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돌리는 방향조차 모르던 학생들이 첨단엔지니어의 꿈을 키운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태양전지자동차(솔라카)를 만들고 1인승 경비행기를 만들었다면 이 내용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이다. 솔라카나 경비행기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G7 문턱에 서 있다는 우리나라에서 이제 막 개발을 마친 첨단과학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서울 현대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제작한 솔라카(FETS, 땅에서 하늘까지라는 뜻)의 시험운전이 있었다. 제작의 주역은 학내 서클인 자동차항공기 연구반(지도교사 구기복). FETS는 디자인은 조금 엉성하지만 태양에너지를 동력으로 최고 시속 20㎞를 내는 데 성공했다.
이 차는 엄밀한 의미에서 진정한 솔라카는 아니다. 태양이 쨍쨍 내리쬘 때는 태양전지로부터 얻은 전기에너지로 작동하지만 비가 오거나 흐릴 때는 기존의 가솔린엔진을 동력으로 하는 하이브리드자동차. 하이브리드는 '잡종'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하이브리드 자동차라 함은 기존의 가솔린엔진에다 대체 연료(태양광 전기 등)엔진을 결합한 잡종차를 말한다.
일명 무공해라는 뜻의 '푸른꿈'으로도 불리는 FETS는 무게 약 1백50㎏에 운전자 한명만이 탈 수 있는 초미니 삼륜차다. 기존 오토바이에다 뒷바퀴를 덧붙이고 아주 가벼운 탄소강화섬유로 차체를 씌운 다음 태양전지패널을 연결시켰다. 금성산전에서 제공한 태양전지패널은 에너지 변환효율이 12%인 태양전지 78개를 연결시킨 것. 여기에 12V의 축전지가 연결돼 태양광으로부터 얻은 전기에너지를 저장한다. 이 에너지가 모터를 작동시키는 것이 푸른꿈의 기본 구조다. 푸른꿈 제작에는 태양전지패널을 제외하고 3백50만원의 경비가 들었다.
기본 구조를 이해해가면서
"태양전지패널은 협찬을 받고 기존 오토바이 엔진을 사용하는 등 여기저기서 조금씩 도움을 받았지만 학생들이 솔라카의 구조를 이해해가면서 직접 조립해 자동차를, 그것도 무공해의 솔라카를 만들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기복 지도교사의 말처럼 푸른꿈은 실제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도 아니며, 연구소에서 개발한 세련된 유선형의 첨단디자인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학생들이 직접 차체를 다듬고 솔라카의 기본 구조를 이해하면서 여러가지 부품을 조립한 것은, 책상 위에 앉아서 공식이나 달달 외워야하는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을 생각할 때 파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동차 항공기 연구반에 속한 23명의 학생들 중에는 처음에 나사돌리는 방향조차 모르는 학생들도 있을 정도였다. 제작과정 3개월 동안 작업일지를 썼던 이진호군(1년)은 "그라인더를 다루면서 전기스파크가 날 때는 당황도 하고 친구들이 가벼운 찰과상을 입을 때는 걱정도 됐지만 이제는 어떤 것이라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구교사와 더불어 자료조사에서부터 꾸준히 참여해온 신승용군(2년)은 "잡지나 원서 등 솔라카에 관한 자료를 열심히 읽었다"며 "그 덕분에 자동차 구조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으며, 부수적으로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따른 일을 계획적으로 추진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의젓하게 밝혔다. 신군이 원서를 읽으면서 하도 열심히 사전을 찾아 사전이 너덜너덜해졌다고 말하자 옆에서 친구들이 '과장'이라고 야유를 보냈다.
열심히 히는 학생은 작업이 한창일 때는 밤 2시까지 기술실에 남아 쇠파이프를 잘라 새시를 만들고 차체를 다듬었다고 구기복 교사는 밝혔다.
현대고등학교에 자동차 항공기 연구반이 생긴 것은 올 초. 1년도 안된 서클에서 무공해 자동차라는 '야무진 꿈'을 실현시킬 수 있었던 것은 구기복교사의 힘이 컸다. 구교사는 1년 전에 학생들 몇명과 함께 1인승 경비행기를 제작해 항공대학 항공제에 출품했다. 물론 이는 구교사 개인이 10년을 준비한 것으로 비행기를 워낙 좋아하는 학생들 몇명이 마지막에 참여해 제작을 완료한 것.
이 때의 경험이 밑받침돼 올해 정식으로 자동차 항공기 연구반을 만들었다. 경비행기 제작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워낙 진지하고 수업시간에 가르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교육'이 가능함을 확신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비행기와 같은 아이템은 고등학생들이 감당해내기에는 워낙 대형이고 만들어 놓고도 학생들이 직접 조종해볼 수 없기 때문에 첫번째 작품으로 자동차를 택한 것.
기왕에 자동차를 만들 바에는 환경악화의 주범인 배기가스를 내뿜지 않는 솔라카로 목표를 설정했다. 그러나 자료조사 과정에서 완전한 솔라카는 쉽지 않음을 깨닫고 하이브리드자동차로 목표를 수정했다.
"고등학생들이 자동차나 비행기를 만드는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파격적인 일로 보이지만 미국 등에서는 드문 일이 아닙니다. 어린 학생들이 만든 제품이 조악한 것은 당연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교육적 효과란 대단하지요. 경비행기를 제작하면서, 하이브리드자동차를 만들면서 아이들은 대단한 희열을 느낍니다. 개중에는 앞으로 자신의 장래를 자동차공학이나 항공공학에서 찾으려 하는 학생들도 간혹 있구요."
대외적인 선전효과를 위해서 고등학생들에게 너무 어려운 아이템을 선정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구교사는 "학생들에게 좀더 많은 만족감을 주기 위해서 좀 튀는 아이템을 선정한 것은 사실이다"며 "이번 경험을 살려 앞으로는 학생들이 설계에서 제작까지를 스스로의 힘으로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조그맣고 알찬 목표를 세우겠다"고 밝혔다.
이 말을 듣고 있던 학생들이 "솔리카는 가벼우면서도 공기저항이 적은 디자인이 생명임을 알고서 여러가지 모형 디자인을 해 봤다"며 스티로폴로 만든 기기묘묘한 모형들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