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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精子)전쟁

좁은문 향한 1억대 1의 치열한 경쟁

정자는 최종결승점을 향해 경쟁적으로 질주한다. 마침내 하나의 정자가 난자의 외벽을 뚫고 나면…

생명체란 살아있는 모든 것이라고 간단히 정의할 수 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움직이고 변화에 반응하며 성장하고 생산(生產)이 가능한 존재다. 그러면 생명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일까. 이 문제는 인류가 시작된 이래로 현재까지 계속돼 왔으나 아직도 풀리지 않은 영원한 수수께끼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론들이 있다. 많은 학자들에 의해 조금씩 그 베일이 벗겨지고 있으나 아직은 상상속에서의 논리일 뿐이다.

생명을 바쳐서 자손을 퍼뜨린다.

관심을 돌려 우리의 주위를 살펴보자. 우리 주위에는 많은 생물들이 존재하고 그 속에서는 지금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고 있다. 생물의 세계는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다시말해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법칙이 철저히 지배되는 세계다. 대자연 속에는 먹이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항상 존재하며, 번식을 위해서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다툼이 계속된다. 우리는 두마리의 숫사슴이 배우자를 차지하기 위해 죽음에까지 이를 정도로 서로 싸우며, 번식기에 여왕벌과 교접한 수펄이 곧 그 삶을 마감하는 것을 봐 왔다.

수컷이 배우자를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투쟁은 종의 유지를 위한 자연현상이다. 오래전부터 많은 생물학자들은 이런 투쟁을 관찰해 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도 숨막히는 투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근래의 일이다. 바로 생명이 이뤄지는 초기단계인 정자(精子)와 난자(卵子)의 만남에서부터 전쟁은 시작된다.

자연세계에서 수컷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투쟁의 양태가 바로 정자들이 난자를 만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점이 흥미롭다. 1억마리 이상의 정자들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데 이증 하나만이 난자와의 결합에 성공한다. 결합에 실패한 정자들은 사멸할 뿐이다. 생존율 1억분의 1의 세계에서는 철저한 적자생존의 원칙만이 존재한다. 수많은 정자들은 한 눈에 보면 모두 비슷해 보이나 운동성이 불량한, 소위 생존에 부적합한 정자는 난자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여러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도태되고 만다.

그렇다고 모든 정자들이 서로 치열한 경쟁만을 벌이는 것은 아니다. 많은 무리중에는 역시 뛰어난 정자와 뒤처지는 정자가 있게 마련이다. 뒤처지는 불량한 정자들은 스스로 중도탈락되지만, 이들은 수정(受精)이 돼야 한다는 절대명제를 앞두고 연대행동을 취한다. 즉 우량한 정자의 진로를 지켜준다.

여성의 자궁경부에서 중도탈락된 정자들은 머리와 몸체가 서로 뒤엉켜 하나의 장벽을 형성하게 된다. 이 '탈락파'들은 세균과 항체같은 외적의 침입을 방지하며, 정자에게 불리한 질의 높은 산성환경을 중화시켜 동료를 살린다. 또한 다른 남성의 정자가 침입하면 이를 적으로 간주, 이들을 퇴치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1677년 네덜란드의 생물학자인 레벤후크는 현미경으로 남성의 정액(精液)속에서 활발히 움직이는 정자들을 최초로 발견했다.

그는 정자 속에 사람의 축소형이 존재하며 정자가 난자 속으로 들어가면 커져서 태아가 된다고 믿었다. 당시 정자의 발견은 학계의 커다란 관심을 끌었으며, 그의 '축소이론'은 다음 세기에도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피임백신을 여성에게 접종하면 여성의 몸안에 항체가 생겨 정자의 이동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이론이 최근 제기됐다. 사진은 피임백신때문에 운동성이 떨어진 정자
 

하루에 2억개 만들어져

그러나 오늘날에는 정자의 머리부분에 존재하는 세포핵 속에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유전물질이 포함돼 있고, 이 유전물질은 DNA와 염기성 단백질이 결합한 핵단백질로 이뤄져 있음이 밝혀졌다. 부친의 유전물질을 지닌 정자와 모친의 유전물질을 지닌 난자가결합해 비로소 하나의 완전한 세포가 형성되는 것이다.

정자의 일생은 고환에서 시작된다. 고환조직의 정세관벽에 위치한 생식세포가 여러 단계의 분화과정을 거쳐 성숙한 정자가 되려면 74일이 소요된다. 성숙한 정자는 올챙이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난원형의 머리와 꼬리로 구성돼 있다. 머리에는 핵과 세포질이 있으며, 꼬리의 운동으로 정자는 1분에 2mm 가량 전진한다. 동물마다 제각기 특유한 모습의 정자를 지니는데 머리와 꼬리의 모앙과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쉽게 구별된다.

정자는 6~8m의 정로(精路)라 일컫는 부고환과 정관을 약 12일에 걸쳐 지나면서 몸체의 불필요한 부분은 제거되고 운동성을 획득한다. 이렇게 긴 여정에 필요한 준비를 다하면 전립선주위에 위치한 저장소에 괴어있다가 사정시 일시에 배출돼 여성의 질에 도달한다. 질의 높은 산성도와 세균 등에 의해 사정된 정자의 75~90%는 죽고 나머지는 난자가 위치한 최종결승점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자는 여성의 몸속에서 3일간 살 수 있으나 난자의 수명이 24시간 정도로 짧으므로 제한된 시간내에 난자에 도달하기 위해 쉴틈없이 움직인다.

이들이 먼저 거쳐야 할 관문은 자궁경부에서 분비되는 매우 끈끈한 점액층이다. 이곳은 평소에는 막혀있다가 여성이 배란기가 되면 살짝 열린다. 즉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젠의 영향으로 점액층에 엉성한 구멍이 생기고 엷어지는데 이렇게 돼야 비로소 정자의 통과가 가능해진다.

정자가 자궁내로 진입한 뒤로는 자궁은 정자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이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한다. 정자는 자궁 끝에 위치한 난관으로 이동을 계속해 종착점인 난자에 접근한다. 사정된 정자가 난자에 도달하기까지는 60~80분이 소요되며, 사정된 1억마리의 정자중에서 2만마리 가량이 난자에 접근하게 된다. 난자의 주위에 모인 정자들은 저마다 효소를 분비, 난자를 보호하고 있는 외벽을 뚫으려 한다. 이중 한마리가 외벽을 뚫고 난자속으로 들어가 수정에 성공함으로써 치열한 경쟁의 대단원은 막이 내린다. 수정에 성공한 난자는 자신의 외벽에서 효소를 분비해 다른 정자가 침입하는 것을 차단한다.

정자는 하루에 2억개가 만들어진다. 일생을 통해 남자는 8조개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수의 정자를 생산한다. 수정에는 단지 한마리의 정자만 필요한데 왜 수많은 정자들이 만들어지고 사정될까. 대답은 자명하다. 수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생명이 이어져야 한다는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것이다. 난자에 이르는 긴 여정중에 대부분이 탈락되고 난자에 접근하더라도 굳게 닫힌 난자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수만마리의 정자가 필요하므로 출발부터 수많은 정자가 있어야만 수정이 가능하다. 실제로 정자수가 많을수록 수정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따라서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절대수 이상의 정자를 꼭 생산해야 한다.

금슬좋은 부부일수록…

곤충에서 포유동물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종(種)에서 암컷이 다수의 수컷을 거느리는 일처다부제의 사회형태가 존재한다. 이러한 형태의 습성은 암컷에게 이로운 점이 많다. 가장 능력있는 수컷을 차지할 수 있고 충분한 양식을 제공받을 수 있으며 보호도 받을 수 있다. 일처다부제의 사회에서는 암컷을 차지하려는 수컷들의 경쟁이 치열할 수 밖에 없다. 수컷은 경쟁상대에게 이겨야만 정자의 제공이 가능하고, 이미 다른 수컷의 정자가 제공된 경우에는 암컷의 내부에서 정자들의 싸움이 시작된다. 여기에서도 가장 활동적이고 수가 많아야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영장류의 정자수에 대한 연구를 보면 암컷의 일처다부제율이 높은 종일수록 수컷들의 정자생산능력이 증가한다. 여우원숭이에서 고릴라까지 2백여종에 이르는 영장류들을 조사해 보면 일부일처에서 배우자가 일정치 않은 혼교양태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사회습성이 존재한다. 다수의 수컷이 암컷을 접할 수 있는 체계가 형성된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정자를 많이 생산한다. 반면 암컷 여럿을 거느리는 고릴라는 고환이 작고 정자수가 적어 1회 사정에 6천5백만마리의 정자가 사출된다. 하지만 무리를 지어 사는 여우원숭이는 상대적으로 고환이 크고 1회에 수억마리의 정자를 내보낸다. 단일배우자를 고집하는 인류도 이같은 경향에서 예외일 수 없다. 다른 영장류들과 비교해보면 정자수가 적어 1회 사정에 1억마리가 사출되고 운동성도 떨어진다.

종에 따라서 정자수의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개체에 따라서도 정자수는 제각각이다. 특히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영국 맨체스터대학의 생물학교수인 베이커와 벨리스의 실험에 따르면, 쥐에서 수컷의 교배환경에 변화를 주면 정자생산에 변화가 온다고 한다. 그들은 한 실험군(群)에 여러 마리의 암컷과 한마리의 수컷을 서식시켰다. 그리고 다른 실험군에는 여러마리의 암컷과 두마리의 수컷을 서식시키되 그중 한마리만이 교배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그랬더니 수컷 한마리만 있는 실험군에서는 수컷이 평균 2천9백70만마리의 정자를 1회에 사정했다. 그러나 수컷 두마리가 있는 실험군에서 교배를 못한 수컷은 5천1백60만마리의 정자를 사출했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체로 여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남성의 정자생산 능력이 줄어든다. 베이커와 벨리스는 남녀 10쌍의 성생활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하루중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은 부부일수록 정자가 적게 생산됨을 알아냈다.

정자가 난자를 만나지 못해 수정이 되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를 기대할 수 없으며, 생명은 그 세대를 끝으로 중단된다. 이런 상태를 불임(不姙)이라 한다. 불임의 원인은 남성과 여성 양측에 다 있을 수 있으나 여기서는 남성 특히 정자를 중심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이미 언급했듯이 수정이 되려면 우선 충분한 수의 정자가 생산돼야 하며, 또 정자들은 활발한 운동성을 보이고 안전하게 여성의 체내로 사정돼야 한다. 이같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임신이 가능하며, 어느 한가지라도 결함이 있으면 자녀를 갖지 못한다.

그런데 여러가지 원인에 의해 정자생산이나 이동에 장애를 받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때 원인질환을 치료함으로써 정상으로 회복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장애가 지속된다. 호르몬이나 약물을 투여해 부분적으로 정자생산을 늘리기도 하나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의학은 인공수정과 정자냉동법을 개발했다.
 

4천배로 확대한 정자
 

난자의 외벽에 인공적으로 구멍을 내

인공수정이란 남자의 정액을 모아 여성의 자궁속에 넣는 것이다. 이 방법을 도입하면 자연수정시 정자가 자궁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높은 정자사망률을 방지, 자궁내로 많은 수의 정자를 주입함으로써 수정의 가능성을 높인다. 요즈음은 정자가 난자에 이르는 모든 경로를 생략하고 여성에게서 채취한 난자를 시험관에서 정자와 결합시켜 수정에 성공한 수정란을 자궁에 직접 착상시키는 체외수정법(in vitro fertilization)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 다시 말해 시험관아기가 생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난자를 둘러싸고 있는 외벽에 인공적으로 구멍을 내어 정자를 주입하는 방법이 실험되고 있다.

정자냉동법은 혈액을 냉동으로 보존했다가 사용하듯이 정자를 장기간 체외에서 -1백96℃로 냉동보존했다가 필요할 때 녹여서 인공으로 수정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여러 용도로 사용되는데 예를 들어 정자가 부족한 경우에 여러 번의 사정을 모아서 한번에 쏟아부음으로써 수정할 수 있게 한다. 배란이 불규칙적인 여성의 경우, 남편의 정액을 모아 배란일 주위에 정액을 집중투여함으로써 임신율을 높인다. 부부가 떨어져 살면서 임신을 원하는 경우 남편의 냉동된 정액을 소포로 배달해 사용할 수도 있다. 장차 남편의 정자생산에 지장이 있을 경우를 대비하는 저장방법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알다시피 종(種)의 진화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해 각 개체에서 정자의 생산력이 변한다. 이로써 자연속에서 생명은 계속된다. 우주에서 초자연의 거대한 힘에 대항하는 유일한 존재는 바로 우리 인간이다. 인간은 생명의 신비를 밝혀내기 시작하자 이제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면서 그들 스스로 수태를 조절하려 한다. 현대의학은 생식(生植, reproduction)에 관한 많은 지식을 제공하고 있으며, 불임 연구를 통해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여러가지 방법으로 임신을 유도한다. 자손을 갖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이 집요한만큼 불임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이와함께 생명의 신비도 차츰 그 베일이 벗겨질 것이다.
 

정자의 모양도 제각각^동물마다 제각기 다른 모습의 정자를 지닌다. 정자의 머리가 새앙쥐 쥐 햄스터 등에서는 매부리 모양이고, 토끼 기니피그 사람 등에서는 주걱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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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무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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