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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Ⅰ'20세기의 판도라 상자' 핵에너지, 어떻게 탄생됐나

아인슈타인에서 페르미까지

1895년 베크렐이 방사선을 처음 발견한 후 1942년 최초의 원자로 시카고파일에서 핵분열 연쇄반응을 일으키기까지 수많은 핵물리학자들의 연구성과가 농축돼 있다.

아인슈타인은 원자폭탄과 관련해 두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하나는 특수상대성이론으로 부터 유도된 E=${mC}^{2}$ 이라는 공식이고 또하나는 1939년 루즈벨트대통령에게 보낸 원자폭탄 개발을 권유하는 편지다. 아인슈타인 자신도 "히틀러가 최초로 원자폭탄을 손에 넣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불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런 편지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했듯이 미국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는 맨해턴 프로젝트의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원폭 투하로 종결된 2차 대전후 10여년동안 죄인 취급을 받았다.

문제는 E=${mC}^{2}$이라는 방정식이다. 물리학에서 가장 간결한 식.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에서 인용됐던 단 하나의 식. 이 식이 원폭개발에 어떤 노릇을 했느냐는 점이다. 대부분 물리학자들은 원자핵분열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분열과정에서 결손된 질량이 에너지로 변화된 것이므로, 이 방정식은 핵에너지의 지침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시각은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 원자핵에너지가 해방되는 전체적인흐름에서 이 식은 본류가 아니다. 원자핵에너지는 이 방정식으로 해방된 것이 아니고 수많은 실험물리학자들의 연구성과에 기인한다. 이 방정식은 그 연구성과를 확인해주었다는 측면에서 중요성을 인정받는다.

베크렐의 첫 발견

현재 우리가 이용하는 원자력은 원자핵의 분열에너지를 직접 활용하는 에너지분야(원자력발전 등)와 방사성원소가 방출하는 방사선을 활용하는 분야(의학의 방사선 치료 등)로 나눌 수 있다. 인간의 원자력에 대한 접근은 방사선 발견에서부터 시작된다.

원자핵에서 방사선이 나온다는 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프랑스의 베크렐이다. 그는 1895년 형광현상이 일어나면서 X선이 함께 나오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실험을 계속했다. 형광이란 물체에 빛을 비춘 후 그 빛을 없애도 물질로부터 빛이 나오는 현상을 말한다. 비가 오기 때문에 실험을 할 수 없어 실험에 사용하던 우라늄 원광과 사진 건판을 서랍 속에 넣고 여행을 다녀왔는데 사진건판이 감광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형광현상이 아니었다. 외부에서 빛을 쬐어주지 않아도 우라늄에서는 투과력이 강한 빛이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 어떤 종류의 무거운 원소들은 외부로부터 자극이 없어도 방사선을 방출하고 다른 원소로 변해간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당시는 원자구조(원자핵 주위를 전자가 돌고 있는)가 밝혀지기 전이므로 그 메커니즘을 밝혀내려고 했다기보다는 어떤 종류의 원소가 투과력이 강한 방사선을 내는가에 관심이 집중됐다. 방사능이나 방사선이라는 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신비의 빛'이라는 표현이 적절했다. 여기에 공식적인 이름을 붙인 것은 유명한 마리 퀴리였다. 남편인 피에르 퀴리와 함께 마리 퀴리는 여러가지 방사성 물질을 발견했다. 폴로늄 라듐 악티늄 등이 바로 그것. 이러한 방사성 물질 가운데 강한 감마선을 내는 라듐의 발견에 얽힌 이야기는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고전.

파리의 퀴리연구소에 가면 유리상자 안에 노트 크기만한 카드가 보관돼 있다. 옆에는 가이거계수기가 놓여 있는데, 이 카드가 바로 라듐원자의 질량을 계산하기 위한 것. 이 카드에서는 아직도 방사선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퀴리 부부는 당시 방사능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으므로 심하게 방사선에 오염됐다. 아무튼 퀴리 부부는 어렵게 몇㎎의 라듐을 얻는데 성공, 이 공로로 1903년 베크렐과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19세기는 이렇게 저물었고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발견이 잇따랐다. 1900년 X선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던 뉴질랜드 출신의 물리학자 러더포드는 방사성원소에서 나오는 방사선의 세기는 시간에 따라 감소하고 원소양이 많을 때는 원소의 붕괴가 빨리 일어나며 원소양이 줄어들 때는 붕괴율도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자신의 발견을 설명했다. "원통형 수조의 밑바닥에 구멍을 뚫고 물을 가득 부으면 처음에는 많은 양의 물이 빠져나가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유출량이 줄어든다. 방사성원소도 마찬가지다."

이 발견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방사성원소의 반감기를 알아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천연방사성원소(자연적으로 붕괴하는)의 반감기는 우라늄238이 45억년, 우라늄235가 7억년, 토륨이 1백 40억년이다. 또 이러한 방사성원소는 한번의 단계를 거쳐 안정된 납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단계를 거치는데, 이들 원소를 딸원소라 한다. 딸원소의 특징은 '어미' 방사성원소와는 달리 반감기가 짧은 것이 특징이다. 퀴리 부부가 발견한 라듐은 대표적인 딸원소.
 

핵분열연쇄반응과 그 반응속도를 조절하는 실험을 성공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시카고대학 내에 설치된 놋쇠조각상


원자핵에 대한 관심
 

(그림1) 톰슨의 원자모형


우리는 원자핵 에너지가 원자핵 속에 자리잡은 양성자와 중성자가 분열되면서 줄어드는 질량만큼의 에너지가 방출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천연방사성원소가 방사선을 방출하는 것을 발견할 당시 원자구조, 특히 원자핵에 대한 이해는 전무했다. 따라서 인류가 원자핵 에너지를 손에 넣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할 벽은 바로 원자구조의 해부라고 할 수 있다.

맥스웰시대 (19세기 중반)만 해도 원자는 당구공과 같이 단단한 고체 알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자의 성질을 실험하던 물리학자들은 고속전자가 비교적 자유롭게 원자 내부의 공간을 통과하는 사실을 알고나서부터 원자공간이 당구공처럼 딱딱한 물질로 채워지지는 않았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게 되었다.

이 막연한 생각에 종지부를 찍고 원자의 실체를 드러내는데 기여를 한사람은 '전자의 발견자'라 부르는 영국의 톰슨이었다. 톰슨의 원자모형은 원자 내부에 전자가 골고루 퍼져 있는 아주 간단한 구조였다. 마치 수박 속에 씨가 골고루 퍼져 있듯이 전자가 원자 전체에 널려 있다고 했다. 수박 속은 양전하를 띤 원자 전체의 질량. 따라서 톰슨의 원자모형을 '수박씨 모형'이라고 한다.

수박씨 모형에 수정을 가해 우리가 요즘 배우고 있는 원자 형태의 윤곽을 잡은 것은 러더포드였다. 1910년 그는 실험을 통해 원자의 질량은 원자 전체에 고루 퍼져 있는 것이 아니라 원자 중심에 몰려 있음을 알아냈다. 이 실험이 유명한 알파입자 산란실험.

러더포드는 아주 얇은 금박에 천연방사성 원소인 라듐원자로부터 나오는 알파입자(양성자 두개와 중성자 두개로 이루어진 헬륨입자, 물론 당시는 알파입자가 이러한 구성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음)를 때려 넣어 그것이 산란되는 모습을 관찰했다. 대부분의 알파입자는 직선으로 금박을 통과하지만 몇개의 알파입자는 큰 각도로 산란되는 사실을 알아냈다. 당시 알파입자의 질량이 전자보다는 훨씬 크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으므로 알파입자가 전자와 부딪쳐서는 산란이 일어날 수 없음에 천착한 러더포드는 원자 내부에 무거운 물체가 뭉쳐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러더포드는 원자의 질량이 원자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크기를 가진 핵에 원자질량의 대부분이 몰려 있고 나머지 부분은 거의 진공이나 다름없는 텅 빈 공간이라고 주장했다. 이 공간을 전자가 돌고 있다는 것이다. 수박씨 모형에 이은 러더포드의 원자모형은 원자핵의 존재를 제시한 최초의 원자모형으로 원자핵물리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물론 러더포드의 원자 모형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원자핵 안은 여전히 정체불명이었다. 원자량과 원자번호의 관계, 또 방사성원소의 베타붕괴시 전자가 나오는 문제 등이 얽혀 명확히 해명되지 못했다. 처음에는 원자핵 안에 양성자와 전자(원자핵 외각을 도는 전자와는 별도의 전자)가 혼재한다는 생각을 했으나, 이는 핵 안에 갖힌 전자가 튀어나올 수 있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는데 많은 모순점을 드러냈다.

"이 당시 싹트기 시작한 양자물리의 관점으로 보아도 전자가 핵 안에 잡혀 있을 수는 없다. 전자는 입자와 파동의 양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정할 수 없다. 위치를 정하기 위해서는 전자의 파장이 짧아야 하는데 파장이 짧으면 에너지가 증가해 전자가 원자핵 안에 얌전하게 갖혀 있지를 못한다." 수원대 물리학과 곽영직 교수의 설명이다.

1920년대 들어 러더포드는 원자핵 속에 양성자와 전자가 뭉쳐서 형성된 중성 입자가 들어있다고 제안했고 그 이름을 중성자로 불렀다. 시간이 흐를수록 보이지 않는 원자 내부는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림2) 러더포드의 알파입자 산란 실험
 

인공 핵변환

원자핵이 어떻게 인류 앞에 모습을 드러냈는지 간단히 알아보았다. 실제로 이 과정은 핵에너지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원자핵을 이루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어떤 상태로 존재하고, 이들의 결합상태가 어떠한지, 알파선이나 베타선이 왜 방출되는지는 양자물리학이 본궤도에 이르러서야 그 실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원점으로 돌아가 방사선을 방출하고 다른 원소로 변환하는 방사성원소들의 이야기를 다시 해보자.

천연 방사성 원소를 연구한 물리학자들은 당연히 "핵이 자연적으로 붕괴하여 다른 원자핵으로 변할 수 있다면 안정된 원자핵도 어떤 충격을 가하면 붕괴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과학자들에게 가장 잔인한 짓은 '호기심을 갖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일단 궤도에 오른 연구는 가속이 붙기 마련이다. 호기심을 제어할 어떤 브레이크시스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결과가 어떤 것일지라도. 당시의 물리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점점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원자폭탄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원자핵의 크기는 원자 크기 (${10}^{-11}$m, 1백억분의 1m)의 10만분의 1밖에 되지 않으므로, 이를 부수는 데는 별다른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주 작은 입자를 충돌시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도 러더포드는 선두에 섰다. 그는 라듐에서 나오는 알파선을 질소의 원자핵에 쏘여 질소 원자핵을 파괴하는데 성공했다. 러더포드야말로 퀴리 부부가 몸을 희생해 얻어낸 라듐을 가장 잘 사용한 과학자였다. 그는 원자번호가 작은 거의 모든 원소들의 원자핵이 알파입자충돌로 분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한가지 성과는 핵 이 붕괴될 때 나오는 양성자의 에너지가 입사에너지인 알파입자의 에너지보다 오히려 큰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아낸 점이다. 이는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원자핵이 붕괴과정에서 에너지를 획득한 셈인데 '핵에너지의 비밀'이 서서히 밝혀지는 순간이다.

1925년 영국의 물리학자인 블랙켓은 안개상자 속에서 알파입자가 질소원자핵에 흡수된 후 방사성원소인 원자량17의 플루오르(F, 불소) 동위원소로 변환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플루오르 동위원소는 매우 불안정해 곧바로 양성자를 방출하고 산소로 변한다. 과학자들의 호기심은 천연방사성원소를 발견한지 30년만에 인공적으로 방사선을 방출하는 방사성원소(F17)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그러나 블랙켓이 발견한 인공방사성 원소인 플루오르 동위원소는 너무 빨리 붕괴하므로 쉽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 실질적인 인공방사성 원소의 발견은 그로부터 9년이 흐른 후에 이루어진다.

최초로 천연방사성원소인 라듐을 분리하는데 성공한 퀴리 부부의 딸과 사위인 이레느와 졸리오 부부는 1934년 핵분열에 의해 형성된 원자핵 중 방사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은 폴로늄에서 방사되는 알파 입자를 알루미늄판에 쪼였는데 폴루늄을 제거한 후에도 방사선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을 알아냈다. 그 후 화학적인 방법을 동원해 인공방사성원소를 분리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레느와 줄리오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35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마리 퀴리는 딸이 노벨상을 받은 이듬해에 자식의 대견함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한 채 연구 중에 방사선을 많이 쪼여 얻은 백혈병으로 숨진다.

2세 퀴리의 업적으로 1960년대까지 1천2백가지가 넘는 인공방사성 원소가 만들어진다. 특히 이탈리아의 페르미는 중성자를 이용하여 37종이나 되는 인공방사성원소를 만들어냈다. 요즘 연구소나 병원에서 사용되는 수많은 방사성 동위원소는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인공방사성원소를 만들려는 노력은 중성자를 인류의 눈으로 확인하는 부수적인 성과를 올렸다. 1930년 보데와 벡커는 폴로늄(Po, 퀴리 부부가 라듐과 함께 발견한 원자번호 84번의 천연방사성원소)에서 나오는 알파선을 총알로 사용해 원자핵을 쪼개는 실험을 하던 중 투과력이 강한 감마선이 방출되는 것을 확인했다. 또 이레느 퀴리와 그의 남편인 졸레느는 폴로늄에서 방출되는 알파입자를 베릴륨 에 쪼여 감마선의 투과력을 실험하고 있었다. 이 과정을 관심있게 지켜본 채드윅은 베릴륨에서 나오는 감마선의 정체가 양성자와 비슷한 질량을 가진 중성 입자가 튀어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채드윅은 중성자를 최초로 발견한 인물로 과학사에 기록됐다. 러더포드의 중성자 예언이 있은 후 12년만의 일이다.

중성자 발견은 두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원자의 내부 가족이 모두 밝혀졌다는 것. 원자핵 내부에 양성자와 중성자가 자리잡고 있고 그 주위를 전자가 돌고 있는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난 것이다. 물론 이 과정 중에는 전자가 여러 궤도를 돌고 있다는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의 원자 모형이 중요한 노릇을 한다.

또 하나의 의미는 중성자가 원자핵을 쪼개는 새로운 총알로 등장한 것이다. 중성자는 알파입자와는 달리 전하를 띠고 있지 않으므로 양전하를 띤 원자핵에 접근이 용이하다. 천연방사성원소에서 나오는 알파입자는 양성자보다도 전하를 많이 띠고 있어서 원자핵으로부터 강한 전기적 반발력을 갖는다. 러더포드를 비롯 1920년대의 실험물리학자들은 아주 성능이 떨어지는 '조총'을 가지고 '새'를 잡으려 했던 반면에, 1930년대 이후의 실험과학자들은 성능이 월등한 공기총이나 엽총으로 무장해간다. 이후 중성자가 수소의 원자핵과 충돌해 발생하는 양성자는 가속기의 새로운 총탄으로 자리잡는다.

E=${mC}^{2}$의 의미

맨 앞에서 아인슈타인의 원자폭탄과 관련된 두가지 혐의 중 하나인 E=${mC}^{2}$이 원자핵 에너지가 해방되는 과정에서 본류 노릇은 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그렇지만 이 공식은 원자핵에너지를 설명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핵심사항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지금부터 E=${mC}^{2}$과 원자핵에너지는 어떤 관련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양성자를 가속시켜 원자핵에 충돌시키는 본격적인 기기는 1930년대 중반 콕크로프트와 윌슨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이 이름이 '가속기의 할아버지 '라고 불리는 반데그라프다. 콕크로프트와 윌슨은 10만-70만 전자볼트로 가속된 양성자를 리튬원자핵에 쪼였다. 그 결과 양성자가 리튬 원자핵에 흡수되면서 베릴륨 동위원소를 만들고 이 원소가 두개의 알파입자(헬륨 원자핵)로 분해되는 것을 알아냈다. 이 실험의 의미는 최초로 가속된 양성자를 이용해 인공핵변환을 시도했다는 것.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특수상대성이론이 발표될 당시(1905년) 미미한 존재였던 E=${mC}^{2}$을 일약 스타로 부상시켰다는데 있다. 반데그라프에서는 반응 전후의 입자들의 질량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었는데, 반응 후의 질량을 측정한 결과 반응 전보다 1.86%에 해당하는 질량이 줄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결손된 질량을 E=${mC}^{2}$의 공식에 대입하면 1천7백34만 전자볼트가 나온다. 이 수치는 핵분열 후 증가한 에너지 1천7백33만 전자볼트와 거의 맞아떨어지는 숫자. 이 결과는 상대성이론의 신뢰도를 한층 높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천대받았던 E=${mC}^{2}$을 일약 톱스타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지금 미국이나 유럽의 대학생들은 이 공식을 새겨넣은 티셔츠를 즐겨 입는다.

이 논의에 대한 해석은 학자들마다 조금씩 다르다. E=${mC}^{2}$ 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전에 러더포드와 그의 공동연구자였던 프레더릭 소디는 이미 우라늄은 붕괴될 때 대량의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 소디는 1909년에 출판된 '라듐의 해석'이라는 책에서 1t의 우라늄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런던의 밤거리를 1년 동안 밝힐 수 있다"고 쓰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이 표현이 E=${mC}^{2}$에 의해 계산된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20세기의 판도라상자

SF소설은 항상 앞서간다. 유명한 SF작가 H.G.웰즈는 '라듐의 해석'을 소재로 한 '해방된 세계'라는 소설을 썼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33년 인공방사성원소를 발견한 홀스타인은 무한한 에너지를 손에 넣은 인간이 세계를 멸망시키지 않을까 두려워하다가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과학자들이 같은 발견을 할 것이다'고 생각하고 발표한다. 인공방사능원소가 발표되고 원자폭탄이 개발됐으며 1959년 세계전쟁이 발발, 지구는 멸망한다.

이 소설은 시기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실제의 상황과 유사한 점이 너무 많다. 더군다나 헝가리 태생의 과학자 레오 질라드는 이 소설에서 영감을 얻어 인공방사성 원소에서 원자 폭탄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다리인 원자핵 연쇄반응의 아이디어를 얻었다는데 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물리학자들이 '20세기의 판도라 상자'를 여는 과정을 살펴보자. 1938년 독일의 화학자 오토 한은 그의 제자인 스트라스만과 함께 '우라늄 핵분열'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으로 우라늄을 중성자로 때릴 때 우라늄이 분열해 바륨이 생성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실은 나치에 쫓겨 코펜하겐에 피신해 있던 한 물리학자들에 의해 전세계로 급속히 알려졌다.

1939년 1월 워싱턴에서 개최된 미국 이론물리학회에서 한의 연구결과는 닐스 보어의 입을 통해 정식으로 보고됐다. 학회는 발칵 뒤집혔다. 무거운 원소인 우라늄에 중성자를 충동시켜 핵분열이 일어나면 거기에서 중성자가 탄생하고 그것이 또다른 우라늄 핵을 때려... 핵분열 연쇄반응의 가능성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몇몇 물리학자들은 학회 중간에 실험실로 뛰어가 우라늄 핵분열을 실험해보았을 정도.

그로부터 4년 전 아인슈타인은 연쇄 핵분열의 가능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것은 새들이 얼마 없는 나라에서 어두운 밤에 총으로 새를 쏘아 잡는 것과 같다"는 낙관론을 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낭만적인 낙관론은 한의 연구결과로 하루 아침에 무너졌다.

아인슈타인은 이 사실을 모르고 미국 롱 아일랜드 별장에서 바이올린과 요트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별장에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 사람은 절친한 친구였던 헝가리 태생의 레오 질라드였다. 질라드는 나치가 벨기에의 지배를 받던 콩고로부터 우라늄 광석을 대량으로 들여오는 것을 막기 위해 벨기에 왕실과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던 아인슈타인을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우라늄 핵분열 반응 소식을 접한 아인슈타인은 매우 당황했다고 전해진다. 후에 아인슈타인에게 나치가 핵개발을 해내기 전에 미국에서 먼저 해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내게 한 질라드와 잭스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은 편지에 서명하기 전에 2주일을 고민했다고 한다.

물리학계도 행보가 매우 빨라졌다. 페르미는 곧바로 우라늄 핵분열 시 중성자가 1-3개 생성된다는 사실을 밝혔으며, 푸리치는 우라늄 핵이 분열할 때 2억전자볼트라는 에너지가 생성된다는 사실도 밝혔다. 우라늄 연쇄반응은 과학계는 물론 정치권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아인슈타인이 서명한 두통의 편지가 대통령의 경제고문을 지낸 적이 있는 잭스에 의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전달됐고, 미국은 진주만 공격 2일 전인 1941년 12월6일 정식으로 원자폭탄 개발 계획(일명 맨해턴 계획)에 착수한다. 1942년 11월 페르미의 주도로 최초의 원자로인 시카고파일 (CP-1)의 건설이 시작됐으며 그해 12월 핵분열 연쇄반응이 시카고파일에서 이루어졌다. 시카고파일은 원자폭탄 제조계획에 따라 핵무기의 핵심물질인 플루토늄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이 소식을 들은 아인슈타인은 "오! 얼마나 고통스런 일인가"라고 부르짖은 후 한동안 침묵했다고 호프만이 쓴 아인슈타인 전기에 기록돼 있다.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

방사성을 가진 원자핵은 방사선을 방출하고 다른 핵으로 변한다. 이 때 방출되는 방사선은 3가지가 있다. 알파선은 양성자 두개와 중성자 두개로 구성돼 있어 양전하를 띠고 있으며, 베타선은 전자, 또는 양전자(전자의 반물질)로 음전하를 띠고 있다. 감마선은 일종의 전자기파로 전하를 띠고 있지 않다.

알파선은 헬륨원자핵과 동일하며 베타선은 전자의 흐름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감마선은 에너지가 큰 빛. 알파선은 투과력은 약하지만 다른 원소를 이온화하는 능력이 크며, 감마선은 투과력은 가장 강하지만 이온화 능력은 가장 뒤진다. 베타선은 그 중간.

원자량이 큰 원자핵들은 알파붕괴를 통해 핵변환이 일어나는 경향이 있지만, 원자량이 작은 원자핵들은 베타붕괴에 의해 핵변환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감마선은 방사성원소가 알파붕괴나 베타붕괴를 일으킬 때 같이 방출된다.

알파붕괴 또는 베타붕괴로 입자(알파입자 또는 베타입자)를 방출하고 새로 생겨 난 원자핵은 붕괴과정에서 얻은 에너지(질량결손분)로 들뜬 상태에 도달한다. 들떠 있는 원자핵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안정화되려는 경향을 가진다. 그 결과가 감마선으로 방출되는 것이다.

원자핵을 결합시키는 핵력

1930년대 원자핵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최대 관심은 원자핵 내부에 있는 양성자와 중성자를 결합시키는 힘이 무엇인가라는 점. 당시에 밝혀진 힘은 크게 두종류다. 하나는 질량을 가진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만유인력이고 다른 하나는 전하를 띤 입자들 사이에 발생하는 전자기력.
만유인력은 전자기력에 비해 너무 약해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영향을 못미친다. 그러나 지구나 태양과 같이 거대 물체에서는 영향력이 대단해 이들 운동을 지배하고 있다. 전자기력은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데 자석과 전류가 그 대표적인 현상이다.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회전하는 힘 또한 전자기력이 지배한다. 만유인력도 존재하지만 이 힘은 전자기력에 비해 워낙 작기 때문에 무시해도 상관없다. 그런데 원자핵 내부를 들여다 본 핵물리학자들은 같은 전하를 띤 양성자와 양성자, 또는 전기적 성질이 반대가 아닌 양성자와 중성자가 어떻게 결합하고 있는 것일까 매우 의아해 했다.

큰 전자기적 반발력을 견뎌내고 핵자들을 결합시키는 힘이 존재하려면 아주 좁은 공간속에서만 작용하는 새로운 힘을 상정하지 않으면 안됐다. 1935년 일본의 유가와는 핵력이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제안했다. 그에 따르면 양성자와 중성자는 파이중간자라는 입자를 교환함으로써 강한 인력을 발생시킨다는 것. 유가와는 이 공로로 1949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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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두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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