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입원해야 하는 어린이 환자를 위해 가상현실시스템이 이용되고 있다. 가상동물원, 스스로 만들어가는 상자정원, 가상면회 등이 그것.
이솝 우화에는 개 한마리가 고기를 물고 다리를 건너가다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물속의 개가 물고 있는 고기가 탐이 나 소리를 높여 짖다가 물고 있던 고기마저 떨어뜨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인간의 욕심을 빗댄 우화다.
여기서 등장하는 '수면 속의 개'란 바로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의 한 단면이다. 현대 과학기술은 이솝우화 속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개처럼 인간으로 하여금 진짜현실과 가상현실을 혼돈하도록 한다. 가상현실은 없는 존재를 가상으로나마 존재하게 하려는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이렇게 탄생한 가상현실이지만 인간의 욕심을 부채질하는 곳 이외에 활용이 기대되고 있다.
게임 등 오락에서 활발히 응용되었던 가상현실시스템은 이제 서서히 의학분야의 문을 노크하고 있다. 최근 의학분야에는 그동안 치료 불가능으로 분류돼온 난치병에 대한 도전이 활발하다. 이에 따라 환자의 정신적 육체적 부담이 커지며 환자의 입원일수도 비교적 장기화되고 있다. 또 퇴원 후에도 일상생활에 많은 제한이 가해진다. 이런 환자는 병 그 자체의 치료만이 아니고 정신적인 면도 포함한 포괄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일본 국립소아병원 신경과에서는 장기입원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가상현실시스템을 개발했다. 장기 입원하는 아이들이 가보고 싶은 장소로는 단연 동물원이 압도적. 소아병원에 등장한 가상동물원이란 21인치 입체화면과 이와 연결된 입체안경이 고작. 아이들은 입체안경을 쓰고 화면에 등장하는 동물들 사이를 산책한다. 20분 정도에 11종류의 동물이 등장해 아이들에게 자연의 정서를 전달해준다.
가상 동물원을 자주 찾는 손님은 백혈병 만성신장병 등으로 장기 입원하는 아이들이 대부분. 병원측에서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모두 개선해야될 점이 많으나 입체적이며 환자와의 상호작용이 곁들여져 종래의 비디오나 텔레비전보다 훨씬 효과적이다"고 밝혔다. 긴 기린 목에 손을 대고 소리를 지르는 등 화면에 빠져드는 효과가 상당하다는 것. 입원생활을 즐겁게 해준다는 목적뿐만 아니라 정신적 치료효과도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상동물원과 같은 종류로 '상자 정원'에도 가상현실 기법이 쓰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그림에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환자의 심리상태 파악에 그림그리기가 간혹 사용된다. 이를 조금 발전시킨 것이 '상자 정원 치료법'. 동식물의 미니어처를 가지고 자기가 배치하고 싶은 대로 정원을 꾸미는 방법이다.
여기에 컴퓨터테크놀러지를 동원한 것이 이른바 '가상현실 상자 정원'. 우선 1백인치 정도의 스크린에 평탄한 지형과 하늘이 나타난다. 환자는 이 지형의 색을 녹색 갈색 회색 푸른색 중(이들 각각의 색은 생물체 암석 모래 물의 세계를 상상시킴) 하나를 선택해 자신들이 좋아하는 지형을 만들어간다. 환자들이 쉽게 지형을 만들기 위해 산이나 호수 등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스티커를 사용한다. 거칠게 그림이 그려지면 조이스틱 등을 조작, 섬세한 지형을 꾸민다.
그 다음에는 지형에 인간 동식물 건물 등 90가지의 아이템을 선택하여 늘어놓게 한다. 이 아이템은 마음이 달라지면 언제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 완성된 가상현실 상자 정원에는 환자들, 특히 어린이 환자들의 심리상태가 다양하게 드러난다. 아이템의 수가 극단적으로 적은 것, 또 동물을 항상 짝을 지어 배열한 것 등. 특히 대형화면에다 어느 정도 입체성을 갖고 있어 몰입하는 정도가 종래의 상자 정원보다는 월등하다는 것이 일본 소아병원측의 이야기.
한편 가족과 장기 격리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위해 '가상면회'시스템을 실험중이며 특수한 치료법, 예를 들면 시각 청각 촉각 등이 미발달한 어린이환자들을 위해 가상현실 기법 등을 활용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