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북서부의 화산섬, 카나리아군도에 가면 화산지역의 특징들을 두루 섭렵할 수 있다.
아프리카 북서부 약 1백㎞ 지점의 대서양상에 위치하고 있는 카나리아군도는 면적 7천2백73㎢, 인구 약 1백50만명에 이르는 스페인령(領). 화산으로 이루어진 섬들이다.
이 군도는 그린카나리아 푸에르테 벤투라 란사로페 등으로 구성된 라팔마지역과 테네리페 코메라 페로 등의 산타크루즈 대테네리패지역으로 크게 구분 된다. 테네리페섬에 있는 3천7백18m의 테이디산이 이 군도의 최고봉을 이루고 있다. 이 지역은 아열대기후에 속하지만 바다의 영향으로 연평균기온이 20℃ 정도다. 따라서 최적의 피한지를 이루어 1년내내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곳이다.
저온의 산성 용암으로 덮여 있어
화산지형은 지각내부 깊은 곳에 있는 방사성물질이 폭발함에 따라 서로 다른 두개의 지각판(plate)이 이동해 충돌하는 지점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때 지각의 약한 부분을 통해 지하에 녹아있는 암석물질인 용암이 해저나 지표상으로 분출하여 화산이 생성되는 것. 화산은 그 활동여부에 따라 활화산 휴화산 및 사화산으로 분류된다.
현재 화산활동이 휴식중인 휴화산으로 이루어진 카나리아군도는 분출당시 8백~1천℃ 정도였던 비교적 저온의 산성 용암으로 덮여 있다. 이 용암은 점성이 강하여 유동(流動)이 느리게 진행됐기 때문에 카나리아군도는 울릉도와 같이 급한 해안절벽을 이루고 있다.
테이디산의 칼데라
산정(山頂)에서 용암분출이 중지되면 분화구가 생성되는데 울릉도의 나리 분지처럼 산체에 비하여 규모가 클 때 이 분화구를 칼데라(caldera)라고 부른다. 최고봉인 테이디산 주변에도 이러한 칼데라가 형성되어 있지만 침식과 풍화작용 때문에 칼데라의 파괴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화산폭발로 지표면에 분출된 용암은 커다란 지형변화를 초래한다. 용암 속에 포함된 광물의 성분과 규산의 함유량에 따라 지형의 특색이 상이하게 나타난다.
카나리아군도 지역의 용암은 점성이 강하면서 입자가 가는 세립질이기 때문에 냉각고결될 때 수축현상이 일어났다. 따라서 현무암의 주상절리들이 잘 발달되어 있다. 경사가 완만한 지역에 가 보면 용암이 덮여 평탄하게 된 용암 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화산폭발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가장 가벼운 용암물질이 표면에서 비누거품 모양으로 부글부글 소용돌이친 후 고결(固結, 뭉치어 굳어짐)된다. 이러한 과정중 용암물질 내부에 있던 공기가 다 빠져나가지 못한 상태에서 고결되면 기공이 생겨 부석(浮石)이라고 하는 물에 뜨는 암석물질이 생성 된다.
테이디산의 칼데라와 주변기슭에서 수없이 발견되는 이러한 부석층은 회색 갈색 담홍색 백색 흑색 등 다양한 색상으로 여러 겹의 층(層)을 이루고 있다. 분출 당시 부석을 구성하고 있던 광물의 성분과 용해량에 따라 색상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용암의 분출량과 분출횟수에 따라 층의 두께와 수가 결정된다.
간헐천이 솟아 오르고
지각의 내부에서 용암이 한 곳에 모여있는 지점을 마그마 방(magma chamber)이라 하고 이곳에서 산정까지 용암이 분출되는 중심화도를 주화도, 주화도에서 산 기슭의 여러 곳으로 뻗친 화도를 지화도라고 한다. 용암분출이 중지되면 주화도의 분화구는 고결되어 그만 막혀버리고 만다. 따라서 약한 에너지를 가진 용암이 다시 분출하기 시작할 때는 주화도를 통한 분출이 불가능해진다. 그 대신 산기슭의 여러 곳으로 발달된 지화도를 통하여 분출되다가 언덕이나 구릉처럼 솟아나온 소규모의 분석구를 형성한다.
지화도를 따라 형성된 구릉인 분석구들은 커다란 화산에 붙어있기 때문에 기생화산 또는 화산의 측면에 위치하게 된다. 그래서 측화산(測火山)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기생화산들은 세계적으로 분포지역이 극히 한정되어 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에트나화산, 제주도의 한라산과 더불어 카나리아화산지형이 독특한 기생화산의 특색을 보이고 있는 것.
기생화산들은 초원으로 덮여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카나리아군도의 기생화산들은 화산발달과정의 마지막 단계에 형성됐기 때문에 암석층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마치 황무지처럼 보인다.
화산이 폭발하면 용암분출 이외에 많은 양의 화산재 먼지 수증기 등이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 화산재와 먼지가 지표면에 쌓이면 응회암이라고 하는 퇴적암이 생성된다. 응회암은 냉각고결된 용암인 현무암이나 조면암보다 침식과 풍화에 대한 저항력이 약하다. 따라서 응회암은 차별침식과 풍화를 심하게 받는다. 이때 단단한 부분은 다양한 형태를 갖춘 돌기둥인 암주로 남게 되는데 테이디산 주변에서 이런 암주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재 활동중인 활화산 지역이나 휴식 중인 휴화산 주변에는 뜨거운 물이 일정한 시간마다 용출되는 간헐천이 분포해 있다. 이러한 간헐천은 카나리아군도를 비롯해 아이슬란드 뉴질랜드 미국 중서부에 발달해 있다. 폭발에 이르기에는 에너지가 부족한 지각의 내부에서 간헐천이 태동한다. 땅속으로 스며든 지하수가 뜨거워져 수압이 커지면 뜨거운 물이 밖으로 용출되고 잠시 후 수압이 떨어지면 용출을 멈춘다. 간헐천이란 이처럼 지하수의 팽창력이 증가할 때 용출이 반복되는 온천을 말한다.
휴화산으로 이루어진 카나리아군도는 지질의 역사를 통해 볼 때 비교적 최근에 침식과 풍화작용이 이루어져 토양층의 두께가 얇다. 따라서 관목과 덩굴나무들만이 성장하고 있으며 철분의 함량이 많아 담홍색 토양층을 이루고 있다.
해안절벽 주변에는 파도의 침식에 따라 5㎝ 이하의 크기로 깨어진 자갈층의 해수욕장이 소규모로 발달되어 있다. 일부 해안에서는 평탄한 해안지형과 만입이 형성되어 주변의 기생화산과 더불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뽐내고 있다.
카나리아군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화산지형인 제주도와 울릉도 등 두 화산섬의 특징들이 복합된 듯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세계의 화산대라고 하면 신생대 제4기인 2백만년 전부터 생성된 환(環)태평양화산대와 알프스-히말라야화산대가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화산지형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는데 카나리아군도는 이 두 화산대와는 무관한 화산섬들로 구성돼 있다. 그렇지만 칼데라 기생 화산 간헐천 현무암 응회암 주상절리 용암대지 부석층 등 화산지형에 흔히 나타나는 모든 특수지형과 현상들이 집중된 세계적인 화산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