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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상(I)

사람들이 가기 싫어 하면서도 필요하면 어쩔 수 없이 갈 수 밖에 없는 곳이 있다. 수세식이 아닌 화장실이 그렇고 병원이 그렇고 장의사가 그렇다. 화장실은 이제 수세식이 많아졌으니 그다지 싫은 곳이 아니고 장의사 또한 가지 않고 전화로도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병원만은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직접 가야만 한다.

병원에 와서 앉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가지가지이다. 아파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은 고통때문에 다른 생각이 들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아픔보다 더 큰 걱정이 있는 사람은 눈빛부터 다르다. 하여튼 그 사람의 모든 행동거지는 불안을 온 주변에 뿌리게 된다.

이런 사람을 진찰할 때는 병보다 먼저 신경을 써야 할 게 있다. 그 사람의 불안감이다. 이런 사람이 호소하는 증상은 복잡하기 짝이 없다. 실제로 갖고있는 증상에 불안감 자체가 만든 증상들이 섞여있어 증상이 실체인지 그림자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대부분의 병은 의료의 도움을 받으면 쉽게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암이니 에이즈니 해서 걸리면 그냥 맥 못쓰고 죽게 되는 병이 많다고 지레 걱정하는 환자가 많아졌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읍니까?”
“소화도 안되고 어쩔 때는 온몸에서 기운이 쪽 빠지기도 하고···”

나는 환자가 증상을 말해주는대로 들으면서 환자의 말을 가로채 묻거나 청진기를 들이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환자는 내가 잘 듣고 있는지 감시(?)하고 있으므로 한눈을 팔거나 무관심한 표정을 드러내서도 안된다.

“언제부터 그러셨읍니까?”
“처음에는 속이 답답하고 얹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손가락을 바늘로 땃더니 서커먼 피가···”

10분이 후딱 지나간다. 나는 책상 한편에 쌓여있는, 즉 밖에서 기다리는 환자들의 차트(병록지)수를 헤아리며 압박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언제 칼을 뽑을 것인가를 신중히 계산한다.

“아! 예, 그러시면 이제 제가 좀 여쭈어 보겠읍니다.”

우리들 의사들이 증상을 놓고 분석해 들어가는 방법대로 묻기 시작한다.

증상의 시기 부위 양태 경과 그리고 함께 나타나는 증상 등을 하나하나 짚어간다. 홍수처럼 쏟아져 얽히고 설킨 증상들을 요약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물결이 바위에 의해 방향을 바꾸듯이 실타래처럼 복잡한 증상들을 조절, 잘 흐르게 하는 이 과정이 항상 어렵다. 이제 이 환자의 병이 무엇일 것이라는 예측을 갖고 환자가 진찰이라고 생각하는 과정에 들어간다.

그러나 사실 진찰은 환자와 대면하여 여려 가지를 묻는(문진,問診)이 과정에서 80%정도 끝났다고 할 수 있다. 눈으로 보고(視診), 손으로 만져보고 만져보고(觸診), 청진기로 들어보고(聽診), 두드려 보는(打診) 것은 듣고 물어본 것을 확인하고 검증하는 역할만을 할 때가 많다.

환자가 인정하는 진찰이 끝난 다음 내가 할 일은 환자에게 잘 설명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병명이 무엇이고, 그것을 확진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고, 병의 원인과 배경은 무엇이고, 치료는 어떻게 하고 그래서 경과는 어떻게 될 것 같다는 것을 설명한다. 설명이 끝나면 환자가 묻는 것에 대해 답변을 해야 한다.

환자가 질문공세를 마치면 나는 환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 약을 먹으면서 주의할 사항 등을 설명한다. 그런 연후에 또 물어 볼 것이 있느냐고 묻고 나서야 이 환자에게서 ‘빠져나오게’된다.

때로는 아무 것도 물어 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정신을 잃고 실려 온 환자에게 무엇을 물을 수 있겠는가? 어린아이의 경우는 보호자에게 물어봐야 할 때도 있다. 이럴 때는 물어보지 못하고 치료에 임해야 하므로 신경이 평소의 배나 쓰인다. 진단을 내리고 나서도 개운찮은 기분에 잠긴다.

많은 사람들은 의사에게 자신의 증상을 자세히 설명하고 의사의 질문에 가능한한 정확히 대답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생각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오진(誤診)이 대부분 문진을 게을리해서 생기고, 문진과 진찰에서 진단이 불가능하면 여러 검사를 해보아도 확진(確診)이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진찰실에서는 빨리진찰(?)해 달라고 조르는 사람을 많이 본다.

대부분의 질병은 원인과 환경이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의사는 반드시 환자의 직업과 생활환경을 물어 보아야 한다. 하지만 이때에도 의사는 환자의 눈치를 살핀다. 환자의 기분이 나빠지지 않게, 짜증부리지 않게 요령껏해야 하는 것이다.

요즈음에는 직업병이나 공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져서 직업이나 환경에 대해 질문하기가 한결 쉬워졌다.
 

의사가 되어 입고 있는 하얀 가운이 나와 그들을 나누는 벽이 되었다.


●─ 단상(II)

매일 계속 반복되는 진로는 의사를 지치게 한다.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 의사에게 의존적이다. 늘 선생님소리를 듣는 까닭은 그 뒤에 따르는 부탁이나 기대때문임을 잘 알기에 점점 부담스러워지는 것이다.

국민학교에서 여선생님으로 오래 재직하다가 시집을 가면 문득문득 시어머니께 명령조로 말할 때가 있다는데 나도 꼭 그 꼴이다. 의사생활에 익숙해지면 으례 상대는 나에게 도움을 받으러 온 것이려니 하게 된다. 그래서 환자가 바라는 건강상담에 권위적으로 대하거나 심지어는 군림하려고 들 때도 있다.

국민학교 학예회 때 나는 병아리같은 입으로 “나는 커서 의사가 될테예요”라고 말했다. “의사가 되어 무엇을 할거예요?”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자신있게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치료해 줄거예요”라고 대답을 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어린 마음에 병든 사람이 가난하고 불쌍하다고 보았을까,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이 병이 든다고 보았을까? 이런 뛰어난 직관이 왜 나이들수록 희미해지는 것일까?)

그보다 나이가 좀 더 들자 슈바이처박사를 존경하고, 노벨의학상을 받는 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드디어 의과대학에 들어와서는 여름에는 농촌의료봉사, 학기중에는 판자촌의 주말진료소에서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되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막상 의사가 되고 나자 고달픈 수련기간을 맞게 되었다. 수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아는 것도 많아지고 해줄 수 있는 것도 많아졌다. 그렇지만 선생님 소리만큼이나 떨어져 나가는 것도 많았다.

슈바이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사람들은 자기의 길고긴 생의 항해를 시작하였을 때 배에 양식을 가득 싣고 항구를 떠났다. 그러나 항해를 하는 동안 거센 풍랑을 만나자 그들은 항해를 쉽게하기 위하여 백에 실었던 짐을 하나씩 둘씩 바다속으로 던져버렸다. 그렇게 해서 배는 가벼워졌을지 모르나 그 던진 짐은 바로 그들이 항해하는 동안 먹고 살아야 할 식량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의사가 되는 동안 닦이고 깍인 것들은 우리가 의사가 되었을 때 꼭 필요로 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쉽게 의사가 된다는 것만을 위해 그것을 버려버린 것이 아닐까? 내 이웃, 내 형제에게 내가 의사가 되어 함께 살고자 하는 삶에는 사랑과 나눔이 그 본질이었다.

그런데 내가 의사가 되어 입고 있는 하얀 가운이 나와 그들을 나누는 벽이 되었다. 그들의 아픔과 괴로움에 둔감해지고 환자를 고객으로 본 적도 있다.

●─ 단상(III)

의과대 학생때 들은 교수님의 이야기 한가지. 세상에서 명의(名醫)가 될 수 있는 세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는 운이 좋아야 한다. 네가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다 죽어가는 말기 환자만 계속 찾아와서 네 병원에서 계속 죽어나가면 너의 평판은 나빠진다. 그러나 다 나아가는 환자가 계속 오고 증상이 호전될 시기가 된 환자가 너를 찾게되면 너는 일약 명의라고 불리우게 된다.

둘째로는 독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정상적으로 A라는 병을 치료하려면 약의 부작용이 가장 약하면서 치료 효과는 어느 정도 있는 ‘가’라는 약을 써야 한다. 네게 온 환자에게 정직하게 ‘가’를 썼는데 좋아지지 않으면 그 사람은 다른 의사에게 훌쩍 날아갈 것이다. 그러나 네가 독한 마음으로 ‘가’보다 조금 부작용이 더 있는 ‘나’를 쓰거나 그보다 부작용이 엄청나게 큰 ‘다’나 ‘라’라는 약을 쓰면 증상이 좋아졌다고 환자는 만족할 것이다. 또 너는 덩달아 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사람은 그 약의 부작용때문에 또다시 병원을 찾아 올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셋째 조건은 네가 점(占)을 잘치는 것이다. 병을 알아 맞추는 점이 아니라 그 사람의 돈을 알아 맞추는 점이다. 네가 병을 잘 치료해 주었어도 그 비용이 너무 많았다고 생각하거나 그 비용때문에 그 집이 폭삭 망해버리면 너는 명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거꾸로 그 사람에게 준 약이 너무 싸도 문제다. 그 사람은 왜 이렇게 쌀까? 혹시 이 의사가 내가 아프다고 말한 것을 잘 듣지 않고 싸구려 약을 나에게 준 것이 아닐까? 환자는 이렇게도 생각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병원에 올 때 쥐고 온 돈이 석장인데 그것이 만원짜리 석장인지 5천원짜리인지 1천원짜리 석장인지를 잘 알아 맞추어서 그 비슷한 값을 내라고 하면 그 사람은 “아, 그 의사 참 용하다”하고 생각한다. 동시에 너는 명의가 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의료보험이 없던 시대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환자나 가족들이 환자의 괴로움이나 고통을 돈으로 환산해보는 무의식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내가 이렇게 배가 아파서 쩔쩔매는데 고작 주사 한대 맞고 약 하루분 먹고나면 나을 수 있을까? 이 병은 피검사도 하고 소변검사도 하고 X선 촬영도 해보고 해야 알 수 있는 병이 아닐까? 그런데도 저 의사가 그런 것을 안하는 것을 보니 내가 얼마나 고통받는지를 모르고 그러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자신의 고통의 양을 자신이 보상받고 보살핌을 받아야 할 양으로 환산한다. 그것은 또다시 돈으로 환산된다. “그래 내가 이렇게 아픈데 3만원은 들어 가겠지 ”또는 반대로“ 나는 이 정도 아파서 왔는데 X선 촬영하라고 하고 돈을 만오천이나 달라다니 이 의사 이거 도둑놈아냐”이렇게 생각은 갈라지게 된다.

아뭏든 환자가 치료비를 부담할 수 있는가가 치료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 현실이다. 비록 앞에서처럼 극단적이고 회화적이지는 않다고 해도 치료비가 치료의 중요한 요소인 것만은 틀립없다.

●─ 단상(IV)

올림픽으로 떠들썩했던 작년은 또한 직업병으로 떠들썩한 한 해였다. 15살짜리 어린 학생이 서울에 와서 공장에서 일한지 불과 일주일만에 급성 수은중독에 걸렸다. 몇몇 병원을 전전하다가 겨우 병명을 알게 되었으나 치료받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죽어버린 문송면군 사건이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또 여러 가지 복합중독으로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사람, 이황화탄소의 중독으로 정신이상과 신체마비가 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 원진레이온 사건도 있었다. 그리고 송아지도 아닌데 코안의 물렁뼈에 구멍이 뻥뻥 뚫린 크롬중독환자를 양산한 도금업체들도 신문지상을 장식했다.

되돌아보건대 의사가 국민의 건강을 위한 존재라는 사실이 너무도 창피하고 부끄러운 한 해였다. 그래서 국민의 건강이 손상되지 않도록 교육과 홍보를 통해 예방사업을 벌이고 직업병추방운동도 펴 나가야 한다는 각성이 뒤늦게나마 의사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의사가 할 수 있는 작은 노력이 사회의 모든 분야의 사람들의 노력과 함께 나아간다면 어린 소년의 죽음과 직업병환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달래고 덜 수 있지 않을까?

●─ 단상(V)

존경하는 은사 홍창의교수님이 인도주의 실천의사협의회에서 해주신 강연에서 들은 동양의 명언은 우리가 노력해야할 바를 잘 보여준다.

“세상에는 네가지 의사가 있다. 환자의 병을 고쳐주지도 못하면서 환자에게 오히려 고통을 주는 의사는 악의(惡醫)라고 하고 환자의 병만을 고쳐주는 의사를 소의(小醫)라고 하며 병과 인간을 다 함께 고쳐주는 의사를 중의(中醫)라고 하며 환자의 병과, 인간과 나라(사회)를 다 고쳐주는 의사를 대의(大醫)라고 한다.”

인도주의실천 의사협의회(인의협)는 현대의 현란한 의료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의료의 그늘에서 소외당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의사들이 지금껏 다하지 못한 의료인의 사회적 책임을 같이 하기 위한 모임인 것이다.

인의협은 1987년 11월에 발족하여 1988년에는 연탄공장주변의 주민들이 호소하는 증상의 원인을 밝혀냈다. 그 곳 주민들에 대한 진찰을 통해 탄광광부들에게서만 나타난다고 알려진 진폐증으로 최종 진단, 공해의 심각한 해독을 사회에 알렸다. 또 문송면군의 죽음과 기타 중독환자들의 참상을 의학적으로 조사 보고하고 홍보하였다. 그리고 건강상담실을 열었다. 여기에는 의사를 상주시켜 일반사람들이 건강에 대해 무엇이는 직접 의사와 상담할 수 있게 하였다.

또 판자촌이나 영세민들이 많이 사는 곳에 주말 질료소를 만들어 제한된 도움이나마 주고 있다. 스스로 악의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중의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사람의 병을 고칠 수 없다. 이런 자각 아래 서로의 모자람을 메꾸면서 나아가지만 대의가 되는 길은 이미 우리들에게서 너무 멀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인술제세(仁術濟世)라는 의료의 이상(理想)을 펴 나가고 올바른 의료,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일을 해 나갈 책임은 이제 새롭게 의사가 되려는 젊은이들의 것이다. 그때까지 부끄러운 선배들도 세상살이에서 잃어버린 의료의 제 모습을 찾기 위해 세울의 먼지를 닦고 때를 벗겨가며 다시 태어나는 노력을 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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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양길승 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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