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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 입자물리 실험의 총본산 CERN

물질의 궁극적 구성인다 규명에 총력

현재 세계 최대의 입자가속기 LEP를 보유하고 있는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은 전세계 입자물리학에 관한 실험자료의 절반 정도를 제공한다.

유럽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알프스산맥의 아름다운 자연경치를 자랑하는 스위스. 이 스위스 남서부 끝에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호반도시인 제네바가 있다. 제네바 국제공항 서쪽으로 10km정도 가면 프랑스 국경이 나타나는데 이 국경을 넘으면 바로 웅장한 쥬라산맥이 앞을 가리게 된다. 쥬라산맥과 제네바 공항사이에 양국의 국경을 가운데 두고 유럽이 자랑하는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 Conseil Europeen pour la Recherche Nucleaire)이 위치한다.

CERN의 지하 1백m 지점에는 길이 27km의 거대한 도우넛 모양의 입자가속기(particle accelerator)가 현재 가동 중이다. LEP(Large Electron Positron)라 불리는 이 가속기는 전자(electron)와 양전자(positron, 전자와 정반대의 성질을 갖고 있으며 질량이 같은 입자)를 고에너지로 가속한 후 서로 충돌시켜 새로운 입자들을 얻는 장치로서, 현재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가속기다.

이곳에서는 입자물리학 연구, 즉 물질의 가장 궁극적인 구성인자를 규명하고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우주 전체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1950년대초에 창설될 때만 해도 이 연구소는 프랑스어 약자가 가리키는 대로 핵물리연구소로 시작했는데, 그후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면서 핵보다 더 미세한 입자구조를 주로 연구하게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라고 부른다.

2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1954년에 정식으로 출범한 이 연구소는, 92년 현재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유럽 17개국이 정식회원국으로서 공동투자 및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다국적 기구다. 지난해에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가 회원국이 되었으며 올해초에는 헝가리가 회원국 신청을 해놓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호주 칠레 중국 인도 루마니아 등이 공동협력협정을 맺고 있고 이스라엘과 소련이 옵저버 국가로 참여하고 있다.
 

LEP의 내부모습


유럽 물리학의 구심점

91년말 현재 CERN에 고용되어 있는 연구진과 실험실 종사자들은 3천2백여명에 이르고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과학자들(학생포함)은 6천8백명 정도다. 이곳에서 쓰여지는 1년 예산은 1960년에 1천억원(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한 것임)이었고 지금은 거의 5천억원에 달하는데, 이렇게 꾸준히 확대된 것은 유럽국가들이 순수과학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CERN에서 이루어지는 물리학 실험들은 전세계 입자물리학 실험자료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그리고 전세계의 입자물리실험자의 절반이 이곳에서 직접 일하거나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데, 미국내 실험실이나 연구소에서 일하는 유럽인보다 CERN에서 연구하는 미국인 수가 더 많을 정도다.

이와 같이 CERN은 명실공히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연구소 중의 하나이면서 또한 많은 나라들이 모여 훌륭하게 협력을 모범을 보이고 있다. 과히 유럽 물리학계의 자랑이며 구심점이라 할 만하다.

여기서 잠깐 이 연구소가 만들어진 목적을 알아보는 것은 매우 흥미있는 일일 것이다. 1950년대초 창립당시의 협약을 보면 다음과 같이 그 취지가 쓰여 있다.

"순수과학이며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는 핵물리 연구와 이와 밀접하게 관련된 연구에 있어서 유럽 국가들 사이의 공동협력을 제공한다."

4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핵물리에서 다루지 못한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입자물리학 연구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유럽 각국의 상반된 이해나 급변하는 정치상황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이러한 기초과학연구가 이루어져 온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며, 이것이 오늘날 유럽의 기초 및 응용과학의 위상을 한층 높이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CERN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기술적 또는 상업적 가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에 쓰이는 최첨단 기술의 필요성 때문에 종종 기술혁명을 일으키고 다른 분야에도 중요한 도움을 주어 왔다.

예를 들면 고전압 X선 핵에너지 반도체 의학임상기술 등이 이 연구소에서 입자물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전되어 왔는데, 이러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은 앞으로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류복지에 쓰여질 것이다.

쿼크를 찾아서

물질의 궁극적인 구성요소와 그들 사이의 통일된 상호작용을 연구하기 위해 거대하고 많은 예산이 필요한 입자가속기가 필수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우리가 미세한 물체를 관찰하려 한다면 더욱 성능이 좋은 현미경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17세기에 처음 개발된 광학현미경(optical microscope)은 인간에게 눈으로 볼 수 없고 상상할 수도 없었던 황홀함과 미세함으로 가득한 새로운 세계를 선사했다.

현미경의 분해능은 사용되는 광선(빛)의 파장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므로 물체의 내부를 더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선 더욱 파장이 짧은 광원을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물리학 이론에 의하면 파장을 짧게 한다는 것은 그 광선을 구성하는 작은 알갱이(입자)들이 에너지를 크게 하는 것을 말한다. 즉 광학 현미경보다 더 큰 분해능을 얻기 위해서 광선을 구성하고 있는 광자(photon)보다 더욱 많은 에너지를 지닐 수 있는 새로운 입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물질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 중의 하나인 전자는 광자보다 많은 에너지를 지닐 수 있는데 이는 20세기에 이르러 전자현미경(electron microscope)을 탄생시켰다. 이로 말미암아 광학현미경으로는 볼 수 없었던 분자(molecule, 1${0}^{-6}$mm 정도 크기)의 세계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게 되었다.

화학의 기본이 되는 원자(atom)는 분자보다 약간 작다. 그러나 놀랍게도 원자의 내부세계는 하늘에 보이는 우주와 마찬가지로 99.99%가 비어있음이 금세기초에 실험적으로 밝혀졌다. 즉 만일 원자를 축구장 크기로 확대해 본다면 전자들은 축구장 주위를 맴도는 반면, 가운데 있는 핵(nucleus)은 조그만 돌맹이 정도의 크기를 갖는다는 것이다. 핵을 빽빽하게 구성하고 있는 양성자(proton)와 중성자(neutron)들이 그 원자 총질량의 99.9%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핵의 내부 심층구조를 관찰하기 위해선 더욱 짧은 파장 즉 높은 에너지를 수반하는 현미경이 요구된다. 바로 이 때문에 입자가속기가 등장하게 된다. 원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양성자나 중성자를 축구장 크기로 가정한다면 돌멩이 크기를 갖는 3개의 주된 구성인자들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이것들을 쿼크(quark)라고 부른다.

현재로서는 쿼크 이하로 더 깊이 관찰하기에 충분히 강력한 입자가속기를 만들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지만 많은 물리학자들은 이 쿼크들이 전자를 포함한 렙톤(lepton)들과 함께 자연을 구성하는 마지막 요소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W,Z 입자 발견

입자가속기의 기분원리는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에너지공식 E=m${c}^{2}$ 즉 에너지(E)와 질량(m)은 동일하다는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입자들의 '에너지'는 서로 충돌하는 순간 '질량'으로 변환되고, 결과적으로 각각의 질량으로 규정되는 더 미세한 새로운 입자들이 만들어지게 된다. 다시 말하면 입자가속기는 미세한 입자구조를 조명시켜 주는 '현미경'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부분의 입자들은 매우 불안정하여 금방 사라지고 우리가 사는 자연에서는 정상적으로 볼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입자들은 특히 양성자나 중성자들의 내부 쿼크구조, 나아가 물질의 궁극적인 구성인자 및 상호작용을 이해하는데 유일하고도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단지 주어진 입자들을 높은 에너지로 가속하기 위해서 많은 비용이 든다는 점이 현실적으로 연구를 제약하는 난관이 되고 있다. 입자가속기를 건설하고 이를 유지하는데 거액의 연구비가 들기 때문에 입자물리학 연구는 거대과학(big science)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CERN이 가동한 이후 가장 훌륭한 업적이라 한다면 1983년에 원자핵 내에서 작용하는 약력(弱力, 자연을 이루는 네가지 기본힘 가운데 가장 약한 힘)을 매개하는 W와 Z입자의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이 입자들은 현재 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노벨물리학수상자 루비아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는데, 충분한 에너지를 갖는 입자가속기의 건설이 필수적이었음은 물론이다.

그후 1989년에 더 높은 에너지를 갖는 LEP가 작동하였고, 여기서 얻어진 모든 실험 결과들은 현재 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표준이론(standard model)을 뒷받침하고 있다.

실험결과 가운데 90년에 매우 주목할만한 결과가 발표됐다. 우주에는 오직 세가지 종류의 뉴트리노(neutrino, 핵붕괴시 발생하는 렙톤입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밝혔는데, 이는 표준이론에 의하면 각각의 뉴트리노에 대응하는 세가지 형태의 물질 구성입자만이 자연계에 존재함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많은 실험 결과들의 높은 정확도는 LEP로 연구 가능한 범위 이상에서 존재할지 모르는 새로운 물리학의 틀을 잡아주고 있다.
 

CERN에서 처음 발견한 Z입자


차세대 가속기 LHC

현재 CERN은 더 높은 에너지를 갖는 새로운 가속기의 건설을 활발히 추진 중이다. 현재 표준이론이 안고 있는 몇가지 문제점과 아직 실험적으로 검증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중요한 단서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 결과에 따라 어쩌면 전혀 새로운 물리학이론이 등장해야할 지도 모를 일이다.

작년 12월말 모든 회원국에 의해 만장일치로 건설하기로 결정된 차세대 가속기 LHC(Large Hadron Collider)는 1998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강력한 에너지를 갖는 양성자들을 서로 충돌시키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한편 미국이 텍사스지방에 건설하려고 하는 초대형 입자가속기SSC(Superconducting Super Collider)는 LHC보다 훨씬 높은 에너지를 갖는 만면 엄청나게 많은 비용이 드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CERN은 현재 LEP 실험외에도 다양하고 풍부한 실험을 제공하고 있는데, 필자가 지난 2년동안 일해온 입자(particle)와 반입자(anti-particle)사이의 대칭성을 연구하는 실험도 그중의 하나다. 그동안 몇몇 한국인이론 및 실험 물리학자들이 이곳에서 연구하였으며 현재 연구소측은 한국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바라고 있다.

CERN은 유럽 물리학계의 상징적 존재로서, 적어도 당분간 전세계 입자물리학 실험을 계속 주도해 나가며 중추적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도 물리학을 포함한 모든 순수기초과학분야를 우리 실정에 맞게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육성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89년7월14일 LEP가 처음 가동했다(가운데가 루비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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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제원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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