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아름다운 식물들이 TV나 신문잡지에 소개되는 일이 많아져 반갑다. 그러나 이때에는 반드시 전문가의 동정(同定)을 미리 받아 올바른 내용을 전달해야 할 것이다.
억새와 갈대
우리 식물 중에서 이름이 가장 잘못 알려져 있는 것은 '갈대'와 '억새'다. 가을 언덕위에 하얗게 나부끼는 억새를 갈대라고 잘못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외로 많다. 모 방송국의 인기 연속극이었던 '갈대'의 타이틀 백에 갈대 아닌 하얀 억새가 바람에 나부끼는 영상을 매일 되풀이해서 보여주어, 많은 시청자들이 저것이 갈대려니 하고 잘못 알게 한적이 있다. 또 신문이나 잡지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억새 사진 밑에 '가을을 알리는 갈대'라는 잘못된 표제를 단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이는 모두 틀린 표현이다.
대체로 억새는 건조한 언덕에 나며, 그 이삭(정확히는 씨의 털)이 하얘서 시정을 돋우는 데 반해 갈대는 갯벌이나 물가에 나며, 그 이삭이 희지 않고 밤색을 띈다. 물가에도 때로는 억새의 한 종류인 물억새가 나 있는 수가 있으나 잘 살펴보면 그 색깔과 이삭 모양이 달라서 쉽게 구별된다. 특히 억새의 잎가에는 날카로운 톱니가 있어서 살짝 스치기만 해도 손을 베이게 되니 조심해야 한다.
난초와 붓꽃
다음으로 흔히 잘못 알고 있는 것에 '난초'와 붓꽃'이 있다. 이 잘못은 전적으로 화투 때문이다. 왜냐하면 화투에 붓꽃 그림을 그려놓고 난초라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만든 일본에서는 분명히 아야메(붓꽃의 일본 이름)라고 하는데, 이것이 현해탄을 건너오면서 난초로 오역(誤譯)된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날부터 난초를 아주 좋아하고 귀중하게 여기면서 그 그윽한 향기를 즐기고, 묵화의 소재로 많이 써왔다. 그래서인지 잎이 길쭉하고 맥이 나란히 있는 식물만 보면 난초라고 속단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또 잎이 길쭉하고 그 끝이 뾰족한 붓꽃을 난초로 잘못 알고 있다. 심지어 상사화나 맥문동을 보고 "이거 난초지요"하고 확신에 찬 듯 말하는 사람들조차 있다.
우리나라에는 난초과에 속하는 식물이 1백여종이나 자생하고 있지만, 난초라는 이름을 가진 종은 없다. 난초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춘란이라고 불리는 보춘화를 비롯해 한란 풍란 등을 소중히 길러 왔다. 그런데 근래에는 난초를 기르는 붐이 일어 희귀한 난초들이 절멸 직전에 있으며, 자란초 문주란 등 '난'자가 붙은 엉뚱한 식물까지 큰 피해를 보고 있어 안타깝다.
난초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보춘화와 붓꽃의 차이점을 간단하게 적시하면 다음과 같다.
보춘화라 겨울철에도 비교적 따뜻한 제주도나 울릉도, 또는 남해안 지방의 숲 속에 주로 나는 상록다년초로 굵은 뿌리가 사방으로 퍼지며, 잎은 뿌리켠에서 많이 나는데, 잎을 자른 면은 V자 모양이고 잎가에 잔 톱니가 있다. 3~4월에 20cm 내외의 꽃대 끝에서 황록색의 꽃송이가 1개씩 피는데, 은은한 향기가 있고 그 모양이 옛날 벼슬한 사람들이 쓰는 감투 비슷한 독특한 모양이다.
반면 붓꽃은 우리나라 어디에나 나는 반지중다년초다. 키가 보춘화보다 훨씬 커서 60cm나 되고, 뿌리켠에서 나는 잎은 칼모양이며, 그 자른 면이 평평하고, 잎가에 톱니가 없다. 꽃은 잎과 비슷한 포가 달린 긴 꽃대 끝에 보라색의 큰 꽃이 대개 3송이씩 달리는데, 그 꽃봉오리의 모양이 마치 붓글씨를 쓰는 붓을 닮아 붓꽃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부레옥잠과 물옥잠
물 위에 떠서 살아가는 풀 중에는 잎자루가 부풀어 그 속에 많은 공기를 간직해 몸을 가볍게 함으로써 물 위에 잘 뜨게 하는 식물들이 있다. 이런 현상이 가장 두드러진 것이 열대아메리카 원산의 부레옥잠이다. 그런데 이것이 국민학교 교과서에 잘못 표기돼 한동안 시비 거리가 된 적이 있다.
처음 국민학교 3학년 자연과 교과서에 부레옥잠이라 잘 표기돼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해에 개정된 4학년 교과서에 물옥잠이라 잘못 표기돼 나왔다. 이를 본 학부형들이 똑같은 식물인데, 3학년 교과서와 4학년 교과서에 이름이 다르게 표기돼 있으니, 어느 것이 맞느냐고 물어온 모양이다. 이 때 잘 검토하지 않고 4학년 것이 맞다고 여겼는지 3학년 교과서까지 물옥잠으로 둔갑되고 말았는데, 그 후 시정됐다.
부레옥잠은 부푼 잎자루에 많은 공기를 품고 있어 물 위에 둥둥 떠서 살아간다. 수족관에서 금붕어와 같이 키우는, 잎이 반짝거리는 물풀이 이것이다. 뿌리는 물 밑의 땅속에 박혀 있지 않고 물 가운데에 늘어져 있어 무게중심을 잡는 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식물은 열대 원산 식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자연 상태에서 겨울을 나지 못한다.
이와 달리 물옥잠은 뿌리를 단단히 땅 속에 박고 그 줄기와 잎만 물밖으로 내놓는 정수식물(挺水植物)로, 잎을 물 위에 띄우지 않기 때문에 잎자루에 부푼 공기주머니가 필요없다. 이 식물은 우리나라의 논이나 얕은 연못 등에 흔히 자라는 자생식물인데, 요새는 제초제 살포로 인해 상당히 보기 힘들어졌다.
아카시나무와 아카시아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꽃 활짝 폈네. 하얀꽃…"하고 시작되는 어린이의 유명한 애창곡에 따라 이 잘못된 이름이 더욱 널리 퍼지는 느낌이다. 과수원길뿐만 아니라 마을 근처나 산기슭 등에 많이 심겨 5월의 훈훈한 바람에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하얀꽃은 아카시아 꽃이 아니라 아카시나무의 꽃이다.
아카시아와 아카시나무는 똑같이 외국원산 식물인데, 아카시아는 오스트레일리아산의 노란꽃이 피는 떨기나무다. 중국의 남쪽과 대만에도 자생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식물원에서도 보기 힘든 편이다. 반면에 우리 둘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큰 키 나무로 가는 가지에 가시가 있으며, 그 잎을 토끼가 잘 먹고, 향긋한 흰 꽃에 많은 꿀이 들어 있어 꿀벌을 기르는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나무는 아카시나무다.
이처럼 아카시나무는 아카시아와 전혀 다른 식물이므로 이를 구별하기 위해 식물학자들이 아카시나무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이를 잘못 알고 지금도 아카시아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깝다. 이 아카시나무에는 뿌리혹이 있이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라므로 처음엔 사방공사용으로 들여와 산사태가 많이 난 곳이나 민둥산 등에 심었는데, 지금은 상당히 널리 퍼져 있다.
후박나무와 일본목련
또 잘못 불리고 있는 식물 가운데 '일본목련'과 '후박나무'가 있다. 꽃집이나 한약방에서도 일본목련을 후박나무라고 잘못 부른다. 심지어 어느 대학 구내에 심겨 있는 일본목련에 후박나무란 표찰이 붙어 있어 뜻있는 분의 시정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시중의 꽃집에서 후박나무라며 팔고 있는 식물은 일본 특산의 낙엽활엽수인 일본목련이며, 진짜 후박나무는 제주도나 울릉도, 그리고 따뜻한 남해안 등지에 분포하는 상록활엽수로 그 열매는 천연기념물인 흑비둘기가 즐겨 먹는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되는 점은 한약제(漢藥劑)인 중국의 후박은 Magnolia officinalis Rehder et Wilson으로 쓰고 있으므로, 같은 속인 일본목련(M.obovata Thumb.)을 후박이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경희대의 육창수 교수는 후박나무(Machilus thumbergii S. et Z.)를 한후박(韓厚朴), 일본목련(M.obovata)을 일후박(日厚朴)이라 구분하고 있다. 한약명으로서는 이것이 매우 타당하며, 약효에도 차이가 있으므로 더욱 과학적이라 여겨진다.
삼지구엽초와 산꿩의 다리
설악산 등지를 찾아가면 '산꿩의 다리'를 많이 쌓아놓거나, 술에 담가 정력강장제로 그만이라며 '삼지구엽초'라고 과대 선전하고 있다. 그런데 한약방에서 '음양곽'이라 부르는 삼지구엽초는 그런 성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와는 전혀 다른 식물을 오래 전부터 삼지구엽초로 오인, 판매하고 있다. TV의 어떤 프로에서 이것을 검토하지 않고 대대적으로 방송한 적이 있어 그 잘못을 지적했으나 아직 정정 방송이 나오지 않고 있다.
삼지구엽초(三枝九葉草)란 한자의 훈(訓) 그대로 '세 가지에 잎이 아홉 개 달린 풀'이란 뜻이다. 그러나 세 가지에 아홉 개의 잎을 단 풀은 없고, 잎자루(葉柄)를 일단 가지로 간주할 때 한약제 음양곽은 삼지구엽초로 볼 수 있으며, 학계에서도 이를 공식 명칭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삼지구엽인 식물에는 이것 말고도 몇 종이 더 있어 이런 착오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즉 잘못 알고 양산, 시판되고 있는 산꿩의 다리가 역시 삼지구엽인 경우가 있고, 그밖에 아주 비슷한 같은 속 식물인 '연잎 꿩의 다리''돈잎 꿩의 다리'가 곳에 따라 삼지구엽초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다행히 산꿩의 다리의 경우 '삼삼지이십칠엽'(三三枝二十七葉)인 경우가 흔하다. 연잎꿩의 다리, 돈잎 꿩의 다리 등의 잎수에는 상당한 변화가 많은 데 비해 한약제 음양곽은 예외 없이 심지구엽이며 그 잎 모양이 심장저(心臟底)이고, 아주 독특하고 아름다운 노란색 꽃을 피우므로 조금만 유의하면 혼동할 염려는 없다. 그리고 산꿩의 다리 등도 우리 겨레가 오래 전부터 즐겨 먹어온 산나물이며 약용식물인 만큼 큰 해는 없겠지만 그 성분과 용도가 다르므로 삼지구엽초라는 이름으로 팔려서는 안되겠다.
근래에 와서 우리의 자연과 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우리 식물들이 ,TV프로에 자주 등장하고 신문 잡지에도 예쁜 컬러사진으로 소개되는 일이 많아졌음은 반갑기 그지 없으나, 이 때에는 반드시 전문가의 동정(同定)을 받아 정확하고 올바른 내용을 전해야 할 것이다. 최근 모 방송국이 우리 나라의 아름다운 식물을 소개하면서 어느 특정지역의 사투리인 듯한 자막을 넣어 많은 시청자들에게 옳지 않은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 것을 봤는데, 그럴 때는 안타깝기 그지 없다.
우리들은 아름다운 우리 식물을 바르게 알고, 자세히 관찰해 억새를 갈대라고 부르거나 붓꽃을 난초라 부르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아야겠으며, 산꿩의 다리를 삼지구엽초라 부르며 팔거나, 이를 잘못 복용해 엉뚱한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자연과 식물을 마음 속으로 사랑하고 잘 보호해서, 아름다운 우리의 자연을 후손에게 깨끗이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