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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앞서고 과학은 상대적으로 뒤처진 이면에는 그들의 근면 사상이 숨어 있다.

지금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업계는 세계시장 석권을 놓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만일 이 한판승부에서 미국이 지면, '역사상 최대의 부와 힘이 일본으로 옮겨진다는 것을 뜻한다'는 외국 경영전문지의 끔찍스러운 분석도 나와 있다. 이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일본 자동차업계가 지닌 장점을 미국으로서는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 생산업계가 취하고 있는 '보다 작은 인력, 보다 적은 자재투입, 보다 신축성 있는 컨베이어시스템, 보다 작은 규모의 공장'이라는 이른바 긴축생산(lean production) 방식은 서구의 대량생산 방식에 일본 특유의 수공업방식을 가미한 것이어서, 생산과정에 신축성을 부여하고 품질향상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이 긴축은 본래 낭비를 죄악시하고 검약을 미덕으로 삼아온 일본인의 특기다. 요컨대 경비절감과 손재주 활용이라는 긴축형의 생산에 관한한 세계에서 일본을 따르는 나라가 없다. 이 점에 국한시켜서 말한다면 미일간의 자동차경쟁의 결과는 너무도 뻔하다.

낮에 다방 같은데서 빈둥거리는 사람이 없는 나라, 대중목욕탕의 영업시간이 하루 일과가 끝날 무렵인 오후 4시부터 야간근무가 끝나는 밤 12시까지로 제한돼 있는 나라, 노약자나 부녀자 심지어는 장애자까지도 언제나 일감을 놓지 않고 있는 총동원체제의 나라, 일터가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아침산책이라는 '사치'를 하지 못하는 나라, 부녀자들이 낮잠이라는 것을 모르는 나라, 배달되는 신문에 끼어놓은 각종 광고지로 주부들이 휴지통을 고안해서 쓰는 나라, 자그마치 5조 4천억달러라는 돈을 은행에 예금해 놓고도 성냥갑만한 집안을 오밀조밀 꾸며놓고 만족해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이런 나라가 일본이다.

낭비의 최소화는 일본인들의 몸에 오래 전부터 배어있는 습성이다. 절약정신과 근면정신의 결합이 완벽하게 이뤄진 나라가 일본이라고 말한다면, 일본이 기술왕국이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임진왜란은 한국으로서는 엄청난 상처였지만, 일본은 이때를 계기로 문화적인 도약기를 맞이한다. 즉 이 침략전쟁의 전리품으로 동활자(銅活字) 도자기 유학(주자학) 그리고 천문학 수학 등의 과학서적을 반입해가서 근세문화를 이룩하는 중요한 계기로 삼았다.

특히 일본의 독자적인 수학이라고 자랑하는 와산(和算)이 한국에서 반출해간 수학서의 연구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일본이 고대 한반도로부터 전수받았던 문화를 깡그리 잊은 상태에서 새삼 고도의 문화에 접촉했을 때의 탐욕스러운 수용자세는 가위 놀랄 정도였다.

일본인의 극성스러운 지식욕을 당시 조선 통신사의 일원이었던 신유한(申維翰)은 그의 저서인 해유록에서 이렇게 전하고 있다.

"시(詩)를 얻고자 원근에서 찾아오는 자가 끊이지 않고 지폭(紙幅)을 책상위에 쌓아서 글을 청한다. 글을 써보내면, 다시 장작을 쌓은 것처럼 새로이 바친다. 심지어는 마당의 청지기까지도 다투어 글을 청한다."

고대에 한반도 특히 백제에서 건너온 공장(工匠) 도공(刀工) 등으로 부터 농기구 제조 기술을 비롯해 염색 세공 직물기술 등이 전해진 이래, 그 전통이 끊임없이 계승 발전돼 왔다. 이미 당시에는 이러한 기술을 가진 장인이 전국 각지에 확산돼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동업자끼리의 폐쇄적 조직인 좌(座)가 결성되고 도제제도(徒弟制度)가 정착돼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기술자집단 조직은 나중에 일본이 서구 과학기술과 접촉했을 때 큰 역할을 해냈다. 특히 소총 등 화기(火器)를 신속히 수용 소화하고, 대량의 수요에도 응할 수 있는 생산태세를 곧바로 갖출 수 있도록 했다.
 

수출하기 위해 대기중인 일제차^지금 미국과 일본은 자동차의 세계시장 석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만약 이 싸움에서 일본이 이긴다면…


전통적 다중구조 사회 속에서

일본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노동자들 사이에는 임금격차가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조건이 서로 다르게 맺어진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대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중 정식직원 임시직 청부노무자가 동일한 곳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정식직원은 물론 회사로부터 직접 급료를 받고 노동조합이란 조직을 갖는다. 반면 임시직은 대체로 노동조합을 갖고 있지 않다. 설령 노동조합이 있다 해도 정식직원과는 다른 조합에 가입하고 있다. 이들은 정식직원에 비해 신분이 불안하지만, 그래도 급료는 회사로부터 지급받는다.

그러나 청부노동자는 조합을 일체 갖지 않으며, 급료는 회사로부터 청부업자에게로 그리고 청부업자로부터 노무자에게로 지급된다. 같은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이면서도 별개의 집단에 소속하고 격리된 채 서로 다른 인간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아무 불평 없이 공존한다. 마치 열차의 칸막이 객실속에 따로 따로 갇혀 있는 사람들처럼.

이것은 일본인 스스로가 다중적 구조(多重的 構造)라고 일컫는 일본 특유의 사회구조의 한 축도에 지나지 않는다. 다중구조사회란 예로 든 공장노무자들의 경우처럼, 서로 격리된 다른 기능집단이나 신분층의 인간관계 구조를 유지하는 사회를 말한다. 다른 집단 내지는 계층에 대해서는 일체 상관하지 않고, 오직 자신이 놓인 집단세계의 질서와 구조를 유지하는데만 관심을 갖도록 하는 사회구조인 것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이러한 폐쇄성과 외래의 것에 대한 개방성(이러한 심성이 무엇에 기인하는지에 대해서는 간단히 언급하기 어렵지만)이 미지의 지식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더 나아가서 한정된 집단사회 내부에서의 천하제일을 지향하는 잇쇼켄메이(ᅳ所懸命, 한가지 일에 목숨을 걸고 정성을 다함)에 지상의 가치를 부여하는 심성을 낳는다.

일본 미에(三重)현에는 쟁기를 손에 쥔 농군의 동상이 있다. 이 동상의 주인공은 20년에 걸친 그야말로 각고의 노력 끝에 일본의 토질에 잘 맞는 심경식(深耕式)쟁기를 고안한 사람이다.

또 교토(京都)에는 가까운 비와코(琵琶湖)로부터 도심까지 수로를 끌어들인데 성공한 도쿄대학 출신의 앳된 젊은 기사의 동상이 서 있다. 일본의 근대화에 획기적으로 공헌한 거물 정치가나 기업가 행정가 계몽가 학자는 오히려 뒤로 밀린다. 하찮은(?) 쟁기를 개량한 농군이나 일개 기술감독에 지나지 않는 젊은이에게 이토록 지나치리만큼 융숭한 대접을 하다니…. 같은 동양인인 필자조차도 그 동상 앞에서 어리벙벙해졌다. 아무튼 이 두 동상은 일본인의 기술주의의 실체를 잘 상징해주고 있다.

이들 동상이 말해주듯 일본인의 의식의 밑뿌리에는 기계란 손끝으로 하는 일을 능률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경험중심의 기술주의 신앙이 짙게 깔려 있다. 일본기업의 대부분은 적어도 4백년 전부터 이러한 전통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 이를테면 공장의 본질을 기계나 건물 등 외형적인 시설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내의 인간관계를 지배하는 정신에서 발견하려 든다. 이런 생각으로부터 직장을 신성시(神聖視)하는 전통이 생겨났다.

노동은 단순히 경제적인 행위가 아니고, 일종의 정신적 충족을 구하는 일이라는 것이 통념화된 그들의 노동관이다. 이 사실은 일본의 기업이 단순한 기능집단이 아니고 공동체적인 면이 강하게 의식돼 있다는 점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것은 공동체가 되지 않으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일본 집단사회의 숙명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기업이 사원모집을 할 때도 스포츠, 특히 단체경기를 치른 경험이 있는 사람을 우선해서 선택하는 취향이 있는 것은 이러한 절실한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긴축생산의 현장^일본의 생산업계는「보다 작은 인력, 보다 적은 자재투입, 보다 작은 규모의 공장」을 추구하고 있다. 이는 서구의 대량생산방식에 일본 특유의 수공업방식을 가미한 것이다.


「일본인은 세계를 이끌 이념이 없다」

태평양전쟁 직전 일본군은 일요일과 토요일을 폐지한 연중 평일제를 채택했다. 이른바 '월월화수목금금'(月月火水木金金)이라는 슬로건 밑에서 불철주야 훈련을 강행했던 것이다. 그 결과 고도로 숙련된 파일럿을 양성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발상 뒤에 숨어있는 것은 일본인의 '근면의 정신'이다.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한 숙련과 비법을 터득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는,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 근면함을 빼고는 성립할 수가 없다.

한편 같은 전시중에 독일에서는 이른바 V1, V2로켓이 등장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라는 새로운 이론분야가 개척됐고 이것이 레이더 기술과 결합, 공격 방어체제의 자동화에 극적인 발달을 가져왔다. 하긴 일본측에서도 대공포화의 자동조종화가 상당수준까지 개발돼 있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개별적인 문제를 통합, 통일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이론+기술'의 체계는 독일이나 미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뒤지고 있었다. 이러한 후진성을 자초한 배경에는 뜻밖에도 인간의 경험에 마지막 기대를 거는 그들의 근면사상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 점만 놓고 본다면 일본인의 근면정신은 과학사상을 위해서는 역기능한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뜻으로 "일본인은 세계를 이끌 이념이 없다", "일본의 신제품 개발은 그들 고유의 기초과학기술과 교육에 있지 않고, 구미의 기초과학기술을 재빨리 상업화한 데 있을 뿐이다"라는 서구인의 혹평은 확실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영역 안에는 기술(경험)이 아주 폭넓게 침투하고 있다. 고도로 이론적인 물리학 분야 조차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예외는 아니다. 또 한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이론화가 진전되면 새로운 기술이 그것에 의해 급격히 그리고 획기적으로 발전을 이룩하고 그 역(逆)도 마찬가지로 성립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의미로 볼 때 근대 과학이 발생한 이래 특히 오늘날에는 과학과 기술은 별개의 두 영역이 아니고, 유기적으로 통합된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

일본인은 지금도 서구적인 의미에서는 결코 과학적인 국민은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자연관이 유럽의 근대과학을 특징짓는 자연관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일본이 이른바 모방문화를 바탕으로 유럽과학에 필적하는 과학문화를 쌓아올린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과학사가(科學史家) 버날은 그의 저서 '역사에 있어서의 과학'속에서 과학의 현대적 성격을 다음의 다섯가지로 특징짓고 있다.

첫째 하나의 체계, 둘째 방법론, 셋째 지식의 누적적 유산, 넷째 생산의 유지와 발전의 중요원인, 다섯째 우주와 인간에 대한 신조와 태도를 바꾸게 하는 가장 강력한 영향력중 하나 등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과학은 일본인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고, 그들의 가치관을 뒷받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생산양식을 부여하는 방법으로 그 지위가 확립돼 있으며, 누적되어 전해진 지식이 오늘날의 일본의 과학을 지지하고 있다. 아울러 일본의 과학은 사회체제 속에 뿌리를 확고하게 내리고 있다. 따라서 버날의 말대로라면 일본에 대한 혹평은 주도권을 빼앗긴 서구인의 한낱 자위적인 푸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핀잔을 오히려 받게 될지도 모른다. 적어도 '단소경박'(短小輕薄, 짧고 작고 가볍고 엷음)에 대한 선호가 날로 높아지는 지금의 정보화시대에는 근면과 검약 그리고 철저한 서비스정신에 의해 뒷받침된 생활철학 또는 직업윤리가 일본의 과학(=과학기술)발전을 위해 플러스가 되었으면 되었지, 결코 마이너스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 과학과 기술이 분리되는 새로운 상황이 빚어지지 않는 한은 말이다.
 

기술자에 대한 예우는 일본의 기술패권주의를 잘 보여준다. 사진은 로봇에 사용되는 소형부품을 들고 있는 일본의 한 기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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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김용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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