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의존율이 75%에 이르는 프랑스는 원자력에 관한 한 우라늄 채광에서 핵재처리 기술까지 완벽한 사이클을 갖추고 있다. 원전대국 프랑스가 차세대 원자로로 선전하며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고속증식로 「슈퍼피닉스」는 과연 성공할 것인가?
연료를 때면 열이 발생하고 또 땐만큼의 새로운 연료가 저절로 생기는 요술 단지인 고속증식로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이를 '해괴한 전지'(電池)라고 불렀다. 필요한 에너지를 계속 공급 받으면서 또 연료가 덤으로 생기니 이제 더 이상 에너지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고속증식로 기술이 완벽하게 확보되면 우리 인류는 앞으로 수백만년 동안 전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고속증식로란 천연 우라늄(U)속에 99.3%나 들어 있으면서도 핵분열을 일으키지 못해 핵연료로서의 가치가 없는 우라늄238을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원자로다. 즉 원자로 중심부에 핵분열을 일으키는 우라늄 235와 플루토늄(Pu)239를 농축시켜 놓고 핵분열을 일으키면 보통의 원자로처럼 열을 발생시키고 고속의 중성자를 방출한다.
이 원자로 중심부를 우라늄238로 둘러싸면 우라늄238이 고속의 중성자를 받아 플루토늄239로 변한다. 플루토늄239는 우라늄235와 마찬가지로 핵분열을 잘 일으키는 질좋은 핵연료다. 또 고속증식로에 우라늄보다 자연에 세곱절이나 더 많은 토륨(Th)을 집어 넣으면 역시 핵분열을 잘 일으키는 우라늄233이 생산된다.
바다 속에 무진장 들어 있는 우라늄과 토륨을 이용하면 인류가 앞으로 수백만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핵연료가 생기는 셈이다. 고속증식로와 '꿈의 원자로'라 불리는 핵융합로는 최첨단 기술이 요구되는 미래의 원자로다.
슈퍼피닉스 2호도 구상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고속증식로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나라다. 프랑스는 이미 1974년부터 25만kW급 고속증식로 1기를 운전해 왔으며 1986년에는 1백24만kW급 대형 고속증식로인 '슈퍼피닉스'를 가동시켰다. 세계 최대 최초의 실증(實證) 고속로인 슈퍼 피닉스는 1950년대 후반부터 프랑스 원자력청(CEA)이 주도한 차세대원자로개발계획에 따라 완성된 세번째 작품이다. 첫번째와 두번째 작품은 프랑스 원자력청과 프랑스 원자력 그룹이 설계 건설한 랩소디와 피닉스 고속증식로였다.
고속증식로 개발은 미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44년 미국의 페르미(E.Fermi)와 진(W.H. Zinn)은 고속증식로의 건설에 대해서 토의하고 페르미는 1946년에 클레멘타인이라는 연구로를, 진은 1951년에 EBR-1이라는 연구로를 건설하였다.
곧 이어 소련 영국 등이 고속증식로 개발에 뛰어들었고 프랑스는 한발 늦게 고속증식로 개발을 시작했으며 일본은 이보다 더 늦은 1970년대에 비로소 고속증식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고속증식로 개발의 선두 주자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개발을 잠정 보류 또는 지연시키고 있으며 프랑스만이 꾸준한 연구개발 계획을 통해 현재 고속증식로의 실용화에 가장 가까이 있다. 프랑스는 지금도 슈퍼 피닉스보다 경제성이 우수한 슈퍼 피닉스2호기를 구상하고 있다.
프랑스의 원자력 산업은 아주 잘 계획되어 성공적으로 추진되는 것으로 정평나 있다.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충분한 에너지 자원을 갖지 못한 나라다. "자원 빈국에서 장기적으로 가장 좋은 에너지원은 원자력"이라는 결론을 일찍 내린 프랑스는 프랑스 전력공사(EDF)로 하여금 경제성 좋은 원자력 발전소를 체계적으로 추진하도록 하였다.
프랑스로부터 도입한 울진원전
미국 웨스팅하우스사의 원자력 발전소를 모델로 하여 프랑스의 프라마톰사는 미국 기술을 개량, 완전히 프랑스 실정에 적합한 프랑스 고유의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었다. 70년대초 제1차 석유파동은 원자력의 경제성을 한층 더 높이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프랑스는 "모든 것을 원자력으로, 모든 것을 전기로"라는 전략을 수립하고 원자력 발전소의 설계 건설 기기제작 등 관련 사업을 육성하였다.
원자력 발전 사업을 적극 추진한 결과 프랑스의 에너지 자급률은 1973년데 약 23%이던 것이 1990년에는 50% 가까이로 개선되었으며 원자력 발전량도 전체 전력량의 약 75%로 세계 최고에 이르고 있다.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프랑스를 비롯한 한국 헝가리 등의 국가에서는 인구1인당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방출량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월등히 적다. 프랑스는 결국 원자력 발전소로 인해 경제적 이득은 물론 깨끗한 환경도 보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프랑스는 지금도 7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 중에 있으며 또 3기를 더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다.
이처럼 많은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는 자국의 수요를 충당할 뿐 아니라 인근 다른 나라에 수출까지 되고 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프랑스의 인접국가에 대한 전기 수출량은 5백34억kW·h로 스위스의 1년간 총발전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프랑스의 원전기술은 이미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어 벨기에 남아프리카 한국 및 중국 등지에 원자력발전소를 수출하였다. 우리나라의 울진원자력발전소 1,2호기는 프랑스로부터 도입한 것이다.
원자력 기술은 단지 원자력발전소의 설계, 제작 및 건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원자력발전소의 운영에 필요한 핵연료의 제작 공급 및 다 타고난 핵연료에서 다시 쓸 수 있는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회수하기 위한 재처리 그리고 방사성 폐기물의 처분 등 많은 관련 기술의 개발이 필요하다.
프랑스는 원자력발전소 건설 분야에서만 기술자립이 된 것이 아니라 원전의 운영 분야에도 많은 업체들이 참여하여 완전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원자력발전소의 연료로 쓰이는 우라늄의 채광에서부터 다 타고 난 핵연료의 재처리까지를 핵연료주기산업이라 하는데 프랑스는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한다.
일본으로 수출되는 플루토늄
프랑스의 핵연료주기산업은 여러 회사에서 수행하고 있지만 특히 코제마그룹(COGEMA Group)의 기술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코제마그룹은 자회사인 유로디프(EURODIF)사를 통해 프랑스 론강 계곡의 트리카스탱(Tricastin) 우라늄 농축 공장을 건설하였다.
90만kW급 원자력발전소 90기가 필요로 하는 농축 우라늄을 공급할 수 있는 트리카스탱공장은 단연 세계 최대의 우라늄농축 공장이다. 이 공장은 서방 세계에서 필요로 하는 농축 우라늄의 약 40%를 공급하고 있다. 우라늄235의 농도를 3~4% 정도까지 높이는 농축방법으로 전기가 많이 소모되는 가스확산법을 이용하고 있지만, 프랑스 원자력위원회에서 개발중인 레이저 방법이 성공하면 우라늄 농축사업에서는 전적으로 프랑스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
최첨단 기술인 레이저 방법은 레이저를 이용해 우라늄의 원자증기를 만든 다음 우라늄235를 분리하여 농축하는 기술로서 생산 원가가 아주 싸고 농축 우라늄의 필요량에 따라 적절히 생산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핵연료주기산업중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예민한 부분이 바로 핵연료의 재처리 사업이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하고 난 핵연료속에는 아직 다 타지 못한 우라늄235가 남아 있고 또 새롭게 생긴 플루토늄239가 많이 들어 있다. 이 귀중한 자원들을 다시 회수하는 작업이 바로 재처리 작업이다.
재처리작업은 사용후 핵연료가 아주 높은 방사선을 내고 있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또한 재처리 후 생기는 아주 높은 방사선을 가진 폐기물을 처리하는데도 고도의 전문기술이 요구된다.
코제마의 라아그(La Hagud)공장에는 대규모 재처리 시설이 있다. 연간 핵연료의 재처리 용량 4백t을 가진 UP2공장과 8백t 규모의 UP3 공장이 가동되고 있어 프랑스 내의 원자력발전소 뿐만 아니라 유럽 및 일본에서 발생되는 사용후 핵연료까지 처리하고 있다. 요즈음 국제적으로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일본의 플루토늄 운반선도 사실은 라아그 공장에서 일본의 원자력발전소에서 생긴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하여 얻은 플루토늄을 일본으로 운반하기 위한 것이다.
주민 협조로 핵폐기물처리장 건설
최근 원자력산업 중 가장 골칫거리인 방사성 폐기물의 처리, 처분에도 프랑스는 일찍부터 면밀한 계획을 세워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먼저 방사성 폐기물을 전담할 방사성 폐기물 관리청(ANDRA)을 설립하여 폐기물 처분 방식을 결정하고 각종 홍보를 통해 처분 부지를 확보하였다.
1969년부터 프랑스는 약50만㎥규모의 라망쉐(La Manch)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을 운영해 왔고 최근들어 1백만㎥의 용량을 가진 로브(L'aube)처분장이 건설됨에 따라 방사성 폐기물 문제가 미국이나 일본 등에 비해 손쉽게 해결되는 셈이다.
프랑스는 원자력의 개발을 미국이나 영국에 비해 늦게 시작하였지만 세밀한 계획과 꾸준한 연구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의 이해와 협조로 인해 지금은 완전히 선진국들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수준에 도달하였다. 원자력발전소의 건설에서부터 핵연료의 재처리 및 방사성 폐기물의 처분까지 완전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의 원자력 산업의 장래는 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