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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 크기 로봇이 몸속에 들어가 치료하는 마이크로 머신 전성시대 온다

마이크로 머신은 기존 기계의 축소품이 아니다. 멋 모르고 그 세계에 들어갔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

개미나 모기 크기 정도의 로봇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더 나아가 세균만한 크기의 현미경적 로봇이나 분자(分子) 크기의 로봇을 상상해 보자.

과연 로봇이란 느낌이 들겠는가. 로봇이 인간과 닮을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다소 괴상스럽더라도 기능적인 모습을 갖추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한 과학저술가 아이작 아시모프도 이토록 파격적으로 작은 로봇은 고려에 넣지 않았을 것이다.

체코의 희곡작가인 카렐 차펙이 1910년 발표한 자신의 희곡에서 로보타(Robota)란 사람을 닮은 기계 노동자를 등장시킴으로써 비롯된 로봇이란 말은 그 이후 사람을 닮거나 사람을 척도로 하여 만들어진 자동기계의 대명사가 되어 왔다. 분명 로봇에는 사람의 이미지가 스며 있다. 컨베이어 벨트 위의 부품을 다관절 팔을 움직여 조립하는 현대의 산업용 로봇도 비록 기능적으로 간략화되어 사람과 닮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카렐 차펙이 풍자한 기계 노동자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 극소형 로봇에서도 우리는 인간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을까. 아마도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현재 초소형 미소기계(微小機械), 즉 마이크로 머신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주저없이 그 작은 기계들을 로봇이라고 부른다. 크기가 터무니없이 작아 인간의 모습을 본뜬 기계의 이미지는 느낄 수 없지만 높은 지능과 큰 로봇 못지 않은 성능을 갖출 것으로 예견되기 때문이다. 차라리 벌레기계나 세균기계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앞으로 지능을 갖고 맡은 일을 척척 해내는 극소형 로봇이 실제로 나타나게 되면 이미 우리에게 주입된 기계나 로봇에 대한 통념이 뒤바뀌게 될 것이다. 이것은 곧 새로운 로봇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것이다.

「차세대 메카트로혁명」

그런데 이러한 마이크로 머신의 미래상은 단순히 로봇의 크기가 좁쌀보다 더 작아졌다고 하는 외형의 변화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현재 우리의 전자정보기술이나 기계기술이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드는 혁명적인 상황을 함축하고 있다. 기존의 기술패턴으로는 도저히 뚫고 나아갈 수 없는 새로운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는 마이크로 머신기술을 '차세대 메카트로(Mechatro)혁명'으로 평가한다. 과연 마이크로 머신이란 어떤 것인가. 어느 만큼 작은 것이며 미래에는 어떤 모습의 기계로 진화되어 갈까.

마이크로 머신은 아직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통된 개념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비슷한 명칭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마이크로 일렉트로 메커니컬 시스템(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 MEMS), 마이크로 메커니컬 시스템, 마이크로 인텔리전트 모션 시스템(Micro Intelligent Motion System, MIMS) 등이다.

여기서 우리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마이크로 머신에 대한 연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대체적으로 전자공학적인 측면에서 지능적인 디바이스(device)에 몰두하는 쪽과 보다 로봇의 이미지를 강하게 나타내는 기계 공학적 입장에서 접근하는 쪽으로 크게 나누어지는 것이다. 물론 양쪽 모두 마이크로 머신의 실현을 위해 필수적인 연구개발 분야다. 마이크로 머신 연구자들이 상상하는 미래의 마이크로 로봇, 이를테면 사람의 몸 안에 들어가 악성 종양을 제거하거나 마이크로(μ) 단위의 전자회로 속으로 들어가 고장난 부위를 수리하는 임무를 척척 해내는 작고 똑똑한 로봇의 탄생은 분명 여러 방면의 진보적인 기술이 결집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개미를 닮은 로봇을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개미의 눈이나 촉각은 센서에, 뇌나 신경절은 정보처리장치에, 본능은 프로그램에, 발은 구동기구에 대응하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이에 따른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분명 모든 마이크로 기술이 결집돼야 그러한 개미 로봇의 탄생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집단으로 마이크로 머신을 조립하는 기술은, 생산고를 높이고 싼 가격에 상품을 내놓게 했다. 1만6천개의 마이크로 머신이 4인치 웨이퍼 위에서 조립될 수 있다.
 

반도체기술을 바탕으로

기계시스템의 소형화에 주목하여 이를 처음 연구한 사람은 일본 도쿄대의 하야시교수로 알려져 있다. 1973년 그는 소형 기계시스템에 대한 설계를 시도하였고 소형 구동기계를 제작하였으나 당시에는 미세 가공기술이 워낙 보잘 것 없었기 때문에 기계를 비약적으로 소형화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그 이후 집적회로(IC) 제작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주로 미국의 공과대학과 연구소들을 중심으로 마이크로 머신의 기본요소인 마이크로 센서와 구동기계 등의 제작이 시도되었다.

그러다가 지난 87년 마이크로 머신 붐을 몰고온 과학기술계의 사건(?)이 생긴다. 마이크로 머신의 메카로 불리는 버클리대학의 연구자들이 직경 수백μ 크기의 초소형 기어축 베어링 등 현미경적 부품들을 제작하여 이를 학회에 발표했던 것. 이는 미세가공기술을 사용, 실리콘 기판 위에 마이크로 수준의 기계구조를 형성시킨 것이다. 이듬해인 88년 같은 대학의 리처드 물러 교수 등은 정전기(靜電氣)의 힘으로 회전하는 직경 1백20μ의 마이크로 모터를 개발하였다. 이 모터는 현미경으로 수백배 확대해야 그 구조가 보이는 초미세기계다.

이후 미국 MIT에서도 1분당 1만 5천번의 회전력을 갖는 직경 1백μ 크기의 모터를 IC 제조용 실리콘 프로세스를 이용하여 제작하였다. 특히 이것은 머리카락 굵기나 책종이 두께보다도 작은 것으로서 1㎝ 속에 수백개의 모터가 빽빽이 들어차 일제히 자동차 엔진의 회전력을 능가하는 속도로 회전하는 놀랄 만한 것이었다.

얼마 전에는 문장 끝에 찍는 구두점의 5분의 1 크기만한 모터를 미국의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대학에서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러한 것들은 분명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기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규모인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미세기술의 싹을 틔우고 개화시킨 것은 반도체기술이다. 1958년에 발명된 IC는 그후 미세 가공기술이나 제작 프로세스기술의 진보로 획기적으로 고집적화되고 경량화되면서 오늘날 하이테크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그동안 트랜지스터의 크기도 갈수록 축소되어 마이크로급 이하의 수준이 되기에 이르렀다.

현재 반도체 소자분야는 그 집적도의 향상으로 급기야는 메가(Mega, ${10}^{6}$)시대를 마감하고 기가(Giga, ${10}^{9}$) 시대를 열 것으로까지 전망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회로가공 단위는 0.5μ 이하, 집적소자수는 1억개 이상 되는 극초정밀 세계의 구현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이러한 반도체산업의 눈부신 발전에 강력한 자극을 받고 이를 이용함으로써 마이크로 머신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실리콘 기판 위에 미세회로를 새기기 위한 마이크로 단위의 미세 가공기술이 마이크로 머신의 부품인 극소형 모터나 기어를 제작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기술적 토대가 되었다. 그런데 정보화 혁명을 몰고온 IC는 이제 곧 성숙기에 접어들 것으로 보이며 그 집적도의 향상에 있어 벌써부터 그 한계가 거론되고 있는 형편이다. 어쨌든 이제는 지난 35년간 보여주었던 반도체 소자의 깜짝 퍼레이드는 좀 시들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제껏 반도체혁명을 주도 해온 전자기술은 어떤 방면으로 그 돌파구를 찾을 것인가. 많은 학자들은 다소 조심스럽지만 마이크로 머신이 차세대 일렉트로닉스 혁명의 주역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 반도체 이상의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미개척의 기술영역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재 세계의 기술선진국들은 21세기 기술패권의 향방을 가늠하게 될 이 차세대 유망기술을 주목하고, 서둘러 본격적인 개발에 나서고 있다.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부드러운 기계

마이크로 머신은 일반적으로 1㎜ 수준에서부터 1μ 이하까지의 극미세한 기계를 지칭하고 있다. 이 기계는 실리콘 등의 소재 위에 구동기구 센서 모터 제어장치 등을 집적한 극미 메카트로닉스의 결정체인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앞에서 말한대로 마이크로 머신이 결코 기존 기계의 단순한 축소품이 아니란 사실이다. 현재 우리 주위의 기계류를 보면 딱딱하고 죽어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에 반해 마이크로 머신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부드럽고 자립적인 특징을 갖게 될 것이다.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면서 극소환경에서 작업을 수행하는 극초미니급 로봇의 개발이 현재로선 이 마이크로 머신의 당연목표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작디 작은 로봇으로 과연 어떤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을까. 먼저 의료분야에서의 활약이 기대된다.

그동안 첨단의료기기들의 개발로 의료분야는 눈부신 발전을 해왔지만 아직도 기본적인 의료수단에 있어서는 원시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엄청난 고통과 후유증을 동반하는 수술을 위한 신체 절개나 병소 외의 다른 부위에도 영향을 끼쳐 부작용을 일으키는 투약 등이 그러한 예다.

그러나 앞으로 의료용 마이크로 로봇의 출현으로 이러한 원시성은 극복될 것으로 보인다. 외부의 원격제어를 받으며 혈관 등을 통해 환부에 접근한 마이크로 로봇이 탑재한 레이저건을 발사하거나 약제를 방출하여 국소치료의 임무를 깔끔하게 수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시경을 대신하는 검사 로봇을 주사를 통해 혈관에 집어넣어 백혈구의 수나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조사해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암이나 심장병의 정확한 진단도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현재 안구수술이나 미세혈관수술 등의 영역에서 커다란 진전을 보이고 있는 마이크로 서저리(micro surgery, 미세수술)분야에 있어서도 마이크로 머신은 톡톡히 한 몫을 해낼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텔레 서저리(tele surgery)라고 하는 원격수술기술이 이에 가세하면 의사가 마이크로 로봇의 눈을 통해 미세한 환부를 확대된 영상으로 보면서 수술을 집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우 의사가 환자 옆에 있든지 아니면 멀리 떨어져 있든지 큰 차이가 없게 된다. 현장에서 수술용 마이크로 로봇이 의사의 원격조종을 받으며 착착 수술을 진행시키기 때문이다.

그밖에 인공장기의 유지보수에도 마이크로 로봇이 활용될 것이다. 예를 들면 심장고동을 유지시키는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의 배터리를 교환하거나 고장난 곳을 수리해야 하는 경우 마이크로 로봇이 투입되어 이를 해결할 것이다.

산업분야에서의 마이크로 머신의 용도는 더욱 다양하다. 발전소나 건물의 배관, 공장의 플랜트 설비, 항공기나 자동차 엔진 등의 내부와 같이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극히 협소한 공간 내에서 시스템을 분해하지 않고 점검함은 물론 미세하고 복잡한 작업을 수행 할 것이며 산업폐기물의 분별처리에도 투입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마이크로 머신 기술을 생산시스템에 도입할 경우, 각종 생산기계의 소형화로 에너지가 절감됨은 물론 미세한 부품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제품을 양산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도 커다란 변혁이 일어날 것이다. 농업에서는 해충의 내약품성(耐藥品性)을 높이고 땅을 피폐시키는 기존의 약제 살포 대신 벌레 크기의 수많은 마이크로 로봇을 투입하여 해충을 구제하고 잡조를 제거하는 방법을 택한다면 생산성이 훨씬 높아질 것이다.

기계분야의 기술혁명

과학 기술분야에 있어서도 혁신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마이크로 로봇의 세포조작을 통한 바이오기술의 혁신이 기대되며 각종 재료 및 소재에 대한 3차원적 구조의 관측과 성분분석이 마이크로 로봇에 의해 가능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또 해류의 이동관찰, 환경감시, 우주공간에서의 실험에서도 마이크로 머신의 활약이 점쳐지고 있다.

이밖에도 예측되고 있는 마이크로 머신의 응용분야나 용도는 무수히 많다. 실제적인 것에서부터 다소 공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그러한 미소기계의 출현을 가로막는 장애물 역시 다양하고 게다가 모두 만만치 않은 것이 문제다. 과연 그 장애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마이크로 머신이 착안되고 그 개발이 시작된 배경은 반도체 소자로 대표되는 전자분야의 혁명이다. 기계분야에서도 그와 같은 기술혁신을 이루려는 시도로 마이크로 머신의 개발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반도체 혁명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마이크로 머신 분야는 기술적인 기본틀도 반도체산업에서 따 왔다. 반도체 미세가공기술을 그대로 응용, 실리콘 기판 위에 기계요소를 제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이러한 실리콘의 미세가공에 의한 극소형 기계의 제작이 마이크로 머신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현재의 실리콘 미세가공기술은 기본적으로 2차원적인 평면가공법이기 때문에 부품을 탑재한 3차원적인 마이크로 머신을 만드는 것이 곤란 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반도체 제조공정은 컴퓨터에 의해 설계된 회로도를 감광성 수지(photo resist)가 입혀진 실리콘 단결정 위로 옮겨 자외선이나 전자빔으로 형상화한 뒤 식각용제, 즉 염화물 혼합기체나 초산 등을 이용해 식각(蝕刻)함으로써 완료된다. 이는 약물에 의한 부식을 이용하여 금속에 그림을 그리는 식각 판화를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앞에서 소개한 마이크로급 극소형 모터나 기어, 베어링 등의 획기적인 개발이나 제작도 모두 이러한 공정을 답습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실리콘 위의 움직이는 판화인 셈이다.

따라서 진짜 기계다운 기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마이크로 머신 공정이 개발되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현재 마이크로 머신의 주재료인 실리콘 의존에서 탈피하는 것도 중요하다. 천연암석인 규소(${SiO}_{2}$)가 원료인 실리콘은 전기적 특성과 가공성이 뛰어나 반도체 재료로서는 우수하지만 마이크로 머신을 만드는 주재료가 되기에는 너무 연약하다. 따라서 현재 많은 마이크로 머신 연구자들은 보다 강한 재료를 세밀하게 가공할 수 있는 새로운 마이크로 가공기술의 개발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중이며, 가공성도 좋고 기계적 성질이 새로운 다른 재료를 개발하려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최근 유럽에서 개발된 LIGA프로세스라는 가공방법이 주목을 끌고 있다. 이는 싱크로트론 방사(Synchrotron radiation)에서 나오는 강력한 방사광을 사용하는 가공법으로 금속이나 고분자같은 실리콘 이외의 재료에도 적용이 가능하며, 미세가공이 용이함과 동시에 수직방향으로 1백 μ까지 깊이있게 깎아낼 수 있을 정도로 기계적 가공능력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싱크로트론 방사광이란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는 전자가 궤도를 구부릴 때 방사하는 강력하고 직진성이 좋은 X선이나 자외선을 일컫는 말로 원래 물리연구용으로 개발 되었으나, 초대규모집적회로(VLSI)의 미세 구조 전사용 방사광원으로 유망시되어 현재 선진각국에서 실용화를 서두르고 있다. 집적도의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반도체 연구자들이나 이제 막 개화하기 시작한 마이크로 머신 연구자들은 서로 획기적인 전환점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분명 싱크로트론 방사와 같은 새로운 가공방법이 앞으로 반도체나 마이크로 머신 분야에 있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마이크로 기계공학이 뒷받침돼야

그러나 마이크로 머신의 경우는 보다 더 복합적이고 어려운 난제들과 싸워야 한다. 현재 많은 마이크로 머신 연구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마이크로(micro)영역, 더 나아가 앞으로 전개될 나노(nano)영역의 미시적 세계에서는 현재 모든 기계 메커니즘의 무대가 되고 있는 거대세계와는 완전히 그 물리적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멋 모르고 그 세계에 들어 갔다기는 난쟁이 나라에 들어가 결박당한 걸리버의 꼴이 되고 말 것이다. 마이크로 머신이 단순히 기존 기계의 축소품이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마이크로 기계공학의 뒷받침이 중요한 것이다.

마찰(摩擦)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어떤 정육면체의 치수가 전체적으로 줄어들면 부피는 치수의 3제곱에 비례하여 작아지지만 면적은 치수의 2제곱에 비례하여 작아진다. 그런데 마찰력은 접촉면적의 함수인데 비해 관성력은 질량의 함수이다. 따라서 치수가 줄어들면 상대적으로 마찰에 의한 에너지 손실이 커지게 된다. 이러한 것이 웬만한 크기의 기계같으면 별 문제가 안되지만 마이크로 머신의 경우에는 커다란 장애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찰을 줄이기 위해 기름을 칠 수도 없다. 기름과 같은 윤활제는 오히려 풀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관성력은 약해져서 각종 회전장치 등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이와같은 물리적 장애를 극복하려면 보다 획기적인 기술적 돌파구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전자산업의 혁명을 몰고온 트랜지스터의 발명, 그리고 유전공학의 싹을 틔운 DNA의 이중나선구조 발견과 맞먹는 중대한 계기가 필요한 것이 현재의 마이크로 머신 분야다. 과연 그러한 계기가 무엇이 될지 현재로선 추측하기 어렵다. 이제 막 첫 걸음을 내디뎠으며 아직 개념조차 확실히 잡히지 않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마이크로 머신이 반도체 이상가는 가공할 잠재력을 갖고 있으며 언젠가는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현재 세계 기술 선진국들의 움직임만 보더라도 그러한 추세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미국은 NSF(국립과학재단)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수많은 기업과 대학연구소에서 이 분야에 대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은 빠르면 2010년 경에 이 마이크로 머신이 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시장규모를 예측하는 등 기업연구소를 중심으로 민첩한 대응을 하고 있다. 독일은 연방기술부의 주도 아래 '마이크로 시스템기술' 지원 프로그램을 확정, 주로 마이크로 부품을 개발하려는 모험기업의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 밖의 선진국들도 이 분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버클리 센서 및 작동기센터에서 만든 마이크로 그립퍼. 7~40μ인 단세포 원생동물 유글레나를 집어올린 이 장면은 주사전자현미경으로 찍은 것이다.
 

생명공학이라는 돌파구

지난 90년 4월 미국 캘리포니아 산 호세에 있는 IBM알마덴 연구소에서는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실험이 성공리에 수행됐다. 원자들을 하나하나 마치 바둑알을 늘어놓듯 니켈금속의 표면에 배열하여 세계 최소의 광고문안을 만든 것이다. 이 연구소의 과학자인 D.아이글러와 E.슈바이처가 STM이라고 불리는 정밀한 현미경의 탐침(tip)으로 35개의 크세논(Xe)원자를 움직여 만든 'IBM'이란 세 글자는 보통 인쇄된 활자 크기보다 50만배나 작다.

그 이후 과학자들은 반전 슬로건에서부터 발렌타인 날의 메시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안으로 원자를 배열하기 시작했다. 아직 먼 훗날의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이러한 원자 이동기술이 발달하면 마이크로 머신의 제작에 적합한 새로운 소재를 인공적인 원자배열을 활용해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분자 크기의 로봇이 출현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가능성 외에 마이크로 머신 분야의 새로운 돌파구가 생명공학에 의해 열릴지도 모른다. 스스로 판단하여 행동하고 자기복제가 가능한 궁극적인 마이크로 머신은 분명 생명체와 흡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인간의 미시세계에 대한 탐구와 도전이 계속되는 한 마이크로 머신의 미래는 밝다고 말 할 수 있다. 끝으로 미국과학재단이 최근 발표한 마이크로 머신에 대한 연구결과보고서의 제목을 인용한다.
'작은 기계, 큰 기회'(Small Machines, Large Opportunities).
 

모토롤라사가 내놓은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 압력 센서
 

1993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김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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