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체 액체 기체의 3상의 물질상태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규모를 우주로 넓혀보면 물질3태는 극히 예외적인 존재다. 우주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플라스마의 본질은 무엇인가.
과학기술 용어로서 '플라스마'(Plasma)라는 단어가 이제는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일간신문이나 잡지에서도 종종 쓰여지고 있다. 이 단어는 국내 전문가들이 이 분야 연구를 시작하던 20여년 전에는 과학자들 사이에도 생소했다. 물리학도이던 필자도 그 용어의 뜻을 알기위해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혈액속의 한 성분인 '혈장'이라든가 '원형질' 등의 의학용어, 혹은 '잘 알수 없는상태, 즉 혼돈'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여지는 단어로 정의돼 있었다.
이제는 영한사전에 조차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전리기체"라는 물리학적 정의가 덧붙여져 있고 '플라스마 에칭'과 '플라스마 패널 디스플레이' 등 현대 첨단과학기술의 발명품도 나와있는 것을 보면, 플라스마라는 용어가 우리 삶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자들에 의해 플라스마라는 이름이 물질의 상태를 지칭하는 단어로 쓰여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러나 물질상태로서의 플라스마는 우주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바로 그 시점부터 존재하기 시작했다. 우주 만물의 99.99% 이상을 구성하는 최다 물질인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물질의 세가지 상태, 즉 고체 액체 기체는 매우 특수한 예외적인 물질 상태다. 또한 이 세가지 물질상태, 즉 3상이 대부분인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환경은 생명의 존재가 가능한, 우주 전체에서는 매우 특수한 환경이다.
제4의 물질상태
좀더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보자. 플라스마는 고온 상태에서 이온화된 입자상태로, 전자와 양이온, 즉 하전입자들로 구성돼 있으며 전기적으로 중성인 하전기체의 물질상태를 정의하는 물리학 용어이다.
플라스마를 물질내부에 지닌 에너지의 양에 따라 구분하여 다시 설명해보자. 실생활에서 친근한 상태인 물질의 세가지 상태, 즉 가장 에너지가 낮은 상태인 고체가 제1의 상태이고, 이 고체에 외부의 에너지가 가해지면 제2의 상태인 액체로 상변이하며, 이에 다시 에너지를 가하면 제3의 상태인 기체로 변한다. 그런데 기체에 다시 에너지를 가하면 기체를 구성하고 있는 분자가 원자로 갈라지는데, 이 때 가해진 에너지가 많으면 그 원자는 다시 원자핵과 전자로 분해되고 만다. 이를 전리현상이라고 부른다.
이 상태에서는 원자핵과 전자가 각각 에너지를 얻어 공간을 떠돌아나니게 되는데, 이 상태를 19세기 말 영국의 물리학자인 쿠르크스가 '제4의 물질상태'라 표현하였다. 그후 1920년대에 제4의 물질상태를 전자기 물리학자인 랑뮤어가 플라스마라고 처음 이름지었다.
플라스마는 한개의 양전하를 띤 원자핵과 한개의 전자가 어떤 공간에 존재할 때와 같은 개개 입자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물질상태가 플라스마라 불리기 위해서는 많은 입자가 서로 영향을 끼치면서 존재하는 하전입자들의 집단을 말하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여기서 플라스마가 많은 수의 하전입자 집단임을 강조하는 것은 다수의 입자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공존하는 상태에서는 통계적인 이해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때 플라스마는 파동성 비선형성 불안정성 자기유지성 등 각개개의 입자들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특성들을 보여준다.
플라스마를 물리학적으로 정의하여 접근하면 원래 이름이 뜻하는 바와 같이 혼돈스러울 만큼 학문적으로 복잡한 연구의 대상이다. 플라스마는 매일 떠오르는 태양, 밤하늘의 무수한 별(항성)들의 근본상태일 뿐만 아니라 번갯불 형광등 네온사인 등과 같이 우리 주변 가까이에도 존재한다. 북극의 하늘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오로라, 태양에서 불어오는 태양풍, 또 지구에서 전파통신을 가능케 해주는 반알렌대와 같은 전리층들도 모두 플라스마가 만드는 흥미로운 자연현상이다.
이러한 다양한 종류의 플라스마가 존재하는 이유는 플라스마 상태를 특징짓는 온도나 밀도와 같은 특성상수들의 범위가 너무나 넓기 때문이다. 그 범위는 절대온도 수천도에서 수억도까지, 밀도는 1㎤ 부피내에 1개에서 ${10}^{25}$개까지에 이른다.
온도와 밀도에 따라 분류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플라스마를 좀더 이해가 쉽게 하기 위해 몇가지 종류로 대별해 보면, 온도와 밀도가 가장 낮은 항성과 항성사이 또는 태양계와 같은 행성간에 존재하는 외계 플라스마, 온도는 낮으나 밀도가 높은 방전기체 플라스마, 온도와 밀도가 높은 항성 내부 플라스마와 인공상태 핵융합 플라스마로 나눌 수 있다.
플라스마에 관한 연구는 20세기 초부터 물리학 천문학 등 기초연구에서 시작하여 방전관과 전파통신 등 전기·전자공학, 플라스마 응용기술과 관련되어 기계공학 재료공학 화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가 진행됐다. 이러한 연구수행 과정에서 누적된 경험에 의해 발전되어 오다가, 1950년대에 이르러 미래의 궁극적 에너지를 꿈꾸는 플라스마 핵융합 연구에 선진과학기술국들이 경쟁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에 힘입어 지난 40여년간 학문적인 이해가 괄목할만큼 성장했다. 이에 따라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이제까지 다양성과 대상의 복잡함으로 인하여 거의 포기하다시피하던 제4의 물질특성과 현상을 종합적인 과학의 체계로 이해하고자 하는 '플라스마과학'이 학제적인 학문분야로 정립돼 가고 있다.
또한 20세기 중반 이후 급속도로 발전을 거듭한 고진공 초고온 초고주파 기술 등 첨단극한기술에 힘입어, 각 분야에서 축적되어 온 연구결과들이 바로 반도체가공 신소재개발 등으로 산업기술화됐다. 이는 플라스마 과학기술이 핵융합에너지 연구뿐만 아니라 21세기 첨단 산업기술 중 가장 중요한 선도적 기술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원하는 특성을 가지는 플라스마를 특정 공간내에 발생시켜 장기간 밀폐·가열하고, 이 물질의 특성을 제어조정하기 위한 과학적 이해는 아직도 충분치 못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연구결과가 산업기술에 활용되는 것은 플라스마 응용의 극히 초기단계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플라스마와 일반 물질계와의 상호관계, 즉 플라스마와 레이저, 초고주파 등 전자기파와의 상호관계, 플라스마 특유의 여러가지 비선형성 등에 관한 이해의 수준도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현재 컴퓨터 모델링과 시뮬레이션 등 전산물리학 기법과 기초연구의 제반 방법론 등이 동원돼 플라스마 상태에 대한 과학적 해명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그 연구결과를 응용하는 첨단기술의 개발이 가속화되면 플라스마 과학과 그 응용기술은 21세기에 이르러서는 아직 우리에게 발견되지도, 알려지지도 못한 과학기술의 새로운 물줄기로 발전하리라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