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의 해상에서는 매달 1백만 갤론급의 석유 유출사고가 한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1989년 3월 23일 바람없는 밤이었다. 미국 알래스카 남부의 발데즈 항에는 엷은 눈같은 안개가 깔리고, 보트의 불빛들이 물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발데즈 항의 파이프라인 터미널에서는 약 20만 킬로리터의 원유가 유조선 엑슨 발데즈로 선적됐다. 미국에서 가장 큰 정유회사인 엑슨(Exxon)사 소유의 이 유조선은 저녁 9시 26분 원유 선적을 끝내고 파이프라인 터미널을 떠났다. 엑슨 발데즈라는 이름으로의 마지막 항해였다.
엑슨 발데즈호는 1986년 건조된 이래로 발데즈 터미널에 28번 다녀갔으며, 이번이 29번째 항해였다. 알래스카를 떠나 닷새반 동안 캐나다와 미국의 서쪽 해안을 끼고 항해하여 캘리포니아의 롱비치까지 기름을 수송할 예정이었다. 길이가 3백4m나 되는 이 거대한 유조선은 시속 24㎞의 속도로 물을 박차고 달릴 수 있지만, 최고속도로 달리다가 배를 정지시키려면 4.8㎞나 미끄러져야만 했다. 이 배의 선장은 조셉 하젤우드. 그는 엑슨 함대의 가장 우수한 선장 중의 한 사람이었다.
발데즈 호가 터미널을 떠난 지 한 시간 후, 가장 위험한 해역인 발데즈 해협을 통과하고 있었다. 엑슨 발데즈가 항구를 빠져나가서 안전한 외해로 항해할 때까지는 발데즈 항의 항내 항해사인 에드 머피가 키를 잡고 있었다. 그는 이 지역의 전문가여서 해역의 암초나 지역적인 특성에 대해서 훤히 알고 있었다. 무사히 해협을 통과한 그는 밤 11시 35분 작은 보트를 타고 발데즈 항으로 되돌아갔다. 이슬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었고, 앞으로의 여행은 순조로울 것만 같았다.
하젤우드 선장은 항로에 떠 있는 몇개의 빙하를 피하기 위해서 약간 항로를 변경할 것을 연안 경비대에게 보고한 후, 허락을 받았다. 엑슨 발데즈는 항로의 왼쪽으로 돌아 빙하를 피해 나갔다. 선장은 3등 항해사에게 몇분 후 항로를 원위치 시키라고 지시하고는 선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얼마후 문제가 발생했다. 3등 항해사가 조타수에게 너무 늦게 방향전환을 지시했거나, 아니면 조타수가 지시를 충실히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선실에 있던 선장이 "긴급상황입니다"라는 전화를 받은 00시 04분, 탱커 엑슨 발데즈는 굉장한 충격과 함께 물속의 암초를 들이받고 말았다.
유조선의 파열된 부분에서 원유가 용솟음쳐 나와 1m 정도의 파도를 만들면서 물위로 퍼져나가고, 유조선은 암초에 걸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기름냄새가 진동을 하고 기름이 한쪽으로 급작스럽게 빠져 나가면서 유조선은 균형을 잃고 기울어질 위기에 처했다. 배가 전복된다면 그 차가운 물속에서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선장은 20분 동안이나 연안경비대에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는 필사적으로 선체를 암초로부터 떼어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은 모두 허사였다. 새벽 2시, 엔진은 꺼졌고 선체 하부의 5.5m나 되는 구멍에서 기름이 계속 바다로 흘러 나가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시간 동안 약 4만1천6백 킬로리터(kl) 검은 기름이 바다로 쏟아져 버렸다. 5백ml짜리 가정용 맥주병에 담는다면 8천만병이나 되는 엄청난 양의 원유가 태초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알래스카의 바다로 퍼져 나간 것이다. 검은 기름은 바디에 떨어진 원자폭탄이나 다름없었다.
유출사고가 난 후 사흘동안은 무척 날씨가 쾌청해서 기름 수거작업이 유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방제작업을 할 수 있는 장비가 태부족이었다. 사고 후 18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오일 펜스(oil fence)와 스키머(skimmer) 등이 도착했지만 엄청나게 쏟아져 나온 기름을 처리하는 것은 사실상 역부족이었다. 70시간 동안에 방제계획상에 명시된 양의 15% 밖에는 회수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사흘후부터는 폭풍이 닥쳐오는 바람에 방제작업을 전혀 할 수 없었고, 초속 20m의 강풍에 항공기도 발이 묶여 유처리제도 뿌리지 못했다. 기름은 4일만에 50㎢의 면적으로 퍼졌고, 그 후 한달동안이나 기름띠가 해역에서 발견됐다. 12개의 해양 국립공원이 있는 이곳 알래스카의 약 2백㎞의 해안이 기름으로 뒤덮였다. 90여종의 바다새가 30만 마리나 죽었고, 1천여마리의 수달이 기름범벅이 되어 죽어갔다. 자원봉사자들이 몰려들어 기름에 오염된 새들과 수달들을 구하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하지만 검은 기름으로 뒤덮인 해안은 인간의 힘으로는 다시 원상태로 되돌릴 수가 없었다. 엑슨사는 1년에 약 20억 달러(한화 1조5천억원)나 되는 어마어마한 돈을 뿌렸고, 1만1천여명이 오염된 해안에서 정화작업을 계속했다. 유출된 기름의 약 30%는 증발했고, 25% 정도는 회수되었지만 그 나머지는 영원히 다시 주워담을 수 없었다. 갖가지 정화기술이 동원됐음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인 조치들은 오히려 피해를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연간 어획고가 5백억원대인 주변의 연어와 청어 어장도 간접적인 피해를 입었고, 법정에서는 향후 20년간에 대한 피해보상이 논의되었다. 피해추정을 위한 과학자들의 대규모 조사가 수년간 계속되고, 오염된 해안은 해양오염 연구의 거대한 야외실험장이 된 셈이었다.
미국 국회는 엑슨 발데즈의 충격으로 10년간 끌어오던 유류오염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으며, 방제기술과 방제계획의 전면 보완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전세계의 해상에서는 매달 1백만 갤론급의 석유유출사고가 한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매달 75대의 유조선이 알래스카의 원유를 싣고 발데즈항 터미널을 출발하는한 또다른 사고의 가능성은 항상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알래스카의 법정에서는 엑슨사에 대한 약 5천억원의 피해보상 소송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90년 3월 알래스카 법원은 하젤우드 선장이 기름을 유출시킨 데 대해 유죄판결을 내리고, 5만 달러의 벌금과 함께 오염된 해안에가서 1천시간의 청소작업을 하라는 체형을 선고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피해보상을 하고, 해변에서 기름을 걷어내는 정도라면, 망가져 버린 태초의 아름다움을 되살리고 생물들이 다시 깃들도록 만드는 것은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