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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컴퓨터로 인간 5감(五感)입력 가상공간을 현실로 느낀다

가상 현실이란?

어쩌면 가상현실 연구는 인간이 컴퓨터를 고안한 순간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를 적용한 산물은 우리가 피부로 느끼지는 못해도 이미 현실화됐다. 가상현실의 과거 현재 미래를 살펴보자.

요즘 신문에서 '가상현실을 이용한 XX 개발'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상'과 '현실'이라는 이질적 의미를 담고 있는 두 단어가 하나로 합쳐진 새로운 기술의 이름은 이미 그 실체보다도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물론 이미 실제로도 군사분야와 교육 인테리어 분야에서는 초보적인 실용화를 이루고 있긴 하다.

수년 전 나온 '토탈리콜'이나 '론머맨'등과 같은 미국의 공상영화에 등장해 흥미를 끌었던 이 기술은 사람들에게 '머리로 떠올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실현이 가능한' 놀라운 기술로 이해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기술은 영화에서처럼 집안의 벽면을 바다로 만들어 바다 비린내를 맡고, 집안에 앉아서 화성으로 여행을 떠나며 선천적 저능아를 놀라운 지능의 소유자로 뒤바꿈시키는 기술인가. 붐을 이루고 있는 가상현실의 실제를 살펴보도록 하자.

3차원으로 표시되는 대상물
 

현재 가상현실 기술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활용화되고 있는 분야는 비행조종사들의 교육을 위한 시뮬레이션이다.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이란 말이 일반인들에게 거부감 없이 들리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이 용어가 정착되기 전에는 가상환경(virtual environment) 인공현실(artificial reality) 인공두뇌공간(cyber space) 등의 이름으로 불렸는데, 이같은 용어의 혼재는 그 개념을 확실히 설정하는데 적잖은 장애요소로 작용했다.

지금도 각 용어가 의미하는 것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이 기술이 '컴퓨터를 이용해 만든 세계에서 인간이 실제와 같이 현실감을 느끼도록 하는것'이라고 보면 커다란 무리가 없을 것이다.

가상현실에 대한 연구는 60년대 중반 CAD의 원조로 불리는 MIT의 이반 서덜랜드 교수에 의해 시작된다. 넓은 의미의 컴퓨터 그래픽 기술인 CAD가 VR의 모태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컴퓨터 그래픽은 대상물을 수치화시켜 실시간 내에 표현하고자 하는데, 3차원의 실세계를 평면으로 표현하는데는 어딘지 답답하기 때문이다. 시스템 공학 연구소의 김동현 박사는 "현실감 있는 영상을 생성시킬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욕구가 VR에 대한 필요를 더했다"고 설명했다.

컴퓨터 그래픽 관점에서 바라보는 가상현실은 3차원 공간을 표현하는 데이터를 컴퓨터에 기억시켜 그 가상공간에서 인간의 눈에 들어오는 장면을 디스플레이에 기억시키고 표시하는 것이다. 이때 가상공간에 있는 인간의 위치는 마우스 등의 입력기에 의해 이동시킬 수 있고 그에 따라 보이는 장면의 변화를 계산해 낸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에 인공지능이나 산업공학 제어공학 등의 연관 과학학문이 어우러지면서 VR 기술이 본격화 된 것은 80년대 들어서였다. 특히 멀티미디어의 발달에 따른 음성인식과 화상처리 기술의 진보는 이를 통합한 기술의 하나로 가상 현실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었다.

85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좁은 우주선의 복잡한 작업을 단순화 하기 위해 3차원 데이터 공간을 비해하며 몇개의 컴퓨터 조작패널로 다양한 업무를 수해하며 우주선 외부에서도 우주복을 입은 채 조작할 수 있는 VIEW(Virtual Interface Environment Workstation)를 만들었다.

그로부터 2년후 미국의 VPL리서치사(VR이란 이름이 다른 용어들을 제치고 사용된 것은 이 회사 레이니어 사장에 의해서였다)는 본격적인 가상현실 시스템인 RB2(Reality Built for 2)를 선보였다. VR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동작을 직접 훈련하고 그 움직임에 따라 일정공간 내에서 변화된 장면을 보여주고 장면 속의 물체를 조작해야 한다. 가격이 25만달러인 RB2는 아이폰(eyephone) 오디오스피어(audio sphere) 데이터글러브(data glove)등의 입출력장치를 가지고 2명이 같은 가상현실 속에서 자신의 디스플레이(HMD)에 나타나는 그래픽을 통해 상대방과 악수를 하는 등의 가상현실을 체험하게 한다.

아이폰이나 데이터블러드 등의 이름은 VPL사가 제작해 선보인 이래 단순한 상품명을 넘어 고유명사로 정착된 것들이다.
 

컴퓨터 그랙픽은 가상현실의 토대가 된 기술이다.
 

인간 오감의 재생

국내의 한 VR 연구자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할 만한 말은 아니지만, 우리가 VR을 이용해 가상 섹스를 실현할 수 있다면 원하는 것은 적용 대상이 무엇이든 이를 이루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VR의 기본이자 궁극에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인간의 오감(五感)을 컴퓨터로 실현하는데 있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느낌의 재생' 단계를 넘으면 컴퓨터와의 상호작용과 가상세계의 생성이 또다른 목표로 등장할 것이다.

컴퓨터에 입력된 인간의 오감, 즉 시각 후각 미각 청각 촉각이 가상공간에서 그대로 느껴진다는 것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오감은 어떤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설명은 각 감각을 재생하기 위해 등장한 장비를 통해 알아보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일 것이다.

먼저 시각. 가장 많은 연구가 진척된 분야가 바로 시각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이루어낸 연구의 태반은 바로 시각의 재생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는 실제 공간에서 '본다'는 것이 우리 감각에서 차지하는 비중과도 무관하지 않다.

VPL사가 개발한 아이폰의 정식명칭은 HMD(Head Mounted Display)이다. 이는 머리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영상을 출력하는 장치로, 헬멧의 모양을 하고 있다. 헬멧에는 양 눈을 표시하는 2개의 액정화면이 있어 컴퓨터 그래픽 영상을 두 눈의 시가차로 인식해 입체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 장치를 부착한 사람의 움직임이 컴퓨터에 전달되는 것은 3차원센서의 역할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디스플레이는 x y 두 축으로 이루어진 2차원공간을 표시한다. 혹 입체감을 표현할 때도 마우스나 키보드 같은 2차원 장치를 통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계는 3차원이며 이를 가상현실에서 느끼기 위해서는 당연히 3차원이 표시돼야 한다. 데이터글러브는 바로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장치다. 이 장치는 컴퓨터가 사람의 위치와 방향을 감지하기 위해 센서를 통해 주어진 이미지를 x y z의 3차원 좌표에 그리고 이를 각 축에서 회전시켜 입체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시각분야가 만족감을 줄만큼 완전한 기술 수준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디스플레이의 낮은 해상도와 입체감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 이에 대하 KIST CAD/CAM 연구실의 고희동박사(선임 연구원)는 "홀로그램을 이용한 디스플레이가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KIST에서 'KIST 2000'프로그램의 하나로 손정영박사팀이 3차원 영상매체 기술 개발이 진행중이다(표 참조).

다음은 청각분야. 가상현실에서 사용되는 음향은 HMD에 연결돼 시각과 동시에 작동한다. 현재 사용되는 이 분야의 기술 수준은 스테레오로 입체음향을 재생하는 정도지만 홀로포닉스라는 신기술의 접목이 시도되고 있다. 홀로포닉스는 3차원 공간 내에서 눈을 감고도 소리가 나는 곳을 감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움직임에 따라 그 감지도가 변화해 생생한 소리를 제공하는 음향기술이다.

3차원의 가상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중에는 촉각을 무시할 수 없다. 이를 위한 장치는 파워글러브라는 출력장치다. 압전 셀을 이용한 이 장치는 이미 미 공군에서 실시한 '가상 입체감' 프로그램에서 사용된 바 있다. 최근의 이 분야 연구는 단순히 물건을 집거나 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쥐는 힘(握力)과 공기 등의 압력에 따라 변화하는 장치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인간의 감각중 후각과 미각은 기계적인 장치로 재현하기 가장 애매한 부분이다. 다른 감각분야에 비해 연구가 거의 안되고 있는 분야다. 이는 가상현실이 현실세계와 차이를 느낄 수 없는 오감의 재현을 목표로 하고 있긴 하지만 후각과 미각이 현실감을 느끼는데 중요도가 떨어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로선 일정공간에 인공향료를 뿌려주거나 도구를 입에 물려 혀를 자극하는 정도의 낮은 수준에 아이디어가 머물고 있다.

인간의 감각이 각각 독립적으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종합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각각의 장치 역시 독립적으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상호 보완적 역할의 성격이 강하다. 여하간 이 기기들로 이루는 동작을 컴퓨터 가상공간에 있는 인간에게 전달해 동작시킨 결과 인간은 컴퓨터 밖에 존재함에도 컴퓨터에 생성된 공간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감각정보를 받는다. 이것은 컴퓨터 내에 사람이 들어가 컴퓨터와 사람이 상호작용함으로써 인간과 컴퓨터를 하나로 엮는, 본격적인 인간-컴퓨터 인터페이스 (HCI, Human Computer Interface)를 구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표) KIST에서 진행중인 가상현실 관련 연구
 

장미빛 만은 아닌 미래

VR기술이 주목받기 시작한 배경에는 기술적 진보와 함께 이 분야의 응용 범위가 대단히 넓다는데 있다.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 정도에 따라 공상이 아닌 현실로 우리의 생활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있다. VR기술의 현재 기술은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기술이 붐을 이룬 만큼 가까운 시일 내에 지금의 수준을 뛰어넘는 쇼킹한 기술이 될 것 같지는 않다. "20년 내에 우리가 개념적으로 설명하는 모든 것을 이루어낼 수 있다"라는 연구자들의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넘어야 할 장벽은 워낙 거대하다.

가장 커다란 문제는 기술적 장애가 아닌 '인간'에 대한 연구의 미진함이다. 기술적인 부분만 이라면 발전 속도로 봐 20년 아니 10년으로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특히 뇌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가상현실을 뒷받침해줄 만큼 충분하지 못한 상태이며 인간의 행동 패턴에 관한 연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다소 철학적인 문제가 되겠지만 가상현실을 연구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는 우리가 보고 느끼는 현실세계가 모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이는 '현실'을 '없다'고 부정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가상현실이 창조하는 세계가 '분명히 실제하는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 실제함이 진정으로 가능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감각을 느끼는 메커니즘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가 절실하다.

이어지는 2부와 3부에서는 VR 기술을 응용분야별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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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이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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