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초 메모리 반도체의 집적도가 G(기가)급에 도달하면 현재의 기술 구조로는 도저히 돌파할 수없는 장벽이 나타날 것이다. 인류는 과연 이 장벽을 새로운 기술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20여년간 반도체기술 및 산업은 그야말로 눈부시게 발전해왔다. 그 효과는 특히 컴퓨터기술과 정보산업의 발전에 직접적으로 나타나, 지금 우리는 산업구조 자체가 변혁되고 이에 따라 사회구조가 전반적으로 재편되며 의식 및 문화도 변해가는 거대한 사회변혁의 시기에 살고 있다.
반도체라는 용어가 대중적으로 익숙해진 것은 불과 10년 안팎의 일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도체소자를 직접 본 적이 없다. 반도체소자는 전자부품의 일종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제품들에는 (전자제품뿐만 아니라 첨단제품이라고 불리는 모든 제품) 많든 적든 반도체제품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제품속에 내장돼 있고, 보통 다른 부품들과 섞여 있어 공학도가 아닌 사람들은 어느 것이 반도체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구나 반도체소자는 매우 단단한 플라스틱 패키지로 쌓여 있어, 그 속까지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정말로 드물다. 지네같이 다리가 여러 개 달린 까맣고 단단한 물체, 이것이 대략 일반대중이 인식하고 있는 반도체의 모습인데 이 속에 오늘의 기적을 일으킨 비밀이 있다.
롬(ROM)과 램(RAM)
반도체소자는 주로 정보의 저장 변환 처리 등에 사용된다. 우리가 보통 정보라고 부르는 문자정보 음성정보 화상정보 등은 디지털 또는 아날로그 형태를 띠고 있다. 따라서 반도체소자들도 디지털 소자와 아날로그 소자로 구분된다.
반도체 기억소자에 사용하는 정보들은 1과 0의 조합으로 구성된 디지털 정보다. 따라서 대부분 아날로그 형태인 자연생태의 정보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이를 디지털화해야 하는데, 문자처럼 사용되는 개수가 한정돼 있는 것은 약속으로, 음성이나 화상처럼 대상이 무한히 많은 것은 이를 표현하는 물리적 양을 양자화(quantize)해 정보를 만든다. 예를 들면 문자정보의 경우 'A'는 '100 0001', 'B'는 '100 0010' 등으로 약속하는 것이고, 화상정보는 하나의 화면을 가로 세로 각각 1천24개씩의 화소로 나누고, 한 화소는 그 빛의 세기에 따라 2백56등분으로 나누어 표시 한다.
기억소자는 이러한 1, 0 데이터를 축전기(capacitor)의 원리를 이용해 저장한다. 즉 축전기의 전하량이 어느 정도 이하면 1로, 어느 정도 이상이면 0으로 판별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억소자는 저장된 메모리의 저장시간에 따라 크게 롬메모리(ROM : Read Only Memory)와 램메모리(RAM : Random Access Memory)로 구분된다.
램과 롬의 차이는 전원을 차단했을 때 저장된 정보가 지워지는가 아닌가에 있다. 롬에는 제작과정에서 정보를 저장하는 마스크 롬과, 제작후 전기적으로 정보를 써넣는 EP롬 등이 있으며, 정보를 지울 수 있는 EEP롬도 있다.
램에는 한번 정보를 써 넣으면 전원을 차단하기까지 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S램과 주기적으로 다시 써 넣어주어야 하는 D램이 있다. 따라서 롬은 컴퓨터의 OS(운영체제), 각종 전자기기의 고정된 프로그램 등을 저장하는데 사용되고, 램은 컴퓨터의 주기억장치, 응용프로그램의 일시적 로딩(loading), 데이터의 일시적 저장 등에 사용 된다.
「킬로세대」에서「기가세대」로
기억소자의 용량은 저장할 수 있는 비트수로 표시하는데, 비트(bit: binary digit)란 디지털 정보의 상태를 표시하는 단위로, ${2}^{10}$ 즉 1천24비트를 1K(킬로)로 표시한다. 그리고 1M(메가)는 1K의 1천배, 1G는 1M의 1천배를 뜻한다. 즉 1G(기가)의 메모리는 1K 메모리의 1백만배다.
기억소자중에서 D램은 수요가 가장 많고 계속 더 큰 용량의 것이 요구되므로 기술발전이 매우 빠르게 이루어져 왔다. 그래서 지금은 D램 기술이 반도체기술을 대표하게 됐고, 반도체산업을 이끌어가는 견인차의 역할을 하게 됐다. 지금까지 발전추세를 보면, 램은 매 3년마다 4배씩 용량이 증가해 현재 64MD램을 개발하는 수준에 오게 됐다. 즉 15년만에 1천배나 용량이 증가해 K급으로 출발한 반도체세대를 지금은 '메가세대'로 바꾼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발전추세에 비추어 볼 때 2000년경에는 1G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1G는 얼마만한 양일까. 현재 컴퓨터에서 한글 한 글자는 2바이트, 즉 16비트로 표시 한다. 따라서 1G 비트는 6천4백만자를 저장 할 수 있다. 책 한 페이지에 보통 1천자 정도 들어가므로 총 6만4천페이지, 즉 6백페이지 짜리 두꺼운 책 1백여권에 해당한다. 따라서 웬만한 세계문학전집 한 질을 한 개의 손톱 만한 칩에 저장할 수 있다.
그러나 화상정보나 음성정보를 자유자재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용량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TV 한 화면을 생각해보자. 21세기 TV로 각광을 받는 HDTV는 한 화면이 1천24X1천24개 정도의 화소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한 화소를 정의하기 위해서 명암과 색상의 두가지 요소가 필요하므로, 따라서 이들 두 요소들을 각각 256=${2}^{8}$레벨로 구성한다 해도 한화면의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2}^{10}$ X ${2}^{10}$ X ${2}^{8}$ X ${2}^{8}$ = ${2}^{36}$ 즉 64개의 1G 메모리가 필요하게 된다. 실제로 데이터를 처리할 때는 데이터압축(data compression)기능을 이용하므로 약 10분의 1정도면 가능하다. 그래도 6개 정도의 1G 메모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화상정보가 보편화될 것으로 예측되는 21세기에는 G급 메모리가 중심이 되는 '기가세대'가 도래할 것이다.
먼지보다 작은 미세구조
기억소자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기억 소자는 보통 트랜지스터 1개와 커패시터 1개로 구성된 메모리셀을 기본단위로 한다. 메모리셀을 구성하는 트랜지스터는 보통
MOS 구조를 갖는 전계효과 트랜지스터(Field Effect Transistor FET)다.
이것은 게이트라고 불리는 전극과 반도체 기판 사이에 수십 옹스트롬의 절연막을 넣어 게이트에 가해지는 전압에 따라 소스와 드레인 사이의 수십 옹스트롬의 절연막을 넣어 게이트에 가해지는 전압에 따라 소스와 드레인 사이의 전류를 제어함으로써, 스위치 및 증폭기의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인데, 보통 반도체 기판위에 절연막으로 실리콘산화막(oxide)을 입히고, 금속으로 게이트를 형성하므로, MOS(Metal-Oxide-Semiconductor)구조라 불린다.
커패시터는 전하를 축적하는 곳이므로 유전율이 큰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데, 트랜치형 또는 스택형이 있다.
1G비트 메모리 속에는 ${2}^{30}$개의 메모리셀이 들어 있고, 이것이 약 2X2㎝크기의 칩 속에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으므로, 셀 하나 당 차지하는 면적은 약 0.4㎡이 된다. 공기 중의 먼지가 수μ내지 수십μ인 것과 비교해 보면 엄청나게 작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먼지보다도 더 작은 구조의 셀을 만들려면 상상을 초월하는 초첨단 기술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반도체 칩은 1μ보다도 큰 먼지가 1㎤당 1개 이상 있으면 안되는 무균무진의 초청정실(클린룸)에서 제조된다.
기억소자는 웨이퍼라고 하는 순도 99.9999% 이상인 두께 0.5㎜ 정도의 편평한 실리콘(Si)기판을 사용해 그 위에 집을 짓듯이 만들어 간다. 기판을 파내기도 하고(식각공정) 다른 물질을 쌓기도 하며(증착공정) 트랜지스터 동작에 없어서는 안될 유용한 불순물을 심기도 한다(이온주입공정). 이러한 각 공정에서 패턴을 만들어 주기 위해 리소그래피공정을 사용한다. 기억소자는 이러한 일련의 공정을 십수번 반복하여 만드는 것인 데, 1㎜의 1천분의 1보다도 더 작은 속에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초첨단의 기술들이 필요하다.
기가세대를 여는 리소그래피 기술
G급 메모리를 구성하는 메모리셀의 크기는 선폭이 0.15u이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것은 머리카락 굵기의 약 5백분의 1수준이며 원자가 1천여개 배열돼 있는 크기다. 이만한 크기의 선을 그리기 위해서 첨단의 리소그래피 기술을 사용한다.
현재 메가급에서 사용하고 있는 리소그래피 기술은 수은램프의 특성파장 중 i-라인이라고 불리는 파장 0.365u의 자외선을 이용하는 축소투영 노광기술이다. 이러한 시스템의 광학적 해상도는 근본적으로 λ/NA에 비례하며 그 비례상수는 시스템 및 공정조건에 따라 달라지나 보통 0.5 정도다. 따라서 i-라인을 사용하는 투영노광시스템의 경우, NA를 최대 0.5정도까지 높일 수 있으므로, 해상도의 한계는 0.4μ정도가 된다. 그런데 G급 메모리에서는 0.15μ 이하가 요구되므로 새로운 리소그래피기술이 필요하다.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사용하는 빛의 파장이 짧고 NA가 큰 시스템이 요구된다. 따라서 빛의 파장을 줄이는 방법으로 i-라인 보다 파장이 더 짧은 원자외선의 사용가능성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개발된 원자외선 광원으로는 KrF, ArF 등을 사용하는 엑시머 레이저가 있는데, KrF리소그래피기술은 어느 정도 실용화에 접근해 가고 있으나, ArF 기술은 광학재료 감광재료 등의 문제로 아직 개념정립 단계에 불과하다.
한편 기억소자는 집적도가 높아질수록 구조의 단차가 커지게 되는데, G급 메모리에서는 1u이상의 단차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초점심도는 λ/${NA}^{2}$에 비례하므로, 이러한 투영시스템의 단점은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 NA를 크게 하면 초점심도가 줄어드는데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외선 보다 파장이 아주 짧은 X선을 이용한 근접 인쇄방법도 연구되고 있다. 이 경우 초점심도 문제는 해결될 수 있지만, 아직은 경제성이 있는 범위 내에서 충분한 세기를 갖는 X선 광원 X선 마스크 감광재료 등에 문제가 있다. 그러나 G세대에서 가장 확실한 후보 기술로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불확실한 양자효과
기억소자는 어디까지 발전할까. 앞에서도 기술했듯이 G급에 이르면 선폭이 0.15μ이하가 되고, 단위 셀의 크기는 0.4μ 이하가 된다. 그런데 선폭이 0.1μ이하가 되면 양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과 다시 0.01μ 즉 10nm수준에 이르면 양자효과가 주가 된다. 또 셀의 크기가 이 정도 작아지면 지금의 모스펫(MOSFET)구조로 동작이 가능한지도 확신할 수가 없다. 그러나 양자효과가 주가되는 영역에서는 그 구조가 지금과 다를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과학자들은 이미에 피성장, 전자선 리소그래피 등의 제조방법을 이용해 양자효과소자를 연구하고 있다.
양자효과소자는 양자화되는 정도에 따라 양자선(1차원 양자화) 양자우물(2차원 양자화) 양자점(3차원 양자화) 등으로 구분된다. 양자유물을 이용한 실험적 소자에서 트랜지스터 동작을 확인했으며, 다중상태를 갖는 것을 알아냈다. 지금까지의 기억소자는 1과 0, 두개의 상태만을 표현했으나 양자소자는 여러개의 상태를 표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태수가 3이면 0, 1, 2의 구분이 가능하므로 기억용량은 두배로 늘어나고, 마찬가지로 상태수가 하나 커질수록 용량은 2배씩 증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소자를 회로로 구성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구조와 컴퓨터 이론을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현재 구조의 연장선상에서 기억소자의 한계는 0.1μ영역, 집적도로는 1G를 많이 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기억소자의 발전을 둔화시키는 또다른 요인은 경제적인 문제다. 오늘날 가장 수요가 많은 4MD램 경우 수지를 맞추기 위해 월 2백만개 이상의 양산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이만한 생산라인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장비 및 설비투자에 1억달러 정도가 소요되며, 세대가 높아질수록 투자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1G급에서는 수백억달러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연구개발 투자도 설비투자 증가율을 상회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만한 규모의 투자는 세계적인 초대기업이라 할지라도 감당하기 힘들다. 따라서 세계 반도체 주생산업체들은 투자부담을 나누고 신제품 개발에 대한 위험부담을 줄이며 동시에 안정적인 시장확보를 위해 다국간 협력을 통한 세계화(globalization)를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과연 1G이상의 세대에서도 메모리산업이 산업으로 존속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러나 설사 더 이상의 발전이 정체된다 할지라도 메모리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산업이 21세기 산업의 중심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동면의 시작인가, 혁명의 태동인가
트랜지스터가 발명된지 불과 반세기. 그후 산업발전은 그야말로 혁명적이었다. 가전 우주 항공 교통 통신 에너지 환경 금융 등 생활과 관련된 모든 분야가 반세기전과는 판이 하게 다른 모습으로 변했고, 의식구조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하나의 사건이 일으킨 이 커다란 변화. 이 변혁의 물결은 과연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그 변혁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인가.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러한 혁명적 기술발전의 한계를 이미 그리고 있으며, 어느덧 거의 다다랐다는 것을 알았다.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기술 장벽이 20세기의 끝과 함께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다가오는 21세기는 어쩌면 중세와 같은 긴 기술동면의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것이 또다른 기술혁명을 위한 태동일 수도 있다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인류역사를 돌이켜볼 때,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생각들이 한계를 돌파해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반도체기술의 미개척 영역은 많이 남아 있다. 특히 광소자 양자소자 분자소자 마이크로머시닝 등은 반도체산업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분야들이다. 반도체 산업은 앞으로도 더욱 유망해질 것이며 적어도 지금 이상은 유지될 것이다. 더욱 매력적인 것은 아직 누구도 모르는 새로운 도전영역이 바로 우리 앞에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또다른 혁명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사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