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우리 조상은 뛰어난 과학성을 발휘해 왔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었는가하면 한글을 창제했고, 청자 백자기술을 개발했는가 하면 측우기를 발명했다. 21C 첨단기술시대를 앞두고 우리 조상의 슬기를 알아보는 '한국인의 과학성 탐구'를 새로 연재한다. 이 달에는 첫번째로 발효식품의 과학성에 대해 다룬다.
지구상의 어느 민족이든지 그 집단이 번성하고 문화적으로 창달하는 데에는 주어진 환경에서 충분한 영양공급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인류문화사의 공통적인 견해다.
잉카문명이 해발 3천m의 고지에서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지역에서 자생하는 특수한 콩과식물이 그들의 단백질 급원이 됐기 때문이다. 혹한의 북극지역에서 에스키모인들이 생활할 수 있는 것도 빙하지대에 모여 사는 특수한 어류의 기름과 단백질이 이들에게 필요한 열량과 필수 영양소를 공급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학자들은 인류의 문명은 생존을 위해 주어진 환경에서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인간행동의 결과라고 보기도 한다.
사시사철이 뚜렷하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구릉지대 한반도에서 5천년의 문화민족이 번성해온 데에는 분명히 놀라운 음식의 지혜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경작지가 많지 않은 이 작은 한반도에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사람들이 밀집해서 사는 사실만으로도 한국인의 음식지혜가 남달리 뛰어난 것임을 실증하는 것이다.
위나라도 칭송한 한민족의 장담그는 기술
한국민족은 예로부터 콩의 원산지에서 살아온 민족이며 동아시아의 두장문화(豆醬文化)를 시작한 민족이다. 발효기술이 뛰어나 간장 된장뿐만 아니라 김치 젓갈 곡주(穀酒)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발효식품을 만들어 주변국가들을 가르쳐 왔다.
3세기 중국 위(魏)나라 역사서는 한국민족의 장담그는 기술을 칭송하고 있으며, 일본 고사기(古史記)에는 백제사람 인번(仁番)이 그들에게 술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교토(京都)의 송미대사(松尾大社)는 인번의 위패를 모신 신사(神祠)로서 지금도 일년에 한번 일본의 모든 청주업자들이 그곳에 모여 그들의 술빚기가 순조롭기를 기도하고 있다.
17세기 고추의 전래로 크게 발달한 김치발효기술은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적인 식품으로 각광을 받게 됐고 최근에는 일본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열심히 배우고 연구하고 있다.
5천년동안 축적된 한국인의 음식지혜는 수천권의 책에 기록돼 있다. 그러나 그 기록들은 도서관 한적과(漢籍課)에서 먼지에 덮여 있을 뿐 대학에서의 강의는 서양의 식품학 서적에 의존해 왔다.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중고등학교의 교사가 돼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빵이나 마요네즈, 샐러드 만드는 것일 수밖에 없다.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 음식보다 서양음식을 더 잘 알고 좋아하도록 교육받은 것이다.
세계에 유례없는 발효조미식품 고추장
우리나라에서 기자조선 당시 몽고계(Arctic Monglloid)부족은 육식을 주식으로 하는 유목민족이었다. 이후 고구려 사람들의 고기 요리는 대단히 유명해 당나라에서는 구운 고기요리를 맥적(貊炙), 즉 고구려 불고기라고 불렀다. 오늘 우리가 한국을 대표하는 요리로 불고기를 치는 것은 이러한 역사가 있 때문이다. 두장문화와 육식문화를 합해 고기를 간장에 잰 후 구워 먹는 한국민족의 독특한 요리법을 발달시킨 것이다.
한편 남부의 삼한(三韓)지역에는 인도네시아-말레이 몽고계 부족들이 어로(漁撈) 농경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은 소금을 만들어 젓갈과 각종 채소절임에 사용하는 식품 저장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삼국사기의 신라 본기 신문왕 3년(683) 기록을 보면 공주의 결혼예물로 주(酒), 장(醬), 시(豉·메주), 해(酼·젓갈) 등 각종 발효저장식품을 준비한 기록이 나온다. 이때부터 이미 우리나라는 동북아시아 두장 문화의 창시자로서 동남아시아의 어장문화(漁醬文化)를 포용하는 동아시아 발효기술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