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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화학 위주에서 첨단기술 분야로

윤창구/화학공학

윤창구(尹昌求·46) 박사는 한국과학기술원 화학공정 연구실장으로 일하고 있음. 서울대 공대 화학공학과를 63년에 졸업하고 70년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음.
 

화학공학은 학문적 욕구의 충족과 함께 산업의 현실문제에 기여할 기회를 제공한다.

내가 화학공학을 전공하게 된 것은 처음부터 동기가 뚜렷한 선택은 아니었다. 요즈음같은 정보의 홍수시대와 달리 우리 때만해도 대학의 학과선택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가 드물어 대체로 막연한 인상을 기준으로 전공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정작 진학하고나서보니 우선은 당시의 최고 인기학과라고 남들이 부러워하니까 좋았고 때마침 정부에서 중화학공장들을 세우기 시작했던 시기라 졸업후 취직염려가 없어서 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화학공학을 택하게 되었나

어떻게 해서 연구하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고 밖에 이야기할 수 없겠다. 당시의 화학공학과 학생들은 졸업하면 당연히 생산현장으로 가야한다는 통념을 갖고 있었는데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니어서 ROTC 출신 소대장으로서의 군복무를 마치면 울산의 어느 정유공장에 가서 일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예편을 반년쯤 남겨 놓고 당시 해군장교로 근무중이었던 형의 부추김으로 해외에서의 대학원 과정을 생각하게 되었고 미국대학에서 주겠다는 장학금 액수가 앞으로 국내에서 받을 봉급보다 많은 것이 반가와 육군소위 퇴직금을 전액투자, 한 2년쯤 유람하는 정도의 생각으로 미국행 배표를 사게 되었을 뿐이다. 현지에 도착하고 보니 자격시험을 통과한 학생은 바로 박사학위과정에 들어가라는 통에 어떻게 보면 본의 아니게 학위를 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내 자신의 경우처럼 몇가지 우연한 일의 연속으로 학문분야와 직업을 선택하게 되는 일이 결코 드물지는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일단 화학공학 분야에서 연구생활을 해오며 선택을 잘못하였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니 다행인데 이는 비슷한 과정을 밟은 주위의 동료들에게도 공통되는 느낌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고인이된 저명한 재미과학자 이휘소박사(Benjamin Lee)와 같은 화공과 선배는 도미후 이론물리학 분야로 옮겨가서 업적이 컸지만 이는 예외에 속한다.

천재보다는 대기만성형에 적합

그러면 왜 화학공학 분야에서의 연구생활이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느냐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가 있다. 내가 자연과학쪽으로 갔더라면 아마도 이론물리학을 선택하였을 것이고 학문적 욕망은 어느정도 충족되었을 터이나 아인슈타인이 되지 못한 이상 지금쯤은 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에 종사하며 자신이 현실과 인류복지에 과연 어떠한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회의에 잡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는 자연과학에서의 창의력이 20대에 절정을 지난다는 통설에 반하여 공학분야에서는 그러한 조로현상이 그리 눈에띄지 않은 사실에도 기인한다. 특히 화학공학은 다양한 세부분야를 포괄하고 있어 한가지 과제에만 전념하는 연구자도 많지만 5년 또는 10년마다 세부분야를 바꾼다 해서 그리 허물이 되지 않는 것이 큰 매력이 된다.

내 자신의 예를 다시 들어 보면 학위를 마친후 몇년간은 전달현상 분야의 일을 하였지만 지난 10년간은 공정공학분야의 일에 종사해왔고 작년부터는 다시 고분자 분야의 일에 열성을 기울이고 있다. 공정쪽의 일을 하는 동안에도 대상제품이 정유 석유화학 철강 정밀화학 핵연료 등에 걸쳐 자주 바뀌어 온 때문에 선택의 범위가 언제나 넓었다고 할 수 있다.

화학에만 국한되지 않는 화학공학

각종 공업이 우리 사회에 제공하는 제품의 종류는 자동차 항공기 기계 텔리비전 컴퓨터 등의 조립제품과 화학약품 석유 금속 합성섬유 플래스틱 요업제품 반도체 가공식품 의약품 생명제품 등의 공정제품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이중에 공정제품을 생산하는 산업을 공정산업 또는 관습적으로 화학공업이라 부른다. 화학공업을 대상으로 하는 화학공학이 반드시 화학적 측면에만 국한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일반적으로 공학분야의 특징은 과학과 산업의 중간에 위치하여 학문적 탐구와 합리적 문제해결을 동시에 모색하는 데 있다하겠다. 과학의 오랜 역사에 비추어 공학은 산업혁명 이후에 성립했기 때문에 그 성격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인식되어 있지 못하지만 순수이론에의 탐닉 또는 지나친 기업이윤의 추구와 같은 극단이 아닌, 이상과 현실의 적절한 절충이라고 볼 수 있겠다.

화학공학은 초기에 화학과 과련이 깊었고 지금도 화학반응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20세기 초에 화학공장마다 공통되는 기본조업(unit operations) 별로 학문분야가 정리되고 특히 공통되는 전달현상(transport phenomena)을 중심으로 재구성되면서 물리학과 수학쪽 색채가 보다 강해졌다. 예를 들어 화공학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기호중에 $\mathring{f}$는 뉴턴이, ${T}_{i,j}$ 는 아인슈타인이 각각 도입한 것이다. 근래에는 유전자 분야에서의 진보에 발맞추어 생물학의 침투가 눈에 띄기 시작하고 있다.

이와 같이 화학공학은 자연과학에서의 진보를 끊임 없이 수용하고 이를 발전시켜 공정산업에 응용하는 독자적 학문영역이라 할 수 있다.
국내외 대학 화학공학 계열의 학부과정에서 앞으로 공정산업에 종사할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기초과목에 이어 양론(공정계산) 단위 조작(기본조업) 열역학(상평형) 등의 공통과목, 그리고 전달현상 반응공학 공정공학 고분자공학 재료공학 생물화학공학 등의 전문과목들이다.

학과로 본다면 우리나라나 일본의 경우에는 아마도 화학공학과(科) 공업화학과 고분자공학과 섬유공학과 무기재료공학과 유전공학과 등을 화학공학 계열로 꼽을 수 있겠으나 미국에서는 70년대의 '화학공학 및 재료공학과' 또는 80년대의 '화학공학 및 생명공학과'와 같이 기존의 화학공학과를 확장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생산현장에서의 진로

일반적으로 공학분야가 과학분야보다 직업의 선택면에서 한가지 크게 유리한 것은 기업에서의 생산 설계 경영에 참여하는 길이 열려 있는 점이다. 물론 공정산업에 종사하는 수학 물리 화학 생물학도들이 적지 않지만 이들 중 핵심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학교 졸업후 전공분야를 화학공학으로 바꾼 것으로 볼수 있다. 이와 같이 기업쪽을 선택한 화학공학도는 처음에는 생산요원으로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경영관리인으로서 화학공학의 꿈을 실현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생산에 참여하는 이들 화학공학도의 눈부신 성과는 지난 한 세기동안 공중질소 고정에 의한 농사혁명, 안정된 원유생산에 의한 수송혁명, 석유화학제품(특히 고분자재료)의 공급에 의한 생활혁명을 차례로 가져왔고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여러가지 과학산업도 결국은 이들의 손을 거쳐 실현될 것이다.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에서도 이들 화학공학도는 기존 공정산업의 효율적 조업, 새로운 제품의 개발, 확장설비와 신규공장의 능률적 설계, 기존업체의 첨단기술 분야 개척 등을 통해 빠른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왔다.
 

화학공학분야의 연구활동


선택폭 넓은 연구직

많은 공학분야중에 화학공학이 두드러져 보이는 이유의 하나는 전세계에 걸쳐 방대한 연구활동을 필요로 하며 첨단과학분야에서의 발전에 언제나 민감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화학공학도들이 연구직을 선택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물론 대학에서의 연구, 정부기관에서의 연구, 기업에서의 연구가 모두 포함된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내 산업제품의 급격한 해외시장 진출과 갈수록 심해가는 기업간의 기술경쟁에 따라 화학공학 분야에서의 연구활동이 본격화하고 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원의 경우 화학공학동 한 건물속에 박사만 해도 60여명이 모여 일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가 된다. 특히 기업에서의 연구활동은 보다 많은 우수한 연구원들을 필요로 하므로 학교마다 대학원을 확장하고 대학연구를 지원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추세이다.

화학공학분야 연구활동의 또 한가지 특징은 그 성격의 다양성에 있다. 같은 연구소 또는 같은 대학내에서도 촉매표면의 분자구조만 들여다 보고 앉았거나 공정산업에 쓰일 인공지능의 기본구조를 그려보고 있는 기초연구팀으로부터 새로운 생물학 반응기를 고안하거나 초전도체를 실로 뽑아 보고 있는 응용연구팀, 실험실에서의 10mg 시료를 토대로 시험공장을 설계하거나 실리콘 결정의 연속제조 시험설비를 가동하고 있는 개발연구팀에 이르기까지 널리 분포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무엇을 연구하나

화학공학의 연구분야는 보는 관점에따라 다른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기초현상을 기준으로 하면 촉매 및 반응공학 전달현상 공정공학의 세가지로 나누어지고 응용분야의 특성을 기준으로 하면 고분자 생물화학공학 전기화학공학 소재 및 반도체공정 에너지공정 환경공학 등으로 나누어진다.

□ 촉매
촉매는 특정 화학반응을 촉진시키지만 자신은 변화하지 않는 마술상자와 같은 물질로서, 지난 30년간 각광을 받아온 석유화학과 근래에 인가가 높아지고 있는 정밀화학기술 그리고 석유원료 대신에 일산화탄소(CO)와 수소를 사용하는 ${C}_{1}$ 화학기술의 핵심을 이룬다. 새촉매의 출현이 공정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커서 고압 반응기에서의 압력을 1백분의 1로 낮춘 사례가 드물지 않고 생명산업에서의 반응공학적 해석과 응용에도 많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전달현상
전달현상에는 유체역학 열전달 물질전달이 포함되는데 이들 현상을 구명하고 수식화함으로써 공정산업의 대부분 기본조업을 이해하고 정량화할 수 있으며 특히 새로운 종류의 분리방법의 등장이 각광을 받고 있다. 이 분야는 워낙 응용범위가 넓어 전통적 화학공학 연구의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엔트로피와 상평형을 다루는 열역학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겠다.

전달현상의 연구에서 나타나는 화학공학의 한가지 큰 특징을 대부분의 자연과학분야에서와 달리 시간과 공간에 걸쳐 분포된 장(field)을 취급하는데 있다. 따라서 화학공학자라면 초기조건, 경계조건 등을 본능적으로 염려하게 되고 이는 화공학도가 현실에 보다 밀착되어 있음을 나타내 준다.

□공정공학
공정공학에는 공정모델, 설계, 시스팀최적화, 공정제어 등이 포함되는데 일단 모든 공정을 수식화하고 방대한 분량의 계산을 짧은 시간내에 수행해야 하기때문에 컴퓨터 의존도가 매우 높다. 이러한 공정기술의 적용으로 공정산업의 효율을 크게 높인 예는 허다하다며 특히 두차례의 에너지 파동을 겪는 과정에서 큰 위력을 보였고 근래에는 전문가시스팀을 포함한 인공지능의 도입에 기대를 걸고 있다.

□고분자
고분자분야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수 있는 범용성 소재만이 아니라 열과마모에 강한 산업용 플래스틱, FRP와 같이 섬유로 강화된 복합재료, 각종 분리막, 전도성 고분자, 전기 및 광학적 기능성 소재, 의료용 고분자 등에 걸쳐 새로운 소재의 개발과 물리 화학적 특성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또 한번의 고분자 소재혁명을 예측케 하여주고 있다. 인공장기의 개발에는 고분자 전달현상 등 여러 분야가 의학계와 공동을 참여하고 있다.

□생물화학공학
생물화학공학분야에서는 근래에 유전자조작이 실현됨에 따라 일찌기 세계대전 중 페니실린 대량생산에 성공한 것과 같은 일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특히 공정산업에서 경험을 쌓은 화학공학자들이 세포의 기능과 유전정보시스팀의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을뿐 아니라 생물촉매라 할 수 있는 효소의 응용, 효소반응기, 미생물반응기, 세포반응기 등의 개발과 단백질분리방법의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석유화학 공정의 대체도 일부 시작되고 있다.

□전기화학공학
전기화학공학은 가장 오랜 화공분야면서도 전기화학의 진보에 따라 금속의 부식이나 도금, 전기제련만이 아니라 전기화학적 방법에 의한 유기물합성등이 주목을 끌고 있다. 특히 수소 및 탄산수소 연료전지의 연구에서는 전기화학, 촉매, 고분자 등 여러 분야가 참여하고 있다.

□소재 및 반도체공정
소재 및 반도체공정에서는 금속전자재료, 정밀요업재료, 반도체재료 등의 제조에 지금까지 공정산업에서 다루어온 기본조업개념과 촉매 전달현상 고분자 전기화학공학 등에서의 경험이 크게 쓰여지고 있다.

□에너지 환경공학
에너지와 환경공학에서는 석탄 등의 연소, 가스화와 같은 변환과 폐수처리, 대기오염방지, 폐기물처리와 같은 환경보호 노력에 촉매 및 반응공학 공정공학 생물화학공학적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다.
위에 보인 것처럼 공정산업에서는 물론이고 화학공학의 연구에서도 여러분야간의 협조와 팀워크가 언제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연구생활의 보람

연구생활을 하는 화학공학자들은 대체로 노벨상 받을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이는 노벨자신이 화학공학자였던 때문에 기업이윤과 관련될 수 있는 공학분야를 대상에서 제외한 때문이다. 물론 촉매 고분자 열역학 등의 분야에서 순수한 학문적 기여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은 사례가 있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예외적 경우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사회현실을 떠나 순수학문을 추구하고 싶은 사람은 화학공학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별로 없다. 한편 당장 사회복지에 기여하고 싶은 사람은 화학공학을 하더라도 기업의 생산,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보다 빠른 길이 될것이다. 그러나 이 두가지에 모두 얼마씩 관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화학공학 분야에서의 연구생활이 괜찮은 선택인 듯싶다.

화학공학에서의 연구활동이 과학과 공정산업의 양쪽에 걸쳐 있는 것은 자신의 학문적 욕구를 상당히 충족시키면서 사회의 현실적 문제에 기여함으로써 인류의 미래건설에 한몫을 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된다.

이와 같이 두 다른 세계에 한 발씩딛고 서있는 화학공학자들은 논문을 발표할 때에도 화학공학 분야의 학술지에만이 아니라 자연과학분야의 학술지에도 내는 때가 많다. 나의 경우에도 논문의 과반수가 물리학이나 화학 분야의 학술지에 발표되었고 이러한 경향은 촉매 전기화학 생물화공분야에서는 더 심하다. 그러한 또 다른 예로 최근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의 이현구 교수가 미국의 출판사 '프렌티스 홀'을 통해 출판한 단행본의 제목이 '제일차 편미분방정식:단일식의 이론과 응용'인 것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화학공학의 특성은 자연과학에서의 진보를 수용하고 공정산업의 변화에 부응하여 학문적 탐구와 합리적 문제해결을 시도함으로써 미래사회의 요구를 충족시키는데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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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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