 설잠을 자게 된다. 전체수면 시간 중 비렘수면이 차지하는 비율은 75-80% 정도이고 렘수면이 차지하는 비율은 20-25% 정도다.
전체 꿈의 85%정도를 렘수면상태에서 꾼다. 눈동자는 무엇을 보고 있는 것처럼 급속하게 움직인다. 거의 모든 근육(호흡근 제외)의 긴장도가 떨어지거나 아예 긴장도가 없는 상태가 된다. 혈압은 변동을 보이면서 각성시와 거의 유사한 상태가 되고 심박수와 호흡이 불규칙해진다. 뇌파는 각성시 눈을 떴을 때와 같은 모양으로 빠르게 나타나며 뇌에서의 산소소비량도 증가하게 된다. 발기도 대부분 렘수면상태에서 일어나게 된다. 흔히 새벽에 발기를 경험하게 되는 것은 렘수면상태에서 깨기 때문이다.
비렘수면은 뇌파소견에 따라 1단계에서 4단계까지 나누는데 단계가 진행될수록 수면은 깊어진다. 1단계 수면에서는 느린 눈동자의 움직임을 보이다가 수면단계가 진행되면서 눈동자는 거의 움직이지 않게 된다. 혈압 심박수 호흡수가 모두 감소하며 이러한 감소는 수면이 깊어질수록 현저해진다. 깊은 수면(3,4 단계)에서는 깨우기가 힘든데 깨게 되면 일어난 일에 대해 잘 기억하지 못한다. 어린아이가 자다가 소리를 지르면서 깨는 야경증과 몽유병 등이 서파수면에서 발생한다. 수면이 깊어질수록 뇌파에서는 느린 주파수가 차지하는 빈도가 증가하게 되며 전반적으로 각성시보다 산소소비량은 감소한다.
2. 적절한 수면시간은 얼마인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거의 일정
성인의 평균수면 시간은6-8시간이지만 인간이 꼭 몇 시간을 자야한다는 원칙은 없다. 4시간을 자든 8시간을 자든 자고나서 피로가 회복되고 낮 시간 동안 활동에 지장이 없으면 그 시간이 자신의 수면시간이다.
불면증 환자의 경우 "내가 몇 시간은 자야 정상인데, 그렇지 못하니 수면부족이다"라는 강박관념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려고 애를 쓰는데, 이것이 오히려 불면증상을 악화시킨다. 수면장애가 없는 정상적인 상태라면 낮잠 자는 것이 '도움이 된다,안된다'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정상인에게는 두번의 수면주기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번은 야간 수면이고 다른 하나는 아침에 일어나고 나서 8시간 가량이 지난 후다.
두번째 수면주기가 아닌 때 낮잠을 자면 밤에 잠을 못 이룬다는 주장도 있으나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전날 잠을 자지 못했거나 피곤한 일이 있었으면 낮잠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잘알고 있다. 하지만 불면증환자의 경우 밤에 못 잔 것을 보충하기 위해 일부러 낮잠을 자려고 하는데 이는 꼭 피해야 한다. 불면증환자는 일반적으로 낮잠을 자지 않는 것이 야간수면에 도움이 된다.
유아의 경우 아직 중추신경계가 성숙이 되지 않아 잠을 많이 잔다고 할 수 있다. 태어난 지 2-6개월 후에야 비렘수면의 서파가 나타나면서 밤에 깨지 않고 성인처럼 지속적으로 야간수면을 이루게 된다. 10세 전후에 서파수면이 최대가 되고 나이가 들면서 감소한다.
노인의 경우 야간수면시 서파수면이 매우 감소하고 자주 깨게 돼 낮에 조는 현상이 나타난다. 나이가 들더라도 필요한 수면시간은 대체로 일정하다.
3. 잠버릇은 고칠 수 없는가
코골이 심하면 성기능장애 올 수도
온 방안을 청소하며 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때의 모습 그대로 깨는 사람도 있다. 잠을 잘 때 뒤척이는 것과 꼼짝하지 않고 얌전히 자는 것 그것만 가지고 잠을 충분히 자는지의 여부를 설명할 수는 없다. 잠을 자면서 자주 뒤척이더라도 수면다원검사시 뇌파나 근전도에서 각성상태가 나타나지 않으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얌전히 자는 경우에도 수면무호흡증이나 다른 원인으로 인해 뇌파상 자주 각성상태를 보인다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
잠꼬대는 그자체로서 문제가 되지는 않으며 특별한 치료할 필요도 없고, 치료방법도 없다.
이갈이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하고 빈번하면 치료를 해야 한다. 치아도 마모되고 이가는 소리에 자주 깨 지속적으로 수면을 이루지 못하면 주간 활동에 장애를 받는다. 원인은 유전·해부학적이상, 중추신경계이상, 심리적인 요인 등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한 것은 아직 알 수 없다. 치아의 마모방지를 위해 치아에 기구를 끼기도 하는데 근본적인 치료는 되지 못한다. 바이오피드백과 근이완법 등을 통한 이완요법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코골이는 앞에서 언급한 질환과는 달리 좀 복잡하다. 전 인구의 1/3정도가 코골이 증상을 보이는데 이는 인두의 연조직이 떨려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코를 고는 환자에게서 흔히 볼수 있는 질환은 자다가 숨이 끊어지는 수면무호흡증이다. 이 병은 치료를 하지 않으면 주간 졸림증 고혈압 부정맥 두통 성기능장애 등이 초래된다. 수면무호흡증여부는 수면전문가에게 검사를 받아야 알 수 있다. 수면무호흡증 없이 코만 고는 경우 인두조직을 제거함으로써 효과를 볼 수 있고 수면무호흡증이 있는 경우에는 수술이나 다른 치료법을 고려해야 한다.
'가위 눌린다'라는 말을 간혹 듣게 된다. 가위눌리는 증상은 잠자리에 들 때나 깰 때 나타난다. 의식이 각성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근육의 긴장도는 저하돼 움직일 수 없는 경우다. 처음 경험하게 되면 호흡이 멈출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몹시 두려워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의학어로는 '수면마비'라고 한다. 어떠한 경우라도 호흡근육까지 마비돼 호흡이 정지되는 경우는 없다. 다른 증상과 동반되지 않으면 심각한 상태는 아니며 정상인에게도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수면 시간을 정확히 지키고 심한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피하면 대체로 예방가능하며, 필요하다면 약물을 단기간 투여해 볼 수 있다.
4. 잠과 관련된 병은 어떤 것들이 있나
꿈을 행동으로 옮기거나, 15일 동안 잠만 자기도
렘수면행동장애는 꿈 내용을 행동으로 옮기는 현상이다. 좋고 편안한 상황보다 쫓기고 싸우고 공격당하는 꿈을 꾸는데 이런 내용을 행동으로 옮긴다. 그래서 자다가 침대에서 뛰어내리거나 벽에 머리를 부딪쳐서 상처를 입기도 한다. 같이 자는 사람을 손이나 발로 차서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이 병은 대부분 60세 전후의 고령에서 발병한다.
몽유병은 비렘수면 3,4단계에서 발생한다. 뇌파상 서파를 보이다가 잠자기 근정도(근육이 경직된 정도)가 증가하면서 사지가 움직인다. 어린아이에게 주로 발생하고 나이가 들면서 소실되는데 1백명 중에 한명정도는 나이가 들어서도 지속되게 된다. 많은 경우 저절로 없어지므로 심하지 않으면 별 다른 치료없이 관찰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질환으로 인해 자신이나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게 될 정도면 약물로 치료를 하는데, 치료효과는 좋은 편이다.
악몽은 렘수면단계에서 생기는 질환으로 역시 어린아이에게 흔하다. 성인의 경우는 1%정도만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악몽을 경험한다. 악몽이 어떤 충격 후에 나타났거나, 또는 정신질환의 전조로 여겨지는 경우는 치료를 요하지만 대부분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악몽만 반복되면서 수면이나 주간활동에 장애를 받는 경우 행동요법 약물치료 등을 시도해 볼 수 있다.
기면병에 걸리면 낮에 갑자기 졸음이 쏟아져 참을 수 없게되고, 홍분하거나 웃거나 우는 등의 감정 반응을 보일 때 온몸의 힘이 빠지는 증상을 보인다. 차를 운전하다가 졸음이 오거나 다리의 힘이 빠지게 되면 차사고가 나는 수도 있다.
수면과다증은 낮에 단순히 졸리는 정도가 아니라 15일 정도 잠만 자는 질환이다. 이렇게 되면 밥 먹고 대소변 가리는 일 이외에는 잠만 자게 된다. 다른 사람의 말을 알아듣기는 하지만 비몽사몽간에 지내면서 꿈과 현실이 잘 구분되지 않는다. 괴로워 잠만 자고 싶은 상태가 된다. 그러나 15일 내외의 기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과 똑같이 정상적인 생활을 한다. 대체로 청소년기 남자에게서 관찰되나 여자의 경우도 드물지 않다. 자연 치유되는 경향이 있다.
5. 잠오는 약, 잠깨는 약
점점 수면회복 효과 없어져
시차적응이 어렵거나 심한 심리적 충격, 신체적 손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할 경우 일시적으로 수면제를 복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만성불면증일 때 수면제를 장기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수면제를 먹고 잠을 청한 경우는 서파수면을 방해하고 각성상태를 나타내는 뇌파가 수면시 빈번히 관찰되므로 수면의 회복효과를 감소시킨다. 즉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설잠을 자는 것이다.
또한 약물중독을 초래해, 수면제를 끊으면 잠을 이룰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수면제를 갑자기 끊으면 불면증이 더욱 심해진다. 약물에 대한 내성도 생겨서 장기간 복용하면 현재 복용하는 용량보다 더 많이 먹어야 잠을 잘 수 있다. 또한 기억력 및 여러 가지 지적기능의 손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불면증이 있을 경우 수면제를 먹기보단 수면전문가와 치료방법을 상의하는 것이 좋다.
잠을 깨게 하는 약도 장기적으로 복용하면 내성이 생겨 그 용량을 늘려가야 한다. 체내에서 약물농도가 떨어지면 불안 초조 신경과민 등이 생겨 다시 약물을 찾게 되는 약물의존현상도 생긴다. 이외에도 식욕감퇴, 짜증, 심혈관계 합병증(맥박이 빠르게 뛰는 빈맥, 혈압상승 등)이 초래될 수 있다.
동식물은 어떻게 자나
식물도 잠을 잔다. 식물들은 일정 기간 성장할 수 없는 여건에 놓이면 수면에 들어간다. 대표적인 예가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 나무들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열대 아열대 식물은 수면기가 없이 계속 성장을 하기 때문에 추운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들에 비해 단단하지 못하다 "나무를 잘 키우려면 자생지와 같은 조건을 만들어 줘야한다"고 서울대공원 식물연구실 백준기 연구관은 말한다. 만약 아열대 식물원에 동백나무를 심어놓으면 개화기도 일정하지 않게되고 심지어는 나무가 죽는 경우도 생긴다고 한다. 동백나무는 일정기간 수면을 취해야 했던 것이다.
동물들은 어떻게 잘까. 말은 서서 잔다. 코끼리는 서서도 자고 엎드려서도 잔다. 잘 때는 꼭 코를 안으로 말아놓고 잔다. 원숭이는 나무 가지에 엉덩이를 걸치고 자기도 한다. 이런 원숭이들의 엉덩이를 자세히 보면 방석같이 굳은살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해양성 포유류인 돌고래와 물개는 물 밖에 나와 잠시 눈을 붙인다. 펭귄은 두 날개를 펴고 배는 바닥에 깔고 완전히 엎드려 자는데 동료끼리 머리를 기대고 잔다. 생리적으로 겨울잠을 자야 되는 개구리나 뱀 같은 파충류는 완전 동면을 하고 곰 다람쥐는 불완전 동면을 한다. 야생에서 사는 곰은 나무뿌리 밑이나 동굴 같은 곳에서 겨울잠을 잔다. 서울대공원 동물연구실 김형식 연구관은 "동물원에 와 있는 곰은 먹을 것이 풍족해 겨울잠을 굳이 잘 필요가 없고 밤에만 자는데 배를 움크리고 팔배개를 하고 잔다" 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