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자생지로부터 인간의 손으로 우리나라에 옮겨져 야생화된 귀화식물. 이들은 대개 자연생태계가 파괴된 곳에서 번식한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식물이 자라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문명화로 인한 자연파괴가 되지 않은 산이나 들판에는 자생식물로 이루어진 안정된 자연생태계가 유지되고 있으나 인간에 의해 파헤쳐진 땅이나 파괴된 생태계에는 어김없이 귀화식물이 무리지어 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귀화식물이 많은 곳은 자연생태계가 파괴된 곳이며 도시화가 된 지역이므로 이들이 자연파괴도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식물(指標植物)이 될 수 있다.
자연파괴도 측정하는 지표식물
무엇이 귀회식물인가. 이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국에서 들어온 식물', '미국자리공처럼 무서운 해를 가져오는 식물' 등으로 답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귀화식물이란 다음 세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그 식물의 발생지, 즉 원산지가 외국이어야 하며 외국에서 생육장소를 우리나라로 옮겨온 식물이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기후풍토가 그 식물에 알맞는 경우 발생지에서처럼 증식귀화될 것이며 적당치 못하면 싹이 트지 않든지 어렸을 때 죽어버리거나 자란 뒤에도 결실이 되지 않아 없어지고 말 것이다.
둘째 인간에 의해 옮겨진 식물이다. 이중에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개인이나 정책적으로 옮겨온 식물도 있다. '삼'이나 '어저귀 ' 등은 섬유용으로, '회향' '독말풀' '나팔꽃' 등은 약용으로, '큰김의털' '능수참새그령' 등은 사방용으로, '가는보리풀' '오리새' '자주개자리' 등은 목초용으로 옮겨온 식물이다.
이에 비해 국제 교류를 통해 화물이나 인간의 몸에 묻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입(移入)되는 식물도 많다. '돼지풀' '미국쑥부쟁이' '털별꽃아재비' 등 그 열매나 씨에 털 가시 갈고리 등이 있어 화물이나 옷에 잘 묻어 떨어지지 않는 종류나 곡류 사료 등에 섞여서 슬며시 들어오는 경우다. 귀화식물의 대다수가 이에 속한다.
셋째 외국에서 들어온 식물이 우리나라에서 야생화되어야 귀화식물이 된다. '벼' '튤립' '양란'을 보고 귀화식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들은 재배식물로 인간의 계속적인 보호가 없으면 자력으로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나 '어저귀' '삼' 등은 처음에는 섬유용식물로 재배되면서 사람의 보살핌을 받았지만 화학섬유에 밀려 쓸모가 없어져 버린 근래에는 야생화됨으로써 스스로 증식하며 살아남아 귀화식물이 되었다.
결국 귀화식물이란 외국 자생지로부터 인간의 매개에 의해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우리나라에 옮겨져 야생화된 식물을 총칭하는 말로 정의할 수 있다.
사전귀화식물과 신귀화식물
오랜 옛날 사람들은 살기좋은 곳, 또는 먹이가 풍부한 곳을 찾아 부족 단위로 이동했다. 그때마다 필요로 하는 식물의 일부를 옮겨놓았을 것이다. 그 뒤 농경문화가 발달하면서 특히 '벼'의 도입과 함께 '돌피' '강피' '물달개비' '마디꽃' '방동사니' '바람하늘지기' 등 남방계 식물들이 들어오게 되었다. 이들을 사전귀화식물이라 한다. 이들 대부분은 귀화된 후 오랜 시간이 흘러 우리나라 각지에 광범위한 생활권을 형성한 논잡초를 이루었다.
대륙문화와 접촉이 이루어지면서 '보리'가 전래됐다. 이와 더불어 '수영' '냉이' '벼룩이자리' '쇠별꽃' '질경이' 등 유럽식물이 중국을 경유하여 이입된 뒤 밭잡초가 된 것을 구귀화식물이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벼나 보리의 도입연대와 이에 수반하여 들어온 논이나 밭잡초의 정확한 기록은 찾을 길 없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는 개항(1876년) 이전에 들어온 식물을 모두 묶어 사전귀화식물로 취급함이 마땅하다.
이에 반해 개항 이후에는 국내외 학자들에 의해 우리나라의 식물자원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많은 기록이 남아 있어서 그 이입시기와 경로를 대략 추측할 수 있게 됐다. 이들을 신귀화식물이라 한다.
신귀화식물은 개항 이후 주로 일본을 경유해서 침입하였으며 6.25 사변 이후 경제발전과 국제간 문화교류의 증대로 최근에는 그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현재 꽃식물만도 2백여종에 달한다.
식물의 원산지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예를 들면 '도꼬마리'처럼 열매에 갈고리모양의 가시가 많아서 사람은 물론 소나 말들의 몸에 묻어서 옮겨지는 종류는 그 원산지를 알 길이 없다. 또 아시아가 발생지이면서도 옛날에 유럽으로 옮겨졌고 그 후에 유럽에서 최초기록이 되어 유럽원산으로 보고 있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주발생지를 근거로하여 원산지를 밝힐 수 있다. 우리나라의 귀화식물의 원산지를 살펴보면 (표1)과 같다.
생활형을 분석해보면 대부분이 초본류다. 씨가 커서 짐이나 사람의 몸에 묻어서 옮겨지기 어려운 목본류 보다는 초본류의 씨가 작고 털이나 가시 등이 있어 사물에 부착되기 쉽고 곡물이나 사료 등에 섞이기 쉬워서 침입이 용이한 탓이다. 초본류 중에도 1, 2년생 초본이 68.5%가 되며 다년생 초본은 31.5%를 차지한다. 이는 군집의 천이과정에서 개척자적 위치를 차지하는 지위에 속한 것이 많은 탓인 듯하다.
이들 귀화식물은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나라에 정착이 될까. 첫째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의도적으로 수입하여 재배했던 식물이 뒤에 자연상태로 뛰쳐나와서 야생화된 뒤 식물상속에 잡초로서의 위치를 차지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1차귀화
이들은 대개 이입경로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삼' '쪽' '갓' '뚱딴지' '귀리' '큰꿩의비름' '자운영' 등은 우리나라 정책의 개화시기를 전후하여 대륙문명의 영향 속에 식용 염료용 섬유용 녹비용 등의 목적으로 수입되었다가 자연으로 일출(逸出)되어 잡초화한 것이다. 개화 이후 '데이지' '자주꿩의밥' '큰김의털' 등이 관상용 사방용 목초용으로 수입되었다가 역시 자연으로 나와 잡초가 되었다.
둘째 국가간에 교역이 활발해지고 문화교류가 증가하면서 화물이나 사람의 몸에 씨가 묻거나 수입곡류나 사료 등에 씨가 혼합되어 무의식적으로 이입된 경우다. 이러한 경우는 그 이입시기나 이입방법 등이 분명치 못하다. 신귀화식물의 대부분이 이에 속한다.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이입된 종자들은 땅에 떨어져 싹이 트고 자라면서 생활이 시작된다.
이 단계를 1차귀화라고 하며 그 장소를 귀화센터(center)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귀화센터에 대한 연구가 별로 없어서 꼬집어 제시할 만한 것이 많지 않다. 그러나 필자의 현장답사체험을 통해 보면 항구, 쓰레기매립지, 도시 강변의 고수부지, 공항부근, 목장지대, 외국군 주둔지 등이 이에 해당된다.
항구는 외래식물이 침입할 수 있는 여건이 가장 좋은 곳이다. 특히 외항선이 정박하면서 화물하역이 이루어지고 화물창고에 화물이 보관되는 동안 묻어 들어온 외래식물의 씨앗이 자연으로 탈출하여 발아하게 된다.
그리하여 화물창고 부근이나 인근 도로변은 마치 외래식물의 전시장과 같은 상황이 된다. 인천 남항 원목적재소 부근에서 '염소풀' '서양무아재비' '갯드렁새' 등 우리나라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귀화식물을 찾을 수 있었으며 군산의 외항부근에서 '서양메꽃' '창질경이' '서양톱풀' '긴갓냉이' 등 수십종의 귀화식물 군락을 볼 수 있었다.
대도시의 쓰레기매립지 역시 귀화식물 전시장이다. 서울의 난지도 쓰레기매립지를 살펴보면 서울시내 모든 지역의 쓰레기와 함께 들어온 외래식물의 씨나 어린 개체를 한 곳으로 모아놓은 형국이다. 필자는 난지도에서 '큰비자루국화' '선메꽃' '털독말풀' '노랑까마중' '미국까마중' 등의 한국 미기록종을 발견할 수 있었다. 최근 3년간 이 지역을 수시로 답사하면서 얻은 꽃식물 1백 10여종중 66종이 귀화식물이었는데, 이들이 난지도 지면의 80% 이상을 덮고 있었다.
각 도시 중심을 통과하는 하천이나 강의 고수부지도 귀화센터라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이유는 고수부지에 생활쓰레기가 쌓이기도 하고 초지 조성을 인공적으로 하고 있으며 때로는 주민들이 채소를 가꾸고 있어 항시 흙이 파헤쳐지기 때문이다. 한강 고수부지에서 '노랑애기토끼풀' '큰잎냉이' '선토끼풀' '주걱개망초' '가지쥐보리' 등 한국 미기록 귀화식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공항 역시 외국과 직접 접촉하는 장소이다. 운송화물 비행기바퀴 등에 씨가 묻어 들어와 인근 초지를 형성하므로 중요한 귀화센터가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공항과 비행장의 출입이 통제되므로 한 곳도 조사를 하지는 못했다. 김포공항 주변에서 '가시상치'가 1970년대 후반에 발생하여 지금은 중부지방 각지에 퍼져나간 예가 있으며 제주공항 주변에 '큰참새피'가 나타나서 제주 각지로 확산된 예가 있다.
외국군 주둔지 역시 귀화센터다. '단풍돼지풀' '돼지풀' '미국쑥부쟁이' '털별꽃아재비' 등이 중부지방의 포천 운천 문산 등지의 외국군 주둔지 근처로부터 발생하여 점차 남부지방까지 일부 확산되어가는 중이다.
목장지대도 마찬가지다. 해방 이후 목초의 종자를 수입, 초지를 조성한 종류들의 일부가 자연상태로 일출되어 귀화가 이루어졌다. 목장 부근에 '큰조아재비' '오리새' '자주개자리' 등이 있으며 제주도에서 최근에 많이 나타난 '서양금혼초' 역시 목초의 씨에 섞여 들어와서 목장과 밭의 잡초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밖에도 여러 귀화센터가 있을 것이다. 각종 외래식물이 끊임없이 귀화를 시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후풍토와 그 식물 자체가 갖는 유전적 소질과 자연환경이 조화를 이루면서 서서히 귀화가 이루어지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발아가 되더라도 죽어 버리거나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장소와 시기를 바꾸어가면서 몇번이라도 귀화를 시도할 것이다.
2차귀화
귀화센터에서 1차귀화가 이뤄진 식물은 다시 싹이 트고 생장하여 개화 결실을 하는 생활고리를 반복하면서 점차 분포역을 넓혀나가는 2차귀화의 단계로 들어가게 된다. 1992년 서울 난지도에서 처음 '큰비자루국화'를 발견했을 때는 상암동쪽 저변에서 약간 볼 수 있었던 것이 1994년에는 난지도 전역을 뒤덮고 한강 고수부지 쪽으로 분포역을 확장시켜 나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귀화센터에서 하나의 훌륭한 생활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식물일지라도 군집의 천이과정에서 다음 단계 식물에 의해 소멸되고 만다. 따라서 이들은 새로운 생육지를 찾아 계속 2차귀화를 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정착하여 살 수 있는 장소란 사람들이 파헤쳐놓은 땅이다. 사람이 택지조성, 공장부지 조성, 도로 공사 등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이룬 모든 자연이 파괴된 장소와 농경지다. 또한 바닷가 모래밭도 2차귀화지가 될 수 있다. '솔잎미나리' "애기달맞이꽃' '큰망초'등 많은 귀화식물이 해변을 따라 모래밭에 번지고 있는 것도 좋은 예다.
귀화식물은 거의 초본(풀)이다. 그중에서도 1, 2년생 초본이 다년생초본보다 훨씬 많다. 1994년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신귀화식물 1백81종중 1, 2년생 초본이 1백24종(68.5%)이고 다년생 초본이 57종(31.5%)이었다. 이는 종자가 발아한 뒤 개화결실이 되어 생활고리의 1주기에 소요되는 기간이 길수록 사람에 의해 자주 파헤쳐지는 땅에서는 살아남기가 어려우므로 다년생초본의 수가 적으며, 천이과정에서 노출된 땅에 침입하는 개척자의 위치에 있는 식물이 대개 1년생초본이기 때문이다.
귀화식물은 잎이나 줄기가 자라는 영양생장기가 짧고 개화결실이 되는 생식생장기가 길다. 영양생장기가 짧다는 것은 어린 개체에서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며 바로 생식생장기에 들어가서 생장과 더불어 연속적인 개화결실이 진행된다는 뜻이다. '미국외풀'은 논이나 논둑에 있는 식물로 발아된 후 21일이 지나면 종자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 생활고리 1주기의 기간을 단축시켜 다음해를 대비하여 틀림없이 종자를 남길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망초' '개망초' 따위의 식물은 여름과 가을에 걸쳐 계속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볼 수 있다.
귀화식물은 환경조건이 좋으면 엄청난 수의 종자를 만들어낸다 순천 벌교 여수 등지에 번지고 있는 '양미역취'는 좋은 조건 하에서 1포기에서 1백만개의 종자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난지도 부근에 많은 '큰비자루국화'는 포기당 60여만개의 종자를 만들어 살포하고 있다. 또한 직사광선이 비추고 건조하며 박토인 땅에서 발아한 '망초'를 보면 겨우 5㎝ 정도로 타 죽기 직전의 악조건에서도 1개의 꽃을 피우고 20여개의 종자를 만들어내어 종족보존을 해내는 경우도 있다.
또한 귀화식물은 대개가 양지식물이다. 대부분 직사광선이 비추는 땅에서 자라고 발아가 잘 되는 편이다. 그러므로 천이과정에서 개척자의 위치에 놓이며 천이가 진행되어 다음 단계의 식물, 특히 목본류가 침입해오면 자연소멸되고 만다. 그러나 '서양등골나물' '주홍서나물'처럼 나무밑 그늘에서 자라는 음지식물도 약간 있다.
귀화식물은 종자살포나 살포후 정착하는데 필요한 기구가 발달돼 있다. '서양민들레' '붉은서나물'은 관모가 발달해 바람에 의해 널리 살포된다. '미국가막사리' '울산도깨비바늘' 등은 관모가 미늘이 달린 가시로 변하여 사람의 옷미나 동물의 몸에 묻어서 옮겨진다. '도꼬마리' '가시도꼬마리' '큰도꼬마리'는 열매에 갈고리 모양 가시가 많이 달려 사람이나 가축에 붙어서 옮겨진다. 그밖에 씨가 익으면 식물체에서 잘 떨어지는 성질이 있어서 땅에 묻히거나 곡물에 섞여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능력이 있다.
2년생 식물중 겨울을 잘 넘기기 위하여 로젯잎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개망초' '큰망초' '망초' '겹달맞이꽃' 등은 겨울에 방석모양 로젯잎을 만들어 생장점이 얼어 죽는 것을 피하고 봄에 줄기가 자라서 개화결실을 하는 성질이 있다.
대부분의 귀화식물은 자가수정을 한다. 자가수정방법은 단 한개의 개체가 자라도 자손을 남길 수 있는 유리한 특성이 될 수 있다. 또한 '망초' '서양민들레'는 꽃가루가 없더라도 단위생식으로 자손을 남길 수 있는 유리한 번식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타가수정을 하는 식물도 특정 매개동물이나 곤충이 지정된 것이 아니고 모든 동물이 꽃가루를 옮기며, 바람에 의한 풍매화도 많다. 만일 특정 매개동물이나 곤충이 필요한 식물이라면 그 외래식물이 들어올 때 특정동물이 함께 이입되어야 하는 불편이 있을 것이다.
자세한 연구는 없으나 종자가 발아될 때 특별한 환경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도 있다. 가령 '양미역취'는 종자의 휴면기가 없고 온도에 관계없이 언제나 발아할 수 있으며 종자의 수명이 길다. 그러나 이같은 특성이 다른 귀화식물에도 해당되는지는 앞으로 더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이밖에도 귀화식물은 종자의 크기가 비교적 작다든지 국내에 이들 귀화식물의 천적이 없다든지 하는 여러 생물학적 특성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특성들 때문에 귀화식물은 사람들이 땅을 파헤친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정착해서 귀화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