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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교육내용 자체 그리고 구조의 모순을 느끼며…

개인과 전체, 교육의 올바른 방향과 입시, 이 갈등 속에서 세월은 가고···
 

·개인과 전체, 교육의 올바른 방향과 입시, 이 갈등 속에서 세월은 가고…


현대를 흔히 과학의 시대라고 부른다. 그만큼 우리의 생활은 과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러한 과학의 시대에 앞으로 과학과 과학정책가들이 될. 아니면 장차 21세기를 젊어질 젊은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는 과학교사야말로 이세상 최고의 직업이 아닌가?

4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님이 생각난다. 손주가 고등학교 선생님이 된 것을 무척이나 기뻐하셨던 할머님이 아무 생각없이 "얘야, 선생님의 똥은 개도 안먹는다며?"하여 우리 형제들을 웃기셨다. 이 말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선생님의 똥과 개라는 비천한(?) 단어를 사용하여 교사의 직업에 대한 비아냥거림을 무의식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기에 같이 그 자리에 있었던 형제들이 배를 잡고 웃엇던 것이다. 그러나 이 말에는 우리 고유의 선비정신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고유의 개는 흔희 똥개라고 부른다. 그것은 우리의 토종개가 사람의 똥을 즐겨먹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생님의 똥은 너무나 고귀하기 때문에 감히 개도 그들의 특식인 똥을 안먹는다는 의미다. 똥개의 지능이 그 정도로 발달했는가 하는 반문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이야기해보자, 선생님은 너무나 청렴결백하시기에 먹는 것이 불충분하여 그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지저분한 이야기는 그만하자.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표현도 있다. 우리가 듣는 호칭중에 유일하게 '놈'자가 들어가지 않는 직업이 바로 '선생님'이다. 단순히 먼저 태어났다는 의미이지만 우리보다 더 먼저 이 세상을 사신 선생님도 젊은 나를 보고 선생님이라 부른다. 직장 동료는 누구나 선생님이었고 나이가 어린 학생이나 연세가 지긋하신 학부형들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훌륭한(?) 직업에 봉직하면서도 그 직업의 고귀함을 잘 몰랐다. 다만 본의 아니게 요즈음 집에서 근무를 한 덕분에 교사란 직업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우주속에 하나 뿐인 '나'

"우리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의 수는 몇개나 될까요?" 수수께끼같은 질문일 수도 있다. "동쪽하늘에 스물스물, 서쪽하늘에 스물스물, 남쪽하늘에 스물스물, 북쪽하늘에 스물스물, 그리고 하늘 한가운데 빽빽하니 모두 3백60개가 되지요." 아이들은 웃고 만다. 알퐁스 도데의 '별'이라는 소설을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조용히 듣고 있다. 자기가 목동이 되고 주인집 딸이 자기 품안에서 잠이 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은 왜 자기가 목동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다만 소설의 끝부분에 나오는 주인집 딸의 아름다운 자태만 상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지구는 태양의 부피에 약 백만분의 일 정도입니다. 태양을 기준으로 볼 때 아주 작은 행성에 불과합니다. 또 태양은 우리 은하에서 약1천5백억개의 별이 있는데 그 중에서 아주 작은 주계열성에 불과합니다." 아이들은 얼떨떨해진다. 1천5백억이란 숫자는 우리가 평생 세어도 못 세는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큰 숫자임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 우주는 계산상으로 약 1천억개의 은하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우리 태양계가 속해 있는 우리 은하는 아주 작은 왜소은하에 불과합니다." 또다시 1천억이라는 커다란 숫자가 나온다. 아이들은 아예 상상을 포기한다. 지구의 크기에도 놀랄만 한데 비교도 안되는 큰 우주를 생각하는 것이 힘이 든 모양이다. 나는 엉뚱하게 수업을 전개시킨다.

이렇게 큰 우주에 자기와 같은 사람은 오직 하나라고 강조한다. 무엇이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한 것인가? 만일 자기자신이라면 타인도 또한 중요하지 않는가 하고 반문한다. 딸각발이(일석 이희승 선생이 쓴 수필제목)선생님이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구속당했을 적에 국어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이란 책을 읽으셨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일이 있다. 이 우주에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며 반대로 우주에서 가장 귀한 존재가 바로 자기자신이기에 우리는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일석 선생님의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수업을 마친다.
작년 고등학교 3학년의 마지막 수업내용이다. 올해도 꼭 이러한 감동적인 강의를 하고 싶었는데….

●-에디슨과 아인슈타인을

집에서 자가연수를 하고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내집을 방문했다. 월부장수, 사이비 종교의 전파자들, 특이하게 통장이나 같은 동향의 공무원 심지어는 정보과 형사까지 왔었다. 재미있는 현상은 이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 하나같이 '선생님'이라는 것이다. 물론 나의 직업을 아는 사람이야 예외로 치더라도 월부책장수까지 그런 호칭을 사용한다는 것은 바로 이 세상에 가장 부르기가 좋고 듣기 편한 이름이 선생님이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당연히 선생님이란 직업은 세상 최고의 직업이 아니겠는가?

중학교 때 과학선생님은 나에게 만물박사처럼 보였다. 과학을 배우면서 많은 질문을 했던 나에게 항상 친절히 성의껏 설명해 주시던 선생님, 자연현상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들으면서 나는 자연에 대한 경이와 함께 겁없이 과학에 대한 자신감도 가졌었다. 방과후 몇몇 친구들과 과학실에서 과학반 활동을 하면서 발명왕인 에디슨에서부터 잘 이해도 못하던 물리학자 아인슈타인까지 이야기하곤 했었다. 그때처럼 과학선생님이 멋있어 보인 적은 없었다. 어린 나의 우상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내가 과학선생이다. 중학교 때 우상이 실현된 것이다.

●-사회와 역사에 책임지는 과학

작년에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서 35년간 평교사로 교육에 전념하시다 정년퇴임하신 박선생님이란 분이 계셨다. 항상 실험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살며 과학에 있어서 실험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던 분이다.

그 분이 정년퇴임하시던 날이 기억난다. 실험준비실에서 박선생님께서는 용수철과 플라스틱 공으로 구성된 '원자구조모형'을 정리해서 포장하고 계셨다. 나는 정년퇴임하시는 선생님께 왜 그러한 물건이 필요한지 의아해서 여쭈어 보았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이제 집에서 친목회나 경로당에 나가셔서 친구들에게 원자나 분자의 구조를 설명하는 데 쓰시겠다고 하셨다. 퇴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가르치시고 연구하시려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참교사'의 상을 느꼈다.

교사에게 가장 필요한 것중 한가지만 들라면 나는 감히 교사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일이라고 말하겠다.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과학교사는 더욱 더 그렇다. 단순히 과학교사에게 과학실과 준비실이 있다고 해서 전문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10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그러나 과학지식은 분초를 다루며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1세기에 살 교육2세들에게 20세기 초반의 과학지식만을 주입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현행의 과학교육은 무비판적으로 과학지식이나 탐구수업이라는 명목아래 아무런 의미없는 단순 실험의 반복, 그리고 수업의 수월성만 강조하는 폐단이 있다. 과학은 사회와는 관련 속에서 발전해 온 역사적 산물이다. 그러므로 과학은 사회와 역사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과학에 대한 책임을 지는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과학교육의 목적이다. 과학만능주의나 공포의 과학이라는 극단론을 벗어나 우리와 가깝고 우리가 책임을 질 수 있는 과학으로 바꾸어야 한다.

처음 교직에 들어서면서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입시위주의 풍토였다. "이 부분은 매년 출제되는 곳이니까 잘 보도록, 이 부분은 최근 5년간 출제된 적이 없어요." 매달 보는 모의고사가 반복되면서 나의 목소리도 변해버린다. 학력고사가 끝나면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허전함.

●-원칙론과 현실의 간격
 

참교육


지오이드와 지구타원체의 구별이 지구의 환경문제나 핵문제보다도 더 중요했었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단순한 과학지식은 큰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느날 깨닫게 된다. 오히려 그러한 과학적 사실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얻어졌으며, 그 때의 사회적 배경과 사상은 어떠했는가를 아는 것이 과학에 대한 책임있는 시민으로서 더 중요함을 최근에야 비로소 느꼈다.

그러면 과학수업을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가? 과학에서 어려운 개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과학반은 어떻게 운영하며, 책임있는 과학시민을 양성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등의 문제는 나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함께 해결하고자 노력했던 것이 바로 과학교사들의 모임이다. 지난 2월에 창립된 과학교과연구회나 4월에 창립한 지구과학교사모임 등은 바로 이러한 필요성에서 출발한 것이다. 과학사 과학철학 및 과학교육에 대한 이론적 연구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실험교재나 수업모형개발 등이 그동안 해왔던 노력들이다.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과학교사의 전문성 확보와 더불어 책임있는 과학수업을 진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국민학교에 다닐 때, 나는 내가 만일 선생님이라면 하는 가정을 즐겨하곤 했다. 그러나 그 이유는 내가 선생님을 존경했기보다는 선생님의 행동이 어린 내가 보기에도 다소 어리석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우에 나는 만약 내가 선생님이라면 때리거나 야단치지 않고 이런 식으로 해결했을 것이다라고 혼자 상상해보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문제가 선생님의 개인에게 잘못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한 문제들이 콩나물 교실이나 교사의 과도한 업무 등 열악한 교육환경에 더 큰 원인이 있다고 느낀것은 내가 교단에 서서 직접 고민하게 된 최근에 이르러서였다.

사랑이 교육의 기본이고 자유와 평등과 민주주의를 가르쳐야 한다는 원칙론은 실제 교육현장에서는 무리가 많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 겨울철에 때던 조개탄 난로는 지금도 그대로다. 60명을 거의 채운 작은 교실에서 인류와 사회를 위해서 공부해야 할 학생들이 서로가 서로의 적이 되어 오직 나만이라도 대학에 가서 혼자 잘 살아보겠는 의지로 공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목조교실이 시멘트교실로 바뀐 것이 교육의 현대화라고나 할까?

●-갈릴레오와 브루노의 사이에서

"선생님들까지 데모를 하면 우리나라는 망한다." 최근에 집안 제사가 있어서 시골을 다녀왔을 때 집안 형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어째서 선생님이 노동자란 이야기냐?" "너도 그런데 가입했느냐? 설사 그러한 일이 옳더라도 너는 희생될 필요가 없다. 왜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느냐?"

모두 나를 염려해서 해주시는 고마운 말씀들이다. "선생님들도 갑종근로세를 내고 있습니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당연히 근로자이죠. 헌법에도 근로의 신성함을 보장하고 있고 또한 결사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 그리고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모로부터 받은 몸뚱이를 빼고 노동자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있습니까? 노동은 아름다우며 신성하고 의미있는 것입니다."

주변의 여러 어른들은 말한다. 이미 전교조는 순수한 동기를 벗어난 빨갱이며 용공집단이라고, 전교조가 주장하는 참교육의 이념인 민족 민주 인간화교육이 삼민투의 논리나 공산주의 이론과 똑같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전교조의 이념은 현 집권여당인 민정당의 창당이념인 민족 민주 정의 복지 통일과는 무엇이 다른가? 같은 말을 색안경을 끼고 보면 이런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점을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 입장인 나 자신도 스스로에게 조차 설명할 수 있다.

주변의 선배 선생님들은 말씀하신다. 전교조만 참교육을 하면 우리들은 지금까지 가짜교육을 해왔다는 말이냐라고. 그렇지는 않다. 선배 선생님들도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 부단히도 애쓰셨다. 그러나 커다란 구조적인 모순앞에 개인의 헌신적 노력만 가지고는 올바른 교육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며칠 전 어떤 선생님과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다. 그 선생님의 제자들이 "저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그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대답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자조가 섞인 한탄을 들으면서 나도 함께 괴로워 했다.

"나 갈릴레오. 고 빈세치오 갈리레이의 아들, 피렌체인, 당 70세는 …전세계의 그리스도 교국의 종교재판소장님 앞에 꿇어 엎드려 복음선서에 손을 얹고서, 성 카톨릭과 법왕의 로마교회가 지지하고 선교해 온 모든 것을 나는 언제나 믿어왔으며, 현재도 믿고 있으며, 신의 도움으로 앞으로도 믿을 것을 서약합니다.…이 선서의 문서 한구절 한구절을 되새겨 외우고 나서 나 자신의 손으로 서명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었다. 물론 현재도 아니며 앞으로도 중심이 될 수 없다.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의 양심조차 굴복시켰던 교회의 권위는 단순히 종교를 지켰다기보다 기존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이 진실을 말하고자 고뇌하는 개인을 향해 뽑은 마지막 칼이었다.

우주에는 중심이 없으며, 수많은 별이 모두 태양과 같다는 복수세계관을 주장하면서 끝까지 자기의 생각을 굽히지 않아 결국 화형을 당한 브루노(Giordano Bruno, 1548-1600)의 죽음은 또한 우리에게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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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면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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