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火星·Mars)은 태양계 가족의 하나이다.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9개의 대행성 가운데에서 지구와 비교적 흡사한 환경을 지니고 있을뿐만 아니라, 지구에 가장 가까이 있는 별이기도 하다.
그 화성이 1971년 8월12일 이후 가장 가까이오는 대접근의 해가 바로 금년인 1988년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1988년 9월22일 12시에 그 순간이 온다. 그때의 지구·화성간의 거리는 5천6백만km. 이러한 대접근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 것일까.
우선 그림을 보자.
화성은 지구궤도의 외곽을 돈다. 화성의 태양과의 평균거리는 2억2천7백90만km이며 태양을 2년50일정도로 일주한다. 지구는 1년이 걸리니까 화성이 지구와 가까이 만나는 시기는 2년에 한번이며 이 회합주기(會合周期)는 지구와 화성과 태양이 일직선상으로 되는 충(衝) 위치에서 매년 50일분씩 비틀어지다가 7회쯤으로 다시 원위치로 돌아간다. 바로 이 충의 위치에 화성이 왔을때를 대접근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 대접근현상때문에 옛날엔 적지 않은 소동이 벌어지곤 했다.
우리나라에도 1947년의 대접근때, 지구와 화성이 충돌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비교적 지식수준이 높다는 서울의 시민들도 공포에 떨어 점장이집앞에 줄을 이을 정도였다.
“인천 앞바다에서 배를 타고 15일간 나가 있으면 된다”고 하는 점장이가 있었는가 하면,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왔다······!”고 목총을 올리며 가두에서 선교에 열을 올리고 있던 사람도 있었다. 그 옆에 있던 역학(易学)의 도사라는 사람은
“아니요. 계룡산에 가서 한달만 있으면 된다···”고 하는 바람에 집과 땅을 다 정리하고 입산한 사람도 있었고 배를 전세 내려고 인천항 부두에 모인 부자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유일한 천문학박사가 신문잡지에 그럴리가 없다는 해설기사를 쓰고, 방송까지 했었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그러나 그해에 화성은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넘어갔다.
1939년 10월30일, 미국에서는 CBS방송에서 화성인이 지구를 침략했다는 방송을 하는 바람에 대혼란이 일어난 사건도 있다.
이렇게 번번이 적잖은 화제거리가 되는 화성이란 과연 무엇일까? 하나 하나 설명하는 것보다 다음과 같은 표로 보면 쉽게 짐작이 갈수가 있을 것이다.
이 표로 알수 있는것과 같이 크기는 지구의 절반, 질량은 10분의1밖에 안된다.
옛날부터 화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리 반가운 기분으로 맞이하는 별은 아니었다. 붉은색으로 2년만에 한번씩 밤하늘에 나타나며 딴 별같이 반짝이지도 않고, 불길한 위압감을 주기때문에 일찌기 중국에선 형혹(熒惑)이라 불렀고, 서양에선 로마 신화에 나오는 피를 좋아하고 투쟁을 일삼았던 군신 마르스(희랍신화의 아레스)의 행동과 똑같다고 하여 이 별을 마르스(Mars)라 이름을 지었던 것이다.
대접근시에 망원경으로 관찰하면 화성은 크게 세가지로 그 특징을 나눌수가 있다. 우선 눈에 띄는것이, 극관(極冠·polar cap)이란 이름이 붙은 극부지방을 덮고 있는 순백색의 원형무늬가 있다. 일찌기 1783년, 천왕성(天王星)을 발견한 영국의 유명한 천문학자 ‘W.허셸’(Herschel)이 이것은 남북극을 덮은 빙설원이라고 간파하였다.
화성표면을 자세하게 보면, 표면의 5분의 3은 오렌지색 또는 분홍색으로 밝게 보이는 지역이고 나머지는 짙은 그림자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밝은 지역을 대륙, 또는 사막지대라고 하고, 어두운 부분을 바다라고 부르고 있다.
지구상의 망원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다음페이지 정도밖엔 찍혀지질 않는다. 그러나 육안으로는 더욱 자세한 모양을 볼수가 있어 화성에 관한 한, 현재까지도 육안관측에 의존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협력으로 화성지도가 극지방과 지명까지 붙어 만들어졌다.
화성엔 지형이 변할 정도로 맹렬한 사풍(砂風)이 대규모로 분다. 이것은 망원경을 통한 육안관측으로도 역력히 볼수가 있다. 그 사풍으로 인한 지형변화는 미국대륙 크기정도의 규모로 이뤄질때도 있다. 다음 페이지 위쪽 그림을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화성에는 달이 두개나 있다. 이것은 17세기 초두에 케플러(Kepler)가 예상했었다고 전해져 오고 있고, 18세기초에 영국의 작가 ‘스위프트’(J.Swift)가 쓴 유명한 <;갈리버여행기>;속에는 다음과 같은 귀절이 있다.
“화성엔 두개의 달이 발견되어 있다. 그 하나는 화성중심에서부터 화성반지름의 3배, 또하나는 5배의 위치에 있으며, 전자는 10시간, 후자는 21시간 반의 주기로 화성을 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두개의 달은 미국의 해군천문대에 있던 당시에 세계최대를 자랑하던 65cm구경의 굴절망원경을 사용하여 ‘A.홀’(Hall)이 1877년 8월 11일 일, 화성대접근시에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6일후에 또 하나를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이 발견이야말로 ‘갈릴레이’(Galilei)때부터 2백60년 동안이나 천문학자들이 찾고 있었던 것으로서, 군신 마르스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사이에 태어났다는 아이들의 이름을 따서, 안쪽 궤도를 도는 달을 포보스(Phobos.패주), 밖의것을 데이모스(Deimos·공포)라고 명명하였다.
궤도반지름의 크기는 포보스가 9천3백83km, 데이모스가 2만3천4백70km이며 공전주기는 각각 7시간39분13.85초 및 30시간17분54.86초이다.
화성의 반지름이 3천4백km이고, 각 달의 궤도크기는 그 2.76배 및 6.90배가 되니 스위프트의 상상력은 비범했다고 아니 할수가 없다.
화성의 운하(運河) 소동
화성엔 ‘수수께끼의 별’이란 별명이 붙어 있다. 그 이유는 화성표면이 앞서 설명한대로 위의 그림에서 보듯 표면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기도 하거니와 기묘한 줄 모양이 있어서 이것이 또 화려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이 줄모양논쟁이 화성인의 존재까지 들고 나서게 되었으니 말이다.
1864년 영국의 관측가 ‘W.R.도우스’(Daws)가 10개쯤의 줄모양을 화성표면에서 발견했다. 1877년에 이르러 ‘G.V.샤빠렐리’(Schiaparelli)가 더 많은 모양뿐만 아니라 아주 가느다란 실같은 줄모양도 발견하여 이것을 이탈리아어로 카날리(Canali)라고 명명했다. 이탈리아말로는 가닥(條)이라는 뜻이었는데, 이것을 프랑스의 ‘C. 플람마리온’(Flammarion)이 프랑스어로 카날(Canal = 運河)로 번역하여 학계에 소개하고, 다시 영어로 번역되었을 때 커낼(Canal = 運河,水路)로 소개가 된 것이었다.
이렇게 되니까 영국, 미국에서 먼저 화성에 인공적인 운하가 발견되었다 하여 폭발적인 화제가 되었다. 당시 지구상의 최대운하라는 수에즈, 파나마운하라 해도 폭이 1백m가 될까말까 한데, 적어도 지구서 보이는 화성의 운하라면 폭이 1백km는 되어야 눈에 보이니, 화성의 운하는 지구것에 비해 1천배나 큰 규모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만든 화성인은 지구인보다도 월등한 능력을 가진것이 아닐까.
이렇게해서 화성인에 대한 ‘공포의 씨’가 싹텄다가, 앞서 소개한 1939년 미국 CBS라디오의 ‘드라마 게임’때문에 미국시민 1백만명이 집을 버리고 피난을 나가는 일대 대소동이 벌어졌던 것이다.
현대과학기술의 도전
화성엔 과연 생물이 있을까? 1965년 7월, 미국은 무인탐사선 마리너(Mariner) 4호를 처음으로 화성에 보내는데 성공하여 9천8백46km까지 접근해 화성의 근접사진을 찍어보내왔다. 이때 NASA의 TV 스크린에 마리너 4호가 보내온 화성사진 제1호가 주사선(走査線) 한줄한줄씩을 그려내고 있었다. 처음 몇줄로서는 아무것도 알아 볼수가 없었지만, 약3초만에 한줄씩 그어지는 주사선이 모여 15분쯤 걸려 한 그림을 완성시켰을때 화성의 화구(火口)모양같은 것을 나타냈고 그 벽봉(壁峰)엔 얼음이 붙어 있는것 까지 볼수가 있었다.
죽은듯이 조용했던 장내(場內)가 ‘와─!’하는 환성으로 가득찼다. 서로 손을 붙잡고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뻐했던 그날의 감격을 당시 NASA에 근무하던 필자는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1969년2월과 3월엔 마리너6,7호가 발사되었고 화성에 3천4백km까지 접근했지만 운하는 아직 보이질 않았다.
이어서 1971년11월에 마리너9호를 처음으로 화성의 위성궤도에 진입시키는데 성공하여 9천장 이상의 선명하고도 놀라운 사진을 보내왔다. 마치 화성상공을 저공비행하면서 찍은 사진 같았다.
여기서 드디어 운하의 정체가 드러났다. 운하는 운하였지만 물이 완전히 말라 버린 넓고도 긴, 넓이가 5백~1천km, 길이가 4천km이상되는 대계곡이었음을 발견 하였다.
결국은 인공적인 운하는 없었음이 판명되었다.
다음에는 보다 더 야심적인 바이킹(Viking)계획이 수립되어 1975년8월20일에 1호가, 이어서 9월9일에 2호가 발사되었다.
1호는 1976년7월20일, 2호는 9월3일에 서로 7천3백60km 떨어진곳에 연착륙하는데 성공하였고, 역사상 최초의 화성풍경을 눈앞에 보는 컬러사진으로 지구에 보내왔다.
이렇게 해서 화성의 기상조건이 밝혀졌다. 화성의 최저기온은 -80℃, 최고기온은 -30℃, 기압은 7.1~7.8mb, 평균풍속은 0~9m/sec였었다.
화성이 붉게 보이는 이유는 화성흙엔 규소(珪素) 15~30%에다가, 철분이 12~16%나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