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바이오테크놀로지 관련학자들은 코끼리만한 소를 만들기보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보다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연구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금세기 최후의 산업혁명이라는 기치 아래 바이오테크놀로지(biotechnology)는 1980년대 이후 꾸준히 일반에 소개돼 왔다. 유전공학의 발달에 힘입어, 앞으로는 코끼리만한 소, 위에는 토마토 아래는 감자가 달리는 포마토, 또는 위에는 배추 아래는 무가 자라는 무추가 출현할 것이고, 인간이 유전병으로부터 해방될 날도 멀지않을 것이라는 등등 수많은 신문지상의 기사가 우리의 기대를 부풀려 놓았다. 그러면 유전공학의 이러한 약속이 과연 오늘날 실현됐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그 대답은 우리에게 실망적일 수 밖에 없다. 무추도 기술적으로는 만들어졌으나 위와 아래가 모두 빈약한 정반대의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커다란 꿈을 안고 설립된 생물공학 관련회사들 중 성공한 예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표면적인 것일 뿐, 사실상 생물공학은 그동안 장족의 발전을 이뤄왔고 앞으로는 더욱 기속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 발전의 내용이 코끼리만한 소처럼 가시적인 것이 아니라, 다방면에서 작지만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기술적 진보가 이뤄지고 있어서 그 효과가 일반대중에게 쉽게 납득되기 어려운 점이 문제일 뿐이다. 이에 관련된 역사적 교훈을 예로 들어보자.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기치아래, 방사성동위원소에 의한 동식물의 돌연변이 육종이 1960년대에 인류에게 큰 희망으로 부각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어느 일간지의 신년 특집만화에 커다란 쌀 한톨을 농민이 지게에 짊어진 그림이 실리기도 했으나, 그러한 돌연변이 육종의 효과는 실현되지 않았고, 방사성동위원소의 이용과 연구는 곧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러나 구미 각국에서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생화학 의학 분자생물학 등 기초연구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로 계속 사용해 왔다. 그 결과 그들은 현재의 생물공학을 발전시켰으나 우리는 이 국제적 과학기술 경쟁에서 뒤떨어지고 만 것이다.
현재 바이오테크놀로지의 발전도 마찬가지로 실용성있는 업적은 빙산의 일각이고, 사실은 눈에 쉬 띄지 않는 생물과학의 기초개념과 기술을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면서 더욱 폭넓고 중대한 파급효과를 초래하고 있다. 즉 우리는 일반인 홍보차원의 피상적인 효과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바이오테크놀로지의 핵심을 올바로 이해해 장기적인 안목에서 발전시킬 때, 다가오는 21세기에 한국이 과학선진국으로 진입한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생물공학의 기초를 닦은 왓슨과 크릭](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199212/S199212N004_img_01.jpg)
씨없는 포도 등장할 듯
생물공학으로 번역되는 바이오테크놀로지는 그러면 과연 무엇인가. 종래의 생물학과 이에 관련된 의학 농학 약학 등은 생물체 또는 그 산물을 자연이 지정해준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연구 가공하고 활용해 왔으며, 그 자체로도 생물공학이라고 불려 왔다. 발효기술의 발달에 따른 포도주 된장 김치의 생산, 각종 항생제 등 의약품의 생산 등이 이 범위에 속한다.
이에 반해 현대 바이오테크놀로지의 특징은, 수백만년에 걸쳐 진화돼 온 생물의 발달과정과 그 산물을 유전자의 조작과 시험관 배양기술 등을 사용, 인위적으로 변형시키는 기술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생물체나 그 일부산물을 종래에는 꿈꾸지 못했던 인위적인 방법으로 변형해 대량생산하고, 공정화 산업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인체 호르몬인 인슐린을 대장균 박테리아에서 대량생산한다든가 옥수수의 색소유전자를 페튜니아에 옮겨 꽃색깔을 바꾼 것이 이 범위에 속한다. 이러한 기술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연히 개발된 것이 아니라, 1백여 명에 달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시킨 서구의 학문적 발달과 선진국의 산업기술과 연구능력 자본력에 토대를 둔 것이다.
유전공학 생명과학이라는 용어가 생물공학과 혼용되는 수가 많다. 유전공학은 동식미생물의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해 형질을 전환시키는 일을 주로 지칭한다. 생물공학은 유전공학적 기법도 부분적으로 사용하나 단클론항체 세포 및 조직배양 유기합성 등 여러 기술이 복합적으로 활용되는 경우를 폭넓게 지칭한다. 한편 생명과학은 유전공학 생물공학을 포함하고, 더 나아가서 인간의 수명연장 유전병치료 게놈연구 등 생명현상에 관한 보다 더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말로만 막연히 들어온 바이오테크 놀로지를 실감하기 위해서 몇가지 실용적으로 성공한 예를 들어보자. 인간의 식량과 섬유의 공급원인 농작물을 재배하는 데 있어서 각종 해충의 피해는 막심하며, 이에 대응해 농약이 사용되고 있으나 이또한 식품독성과 환경파괴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오랜 연구 끝에 애벌레를 죽이는 박테리를 찾았고, 이 박테리아가 만드는 독소단백질이 애벌레의 내장에 들어가 신경을 마비시켜 죽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후 학자들은 그 독소단백질의 유전자를 여러 과정을 거쳐 식물체에 도입하는데 성공했고, 이제는 박테리아의 독소단백질이 식물체에서 직접 만들어지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식물을 애벌레가 먹으면 죽게 되는 것이다.
꽃가루를 날리지 않는 가로수
미국 등지에서는 나비와 나방의 유충을 죽이는 btk 독성유전자가 목화 양배추 등 여러 가지 농작물에서 효과를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풍뎅이 같은 딱정벌레목 유충을 잡는 btt 독성유전자가 토마토 감자 등에 효과적으로 도입된 바 있다. 식물 바이러스는 식물의 성장을 극도로 위축시키고 수확량을 격감시키나 이를 죽이는 농약이나 효과적인 대책이 별로 없다. 그러나 바이러스 표면단백질의 유전자나 바이러스 자체의 유전자에 대한 대응유전자를 식물에 도입했더니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고 튼튼히 잘 자라게 되었다. 이미 벼 토마토 양배추 등에서 성공했고, 앞으로 더욱 많은 식물이 바이러스 저항성을 갖게 될 것이다.
한편 동물세포 배양으로 의약품 제조에 활용할 수 있는 단백질을 다수 생산하고 있다. 실제로 생물공학적으로 제조한 의약품의 수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항암물질인 인터류킨 등은 동물세포배양으로 생산되고 있으나 혈액응고의 방지에 쓰이는 폴라스미노겐 활성소는 동물의 분비물인 우유에서 직접 생산되고 있다. 사건 현장에서 채취한 머리카락 핏자국 침 살점 등으로부터 핵산을 추출하고 이를 증폭한 후 분석해 용의자들 중에서 범인을 정확히 가려내는 방법이 이미 법의학에서 사용되고 있다.
아직 실용화되지 않았지만 기술적 문제가 해결됐거나 조만간 성공이 기대되는 항목들은 수없이 많은데, 그중 독자의 관심을 끌만 한 몇가지 보기를 들면 아래와 같다.
첫째로 씨없는 포도를 꼽을 수 있다. 씨없는 포도나 참외 수박은 누구나 좋아할 것이다. 씨가 어느 정도 발달한 후 단단해지기 전에 그 발달을 정지시키면 되는데, 유전공학적 기술로 이 일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입증됐다. 다만 많은 시간과 연구노력이 요구될 따름이다.
둘째로 꽃가루를 날리지 않는 가로수도 가능하다. 포플러 같은 가로수는 꽃가루를 날려 많은 사람들이 감기와 알레르기로 고생한다. 씨없는 포도와 같은 원리로 꽃가루의 발생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면 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셋째로 플리스틱 감자를 얻을 수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막대한 개발투자비가 투입되고 있는 플라스틱감자 프로젝트는 감자에 플라스틱 생산유전자를 도입, 감자를 생분해성 플라스틱 생산의 원료로 쓰고자 하는 것이다. 플라스틱의 원료 중 하나인 폴리하이드록시 뷰틸레이트를 생산하는 한 미생물로부터 유전자를 분리하고 대장균 내로 옮기는 데 성공, 대량생산에 들어갔으나, 생산단가가 높아 보급이 어려운데 이를 감자에서 생산할 수 있다면 산업화가 기능하다는 전망이다. 최근 아기장대라는 십자화과 식물에 특정 유전자를 도입해 성공적으로 그 유전자의 형질을 발현시켰으므로 플라스틱 감자도 곧 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감자는 과연 농산품인지 또는 공산품인지 구분이 어렵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 농림부장관은 최근 특별위원회를 구성, 농산물을 이용한 다른 물질의 생산, 즉 의약품이나 플리스틱 같은 공산품 생산을 위한 기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도록 지시한 바 있다.
넷째로 수입농산물 감별도 척척 해낼 것 이다. 미량의 시료만 있어도 핵산을 추출하고 증폭한 후, 여러가지를 비교 분석할 수 있는 분자생물학적 분석법이 개발됐으므로 수입농산물을 가려낸다든가 품종의 진위를 가려낼 수 있게 되었다.
다섯째로 농업생산에 유용한 유전자의 도입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유전자재조합기술에 의한 식물의 형질전환은 1983년 세 연구진이 각각 독립적으로 외부유전자를 식물세포 안으로 집어넣고 그로부터 유전적으로 형질전환된 식물체를 재분화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시작됐다. 1987년에는 도입된 유전자의 실용성을 실제로 밭에서 시험할 단계에까지 도달했으나 그 당시에는 허가를 얻지 못했다.
21조원 투자될 게놈프로젝트
1992년 말까지 40여종 이상의 식량 및 섬유작물이 형질전환될 것이고, 세계 20여개국에서 약 6백가지 이상의 유전자재조합 식물체들이 농장실험을 마쳤거나 진행중이라고 한다. 이들중 대부분이 병이나 해충에 대한 저항성이 높고, 잡종강세 종자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거나 영양가 또는 식품가공의 성질을 높인 식물이기 때문에 그 실용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여섯째로 인체유전자사업, 즉 휴먼게놈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인체유전자는 약 30억 개의 염기쌍으로 구성된 방대한 유전정보를 함유하고 있는데, 박테리아나 초파리 등과는 달라, 한 세대의 길이가 길고 임의로 교배할 수 없어 유전학적 연구에 제한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세포배양기술 유전자재조합기술과 염기서열 결정의 자동화 등 관련기술이 발전했으므로 전체 염기서열을 결정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라는 계산이다. 근육경직을 일으키는 유전병인 낭성 섬유종의 유전자가 클론(clone)되고 그 염기서열이 결정됐는데, 이에 소요된 경비가 약 7백억원이었다. 앞으로 이와 유사한 유전병 30가지를 더 클론할 때 드는 경비만 가지면 인간유전자의 전체 염기서열을 알아낼 수 있다.
인체유전자의 30억 염기쌍 서열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1개의 염기쌍이 약 7백원이 소요되므로 총 21조원이 필요하다. 미국의 '타임'지는 1989년 3월 20일자에 소개된 특집에서 인체유전자사업은 그 규모로 보아 원자탄을 만든 맨해턴프로젝트나 인간을 달에 착륙시킨 아폴로계획에 필적하며, 그 중요성으로는 훨씬 능가하는 사업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1990년에 공식출범한 이 인체유전자 사업은 3단계의 5개년 사업으로 총 15년에 걸쳐 완성될 예정이다.
인체유전자사업은 그 사업내용 자체보다도 연구개발과 산업화의 측면에서 더욱 큰 의의를 가지고 있음을 지나쳐서는 안될 것이다. 사업규모가 방대하므로 종래의 소규모 연구방법을 탈피해 많은 방법과 기술이 새로이 개발되고 있으며 기계화 자동화가 이뤄지고 있다.![일본에서 개발한 인공심장. 인공장기는 우선 생체적합성이 뛰어나야 한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199212/S199212N004_img_02.jpg)
전공분야가 사라지고
생물공학은 두가지 주요한 기술, 즉 세포조직배양 기술과 유전자조작 기술의 접목으로 능해졌다. 조직배양 또는 단세포배양을 통해 식물체를 재분화하는 기술이 잘 발달돼 있다. 특히 토양 박테리아인 아그로박테리움의 DNA 조각을 식물의 염색체에 삽입하는 기술은 충분히 확보돼 있다. 따라서 요즘 생물공학자들은 그 DNA조각에 쓸모있는 외부유전자를 붙여 식물에 도입하는 방법을 자주 채택하고 있다. 이 방법을 사용해 현재 40여종의 식물에 수십가지 유용유전자가 도입됐고, 그중 실용화된 것도 많다.
단세포인 원형질을 융합, 자연적으로는 교배되기 어려운 식물들의 종속간 질종을 만들기도 한다. 또 미숙한 꽃가루를 포함하는 꽃밥배양법으로 반수체(半數體, n)식물을 많이 만든 후 배수체(倍數體, 2n)로 유도하는 방법도 벼 등 주요작물의 육종개량에 실제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식물색소 알칼로이드 등 약용물질, 여러가지 2차대사산물을 대량 생산하기 위한 식물세포 배양기술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동물세포배양의 경우에도 외부유전자도입이 이뤄지고 있다. 외부유전자를 미세주사기로 주입하든지 용액내에서 도입하게 된다. 이렇게 형질전환된 세포들중에서 일부를 항생제 저항성 등을 기준삼아 선발한 후 가임신된 어미의 태반에 넣어 배양하면 유전자조직에 의해 형질전환된 동물을 얻게되는 것이다. 또 면역항체를 만드는 세포와, 죽지않고 계속 배양되는 종양세포를 원형질융합해 만든 융합세포는 단클론항체를 계속적으로 대량생산한다.
바이오테크놀로지의 또하나의 중요한 기술은 유전자재조합기술이다. 이에는 물론 중심되는 기술이 있기는 하나 수십가지 단계의 절차와 방법이 동원돼야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며, 분자생물학 생화학 유전학 등 고도의 전문지식과 실험능력을 갖춰야 한다.
바이오테크놀로지는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 줄 뿐 아니라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바이오테크놀로지라는 큰 흐름의 물결이 타고 넘은 벽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첫째 바이오테크놀로지는 생물계의 벽을 허물었다. 자연상태에서는 식물이든 동물이든 같은 종끼리만 교배가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곤충인 반딧불의 형광유전자를 찾아내어 이를 박테리아의 DNA에 끼운 후 다시 식물세포에 집어넣어 담배가 형광을 발하게 한다. 옥수수 종자껍질의 적벽돌색 색소유전자를 박테리아의 운반체 DNA에 실어 페튜니아에 옮긴 결과 적벽돌색 페튜니아꽃이 피게 되었다. 자연적으로는 옥수수와 페튜니아가 교배될 수가 없지 않은가. 이러한 예는 무궁무진하다.
둘째 바이오테크놀로지는 시간과 공간의 벽을 허물었다. 인간의 췌장에서만 극미량으로 만들어지는 인슐린 호르몬을 이제는 대장균 세포안에서 짧은 시간에 대량생산, 당뇨병 치료에 사용하고 있다.
셋째 바이오테크놀로지는 학문의 벽을 허물었다. 종래에는 원예학과 식물학과에서나 다루던 식물세포 조직배양을 지금은 공과대학 약학대학에서도 취급하고 있다. 또 원예학과에서는 유전자를 다루기 위해 미생물을 수시로 다루고 있다. 유전자에 관해서, 생물공학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이들 전공분야간에 벽이 없다. 넷째 바이오테크놀로지는 산업의 벽도 허물었다. 인체호르몬을 미생물에서 대량생산하고, 심지어는 동식물에서 생산하고자 한다. 또 플라스틱 원료를 감자같은 식물에서 대량생산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농업 식품 보건 의약 공업 등과 같은 종래의 구분을 넘어서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유전공학연구소의 한 생물공학자가 컴퓨터를 이용해 유전자재조합 모의실험을 하고 있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199212/S199212N004_img_03.jpg)
금세기 최후의 산업혁명이라는 기치 아래 바이오테크놀로지(biotechnology)는 1980년대 이후 꾸준히 일반에 소개돼 왔다. 유전공학의 발달에 힘입어, 앞으로는 코끼리만한 소, 위에는 토마토 아래는 감자가 달리는 포마토, 또는 위에는 배추 아래는 무가 자라는 무추가 출현할 것이고, 인간이 유전병으로부터 해방될 날도 멀지않을 것이라는 등등 수많은 신문지상의 기사가 우리의 기대를 부풀려 놓았다. 그러면 유전공학의 이러한 약속이 과연 오늘날 실현됐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그 대답은 우리에게 실망적일 수 밖에 없다. 무추도 기술적으로는 만들어졌으나 위와 아래가 모두 빈약한 정반대의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커다란 꿈을 안고 설립된 생물공학 관련회사들 중 성공한 예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표면적인 것일 뿐, 사실상 생물공학은 그동안 장족의 발전을 이뤄왔고 앞으로는 더욱 기속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 발전의 내용이 코끼리만한 소처럼 가시적인 것이 아니라, 다방면에서 작지만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기술적 진보가 이뤄지고 있어서 그 효과가 일반대중에게 쉽게 납득되기 어려운 점이 문제일 뿐이다. 이에 관련된 역사적 교훈을 예로 들어보자.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기치아래, 방사성동위원소에 의한 동식물의 돌연변이 육종이 1960년대에 인류에게 큰 희망으로 부각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어느 일간지의 신년 특집만화에 커다란 쌀 한톨을 농민이 지게에 짊어진 그림이 실리기도 했으나, 그러한 돌연변이 육종의 효과는 실현되지 않았고, 방사성동위원소의 이용과 연구는 곧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러나 구미 각국에서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생화학 의학 분자생물학 등 기초연구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로 계속 사용해 왔다. 그 결과 그들은 현재의 생물공학을 발전시켰으나 우리는 이 국제적 과학기술 경쟁에서 뒤떨어지고 만 것이다.
현재 바이오테크놀로지의 발전도 마찬가지로 실용성있는 업적은 빙산의 일각이고, 사실은 눈에 쉬 띄지 않는 생물과학의 기초개념과 기술을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면서 더욱 폭넓고 중대한 파급효과를 초래하고 있다. 즉 우리는 일반인 홍보차원의 피상적인 효과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바이오테크놀로지의 핵심을 올바로 이해해 장기적인 안목에서 발전시킬 때, 다가오는 21세기에 한국이 과학선진국으로 진입한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생물공학의 기초를 닦은 왓슨과 크릭](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199212/S199212N004_img_01.jpg)
씨없는 포도 등장할 듯
생물공학으로 번역되는 바이오테크놀로지는 그러면 과연 무엇인가. 종래의 생물학과 이에 관련된 의학 농학 약학 등은 생물체 또는 그 산물을 자연이 지정해준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연구 가공하고 활용해 왔으며, 그 자체로도 생물공학이라고 불려 왔다. 발효기술의 발달에 따른 포도주 된장 김치의 생산, 각종 항생제 등 의약품의 생산 등이 이 범위에 속한다.
이에 반해 현대 바이오테크놀로지의 특징은, 수백만년에 걸쳐 진화돼 온 생물의 발달과정과 그 산물을 유전자의 조작과 시험관 배양기술 등을 사용, 인위적으로 변형시키는 기술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생물체나 그 일부산물을 종래에는 꿈꾸지 못했던 인위적인 방법으로 변형해 대량생산하고, 공정화 산업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인체 호르몬인 인슐린을 대장균 박테리아에서 대량생산한다든가 옥수수의 색소유전자를 페튜니아에 옮겨 꽃색깔을 바꾼 것이 이 범위에 속한다. 이러한 기술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연히 개발된 것이 아니라, 1백여 명에 달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시킨 서구의 학문적 발달과 선진국의 산업기술과 연구능력 자본력에 토대를 둔 것이다.
유전공학 생명과학이라는 용어가 생물공학과 혼용되는 수가 많다. 유전공학은 동식미생물의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해 형질을 전환시키는 일을 주로 지칭한다. 생물공학은 유전공학적 기법도 부분적으로 사용하나 단클론항체 세포 및 조직배양 유기합성 등 여러 기술이 복합적으로 활용되는 경우를 폭넓게 지칭한다. 한편 생명과학은 유전공학 생물공학을 포함하고, 더 나아가서 인간의 수명연장 유전병치료 게놈연구 등 생명현상에 관한 보다 더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말로만 막연히 들어온 바이오테크 놀로지를 실감하기 위해서 몇가지 실용적으로 성공한 예를 들어보자. 인간의 식량과 섬유의 공급원인 농작물을 재배하는 데 있어서 각종 해충의 피해는 막심하며, 이에 대응해 농약이 사용되고 있으나 이또한 식품독성과 환경파괴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오랜 연구 끝에 애벌레를 죽이는 박테리를 찾았고, 이 박테리아가 만드는 독소단백질이 애벌레의 내장에 들어가 신경을 마비시켜 죽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후 학자들은 그 독소단백질의 유전자를 여러 과정을 거쳐 식물체에 도입하는데 성공했고, 이제는 박테리아의 독소단백질이 식물체에서 직접 만들어지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식물을 애벌레가 먹으면 죽게 되는 것이다.
꽃가루를 날리지 않는 가로수
미국 등지에서는 나비와 나방의 유충을 죽이는 btk 독성유전자가 목화 양배추 등 여러 가지 농작물에서 효과를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풍뎅이 같은 딱정벌레목 유충을 잡는 btt 독성유전자가 토마토 감자 등에 효과적으로 도입된 바 있다. 식물 바이러스는 식물의 성장을 극도로 위축시키고 수확량을 격감시키나 이를 죽이는 농약이나 효과적인 대책이 별로 없다. 그러나 바이러스 표면단백질의 유전자나 바이러스 자체의 유전자에 대한 대응유전자를 식물에 도입했더니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고 튼튼히 잘 자라게 되었다. 이미 벼 토마토 양배추 등에서 성공했고, 앞으로 더욱 많은 식물이 바이러스 저항성을 갖게 될 것이다.
한편 동물세포 배양으로 의약품 제조에 활용할 수 있는 단백질을 다수 생산하고 있다. 실제로 생물공학적으로 제조한 의약품의 수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항암물질인 인터류킨 등은 동물세포배양으로 생산되고 있으나 혈액응고의 방지에 쓰이는 폴라스미노겐 활성소는 동물의 분비물인 우유에서 직접 생산되고 있다. 사건 현장에서 채취한 머리카락 핏자국 침 살점 등으로부터 핵산을 추출하고 이를 증폭한 후 분석해 용의자들 중에서 범인을 정확히 가려내는 방법이 이미 법의학에서 사용되고 있다.
아직 실용화되지 않았지만 기술적 문제가 해결됐거나 조만간 성공이 기대되는 항목들은 수없이 많은데, 그중 독자의 관심을 끌만 한 몇가지 보기를 들면 아래와 같다.
첫째로 씨없는 포도를 꼽을 수 있다. 씨없는 포도나 참외 수박은 누구나 좋아할 것이다. 씨가 어느 정도 발달한 후 단단해지기 전에 그 발달을 정지시키면 되는데, 유전공학적 기술로 이 일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입증됐다. 다만 많은 시간과 연구노력이 요구될 따름이다.
둘째로 꽃가루를 날리지 않는 가로수도 가능하다. 포플러 같은 가로수는 꽃가루를 날려 많은 사람들이 감기와 알레르기로 고생한다. 씨없는 포도와 같은 원리로 꽃가루의 발생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면 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셋째로 플리스틱 감자를 얻을 수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막대한 개발투자비가 투입되고 있는 플라스틱감자 프로젝트는 감자에 플라스틱 생산유전자를 도입, 감자를 생분해성 플라스틱 생산의 원료로 쓰고자 하는 것이다. 플라스틱의 원료 중 하나인 폴리하이드록시 뷰틸레이트를 생산하는 한 미생물로부터 유전자를 분리하고 대장균 내로 옮기는 데 성공, 대량생산에 들어갔으나, 생산단가가 높아 보급이 어려운데 이를 감자에서 생산할 수 있다면 산업화가 기능하다는 전망이다. 최근 아기장대라는 십자화과 식물에 특정 유전자를 도입해 성공적으로 그 유전자의 형질을 발현시켰으므로 플라스틱 감자도 곧 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감자는 과연 농산품인지 또는 공산품인지 구분이 어렵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 농림부장관은 최근 특별위원회를 구성, 농산물을 이용한 다른 물질의 생산, 즉 의약품이나 플리스틱 같은 공산품 생산을 위한 기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도록 지시한 바 있다.
넷째로 수입농산물 감별도 척척 해낼 것 이다. 미량의 시료만 있어도 핵산을 추출하고 증폭한 후, 여러가지를 비교 분석할 수 있는 분자생물학적 분석법이 개발됐으므로 수입농산물을 가려낸다든가 품종의 진위를 가려낼 수 있게 되었다.
다섯째로 농업생산에 유용한 유전자의 도입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유전자재조합기술에 의한 식물의 형질전환은 1983년 세 연구진이 각각 독립적으로 외부유전자를 식물세포 안으로 집어넣고 그로부터 유전적으로 형질전환된 식물체를 재분화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시작됐다. 1987년에는 도입된 유전자의 실용성을 실제로 밭에서 시험할 단계에까지 도달했으나 그 당시에는 허가를 얻지 못했다.
21조원 투자될 게놈프로젝트
1992년 말까지 40여종 이상의 식량 및 섬유작물이 형질전환될 것이고, 세계 20여개국에서 약 6백가지 이상의 유전자재조합 식물체들이 농장실험을 마쳤거나 진행중이라고 한다. 이들중 대부분이 병이나 해충에 대한 저항성이 높고, 잡종강세 종자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거나 영양가 또는 식품가공의 성질을 높인 식물이기 때문에 그 실용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여섯째로 인체유전자사업, 즉 휴먼게놈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인체유전자는 약 30억 개의 염기쌍으로 구성된 방대한 유전정보를 함유하고 있는데, 박테리아나 초파리 등과는 달라, 한 세대의 길이가 길고 임의로 교배할 수 없어 유전학적 연구에 제한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세포배양기술 유전자재조합기술과 염기서열 결정의 자동화 등 관련기술이 발전했으므로 전체 염기서열을 결정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라는 계산이다. 근육경직을 일으키는 유전병인 낭성 섬유종의 유전자가 클론(clone)되고 그 염기서열이 결정됐는데, 이에 소요된 경비가 약 7백억원이었다. 앞으로 이와 유사한 유전병 30가지를 더 클론할 때 드는 경비만 가지면 인간유전자의 전체 염기서열을 알아낼 수 있다.
인체유전자의 30억 염기쌍 서열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1개의 염기쌍이 약 7백원이 소요되므로 총 21조원이 필요하다. 미국의 '타임'지는 1989년 3월 20일자에 소개된 특집에서 인체유전자사업은 그 규모로 보아 원자탄을 만든 맨해턴프로젝트나 인간을 달에 착륙시킨 아폴로계획에 필적하며, 그 중요성으로는 훨씬 능가하는 사업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1990년에 공식출범한 이 인체유전자 사업은 3단계의 5개년 사업으로 총 15년에 걸쳐 완성될 예정이다.
인체유전자사업은 그 사업내용 자체보다도 연구개발과 산업화의 측면에서 더욱 큰 의의를 가지고 있음을 지나쳐서는 안될 것이다. 사업규모가 방대하므로 종래의 소규모 연구방법을 탈피해 많은 방법과 기술이 새로이 개발되고 있으며 기계화 자동화가 이뤄지고 있다.
![일본에서 개발한 인공심장. 인공장기는 우선 생체적합성이 뛰어나야 한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199212/S199212N004_img_02.jpg)
전공분야가 사라지고
생물공학은 두가지 주요한 기술, 즉 세포조직배양 기술과 유전자조작 기술의 접목으로 능해졌다. 조직배양 또는 단세포배양을 통해 식물체를 재분화하는 기술이 잘 발달돼 있다. 특히 토양 박테리아인 아그로박테리움의 DNA 조각을 식물의 염색체에 삽입하는 기술은 충분히 확보돼 있다. 따라서 요즘 생물공학자들은 그 DNA조각에 쓸모있는 외부유전자를 붙여 식물에 도입하는 방법을 자주 채택하고 있다. 이 방법을 사용해 현재 40여종의 식물에 수십가지 유용유전자가 도입됐고, 그중 실용화된 것도 많다.
단세포인 원형질을 융합, 자연적으로는 교배되기 어려운 식물들의 종속간 질종을 만들기도 한다. 또 미숙한 꽃가루를 포함하는 꽃밥배양법으로 반수체(半數體, n)식물을 많이 만든 후 배수체(倍數體, 2n)로 유도하는 방법도 벼 등 주요작물의 육종개량에 실제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식물색소 알칼로이드 등 약용물질, 여러가지 2차대사산물을 대량 생산하기 위한 식물세포 배양기술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동물세포배양의 경우에도 외부유전자도입이 이뤄지고 있다. 외부유전자를 미세주사기로 주입하든지 용액내에서 도입하게 된다. 이렇게 형질전환된 세포들중에서 일부를 항생제 저항성 등을 기준삼아 선발한 후 가임신된 어미의 태반에 넣어 배양하면 유전자조직에 의해 형질전환된 동물을 얻게되는 것이다. 또 면역항체를 만드는 세포와, 죽지않고 계속 배양되는 종양세포를 원형질융합해 만든 융합세포는 단클론항체를 계속적으로 대량생산한다.
바이오테크놀로지의 또하나의 중요한 기술은 유전자재조합기술이다. 이에는 물론 중심되는 기술이 있기는 하나 수십가지 단계의 절차와 방법이 동원돼야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며, 분자생물학 생화학 유전학 등 고도의 전문지식과 실험능력을 갖춰야 한다.
바이오테크놀로지는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 줄 뿐 아니라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바이오테크놀로지라는 큰 흐름의 물결이 타고 넘은 벽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첫째 바이오테크놀로지는 생물계의 벽을 허물었다. 자연상태에서는 식물이든 동물이든 같은 종끼리만 교배가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곤충인 반딧불의 형광유전자를 찾아내어 이를 박테리아의 DNA에 끼운 후 다시 식물세포에 집어넣어 담배가 형광을 발하게 한다. 옥수수 종자껍질의 적벽돌색 색소유전자를 박테리아의 운반체 DNA에 실어 페튜니아에 옮긴 결과 적벽돌색 페튜니아꽃이 피게 되었다. 자연적으로는 옥수수와 페튜니아가 교배될 수가 없지 않은가. 이러한 예는 무궁무진하다.
둘째 바이오테크놀로지는 시간과 공간의 벽을 허물었다. 인간의 췌장에서만 극미량으로 만들어지는 인슐린 호르몬을 이제는 대장균 세포안에서 짧은 시간에 대량생산, 당뇨병 치료에 사용하고 있다.
셋째 바이오테크놀로지는 학문의 벽을 허물었다. 종래에는 원예학과 식물학과에서나 다루던 식물세포 조직배양을 지금은 공과대학 약학대학에서도 취급하고 있다. 또 원예학과에서는 유전자를 다루기 위해 미생물을 수시로 다루고 있다. 유전자에 관해서, 생물공학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이들 전공분야간에 벽이 없다. 넷째 바이오테크놀로지는 산업의 벽도 허물었다. 인체호르몬을 미생물에서 대량생산하고, 심지어는 동식물에서 생산하고자 한다. 또 플라스틱 원료를 감자같은 식물에서 대량생산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농업 식품 보건 의약 공업 등과 같은 종래의 구분을 넘어서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유전공학연구소의 한 생물공학자가 컴퓨터를 이용해 유전자재조합 모의실험을 하고 있다.](https://images.dongascience.com/uploads/article/Contents/199212/S199212N004_img_03.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