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형윤회가 지질시대에 수없이 반복됐음을 지구역사는 말해준다" - 동일과정설의 입장
문 밖에 나서면 흙이나 암석이 널려있는 자연이 눈에 들어온다.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각종 초목들, 그들 사이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각종 동물들, 산의 계곡이나 절벽, 강 바닥에 흘어져 있는 모래와 자갈들, 이들은 어떻게 만들어져 현 위치에 존재하는 것일까.
이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꾸준히 관심의 대상이 돼온 것이다. 2천7백여년 전 창세기를 기록한 선지자들은 이 모든 자연물을 하나님의 일시적인 창조물로 해석했으며 이러한 자연관은 종교와 데불어 오랫동안 일반인의 사상을 지배했다.
그러나 1543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비롯해 근대과학이 등장함에 따라 창세기의 자연관은 수정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특히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되면서 생명에 대해서까지도 자연과학이 깊숙이 간여하게 되자 종교계와의 갈등은 더욱 노골화됐다.
최근 국내에서 일고 있는 창조론자들의 주장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며, 21세기를 바로 눈앞에 둔 현시점에서 그런 주장이 나온 것은 실로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무튼 우리 학계의 현주소를 자성케 하는 계기로 생각된다.
지형은 윤회한다
창조론자들이 대격변설 또는 급변설을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창세기의 설화를 역사적인 사실로 믿고 성서에 나오는 아담 이후의 연대를 합산, 지구가 B.C. 4004년 10월 26일 오전 9시에 창조됐다고 하는 아일랜드의 대주교 어셔의 낭만적인 말(1654년)을 따르는데 있다. 지금부터 6천년 정도의 짧은 나이로 지각 속에서 관찰되는 모든 자연현상을 해석하려면 부득이 급변설을 주장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백만의 생물종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수십억년의 긴 시간이 소요됐을 것이라는 다윈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지구의 나이에 관해 과학자사회에서 어떻게 연구돼 왔는가는 '과학동아' 9월호에 실린 "지구의 나이, 지금 몇살인가?"라는 정창희교수의 글에서 자세히 설명돼 있다.
예를 들어 하천변에 놓인 둥근 조약돌 하나를 생각해 보자. 이 조약돌은 분명 상류의 어느 기반암이 풍화를 받아 유리된 뒤 현 위치까지 운반돼 온 것이다. 운반되는 동안 다른 돌과 충돌함으로써 마모돼 둥근 모습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평상시에 하천 바닥 위를 움직이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가. 대부분의 시간을 정지된 상태로 보내다가 일년에 한두 번 큰 홍수가 날 때에만 약간 움직일 뿐이다. 이러한 상태로 수십, 수백km를 이동해온 것이다. 기반암이 지표에서 풍화를 받는데 소요되는 시간, 일단 유리된 뒤 현 위치로 운반돼 오면서 소요된 시간은 얼마나 될까. 확실한 것은 6천년의 시간은 조약돌 하나의 성인(成因)을 과학적으로 해석하기에도 너무 짧다는 사실이다.
현재 지표상에 나타난 여러 지형의 기복은 대부분 하천의 침식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그러면 하천의 침식속도는 얼마나 될까. 이는 환경과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으나 분명한 것은 1년에 1mm 이내이며 빨라도 1mm를 크게 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2, 3km의 계곡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수백만년이 소요됐을 것임을 간단히 알 수 있다. 이러한 지형윤회가 지질시대에 수없이 반복됐음을 지구역사는 말해준다.
범과학적 이론으로
이러한 현상을 주의깊게 관찰한 영국의 허튼(James Hutton, 1726~1797)은 그의 유명한 저서 '지구의 이론'에서 "지구의 나이는 무한대이며 우리가 현재 관찰할 수 있는 자연현상이 과거에도 동일하게 일어났으며, 현재 지구상에서 관찰되는 현상을 통해서만 과거에 일어난 현상에 대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이 곧 "현재는 과거의 열쇠다"라는 말로 축약해서 표현되는 동일과정설이다.
그후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은 허튼의 이론을 받아들여 이를 더욱 발전시켰다. 즉 그는 '지질학 원리'라는 저서에서 지각에서 관찰되는 큰 변화들은 모두 과거 오랜 시간속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가 누적돼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점이설이라고 하는데 허튼의 동일과정설과 더불어 지질학의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허튼과 라이엘의 학설은 현재 지각에서 관찰되는 과거의 변화들을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며 급변설에서 주장하는 초자연적인 큰 변화나 신비의 개념을 자연과학에서 추방하는데 기여했다.
라이엘의 점이설은 다윈에게 영향을 미쳐 생물계에서도 작은 변이가 오랜 세대를 거치는 동안 누적돼 큰 변화, 즉 새로운 종을 탄생시킨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허튼과 라이엘의 이론은 한동안 프랑스의 유명한 척추동물 고생물학자 퀴비에를 비롯한 수많은 학자들의 반대에 부딪쳤으나 이제는 과학자 사회에서 부동의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다만 일부 학자들이 동일과정설에 대해 아직도 약간의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즉 하나는 동일과정설이 자연법칙의 초시간성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지질학에 국한된 개념은 아니고 범과학적 이론이므로 구태여 지질학만의 원리라고 주장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 하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과거에 일어난 변화가 동일과정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현재와 반드시 동일했겠느냐 하는 점이다. 예컨대 최근 거의 정설로 대두되고 있는 운석충돌설은 우리가 현재 경험하지 못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구상의 생태계가 지질시대를 지나오면서 크게 변화해 온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시생대와 원생대를 거쳐 고생대 초기까지 육상은 생물이 살지 못한 완전한 불모지였다. 이에 따른 지구상의 변화도 현재 우리가 관찰하는 현상과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방금 예로 든 첫번째 반대론은 동일과정설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적용대상을 더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또 두번째 반대론은 동일과정설 자체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고 특수한 경우가 지구역사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며 그 바탕에 생물의 진화를 깔고 있다.
물고기도 익사하나?
창조론에서는 화석을 노아홍수시에 익사한 생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화석을 현장에서 관찰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의 잘못된 판단이다. 화석은 그것을 포함하는 지층이 퇴적물로 쌓일 당시에 지구상에서 살던 생물의 유해나 흔적이다. 이들이 만일 대홍수 때문에 일시에 익사한 생물의 유해라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지적한대로 지표면에 던져져 있어야지 어떻게 단단하게 굳어진 지층속에 들어있는 상태로 발견되는가. 그리고 물고기도 익사하는가.
우선 알기 쉬운 공룡과 같은 거대화석을 생각해 보자. 공룡화석들은 모두 중생대 지층에서 발견되고 있다. 골격화석은 물론이고 발자국화석도 암석으로 단단하게 굳어진 지층속에서 발견된다. 1982년에 발견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해안일대에서 나타나는 공룡의 발자국 화석('과학동아', 1991년 3월호 참조)은 지층과 지층 사이의 성층면에 나타나는데 위에 덮인 지층을 들어내면 계속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들 화석은 지층이 쌓일 당시 현장에 살았던 생물의 흔적임을 부인할 수 없다. 발자국화석은 공룡이 뻘이나 점토가 쌓인 퇴적물 위를 딛고 지나가 발자국을 만든 뒤 지워지지 않은 상태로 굳어지고 다시 그 위에 다른 퇴적물이 덮여 암석으로 굳어진 것이다. 현재 우리가 발자국화석을 지표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은 그 위에 덮인 지층들이 다시 침식을 받아 제거됐기 때문이다.
하위지층에서 상위지층으로 갈수록 '무척추동물→어류→양서류→파충류→조류→포유류' 등의 순서로 산출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이 사실을 창조론에서는 두뇌가 발달된 순서에 따라 노아홍수를 대피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즉 덜 발달한 종류들은 일찍 매몰돼 하위지층에서 발견되고 발달된 것일수록 산 위로 대피, 상위지층에 매몰됐다는 것이다. 이는 지형(地形)의 고도와 층서상(層序上)의 상하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만화같은 이야기다.
지층의 상하는 층서학적 상하를 가리키는데 이는 지형학적 상하와 무관하다. 현재 높은 태백산맥에서 발견되는 고생대 지층들은 지형으로 봐서는 상위지만 층서로는 하위에 속한다. 한편 현재 하천바닥의 사력층(砂礫層, 자갈층)은 주위의 산이나 언덕보다 고도가 낮지만 층서로는 최상위에 해당한다. 암석이나 지층이 생성된 순서에 따라 먼저 형성된 것은 아래에 두고 뒤에 생성된 것은 위에 두어 층서의 상하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화석이 보존된 상태가 급변설을 지지해 준다고 창조론자들은 주장한다. 한 예로 식물화석이 포함된 지층의 상하 암석의 연대차가 4백만년이라고 지질학에서는 주장하는데 4백만년 동안 어떻게 나무가 파괴되지 않은 상태로 보존될 수 있는가 하고 지질연대를 의심한다. 그러나 식물화석이 매몰되는 시간은 사실 순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상하 암석의 연대차 4백만년은 어디에 기록됐단 말인가.
이 문제는 한동안 지질학의 수수께끼였다. 지구의 나이를 지층의 두께로 측정한 초기 지질학자들은 길어야 2억년 이내로 생각했는데 방사성 원소로 측정한 연대가 수십억년으로 나타나 처음에는 이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문제는 소결층(小缺屬, diastem)이론이 나타남으로써 자연히 해소됐다.
소결층이론이란 퇴적물이 운반돼 쌓인다고 해서 곧 바로 지층으로 남는 것이 아니고 퇴적에 알맞는 조건 하에서만 암석으로 굳어진다는 것이다. 그밖의 조건에서는 설령 퇴적물이 쌓인다 하더라도 곧 침식되거나 다른 곳으로 운반돼 지층으로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지질학의 상식이 된 기본이론이다.
즉 연속적으로 놓인 지층들(이를 정합관계의 지층이라고 한다) 사이에는 그 지층들의 두께가 대표하는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의 무퇴적(퇴적이 일어나지 않는) 기간이 함몰돼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정합관계의 지층도 사실은 계속해서 퇴적된 것이 아니고 상당히 오랜 시간의 무퇴적기간이 지층들 사이에 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식물화석을 포함하는 지층 자체는 비록 일시에 퇴적됐지만 4백만년이라는 긴 시간은 지층 상하의 층리속에 함몰돼 있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캄브리아기 대폭발과 진화
고생대 캄브리아기에는 거의 모든 문(門)에 해당하는 생물들이 화석으로 발견된다. 이는 그 이전, 즉 약 40억년간의 시생대 원생대와 비교하면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생대와 원생대에도 화석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매우 드물 뿐이다. 이러한 캄브리아기의 폭발적인 생물의 등장은 진화학의 흥미있는 연구의 대상인데 당시의 대번성이 창조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일시 창조설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이 현상을 과학자들은 대기성분의 진화(유리 산소량의 증가와 오존층의 형성 등)와 관련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캄브리아기에 모든 생물이 일시에 나타난 것은 아니다. 우선 척추동물과 육상식물군은 아직 등장하지 않는다. 이들을 제외한 모든 생물의 문(門)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지만 그렇다고 그 당시의 화석종(種) 가운데에서 현재까지 존재하는 것은 없다.
'과학동아' 91년 8월호에 게재된 '진화냐? 창조냐?' 논쟁에서 언급된 "캄브리아기 화석들의 생김새가 놀랍게도 현존생물들의 모습과 차이가 없다"는 신경생물학자의 이야기는 화석에 대한 무지를 나타낸 것이다. 생물개체들마다 수명이 있듯이 모든 생물종은 각각의 수명이 있다. 즉 첫 출현의 시기와 소멸의 시기가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은 분명히 진화를 증명해 준다고 볼 수 있다. 비록 보존이 불완전해 창조론자들의 주장대로 연계종이 많이 나타나지는 않으나 이는 화석의 보존문제와 진화의 기구(機構)에 관계되는 것이다.
생물의 진화를 실험으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논리는 조약돌이 현재 하천바닥에 놓여있을 뿐 마모되는 현상을 볼 수 없으므로 조약돌의 성인에 관한 설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진화현상을 좁은 실험실에서 재현하기 어려운 것은 진화가 거대한 시공간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과학동아' 논쟁에서 신경생물학자가 지적한대로 생명의 기원이나 생물의 진화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다양하게 접근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학자는 각자 자기 전문분야에서 접근해야지 타분야에 대한 기초도 없이 잘못된 선입관을 갖고 공개된 논쟁에 참여하는 일은 일반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릴 염려가 있다. 그리고 양측의 이론을 독자들에게 제시해 스스로 비교 판단하도록 하자는 말은 언뜻 생각하면 공정한 듯 하나, 그에 앞서 창조론을 과학의 범주에 속하는 다양한 이론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느냐가 밝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