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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장끼 우중충한 까투리

은신술에 도가 튼 꿩은 적이 가까이 다가와도 별 걱정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청각까지 예민하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텃새인 꿩은 사시장철을 두고 산과 들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정다운 새다.

꿩은 번식력이 강하고 어떠한 기후에서도 적응해 나간다. 5색의 빛깔이 매우 아름답고 찬란한 무늬가 있어서 조선왕조 5백년동안 왕후의 혼례복에는 수꿩을 무늬로 수놓아 왕후의 얼굴을 돋보이게 했다. 국모(國母)의 새로운 출발을 장식해주는 길(吉)한 조류로 통했던 꿩은 우리나라의 고유 새다.

동물학자 '그리지맥'의 분류에 따르면 꿩은 닭목(目) 꿩과 꿩속(屬)에 속하는데 모두 7종(種)의 꿩이 있다. 꿩의 학명은 Phasianus colchicus이며 영명은 Ringnecked pheasant다.

우리나라의 꿩은 학술상으로 남부의 '꿩'과 북부의 '북꿩' 등 두개의 아종(亞種)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분포의 한계가 명확치 않고 모양에도 별 차이가 없어 일반적으로는 한 종류로 보는 경향이 있다.

장끼라고도 불리는 수꿩의 전신을 살펴보면 머리와 목부분을 제외하고는 전체가 붉은 빛깔을 띠고 있다. 보면 볼수록 털의 깃마다 아름답게 수를 놓은 듯 섬세하고 찬란하기 그지 없다. 검은색의 눈동자와 흰색의 눈썹선, 타는 듯이 빨간 얼굴의 성피(性皮)와 뿔처럼 쫑긋한 암록색의 귀깃 등은 번식기인 이른 봄에 더욱 선명하다.

목은 검은색으로 남자색의 금속 광택이 나는데 빛의 반사에 따라서 녹색의 금속광택을 나타내기도 한다. 아래 목에는 흰색의 목띠가 선명하다.
 

현란한 장끼(위)에 비해 까투리(아래)는 너무도 초라하다.


흰색의 목띠를 가진 새

등과 어깨깃은 크림색이고 가슴은 붉은 구릿빛인데 황금색의 금속 광택이 난다. 배의 중앙은 검은 갈색인데 위 배의 깃털 끝에는 남자색의 금속광택이 난다.

위 꽁지덮깃은 깃 가장자리가 가늘게 나누어지고 곳곳에 붉은 밤색이나 올리브색을 띠는 부위가 있다. 아래 꽁지덮깃은 붉은 갈색으로 각 깃털 끝과 앞 부분은 검은 갈색이다.

꽁지는 올리브색을 띤 황갈색인데 검은색 가로띠 28~32마디가 있다. 꽁지 끝일수록 폭이 넓고 깃 가장자리는 가늘게 갈라진다. 부리는 엷은 황갈색이고 다리는 갈색을 띤 뿔색이다.

이처럼 복잡한 배색때문에 수꿩은 아름다운 새가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햇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금속성 광택은 수평을 더욱 아름답게 치장해 준다.

이러한 장끼의 충만하고 너무나 화사한 색채에 비해 암꿩인 까투리는 언뜻 별종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점무늬가 얼룩진 우중충한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체격도 빈약하다. 몸의 윗면은 검은색이고 깃 가장지리는 갈색 또는 황색이다.

장끼의 꼬리가 완전히 성숙하게 되려면 2,3년이 지나야 한다. 이때 장끼의 꼬리길이는 32~55.7㎝인데 까투리는 26~31㎝다.

우리나라의 꿩은 길이가 80~90㎝인데 우수한 체모와 다양한 채색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일찍부터 일본을 비롯해 구미각국, 대양주의 여러 섬나라에까지 소개돼 그곳에서 관상용 또는 사냥새로 환영을 받고 있다.

30여년 전 미국을 비롯한 우방 11개국에 꿩을 수출한 기록이 있다. 한국의 꿩이 지구 방방곡곡에 퍼져 잘 적응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창경원동물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1975년 7월 초여름 동물들에게 아침 문안인사를 끝마치고 사무실에 도착해 하루일과를 준비하던 중 "꿩이 탈출했다"라는 직원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설령 단 한 마리의 새라 할지라도 탈출하게 되면 그 책임을 묻게 돼 있기 때문이다. 한시간 전에 동물사(舍)를 순찰할 때에도 점검했고 사육자들에게 이상유무를 확인했기 때문에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층 유리창을 통해 밖을 보니 색깔이 아름답고 꼬리가 아주 길고 윤기나는 장끼 한마리가 유유하게 산책을 하면서 먹이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직원들은 탈출한 꿩이라고 외치면서 밖으로 뛰어나갔다. 자세히 꿩을 살펴보니 동물원에서 사육하고 있는 꿩이 아니었다. 동물사에서 사육하고 있는 꿩은 그렇게 꼬리가 길지 않기 때문에 야생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즉시 꿩사에 긴급전화를 해 사육사에게 확인을 하자, 어떤 꿩도 탈출하지 않았으며 꿩사에는 탈출할 수 있는 틈이 없다며 오히려 섭섭하다는 말투였다. 그 꿩은 북한산 기슭을 타고 비원숲을 거쳐 창경원으로 날아온 야생장끼였다.

포획하려고 출동했던 직원들은 "그 꿩은 야생이야. 비원으로 날아 갔어."하면서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복잡한 서울시내에 그것도 창경원 동물원 안에 꿩이 날아와서 유유히 산책을 하면서 울안의 동료들을 관람하고 있었으니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후 며칠 동안 계속 그 야생장끼는 아침마다 울안의 동료를 면회하곤 했다.

또 수년 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숲속에서 까투리가 부화된 병아리들과 함께 도로를 산책하는 순간을 찍은 사진이 신문지상에 보도됐다. 매일 대도시의 각박한 환경에서 바삐 뛰는 우리네 마음 속에 잠시나마 흐뭇하고 야릇한 즐거움을 주었다. 감히 그 장소에서 어린 새끼들을 거느리고 유유히 산책을 하다니···.

까투리가족이 놀라지 않게 길을 피해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우리가 선진문화국민이 된 증거이기도 하다.

꿩은 주로 지상(地上)생활을 한다. 그러므로 발가락과 발톱이 억세다. 그들은 땅을 파헤쳐 땅벌레를 찾아 먹기를 좋아한다. 식물의 뿌리도 캐 먹는다. 그들은 풀씨나 곡식을 주로 먹지만 때로는 연체동물 파충류 등을 잡아먹기도 한다.

꿩은 몸에 비해 빈약한 날개를 갖고 있으므로 멀리 날지 못하고 '푸드득'거리며 난다. 창공을 날다가 마치 항공기가 미사일을 맞고 떨어지듯 앉은 다음 기가 막히게 빠르게 발을 움직여 다른 곳으로 피신 한다. 사냥꾼이나 천적으로부터 자기 생명을 부지하려면 어쩔 수 없다.
 

일본꿩. 우리 꿩과는 생김새부터 약간 다르다.


일부다처제를 신봉하고

꿩은 일부다처제를 신봉하는데 구애행동이 무척 다양하다. 이른 봄 새벽 발정한 까투리는 '쉿쉿'하면서 장끼를 부른다. 먼 곳까지 퍼지는 이 소리가 들리면 근처에 있던 장끼들이 바짝 긴장한다. 그리고 소리나는 방향을 향해 '꺼꺼껑'하는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면서 까투리에게 날아간다. 모여든 장끼들은 자기들끼리 요란한 한판을 치르게 된다. 날고 뛰고 찍고 치고 날카로운 며느리 발톱으로 사정없이 걷어 찬다. 이런 치열한 결전을 벌인 뒤 최종 승리자가 신부를 맞게 된다. 가끔 장끼들은 사람이 접근하는 것도 모르고 싸움에 열중하다가 그만 둘다 잡혀 버리는 경우도 있다.

꿩 부부는 풀밭 농경지 잡목림과 낙엽수림이 많은 곳의 땅바닥을 접시모양으로 파헤치고 풀을 깔아 알자리를 만든다. 그런 다음 4~6월에 5~18개의 알을 낳은 뒤 22~25일 동안 알을 품어서 병아리를 깐다. 까투리가 숲에서 알을 품고 있는 형색을 보면 수꿩과 다르게 우중충한 색깔을 띠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주위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일종의 보호색이다.

최근에는 꿩도 애완조류로 인기를 얻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식용 박제용 약용으로 이용되고 있다. 따라서 꿩을 인공사육하는 애조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인공으로 꿩 알을 부화시켜 사육하고 있으나 다른 조류에 비해 새끼 꿩 사육(육추)이 무척 까다로운 편이다. 속담에 '문전에 버리고 간 어린 아이는 길러도 까투리새끼는 못 기른다'고 하는 말이 있을 정도니.

꿩은 작은 소나무 밑과 같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쉬거나 잠을 잔다. 그러나 천적인 여우와 삵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는 나뭇가지 위에서 잠을 청하기도 한다. 또 다음 날 비가 올 것을 예측, 전날 밤에 나무위로 오르는 등 날씨변동을 미리 아는 감각도 지니고 있다. 눈이 많이 내린 날에는 낮에도 나무 위에서 쉰다.

꿩의 눈은 근시이기 때문에 먼 곳을 잘 살피지 못하나 청각이 매우 예민, 멀리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만 들려도 달아난다. 자신의 보호색과 은신술에 자신만만해 사람이 1,2m 내로 접근해야 비로소 날아가는 놈도 있다. 이같은 갑작스런 꿩의 움직임 때문에 도리어 등산가들이 놀라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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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성원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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