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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변화무쌍한 돌연변이로 '싸움'과 '공존'의 이중전략 구사

바이러스 진화의 메커니즘

바이러스는 일반 세포보다 1백만배나 빨리 변화한다. 이같은 돌연변이는 바이러스가 살아남는데 결정적인 무기가 된다. 최근 이 돌연변이가 보여주는 '경향'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호기심이 강한 판도라가 금지된 상자를 열었을 때, 그녀는 이 세상의 모든 슬픔과 악을 해방시켜버리고 말았다. 그중 하나가 바이러스다. 바이러스란 이름은 싫은 것, 독(毒), 악취 등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다.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핵산과 단백질의 작은 단편에 불과하지만, 보통 감기에서부터 현대 인류를 위협하는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질병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먼저 '바이러스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답을 구해보자. 1959년에 노벨상을 받은 르보프(Anndre' Lwoff)는 이 질문에 대해 "바이러스는 바이러스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렇듯 선문답처럼 들리는 대답이 나올 정도로 생물의 세계에서 바이러스가 가지는 성격은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바이러스가 처음 연구될 때 연구자들은 그 높은 돌연변이율에 곤혹스러워했다. 바이러스도 자신의 자손이 보다 유리하게 살아남게 할 전략을 유전자에 싣고 있는데, 그 전략이 바로 보통 생물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일어나는 돌연변이이기 때문이다. 그 속도는 세포구조를 가진 미생물보다 1백만배나 빠르다.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어떤 진화적인 시간을 거쳐 어떻게 병원성을 가진 생물종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을까.

본질적으로 바이러스는 하나의 세포에서 다른 세포로 '나를 증식시키라'는 간단한 메시지를 옮기기 위한 유전적 프로그램이다. 바이러스는 숙주와 경합하는 한개 또는 몇개의 정보밖에 가지지 않기 때문에 그 자기중심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숙주의 증식기구를 이용하는 속임수를 쓰지 않으면 안된다. 이 생화학적인 장치(속임수)는 때로 숙주의 죽음을 가져오기도 한다.

바이러스는 숙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비자기(非自己)'다. 바이러스는 숙주의 면역기구와 함께 짜여지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이다. 바이러스가 숙주의 면역기구와 조합되는 방식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면역기구에 대한 '싸움'이고 또하나는 면역기구와의 '공존'이다.

감기를 일으키는 아데로바이러스와 같이 바이러스가 때때로 나쁜 짓은 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숙주와 '공존'하는 전략을 취한 경우, 숙주는 그 생명이 위협받을 정도의 상황에 놓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숙주의 면역기구에 대해 '싸움'을 시도할 경우, 그리고 이 '싸움'이 숙주의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정도가 심할수록 그 바이러스의 숙주에 대한 병원성은 커지게 된다.

그 전형적인 예가 에이즈바이러스(HIV)로 인해 일어나는 후천성면역결핍증이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 세계 에이즈대책본부 마이클 마손본부장이 밝힌 바에 따르면 현재 세계에서 에이즈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무려 1천4백만명을 헤아린다.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는 환자나 감염자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를 바이러스의 확산이란 측면에서 보자면 14세기 유럽에서 3천만명을 죽인 페스트, 1918년에 유행, 약 2천만명의 목숨을 빼앗은 인플루엔자(당시 스페인 독감이라 일컬어졌다)에 필적한다.

또 인플루엔자바이러스도 치사율은 그리 높지 않지만 감염성이 매우 강해 많은 사람을 고생시키는 병원성 바이러스다. 이들은 '공존'보다 '싸움'을 걸어오는 바이러스들이다.

이들 숙주의 면역기구에 '싸움'을 거는 바이러스들은 최대의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이러스도 숙주에 기생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이상, 숙주를 전멸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바이러스로서는 일종의 자살행위가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같은 바이러스는 존재한다.

바이러스가 어떤 숙주집단에 처음 감염될 때는(가령 어떤 생물집단을 숙주로 하고 있던 바이러스의 일부가 무슨 이유인가로 다른 생물종에 감염됐을 때 등), 숙주의 면역기구는 이들 바이러스를 즉각 인식하고 격렬한 공격을 퍼부을 것이고 바이러스쪽에서도 여기에 자신의 생존을 걸고 격렬한 반격(즉 증식)을 할 것이다. 이것이 '싸움'이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숙주를 전멸시켜서는 안되므로 숙주를 죽이지 않는 길을 모색할 것이다. 이것이 '공존'이다.

결국 그 바이러스는 사멸하거나(숙주의 면역기구의 공격으로 죽게 되든지 혹은 숙주를 명망시키고 자신도 사라지든지) 숙주와 공존하거나 하는 두 길중 하나를 택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바이러스에 돌연변이 등의 어떤 변화가 일어나 숙주에 다시 '싸움'을 걸게 되면서 조화가 깨지는 일도 다반사일 것이다.

"나를 증식시키라"는 유전적 프로그램

현재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은 병원성 바이러스, 가령 에이즈바이러스,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 B형간염바이러스, 성인T세포 백혁병바이러스 등의 대부분은 RNA바이러스다.

RNA바이러스의 돌연변이율은 숙주 DAN에 비해 극히 높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RNA바이러스의 복제효소의 질이 일반적으로 별로 좋지 않고 유전정보 복제에러를 높은 빈도로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이 돌연변이율이 높은 점이 바로 바이러스 진화의 원동력이고 이것이 오히려 숙주의 면역기구와 싸울 때의 무기가 될 것이다.

가령 에이즈바이러스를 보자. 이 바이러스는 모든 유전자에 대해 극히 높은 돌연변이율(숙주DNA의 약 1백만배의 속도)를 가지는데, 특히 env라 불리는 외피단백질의 유전자는 변이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숙주의 면역기구가 처음 바이러스를 인식하고 이를 표적으로 공격을 하는 것이 이 외피단백질이다. 이 부분의 돌연변이율이 높다는 것은 면역 기구에 포착되기 어렵다는 말이 된다.

인플루엔자A형 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그 표면단백질인 헤마글루티닌이나 노이라미니다제도 변이성이 높고, 그중에서도 항원으로 인식되는 부위는 특히 잘 변화한다. 즉 숙주에 의해 인식되기 쉬운 바이러스의 외피단백질을 돌연변이에 의해 빈번하게 변화시키는 것은 면역기구로부터 공격의 초점을 혼란시키는 무기가 돼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 바이러스는 어느 것이나 백신이 통하지 않는다. 이들 단백질의 변화는 아미노산의 변화인데, 그 근저에는 바이러스유전자쌍 위의 염기변화가 있다.

에이즈바이러스의 돌연변이도 일정한 경향성을 가진다.

바이러스의 돌연변이율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는 염기 변화의 단위시간당 속도로 정의된다. 이를 계산하면 진화속도에 대해 논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돌연변이율은 어떤 유전자쌍이 차세대를 복제할 때 발생시키는 에러율을 의미한다. 한편 진화속도는 나타난 돌연변이가 유전자의 기능적 제약을 일으키거나 이를 둘러싼 환경으로부터의 도태된 후의 생존율도 합한 변화율을 의미한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바이러스의 경우는 기능적 제약이나 환경도태보다도 염기의 변환(염기치환)이 진화의 주원인이라 여겨지고 있다.

일본 국립유전학연구소의 조사결과는 에이즈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길이 곧 열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에이즈 바이러스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유전자는 1년에 염기 1사이트당 염기치환율이 ${10}^{-3}$가 된다고 한다. 즉 1년간 보고 있으면 1천사이트의 염기중 하나는 본래의 것과는 다른 것으로 바뀐다는 말이 된다. 이에 비해 숙주의 유전자, 가령 혈액의 헤모글로빈 유전자 같은 것의 염기치환속도는 ${10}^{-9}$정도다. 이는 DNA복제효소를 사용하고 있는 숙주 쪽은 에러발생률이 적기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다.

결국 바이러스유전자는 숙주DNA의 1백만배라는 초고속도로 진화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바이러스를 억제하기 위한 합성백신의 표적은 바이러스의 외피단백 중 보존성이 있는(즉 변화하지 않는) 영역이 아니면 안되는데, 이같이 변화무쌍해서는 공격목표를 포착하기가 어렵다.

그러면 어떤 돌연변이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이는 바이러스유전자에서 A, T(RNA의 경우는 U), G, C의 네종류의 염기치환이 어떤 식으로 일어나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문제다.

염기는 네가지 종류밖에 없으므로 이 염기치환패턴은 4X4의 표로 나타낼 수 있다. 단리된 여러 바이러스의 유전자의 차이를 조사하고 돌연변이에 의한 바이러스의 유전정보의 차이를 수량화하여 이에 기초하여 각 바이러스를 늘어세운 계통도, 즉 바이러스의 분자계통도를 작성하면 염기치환의 방향까지 알아낼 수 있다.

(표1)에서는 에이즈바이러스의 대표적인 두가지 단백의 염기치환패턴을 나타냈다. 에이즈바이러스의 염기치환은 A와 G사이가 압도적으로 많고 경우에 따라서는 A에서 G, G에서 A를 합쳐 염기치환의 60% 이상을 점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는 에이즈바이러스의 복제효소인 역전사효소가 필리미진(A와 G는 플린, T와 C는 필리미진)을 식별하기 쉽다는데 기초한다.

가령 바이러스중 RNA유전자의 어떤 사이트가 A였다고 한다면 그것과 상보적인 DNA사슬을 만드는 역전사효소는 그 대응하는 사이트에 T를 가지고 올 필요가 있는데, A라는 것을 인식하는데 실패하여 C를 가져오는 확률이 높다는 말이 된다. 일단 T대신 C가 온 DNA사슬에서 복제된 바이러스유전자의 RNA사슬이 대응하는 사이트는 본래 A가 아니고 G가 된다. 이에 따라 부모바이러스 유전자가 있는 사이트에서 A였다 하더라도 자식바이러스유전자는 G가 돼 버리는 A-G의 돌연변이가 일어난 것이 된다.

에이즈치료약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AZT는 T의 유사염기(아날로그)로 이것이 역전사효소중 필리미진의 식별하기 어려운 부분에 붙어 바이러스게놈에 특이적으로 흡수돼 완전한 바이러스유전자의 합성을 방해한다.

염기치환패턴뿐 아니라 아미노산치환패턴도 같은 식으로 많은 바이러스의 단리주의 분자계통도를 작성함으로써 얻어진다. 에이즈 바이러스 외피단백질의 아미노산 치환패턴은 아미노산이 20종 있으므로 20X20의 표에 의해 나타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매우 무작위로 변이하는 것처럼 보이는 에이즈바이러스의 아미노산 변화는 꽤 편향성을 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혹 에이즈바이러스가 적어도 앞으로 수십년간은 비슷한 아미노산치환 패턴이나 염기치환패턴으로 변화한다고 한다면 이는 다음에 생길 것으로 예측되는 아미노산치환이나 염기치환을 확률적으로 예측하는 것이 가능해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 연구진은 주장하고 있다. 즉 에이즈바이러스의 진화하는 방향을 예측하여 (아미노산 치환의 방향을 예측하여) 백신이라 할 수 있는 후보 팹티드를 설계한 뒤 인공백신으로 만든다면, 닥치는대로 백신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높으리라는 것이다.
 

(표1) 바이러스유전자와 숙주유전자의 진화속도
 

바이러스 연구는 생명 기원에 대한 천착
 

(그림1) T4박테리오 파지의 번식 사이클
 

생물에 대한 지식을 근저부터 바꾸게 된 1950년대 이후의 분자생물학의 발전은 바이러스 변이의 물리적 실태를 명확하게 했다. 이는 유전자를 만드는 염기배열의 극히 일부가 변화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시간축에 의해 본다면 '진화'라고 하는 큰 무기를 바이러스가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한편 당초 바이러스 그 자체가 어디에서 왔는가를 생각해보면, 지구상에 생물이 나타난 기원과 진화의 과정과 밀접하게 관련시킬 수 있다. 즉 진화의 부산물이 바이러스라는 명제로 정리된다. 바이러스는 숙주의 증식시스템에 매우 의존하므로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은 "현재의 바이러스는 세포성의 생명이 등장한 뒤에 진화해 온것임이 분명하다"고 믿고 있다.

미국 어거스타나대의 랜싱 프리스코트와 이스턴캔터키대의 존 할레이 등이 공저한 '미생물학' 바이러스 편에 따르면, 최근의 바이러스구조와 재생산에 대한 이해에 의해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해서 두가지 가설이 세워져 있다. 그 첫째는 폭스바이러스과나 헤르페스바이러스과 등 복잡하고 외피를 가진 바이러스들은 단순원핵생물 등의 작은 세포에서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그러나 바이러스가 원핵생물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간단한 원핵생물에서 복잡한 바이러스로 변이해가는 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두번째 가설은 바이러스는 세포로부터 독립성을 획득하고 도망갈 준비가 된 세포핵산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이 가설을 진전시키면 바이러스가 인트론과 트랜스포존에서 생겨났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또 바이러스가 두가지 경로를 통해 생겨났으리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만큼 바이러스는 다양하고 각기 다른 탄생과 진화의 과정을 거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가설에 불과하며 향후 연구를 통해 구체화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이들 문제는 생물학의 전통적인 이론적 테두리 속에서는 일반적인 형태로 답이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1967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이자 현 막스 프랑크생물물리화학연구소 생화학속도론연구소장인 맨프레드 아이젠은, 최근 수학과 화학의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빌린 준종(準種, quasispecies)개념을 도입, 바이러스의 본모습에 다가가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93년 7월호에 소개된 논문에서 이들은 '바이러스종이란 실제로는 전체로서 움직이며, 다양하면서도 관계한 개체에서 생기는 복잡하고 자기 영속적인 집단'이라는 것을 주장했다. 종(species)을 '준종'으로 대체하는 것은 단순히 언어상의 문제만은 아니며 바이러스의 움직임에 대해 어떤 깊은 통찰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에이즈의 경우 HIV가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 유래해 왔는가를 아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단순이 역학적인 데이터로 추측하려 한다면 에이즈는 1979년에 처음 출현한 새로운 바이러스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준종 개념을 이용한 데이터에 의하면 에이즈바이러스는 대단히 오래 전부터 지구상에 있었던 바이러스가 된다. 여기서 이 개념은 에이즈나 백신이 듣지 않는 질병에 대해 치료법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찌됐건 "생명이 탄생할 때 분자는 어떻게 조직화되어 자기증식하는 단위가 된 것인가"라는 문제를 연구할 때 바이러스는 유용한 모델이 된다. 바이러스는 또 정보가 어떻게 분자차원에서 생성되고 가공되는가를 나타내준다. 바이러스의 유전정보의 본질은 자기보존이고 변화하는 환경에 응하여 돌연변이 증식 번식 적응을 행함으로써 이를 달성하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출현하고는 곧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판도라의 상자는 아직도 열린 채이며 새로운 악을 계속 내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러스에 대한 이해가 착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옛 그리스신화에서도 나오듯 아직도 희망은 상자에서 도망가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림2) 싸우는 바이러스, 공존하는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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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서영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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