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의 근대역학은 철학으로부터 과학을 독립시켰고 산업혁명과 기계제 공업의 발전은 자연과학내에 독자적인 기술학의 성립을 가져왔다.
지난 89년 문교부 산하 중앙교육평가원에서 전국의 대학생을 상대로 작성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외 36%가 학과를 옮기고 싶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과의 선택이 인생의 갈림길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을 때 이렇게 많은 이들이 진로 선택 이후에도 계속 갈등을 겪고 있다면 이것은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결과의 근본적 원인은 점수에 맞추어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게 하는 현행 입시제도에서 찾을 수 있겠으나 진로 교육을 따로 하지 않는 교육풍토에도 문제점은 있다.
학과를 선택할 때 누구의 도움을 많이 받는가라는 질문에 거의 과반수 응답자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다고 답했고 정보 수집은 주로 진학 전문잡지를 통해서라고 했다. 즉 아주 개인적인 차원에서 자신들이 접할 수 있는 편협한 정보, 빈약한 지식에 의존해 과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날로 분업화, 전문화 되어가는 사회적 추세에 부응해 대학에서의 학과나 연구내용도 매년 증설, 심화되고 있다. 특히 이공계의 경우 이름도 생소한 첨단학과는 물론 기존의 학과들도 산업·경제의 요구에 따라 변천을 겪게 된다. 여기서는 진학을 앞둔 고등학생들에게 자신의 학과선택에 도움을 주고자 현재 이공계 대학에 개설돼 있는 주요학과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성립됐는지를 소개한다.
과학사의 전환점, 뉴턴과 아인슈타인
자연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으로서의 자연 과학은 인류의 탄생이후 계속 집적돼 왔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자연과학이라 부르는 분야 중에서도 일찍부터 한 분야로 체계화된 것은 수학 천문학 의학처럼 검증이 가능하고 토지 측량이나 농사 질병치료 등 당장 생활에 이용되는 분야들이었다.
수학과 천문학은 5천년전 도시가 처음 출현한 이래로 관찰을 거듭하고 방법에 방법을 더해가면서 발전해 왔다. 태양력과 태음력을 조화시키는 문제는 당시 수학이 해결해야 할 가장 어려운 문제였고 그리스인들은 천체를 시각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기하학을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 문명이 몰락한 이후 인도와 아랍을 중심으로 대수학, 아라비아 숫자의 발명 등이 있게 된다. 수학적 방법론은 천체 연구 등에 적용돼 천문학을 한층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킨다. 이밖에 오늘날 개별과학으로 구분될 수 있는 지식들은 자연철학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물리학과 화학의 기본 내용이라 할 수 있는 '만물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하는 질문은 당시 자연철학의 주요과제였던 것이다.
이들 지식이 자연철학에서 벗어나 물리학 화학 생물학등으로 구별 정립되기 시작한 것은 뉴턴의 천체물리학이 완성되던 과학혁명을 거치면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스러운 운동'으로 탄생한 역학은 뉴턴의 만유인력개념과 운동에 관한 3법칙의 정립으로 비로소 근대역학으로 전환된다.
뉴턴이 근대역학에서 사용한 개념을 바탕으로 자연현상을 해석하려는 경향들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그때까지 개별적인 지식으로 남아있던 전자기학 열역학 분야가 차례로 체계화하여 오늘날과 같은 물리학 분야가 독자적인 학문으로 구별 정립된다.
물리학을 본따 생물학에서도 종합화 체계화가 이루어지는데 생물학에서는 이러한 일이 해부학적 지식의 발전 현미경의 발명으로 촉진됐다. 해부학의 발전으로 인체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이 용이해졌고 현미경으로 생물의 기본구조를 밝히는 세포학이 발전된다. 이어서 다윈의 진화연구가 이어지고 생명의 기원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이다.
연금술과 약을 만드는 기술을 통해 축적된 화학지식들은 18세기 라브와지에에 의해 근대화학으로 분리 정립되는 계기를 맞게 된다. 질량비례의 법칙 일정성분비의 법칙은 모두 근대화학의 아버지 라브와지에가 발견한 것이다. 이후 19세기 원자 분자 개념의 발전, 원자의 실험적 확증으로 화학은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모습을 띄게 되었다.
과학혁명을 계기로 분화정립된 이들 과학은 20세기에 아인슈타인의 등장으로 다시 한번 전기를 맞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의 발전은 물리학에서 소립자 물리학 원자핵물리학 고체물리학의 발전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화학이나 생물학에서도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게 했다.
생물학에서는 유전자 구조의 발견으로 분자생물학 영역이 새롭게 구축됐다. 한편 천문학에서는 물리학의 성과를 응용해 우주 팽창설 등을 제기하는 현대우주론이 한 분야로 자리잡았으며 기술과학의 발달로 관측천문학이 발전, 전파 천문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도 등장하게 됐다. 또한 과학혁명기를 통해 연관을 맺기 시작한 과학과 기술은 20세기 자연과학에 기초한 새로운 기술공학의 탄생으로 더욱 밀접한 연관을 맺게된다. 즉, 현대 자연과학은 전자공학 컴퓨터공학 원자핵공학을 탄생시키는 등 공학상에도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과학과 기술 대신에 과학기술이라는 용어가 무리없이 사용되고 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이들 분야외에도 구체적인 대상에 따라 분류되는 지구과학 기상학 해양학 등은 앞선 과학 분야에서 과학적 방법들이 정립된 후에 실질적인 발전을 보게 된다. 자기의 성질에 관한 연구가 물리학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지구 자체가 거대한 자석이라는 사실이 발견되고, 생물학에서 진화론의 발전이 이루어짐에 따라 지구생물연구에 관한 과학적 체계화가 이루어진다. 이로부터 지구과학이 종합화된 것이다.
고대부터 관측 기록 등으로 존재하던 기상학은 19세기 중반에서야 독자적인 분야로 발전했고 컴퓨터 기술의 발달, 관측 장비의 발전으로 예측성에서 현저한 발전을 보게 된다. 근대적인 의미의 해양학은 1872년 영국이 해저 통신 케이블을 개설하기 위해서 군함 챌린저 호로 해양탐사한 것을 기원으로 볼 수 있다. 챌린저호의 세계주항탐험으로 북해의 생물, 해저지형 등에 관한 지식을 축적하게 된다. 이어진 남극과 북극의 부유생물의 채집은 해양생물학 등의 발전을 가져 왔다.
지구과학은 물리학 생물학 화학의 발전에 따라 20세기 초반까지는 고생물학과 암석의 연대연구로 개별적인 발전과정을 겪었다. 1960년대 이후 고지자기 해석을 중심으로 전 지구적인 규모의 연구가 진행되고 대양저(大洋底)확대설과 대륙이동설이 나오면서 급속한 발전을 보게된다. 지구과학은 최근에 와서야 지구를 대상으로 하는 독립된 과학 분야로 종합화 체계화 됐다.
산업혁명으로 독자적인 기술학 성립
인간은 일찍부터 도구를 사용하고 이 도구의 개량을 통해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해 왔다. 이 도구를 개량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지식들이 오늘날 공학, 혹은 기술학의 원천이다. 기술은 간단히 정의해보면 '생존을 위한 물질의 생산방법에 관한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은 장인들의 경험을 통해 발전해 오다가 근대과학의 정립과 더불어 하나의 학문으로서 체계를 갖추게 된다.
신분이 낮은 장인들과 직인들에 의해 전수되어 오던 기술이 공학으로서 사회적 지위를 얻고 대학에서 과학과 나란히 교육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독일 영국에 교육기관이 설립되면서부터다. 1794년 프랑스에는 에콜 폴리테크니크가 세워진다. 여기서 최초로 과학기술교육이 조직적으로 개시되어 수학 물리학 화학 기계학 제도분야의 강의가 시작된다. 이보다 앞서 과학혁명의 여파가 기술의 근대화를 가져오면서 프랑스에는 1720년 축성술과 포술 전문가 양성을 목적으로 군사 학교가 설립됐고 이어 1747년 토목학교가 설립돼 기술자를 양성해냈다. 이들 전문학교는 최초의 기술학교들이기는 하나 종합적인 기술교육이 실시된 것은 에콜 폴리테크니크가 설립된 이후다.
독일에서는 18세기 말 괴팅겐 대학의 베크만이 기술학을 체계화하기 시작하여 19세기 중반에 와서 공학으로 사회적 지위를 갖추었다. 영국에서도 스미튼(1724~1795)이 '시민을 위한 공학'을 제창하는 등 산업혁명 이후 대학에서의 기술학 강의 필요성이 높아 졌으나 이 요구들이 실현된 것은 1804년 글래스고 대학에 공학강좌가 개설되면서부터다. 여기서는 동력학과 토목공학의 강좌가 시작됐다.
공학분야에서 일찍부터 학문적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기계공 학 토목공학 재료공학 건축학 도시공학이었다. 기계 재료의 성질, 재료의 강도나 변형, 기계를 구성하는 각 부분의 상대운동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기계설비 등을 연구하는 기계공학은 산업혁명 이후 증기기관의 출현 등으로 크게 발전한다.
토목에 관한 자연현상의 뒤에 숨겨진 법칙을 탐구하고 그 성과를 토목구조들의 건설에 응용하기 위한 학문인 토목공학은 18세기 후반 학문으로 체계화됐다. 처음에 군사기술로 연구되던 토목공학은 산업혁명기에 영국으로 전해지면서 철도 운하 수도 등의 산업용 시민활동의 토목공사와 결부되어 내용의 발전을 보게되고 도시공학의 모태가 된다.
공학적인 입장에서 도시문제를 해결하고 도시계획의 이론과 기술을 연구하는 도시공학은 19세기 교통수단의 발전과 더불어 토목 공학에 기초하여 체계화됐다. 각종 건축자재의 강도 휨정도 탄성 등 재료 특성을 연구하는 재료공학은 18세기 프랑스 공병학교에서 연구되기 시작하여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설립과 함께 크게 성장하게 된다.
산업혁명 이후 기계제 대공업이 성장하고 화학, 전기산업들이 새로이 발전하면서 이들 산업에 필요한 기술들이 급격히 증가된다. 이 과정에서 제어공학 화학공학 전기공학 산업공학이 학문으로 체계화된다.
과학으로서 화학공학의 시초는 1772년 독일 괴팅겐 대학 교수 베크만이 화학공학의 개념을 정의한 때로 볼 수 있다. 화학공학이 급속히 발전한 것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로 에콜 폴리테크니크, 빈의 종합기술학교에서 본격적인 기술수업이 이루어졌다. 섬유 금속가공 피혁산업들이 발전하면서 표백제, 염료가공기술이 요구되었고 이 문제 해결을 위해 화학공학이 크게 발전한 것이다. 이후 19세기 후반, 혼합 증발 여과라는 화학산업의 기본 공정을 발전시키고 이에 필요한 장치를 개발하는 기술이 요구되면서 이들 분야에 관한 지식들이 근대적인 화학공학으로 종합된다.
현대산업의 총아로 불리는 제어공학분야는 1784년 와트(1736~1819)가 증기기관의 회전속도를 자동제어하는 장치를 개발한 것이 시초라 할 수 있다. 기계동작의 자동제어, 자동화를 연구하는 제어공학은 전자공학이 발전한 2차대전 이후 급격하게 발달한다.
자본주의 체제가 확립되면서 생산성 향상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돼 부흥한 학문이 산업공학이다. 미국인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이 시조가 되는 산업공학은 '테일러협회'의 성립으로 20세기 들어 각종 동작연구, 시간연구 등 작업관리 연구로 본격화된다.
전자기학이 산업에 응용된 예는 18세기 중반까지는 전신, 전기의료 분야에 그쳤다. 그 후 전기공업은 1880년대부터 1890년대에 걸쳐서 전등조명의 보급 및 이에 이어지는 송배전망의 성립, 교류 시스템의 완성으로 현저히 발전했다. 이에 따라 장거리 송전, 배전에 관한 전기공학 연구에 대한 요구가 높아져 1880년~90년 전기공학이 학문 분야로 독자적으로 성립하게 된다. 전기 공학의 경우는 전자기학이라는 물리학 분야의 발전이 학문성립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양자론에 바탕 둔 전자공학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성숙해온 근대공학은 자연과학과 달리 생산의 직접적인 요구 해결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성립 배경으로도 알 수 있듯이 생산기술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 해결로서 나타난 공학은 노동수단과 노동대상, 즉 어떠한 도구나 기계를 사용하면 원료(재료) 가공을 능률적으로 할 수 있는가에 관한 지식의 총체다. 따라서 그 원천은 생산현장에서 축적된 경험과 지식이다. 그러나 현대공학 분야들은 자연과학적 성과에 그 원천을 두고 출현하여 더욱 자연과학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현대공학의 총아라 할 수 있는 전자공학은 양자역학 소립자론 등 현대물리학 분야의 발전으로 탄생한 공학분야다. 1950년 무렵까지는 전기장 또는 자기장을 작용시키는 전자류의 밀도나 방향을 제어하는 전자현상 및 그 응용에 관한 학문이었던 전자공학은 최근 그 대상이 아주 광범위하게 되었다. 진공 고체 액체 기체 등 각각 다른 환경 아래서 개별 전자의 운동 특성을 이용하는 전자부품(전자관 트랜지스터 브라운관 촬영관 표시판 센서 변환기)과 시스템구성요소로서 통신기기 전자기기 전자계산기 제어기기 등을 제작 운용하는 산업에 필요한 기술 또는 공학을 전자공학이라 하고 있다.
1953년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산업에 응용한다는 기치 아래 본격적으로 추진된 원자력 발전 산업은 원자핵공학이라는 새로운 공학 분야의 탄생을 가져왔다. 원자핵공학은 원자력 발전에 필요한 원자력발전소의 설계 건설 핵융합 발전 연구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전자공학의 산물로 탄생한 컴퓨터 공학은 현대과학기술의 집적이라 할 수 있는 컴퓨터의 설계, 운용에 관한 연구를 그 내용으로 한 현대공학의 한 분야다. 7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정립된 최신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공학 분야의 탄생과 함께 간과할 수 없는 변화는 이미 체계화된 공학 분야에서도 보인다. 곧 제어공학의 경우에는 통신 제어, 로봇, 인식과학 등이 새로이 포함됐고, 기계공학에 있어서도 자동제어 계산기계 생산관리 인간공학으로 그 대상이 확대됐다. 재료공학에 있어서도 화학 물리학의 발전으로 인한 신소재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점차 형상기억합금 등 신소재 연구로 그 연구대상이 옮아가고 있다. 환경 및 공해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면서 이에 대한 기술적인 문제해결도 새로운 학문 분야 출현을 앞당기고 있다. 무공해 대체 에너지 기술의 연구, 폐기물 처리기술 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