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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유전자 치료법 개발, 질병없는 세계 꿈꾼다

DNA의 신비가 벗겨지면서 의료계에서는 DNA의 특성을 이용해 질병을 치료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유전자요법은 유전질환과 암 동맥경화 등을 비롯, 에이즈 등 감염성 질환까지 그 적용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쥐라기 공원'은 근래에 DNA가 논해지는 곳 어디서나 언급되는 영화제목이다. "과학자들이 화석으로 발견된 공룡시대의 모기로부터 모기가 빨아들인 공룡의 피를 분리하여 DNA를 추출하고 유전자 재조합기술을 이용하여 공룡을 만들어낸다"는 줄거리는 10여년 전만 해도 터무니 없는 공상과학으로 치부됐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나타나는 생명과학 분야의 눈부신 발전은 이런 이야기가 더이상 공상과학 차원이 아니고 피부에 와 닿는 현실 속에서 펼쳐지는 것임을 실감케 하고 있다.

20세기 과학의 가장 뚜렷한 업적 중 하나가 유전자재조합 기술의 발전이다. 이를 이용하여 많은 생명현상의 비밀이 사람 염색체에 포함된 DNA에 숨겨져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사람은 약 8만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간게놈계획이 완성되고 유전공학 기술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발전하면 생명체를 시험관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시기가 언젠가는 도래하리라 예상된다.

DNA 반란에 의해 암 동맥경화증 등 발병
 

(그림1) 미국 국립보건원의 유전자치료심사위원회에서 허락한 임상시험


암 동맥경화증 등과 같이 인류 생존에 위협을 주는 많은 질병들이 유전자, 즉 DNA의 반란에 의한 것임이 속속 알려지고 있다. 암은 정상적인 기능을 하던 세포의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암 발생을 억제하면 유전자가 무력화되는 등의 유전자적 혼란이 장기간에 걸쳐 축적되어 생겨난다는 것이 밝혀졌다.

동맥경화증도 단순히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노화현상이라기 보다는 혈관세포나 지방질을 조절하는 유전자들의 이상에 의한 것임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런 질병들의 원인이 유전자 이상에 있음이 밝혀지면서 이 질병들을 치료하는 전략에도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병든 조직을 수술로 제거하거나, 화학물질이나 단백질 등 치료제를 투여하여 병든 세포를 죽이고 세포의 정상적인 기능 회복을 돕는 등, 질병 진행과정 중에 생겨나는 병리 현상을 쫓아가면서 치료하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질병의 시작이 유전자 이상 때문인 경우 이를 근본적으로 교정해주는 것이 가장 합당하고 이상적인 치료방법이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유전자 수준에서 질병원인을 파헤치고 치료하는 분자의학(molecular medicine)이 탄생하게 되었다.

유전자요법은 분자의학의 꽃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반란을 일으킨 유전자를 제압하는데 그치지 않고 광범위한 질병 치료를 위해 DNA를 하나의 약제(gene as a drug)로 사용하는 개념이다. 앞으로 닥쳐올 21세기에서는 인간의 난치병을 치료하는 가장 중요한 무기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시행되고 있는 유전자 요법의 효시는 1990년 9월 14일 아데노신 디아미나제(ADA) 결핍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치료사례다. 그 뒤 유전자요법은 최근 2-3년 동안 암 유전질환 AIDS 동맥경화증 등의 질병을 중심으로 급격히 그 적용범위가 확대되고 있다(그림1). 유전자요법의 실제방법론과 현재 시행되고 있는 유전자요법의 현황에 대해 살펴보자.

치료목적으로 사람에게 유전자를 투입하는 방법은 크게 세가지(그림2)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방법은 DNA를 직접 인체에 주사하는 것이다. 단순히 DNA만을 투입하는 경우는 유전자의 전달효율이나 유전자 발현에 있어서의 효과가 미흡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DNA를 리보솜같은 물질과 함께 투여한다. 이는 DNA가 세포내에 효과적으로 들어가도록 기름칠을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노린 것이다.

둘째 방법은 인체 세포를 분리하여 체외에서 유전자를 투입하고 이를 환자에 투여하는 체외 투입법이다. 셋째 방법은 바이러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지금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는 방법이다.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병원체지만 유전자재조합기술을 이용하여 바이러스의 병원성을 제거하고 인체 세포로 들어갈 수 있는 감염성만 유지시킨 상태로 만든다. 치료에 쓰일 유전자를 바이러스에 삽입시켜 투입하면 '트로이의 목마' 전법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주로 사용되는 바이러스는 리트로바이러스와 아데노바이러스다(그림3). 치료용 유전자를 각 바이러스의 유전자 일부와 조합하여 바이러스를 만들고 이를 목표로 하는 세포에 감염시켜 유전자를 발현시킴으로써 치료효과를 거두는 방식이다. 리트로바이러스는 세포 표면의 수용체를 통해 세포내로 들어가 RNA 형태에서 DNA 형태로 전환되어 핵내 염색체 DNA의 일부가 되어 유전자를 발현시킨다.

 

(그림2)유전자 투입경로


바이러스 이용한 유전자요법

이에 비해 아데노바이러스는 핵내로 들어가는 과정은 유사하나 염색체 DNA의 일부가 되지 않고 그대로 발현되기 때문에 장기간의 발현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체내에 직접 투입했을 때의 치료효과는 리트로바이러스에 비해 훨씬 높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바이러스 제조과정에서 병원성을 지닌 바이러스가 들어가 오히려 질병을 일으키는 일이 없도록 철저한 사전조작과 검색을 거쳐야 함은 물론이다.

(그림1)에서 알 수 있듯 현재 유전자요법이 활발히 시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질병은 유전질환과 암, 에이즈다.

유전질환은 대부분 유전자 반란을 일으킨 반군의 숫자가 하나뿐이고, 돌연변이에 의해 생기는 질병의 양상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물질의 결핍으로 나타난다. 때문에 정상적인 유전자를 투입하여 장기간 발현시키면 충분한 치료효과를 거둘 수 있다. 유전질환이 가장 먼저 유전자요법의 대상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인류 최초의 유전자요법은 유전질환인 ADA 결핍증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됐다.

ADA는 면역체계 유지에 필수적인 효소로 이것이 결핍되면 심한 면역결핍증을 초래하게 된다. 이 병에 걸린 아이들은 외부로부터 미미한 세균, 바이러스의 침입에도 견뎌내지 못하므로 거품과 같이 약하다고 하여 일명 '버블 베이비'라고도 불린다. 미국 NIH의 블리즈(M. Blaese)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임파구에 정상적인 ADA를 생산할 수 있는 유전자를 리트로 바이러스를 이용하여 투입시켜 이를 환자에게 주입함으로써 인류 최초의 유전자요법을 시작했다. 이 환자는 현재 국민학교에 입학하여 정상적인 아이들과 같이 놀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이밖에 동맥경화증을 초래하는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은 콜레스테롤을 조절하는 LDL 수용체의 돌연변이에 의한 것이다. 이런 환자들에게 정상적인 LDL 수용체유전자를 투입하여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시도도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또 혈우병, 낭포성 섬유증 등 많은 단순 유전질환에 대한 시험적 치료가 진행중이다.

유전자요법의 시작은 유전질환으로 시작되었고 이 분야는 여전히 가능성이 높은 영역으로 남아 있는 한편, 인류의 질병으로 인한 사망 원인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암치료로 확대시행되고 있다. 암은 인류에 미치는 영향면에서 단연 중요한 질병이고 특히 대표적인 유전자 질환의 하나다.

단지 암세포는 여러가지 유전자의 이상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전자요법으로 치료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복잡한 유전자 이상을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치료유전자가 필요하고 급속도로 증식하는 암세포 하나하나에 유전자가 투입되어야 하는 이론적 단점이 있다.

현재 암환자 치료를 위한 유전자요법으로는 p53과 같이 암세포증식을 강력히 억제할 수 있는 종양억제유전자를 투입하거나 암세포를 자살하게 만드는 유전자(HSV-tk), 그리고 암에 대한 면역 능력을 증진시키는 유전자(MHC, 87, 사이토카인)를 투입하는 방법들이 시도되고 있다.

p53은 현재까지 알려진 암관련 유전자중 가장 중요하다. p53은 유전자의 반란이 일어나기 전에는 암세포 발생을 억제하는 보안관과 같은 역할을 하다가 돌연변이가 생기면 범법자로 돌변하면서 오히려 암세포의 확산을 일으키는 유전자다. 따라서 보안관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는 정상적인 p53을 리트로바이러스나 아데노바이러스에 실어 투입하는 시도가 폐암 간암 등의 사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HSV-tk 유전자는 항바이러스약제이기도 한 ganciclovir의 암세포 살상능력을 수천 배로 증강시켜주는 유전자로 암세포에 HSV-tk 유전자를 투입한 뒤 이 약제를 투입하면 암세포가 죽게 된다.

더욱이 HSV-tk 유전자가 들어가지 않은 암세포도 죽이는 부수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장점도 가지고 있어 현재 뇌종양에서 성공적으로 시도되고 있고 간암 임파암 등 많은 암을 대상으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위 두 전략들은 가능하면 많은 암세포에 치료용 유전자를 투입해야 한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 MHC, B7, 사이토카인 등의 유전자들은 암의 발생과 진행을 억제하는 면역체계의 기능을 증강시켜주는 전략으로 현재 대장암 신장암 등의 암을 대상으로 시도되고 있다.

이밖에도 유전자요법의 적용대상은 날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에는 유전자 이상이 있는 질병뿐만 아니라 에이즈 같은 감염성 질병에도 유전자요법을 시도하고 있다. 에이즈의 원인인 HIV-I바이러스를 목표로 하여 이를 죽이는 유전자 특공대를 투입하여 에이즈를 치료하고자 하는 노력이 활발히 진행중이다.
 

(그림3)리트로 바이러스 운반체(A)와 아데노바이러스 운반체(B)


에이즈 등 감염성 질병에도 시도

이같이 유전자요법이 이론적 우월성과 날로 발달하는 분자의학의 뒷받침을 받고는 있으나, 기존 치료방법들을 대치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문제점 또한 많이 가지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유전자요법들의 중간결과를 보면 애초에 염려했던 엄청난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현 단계에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치료대상 세포에 투입하며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유전자의 투입효율과 유전자 발현의 정도를 더 향상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많은 과학자들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 분야의 장래 전망은 비교적 낙관적이라 할 수 있다.

정작 앞으로 대두될 문제는 유전자요법의 쓰임새가 인류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을 때의 일이다. 질병 치료를 위해서가 아니라 키를 크게 한다든지 힘을 강화시킨다든지 하는 우생학적인 차원에서 사용되어 ‘6백만불의 사나이'를 만들어 내거나, 1백명의 쌍둥이를 동시에 만든다든지 하여 인류사회의 기본질서를 뒤 흔드는 방향으로 나갔을 때는 엄청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따라서 유전자요법 개발에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매 유전자요법을 엄격한 기준으로 국가에서 심사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머지 않아 도래할 유전자요법 시대에 대비하여 이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사람에 적용할 때의 지침마련 등 국가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할 필요성이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유전자요법이 보편화되기 위해서는 기술적 윤리적인 측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전자 요법이 향후 인간의 삶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으리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1995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김창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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