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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을 통해 또 다른 하나를 찾으려고 애쓴다. 또 그런 과정을 통해서 생활의 편리함을 얻거나 지위를 향상시키려고 든다. 물론 이런 생활 태도가 오늘날과 같은 문명사회로 발전시킨 동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어 문자로부터 컴퓨터 반도체에 이르는 인류의 유산들도 바로 학문 추구의 소소산 이리라.

그러나 지금 우리는 대의적이지 못하고 이기적인 학문을 탐구하는 그릇된 풍조가 만연되어 있다.
 

김병섭


●─ 점수지상주의를 혐오한다

국민학교6년, 중·고등학교 6년을 누구나 대학입시의 합격만을 위해서 모두를 바친다. 바로 이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옆을 볼 사이도 없이,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온 것이다.

대학입시라는 협소한 곳에 촛점을 맞추다 보니 학문은 원래 인간이 구한 것과는 사뭇 거리가 먼 것이 된다. 구체적이고 광범위한 지식보다는 편협하고 단편적인 것만을 찾는 것이다.

모두들 학력고사에서 점수를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들도 다른 사람을 시험점수로 평가하고 판단하려고 한다.

나는 바로 이런 학습 태도와 풍토에 큰 불만을 표시해 왔다. 점수에 얽매인 사람들이 불쌍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그런 풍토를 비판은 했지만 벗어나지는 못했다. 고등학교 때는 대입이라는 족쇄에 이리저리 끌려다니기에 바빳던 것이다. 하지만 대학은 학습방법이나 분위기가 분명히 틀릴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참아냈다.

소위 일류대학을 위한 고득점이 세상의 전부인양 하는 세태, 국영수와 같은 과목을 절대시하는 풍조는 없어져야 한다. 물론 그 과목을 경시하자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국영수가 가장 기초적인 학문이므로 당연히 열심히는 해야 한다.

또 실력있는 사람치고, 국영수 못하는 사람이 없고 학력고사 점수가 낮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되는 것은 극히 불합리하다고 느꼈다. 아뭏든 점수지상주의가 내 꿈을 이루는 종착점은 될 수 없었다. 단지 미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따름이었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관심을 가진 것은 한결같이 공학계통이었다. 그 중에서도 항공분야를 택하기로 결심한 것은 중 3때였다. 당시 나는 바다를 정복하는 자가 세계를 정복한다는 옛날 이야기를 음미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갔다. 앞으로는 하늘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분야을 본 궤도로 올리는 것은 아직 무리라고 생각했다. 다른 선진 제국과 비교하면 까마득하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국가와 대비해 봤을 때도 현격한 격리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렇게 낙후한 까닭은 무엇일까?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우리의 기술투자 의지를 탓해야 하는지, 국제 흐름에 어둡다고 해야 하는지 막막하고 착찹한 마음이 오갔다.

불모지같은 대한민국의 항공분야를 안타깝게 생각했는지, 하늘이 나를 불렀는지는 잘 모르지만 나는 이 길을 택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기계를 설계하는 것이 주된 분야인 우리 학과는 88학년도에 신설되었다. 따라서 부족한 점은 일일이 다 열거할 수도 없지만 처음 출발하는 학과이니만큼 신선한 열정은 철철 넘쳐 흐른다.

다른 대학에도 같은 학과가 있는데 굳이 우리 학과와의 차이를 말한다면 이렇다. 항공대학의 기계설계학과는 교명답게 항공분야에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는 점이다.

엔진분야와 특히 비중을 둔 우리 학과와 기체(機体) 설계에 관심을 둔 나와는 서로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큰 문제는 될 것 같지 않다. 어차피 공부는 둘다 해야 하니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모두 그렇게 여길 것이다. 따라서 어느 분야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적성에 맞는 길인가는 일찍 선택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이미 정해진 목표를 향해 정진해간다면 장래 문제로 방황하면서 고민에 빠져 있는 사람들보다 순탄하고 빠른 성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성공을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노력 속에서 얻어진 뿌듯한 기쁨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리라.

그러므로 평상시에 자신의 미래를 머리 속에 그려놓는 것도 공부 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렇지만 원하는 길을 걷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대학에 들어와서 느낀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 대학에서 그럴듯한 연구시설과 투자가 되어 있는 곳을 찾기란 대단히 어렵다. 그런데 이 사실은 극히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눈으로 하는 학습만으로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대학에서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대학에서는 몸으로 직접 부딪칠 수 있는 교육이 당연히 수행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대학들의 실정은 어떤가? 갑갑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 항공산업의 명암

항공분야와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산업은 거의 없다. 자동차산업도 그 성격은 같다고 할 수 있지만 항공산업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관계하는 기술이나 재료들을 한번 들여다 보기만 한다면 항공산업이 몇차원 앞서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우선 높은 부가가치를 가지고 있고 무진장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 전망좋은 산업에서 우리가 뒤쳐지고 있는 현실은 나를 분발하게 한다. 뜨거운 피가 끓게 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항공산업은 점점 시장이 확대되어 나가고 있고 지금으로서는 불황이란 상상할 수도 없다. 또 한나라의 군수산업에 일익을 담당함은 물론, 민간 항공기 분야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이제는 지구밖을 지향하는 우주항공산업에도 불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전망들은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작년에야 비로소 자체 기술로 설계한 비행기를 제작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섰다. 우리나라 최초의 항공공학 박사인 장극박사가 설계한 한국형 경비행기의 설계가 끝난 것이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비록 아기가 처음으로 한 걸음을 옮겨 놓은 상태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항공사는 지금부터 시작인 것이다.

우리 항공산업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고 얘기할 수 있는 근거로는 우리 기술의 잠재력을 들 수 있다. 미군 항공기의 창문 정비기술로 쌓아올린 실력은 항공분야의 독보적 존재라 할 미국과 필적하는 일본도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하지만 이제까지처럼 구태의연한 연구투자 자세를 견지한다면 항공선진국도 놀란 우리의 장점들이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올챙이’인 내가 목소리만 높인 꼴이 되어 부끄럽다. 사실 이제까지 열심히 공부해 온 선배들의 체취는 너무도 고독한 것이었다. 그들은 어려운 실정에서도 불평보다는 도약을 생각했다. 미래를 낙관하면서 순수한 학문 열정에 매달렸던 것이다.

자신이 가야할 길이라고 믿고, 그 길을 직접 개척하기 위해 학문탐구를 하는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당연한 일도 그렇지만 우리는 당연한 일도 실천하기 어려운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지금 항공학도가 되고픈 소망을 가지고 있거나 결심을 한 동지들이 있다면 들으라. 열악한 현실에도 흔들림이 없이 자신의 이상을 심어나가는 길을 가고자 하는 젊은이가 있다면, 어떤가, 이 땅의 항공산업의 주역이 되지 않으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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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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