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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영재 6백명의 교육현장 전국의 과학고등학교

과기대합격자 43%가 과학고출신

87학년도 과학기술대 신입생 선발의 결과가 알려지자 갑자기 과학고등학교가 주목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기대 입학정원 5백40명 중 과학고출신이 2백31명이나 합격해 무려 42.8%나 차지했기 때문이다. 더우기 이들 과학고출신 합격자 가운데는 2학년만 마치고 합격한 학생이 1백37명이나 돼 오히려 3학년 졸업예정자들을 앞질렀을 뿐 아니라 1학년에서도 8명이 합격하는 이변(?)을 보이기도 했다.

과학영재교육을 표방하고 지난 83년 경기과학고가 개교(나머지 과학고등학교들은 84년 개교)한 이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과학고교들이 과기대입시에서 화려한 데뷔를 한 셈이다. 게다가 금년 2월 과학고의 첫졸업생(경기과학고만 2회)을 배출하게 됨으로써 과학영재교육기관으로서의 4개 과학고교는 이래저래 많은 학생과 학부모 및 관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나라의 과학고등학교는 경기과학고(수원) 대전과학고(대전) 경남과학고(진주) 전남과학고(광주)등 4개교가 있다. 과학고교의 설립목적은 '과학에 소질있는 우수학생을 선발, 과학자로서의 기초를 닦게 하여 과학기술대에 진학시키는 영재교육.' 과학고등학교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

우선, 과학고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어느 정도 우수한가부터 알아보자. 4개 과학고교는 공동으로 학력고사를 실시, 일반고교에 앞서 특차전형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응시자격에 제한을 두고 있는데, 금년도의 경우 '중학교 2학년 및 3학년 1학기 학년석차가 모두 상위 3%이내인자로서 과학에 소질이 있으며 과기대진학희망자'로 제한하고 있다. 아울러 이같은 자격을 갖추었다고 해도 학교장의 추천을 거치도록 하고 있어 응시자격을 얻는 것부터가 매우 어렵다.

만약 학년정원이 5백명인 중학교라면 최소한 전교 15등 이내에 속하는 성적을 2,3학년 연속해서 기록해야 된다는 셈이다. 이처럼 우수한 성적을 갖고 과학고에 응시한다고 해도 높은 경쟁률(금년에 경남과학고 4.3대1, 전남과학고 4.4대1, 경기·대전은 더욱 높았음)을 돌파해야 하므로 실질적으로는 상위1%이내의 수재급이 돼야 합격이 가능하다. 전남과학고 84학년도 입학생의 경우 60명중 38명이 중3석차가 상위 1%이내였는데, 이 비율도 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고교생들의 우수성은 IQ검사결과에도 잘나타난다. 전남과학고의 경우, 2학년 IQ평균이 138.5, 3학년은 135.2이고 대전과학고 2,3학년 평균은 143.1등으로 상당히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물론 IQ테스트 자체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 또 검사지에 따라 차이가 나므로 크게 믿을 건 못되나 우수한 학생들임을 보여주는 개연성만큼은 확실하다고 하겠다.

4개 과학고가 공동관리하는 입학시험은 학력고사(1백80점)와 체력검사(20점)로 구성되는데 커트라인이 1백40~1백50점선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점수는 시험문제가 일반고교입시인 연합고사와는 달리 주관식이 많고 수준을 어렵게 한 것임을 감안할 때 꽤 높다고 할수 있다. 학력고사도 수학에 가장 많은 45점(이중 30점은 주관식)을 배점하고, 영어(35점)과학(35점)국어(30점)등 주요과목의 비중을 높이는 대신 나머지 암기위주과목은 상대적으로 배점을 떨어뜨리고 있어 요행합격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처럼 과학고 신입생들의 입학성적이라든가 IQ 혹은 중학성적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특기할 것은 해가 갈수록 더욱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그동안 과학고교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고, 86년도에 과기대가 설립대 과학고와의 연계가 미약하나마 맺어지면서부터 비롯된 현상으로 풀이할 수 있다.

우수한 학생을 뽑았다고해서 과학고가 평가받을 수는 없다. 문제는어떤 교육과정을 거쳐 훌륭한 예비과학자를 길러내느냐에 있다.
 

경남과학고등학교 대전과학고등학교 전남과학고등학교


과학·수학을 중시한 커리큘럼

과학고의 영재교육은 합격자발표순간부터 시작된다. 11월하순에 최종합격자가 발표되면 이듬해 3월초 입학할 때까지 '입학전 지도'를 하는 것이다. 대개는 중학과정의 정리와 고교과정의 진입에 필요한 내용을 학습토록 과제를 주고, 서너차례의 시험을 치른다. 이때의 시험성적은 장학생선발에도영향을 미치므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합격과 동시에 쉴새없는 공부에 매달리게 된다.

과학고등학교의 교육은 과학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소양을 익히며, 과학기술대 입학을 목표로 한 학습이 커다란 특징을 이룬다. 이 두가지는 서로 유기적인 관련을 맺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상반되는 측면도 없지 않은것 같다.

과학자의 자질을 갖추기 위해서는 각종의 실험·실습을 충분히 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과기대에 진학해서도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과기대입시통과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다보면 실험·실습이 상대적으로 등한해질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경기과학고의 홍창기교장은 "과학본연의 자세에 가장 충실히 하면서 대학진학지도를 하고 있다. 그래서 과학 탐구활동에 특히 주력하고 있다. 과학전이라든가 컴퓨터경진대회 등에도 적극 참여해 많은 상을 타고 있다"고 말한다.

아뭏든 과학영재교육을 표방하고 있는 만큼 일반고교와는 교육내용이 크게 다른데, 가장 두드러지는 게 커리큘럼과 학습진도다.

과학고의 커리큘럼은 <;표1>;에서 보는 것처럼 이수단위가 더 많다. 경남과학고의 경우를 보면 일반계고교 자연계열과 비교해 28단위가 많은데, 특히 물리(+8)화학(+8)생물(+6)의 비중이 크다. 또 일반고교에서는 없는 과학사와 전자계산이 들어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반면에 체육 음악 미술 등은 오히려 이수단위가 떨어지고 있다.

과학고에서 가장 중시하는 과목은 역시 과학과목이다. <;표1>;에서 보는 것처럼 과학과목에 대한 시간배정이 전체의 약 25%나 될 정도로 많다. 이처럼 많은 과학시간을 효율적으로 학습하기 위해서는 실험시설의 완비가 필수적이다. 4개 과학고의 경우 과학실험시설과 장비는 상당한 수준까지 갖추어졌다는 게 과학담당교사들의 얘기다.

경남과학고에서 철이온의 반응을 알아보는 음극선실험을 지도하고 있던 물리담당교사는 "과거에 진주여고와 전남기계공고 등에서 근무했는데, 이런 실험설비가 없어서 해보지를 못했다"고 말하면서 2명의 학생이 1세트의 실험기구들을 조작할 수 있도록 된 물리실험실의 시설과 장비에 만족을 표했다.

과학고의 실험시설은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등 각 과목마다 별도의 실험실과 장비가 있고, 교사·학생의 실험복까지 갖추고 있어 진지한 분위기에서 실험·실습이 진행되고 있다.

과학실험은 학생들이 실험준비서를 미리 읽어오도록 하고, 실험이 끝난 뒤 보고서를 제출, 다음 시간에 토론을 하도록 하고 있다. 실험도 2명 혹은 3명으로 된 조별로 자율적으로 이루어진다. 담당교사는 실험에 앞서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그만큼 학생들이 실험과정을 잘 소화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정규과학시간 이외에도 특별활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과학탐구반도 과학고 특유의 수업형태. 4개 과학고 모두가 특활시간에 물리반 화학반 생물반 지구과학반을 운영, 원하는 학생들끼리 모여 탐구학습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과학탐구반 활동을 통해 얻은 결과는 '과학탐구논총'(경기과학고)'탐구'(전남과학고)등과 같은 책자에 한데 묶어 발간하기도 한다. 일종의 학술연구논문집인 셈인데, 이같은 탐구활동-보고서작성-발표의 과정을 거치면서 과학자로서의 능력을 키워간다는 것이다.

수학과목도 과학 못지 않게 중시하고 있다. 특기할만한 것은 철저히 주관식위주로 수업-평가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수학시험을 예로 들면, 푸는 과정을 중시하기 때문에 답이 틀린다 해도 과정이 옳다면 점수를 많이 준다고 한다.

이밖에 영어나 제2외국어도 좋은 어학실의 장비를 이용해 충실한 수업이 가능하다. 교과서와 관련된 내용이나, AFKN명작드라마 생활영어 등의 카셋테이프와 '플래시 댄스'같은 영화의 비디오 등을 다양하게 구비, 수업시간은 물론 방과후에도 수시로 이용할수 있도록 하고 있다.

컴퓨터의 경우는 입학하기 전에 이미 어느 정도 익히고 온 학생들이 많은데, 정규수업시간과 과외활동시간을 통해 대부분의 학생들이 숙달돼 있다. 역시 완벽한 컴퓨터실을 갖추고 있음을 물론이다.

학습진도가 무척 빠르다는 점도 과학고의 특징이다. 과기대에의 조기진학이 일반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현상이라고 하겠다. 대개의 과학고는 2학년 1학기면 고교3년과정을 마치도록 학습진도계획을 짜놓고 있다. 그래서 아예 입학식날 3학년 교과서까지 모두 지급해준다. 2학년 2학기때부터는 심화과정(深化課程)으로 들어간다.

이처럼 수업시간이 많고 충실하게 이루어지며 또 빠르기 때문에 학습방식이 일반학교와는 상당히 다르다. 과학고의 교사들은 한결같이 "모두 우수한 학생들이기 때문에 일일이 간섭하기 보다는 스스로 필요한 공부를 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숙제도 거의 없으며, 수업시간에도 학생들 자신이 앞에 나와 교사역할을 하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자율학습'을 강조하고 있다.

전인교육(全人敎育)이라는 측면에서 과학고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꽉 짜인 학습스케줄에 얽매어 공부벌레만을 만들 우려는 없느냐는 얘기다. 이런 견해에 대해 과학고측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반론을 펴고 있다.

즉, "일반고교에서는 과연 전인교육이 되고 있는가. 오히려 우리처럼 자율시간을 많이 주고 있는 학교도 없다"(전남과학고)"일반학교에서 하는 행사는 우리도 하나도 거르지 않고 하고 있다. 오히려 학생수가 적기 때문에 모두가 참가하는 충실한 행사가 되고 있다"(경기과학고)"야외관찰이라든가 산업시찰 초청강연 등의 기회를 많이 갖고 있다. 운동반 바둑반 음악감상반 등 다양한 클럽활동을 장려하고 있다"(대전과학고)는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표 1>;경남과학고교와 일반고교의 교육과정 이수단위 비교^ ※ 일반고는 일반계고교 자연계열을 뜻함. ※1 단위는 1 학기당 매주 1 시간 수업을 기준으로 한 것임.


전원 기숙사생활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과학고교의 교육내용은 일반고교에 비해 타이트한 것이 사실이다. 조금이라도 학업을 게을리하면 낙오되기 십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고에 재학중인 학생들은 어떤 생활환경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까. 또 그들은 어떤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을까.

과학고교생들은 기숙사생활을 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강제가 아닌 권유'로 기숙사생활을 하도록 하고 있는데, 4개 고교 전학생이 이에 따르고 있다. 아마도 지방학생이 많은 데다가 현실적으로 공부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기꺼이 기숙사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숙사비용은 월 5만원선으로 4개 고교가 같은데, 이는 식비로 쓰여진다고 한다. 기숙사는 대개 4명이 한방을 쓰도록 돼있고, 식사는 교내식당을 이용한다. 식단은 영양사와 조리사에 의해 마련되고 있는데, 하루 세끼 식사와 밤에 간식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3월5일, 경남 과학고 교내식당의 메뉴를 보면 아침에 혼합밥 두부오뎅국 숙주나물 꼬막찜 김치 우유, 점심에 혼합밥 쇠고기국 상추쌈 고등어조림 양념장, 저녁에 콩나물밥 물김치 야채튀김 김치로 짜여졌다.

이같은 메뉴는 나름대로 영양가를 계산해 마련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학생이나 학부모들의 가장 큰 관심사로 계속 지적되고 있다는 보고서도 있고보면 개선의 여지가 있을 듯하다. 전남과학고의 경우는 새마을자모회에서 식당을 직영, 학생들의 식생활을 부모들이 직접 담당하는 열성을 보이고 있다.

기숙사는 학교실정에 따라 독립건물 혹은 교실을 개조해서 쓰고 있는데, 사감선생님이 생활지도를 맡고 있다. 일요일이나 방학때는 얼마든지 귀가토록 하고 있으나 '공부를 하느라' 많은 학생들이 기숙사를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기숙사에는 간단한 옷장과 선반 책상 외에도 사워실 세탁장 휴게실이 갖춰져 있다. 가장 문제되는 세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학교에서는 자동세탁기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기숙사와 학교가 한 울타리 안에 있으므로 어찌 보면 새장에 갇힌 새처럼 답답한 생활환경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을 의식해 새벽에 단체조깅을 나간다든가 야외관찰학습을 실시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한정된 공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꽉짜인 학습과정과 기숙사생활 그리고 치열한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시키는가가 과학고 특유의 문제라면 문제일 듯싶다.

모범생들의 고민, 조기진학실패

과학고 학생들의 가장 큰 갈등요인은 대학조기진학에 대한 강박관념이라는 게 교사들의 일치된 견해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동료들과의 경쟁에서 낙오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이같은 갈등을 가장 현실적으로 느낄수밖에 없는 그룹이 '고3'이다. 왜냐면 조기진학자가 많은 과학고에서 2학년때 대학을 못가고 입시에서 실패, '본의 아니게' 3학년까지 진급한 '재수생 아닌 재수생'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경기과학고의 경우 처음에 60명이 입학한 현재의 3학년생은 불과 15명만이 남아 있다. 이들 대부분은 2학년때 과기대에 응시했던 학생들이다. 비록 조기진학에는 실패했으나 우수한 학생들임에는 틀림없고, 또 3학년을 마치면 거의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게 되므로 전혀 문제될 게 없지만 과학고라는 특수한 환경이 이들에게 갈등을 안겨주는것이다.

3학년생들과 비슷한 경우가 1,2학년의 하위그룹. 이들 역시 우수한 학생들이지만 상대적으로 열등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과학고의 한 교사는 "우수한 학생들이 모였지만 역시 개인차는 생겨나게 마련이다. 모두가 중학교때는 우등생이었다고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이곳에 와서 석차가 40등 50등으로 나오면 눈이 휘둥그레 해진다. 그래서인지 약간의 성적변화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고 안타까와 했다.

반면에 일반고교에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흡연이라든가 음주 기타 생활지도상의 문제점은 전무하다는 게 과학고의 또하나의 특징이다. 경기과학고의 경우 개교 이래 교통사고 익사사고 약물사고 등의 안전사고는 물론, 가출 폭행 등의 비행사고도 한번도 발생하지 않았으며 처벌받은 학생도 없다는 것이다. 이 학교 83학년도 입학생중 4명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이 3년개근상을 받았으며, 행동발달상황 평가에서 '다'를 받은 학생이 한명도 없었다는데서도 '모범생집단'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경기과학고 외의 3개교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따라서 학교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학생지도문제는 3학년생들과 성적문제로 갈등을 겪는 학생들을 어떻게 격려하여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하느냐는 데로 귀착되고 있다.

이를 위해 전교사들이 상담교사가 돼 학생들과 자주 대화를 갖고 사기를 높여주고 있는데, 대개는 별문제 없이 잘 해결되고 있다고 한다. 학습활동에 있어서 자율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숙사 등 일상생활지도면에서도 학생들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배려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자존심이 강해 작은 일에도 상처받기 쉬운 학생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과학고교생들은 학습과 생활에 있어서 '자율'이 요구되는 환경에서 지내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과학고 특유의 환경하에서 학생들간의 분위기랄까, 인간관계는 어떤 것일까.

기자가 찾아간 경남과학고 기숙사의 3학년생 박모군의 방에는 'KIT 자연과 학부 박XX완벽함이 있기전엔' '630'이란 표어(?)가 책상머리에 크게 붙여져 있었다. KIT란 과기대의 영자표시고, 630이란 숫자는 과기대입시에서의 목표점수였다. 과기대를 향한 집념의 표현이었다. 또 전남과학고 2학년 학생의 기숙사 책상머리에는 '나의 목표는 세계 제1'이라는 글이 붙어 있었다.

대전과학고에서 만난 서울출신의 신입생 김정혁군은 "중학교때는 적당히 놀면서 공부해도 됐는데 합격자발표 후부터는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며 입학한지 1주일도 안된 3월초임에도 새벽1~2시가 돼야 잠자리에 들 정도로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나칠 정도로 공부에 열중인 현상에 대해 경기과학고교의 한 교사는 "중학교때 1,2등만 하다가 이곳에 와보니 조금만 학업을 소홀히 해도 수십등 밖으로 밀려나므로 강박관념이 생겨 일찍 잠자리에 들지 못하는 것 같다"며 시간이 갈수록 공부요령이 생겨 3학년들은 12시를 넘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학년일수록 공부시간이 길다는 좀 색다른 얘기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데는 분명히 동료학생에 대한 경쟁심이 작용하고 있을 듯하다. 동급생간의 사이가 원만하냐고 물어보자 "처음엔 라이벌의식이 있었지만 함께 먹고 자고 공부하다 보면 중학교때의 학교친구들보다도 훨씬 인간적으로 친하게 된다"는 게 학생들의 대답이다.

이같은 분위기는 교사들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다. 처음엔 소풍을 가도 별로 말도 없고, 오락을 해도 노래 부르려는 학생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사들이 대화분위기를 유도하고, 기숙사의 룸메이트를 바꾸는 등 노력한 결과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살려 요즘엔 입학식 전에 신입생들의 심성훈련을 실시, 기숙사에서 교사들과 함께 1주일간 머무르며 학교생활에 쉽게 적응토록 하고 있다는 것.

교사 대부분이 석사급의 학력소지

학생들의 일상생활에 있어 가장 영향을 미치는 대상중의 하나가 바로 교사들이다. 더구나 과학고처럼 영재교육을 내세우고 있는 경우, 어떤 교사들이 교육을 담당하는가는 무척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 문제에 있어서 과학고는 일종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 학교에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교사가 같은 교육위원회 소속학교에 있으면 인사규정에 구애되지않고 '모셔올 수 있다'. 또 필요하면 공개채용시험을 실시해 우수교사를 뽑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특기할 것은 교사 대 학생의 비율이 일반학교에 비해 훨씬 낮다는 사실이다. 대전과학고의 경우 교장·교감외 교과교사 20명, 양호교사 1명으로 학생과 교사의 비율이 9대1로 일반고교보다 훨씬 낮다. 그리고 이 비율도 재학생 정원(학년당 60명×3= 1백80명)을 기준으로 한 것이어서 대학조기진학자가 상당수 빠져나가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7대 1정도로 떨어진다.

이처럼 한명의 교사가 적은 수의 학생을 지도하게 됨으로써 얻어지는 효과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특히 과학과목의 실험이 충실해질 수 있고, 부진학생에 대한 개별지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학생들 개개인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진로지도나 갈등해소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과학고의 교사들은 대부분이 석사학위를 갖고 있거나 석사과정에 적을 두고 있기도 하다. 경기과학고는 27명 가운데 대부분이 석사과정 이상이고 2명이 박사과정에 있다. 다른 학교도 비슷한 실정이며, 교사들에겐 해외연수기회도 주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과학고등학교의 여러가지 면모를 종합해보면 확실히 일반고교와는 다른 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이같은 과학고교육을 통해 나타난 결과는 무엇일까.

우선 가장 손쉽게 실적을 알아볼 수 있는 대학진학상황을 보자.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과기대 합격자의 반가량이 과학고출신이고 1,2학년만 마치고 조기진학한 학생도 상당수에 이른다. <;표2>;를 보면 86학년도에 대거 과기대에 진학했고(이들이 올3월의 대학신입생에 해당) 특히 2학년의 조기진학이 두드러졌음을 알 수 있다.

이는 86학년도에 과기대가 개교했고, 이에 맞추어 '과기대진학을 위한 과학영재'를 뽑았기 때문에 그 이전의 학생들(자연계진로선택의 목적의식이 뚜렷한 자)보다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들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또 85년부터 서울출신에게 경기과학고 대전과학고에의 응시자격을 부여, 대거 입학하게 된 것(금년도 경기과학고 신입생 70%가 서울출신)도 우수학생유치의 숨은 원인이 됐다(현재는 경기과학고에 서울·경기·강원출신이, 대전과학고에 서울·충남북, 경남과학고에 부산·경남북, 전남과학고에 전남북·제주출신이 응시토록 돼있는데 서울·대구에 과학고신설을 검토중이다).

86학년도의 결과로 미루어보면 앞으로도 '과학고2학년에서 과기대조기진학' 추세가 굳어질 전망이다.

한편, 특차전형의 과기대입시에서 실패했거나 처음부터 일반대학진학을 희망한 학생들은 서울대 연·고대 등 일반대학의 이공계대학으로 대부분 진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년 2월 배출된 전남과학고 1회졸업생의 경우 과기대 32명(조기진학포함)을 제외한 나머지는 서울대 고려대 등의 이공계에 진학했고 1명만이 전남대의대에 진학했다.
 

<;표 2>; 과학기술대학 진학상황


뛰어난 학업성취도

과학고교생들의 실력을 평가하기 위한 작업이 몇차례 실시된 바 있는데, 그중 경기과학고에서의 '과학교과 성취도 테스트'와 '교과별 목표도달률' 및 '내신등급산출을 위한 비교평가'등을 보면 한결같이 비교집단에 비해 과학고교생들이 뛰어난 수치를 보이고 있다.

과학교과성취도 테스트결과는 경기과학고교생들이 미국의 상위집단 학생들보다 13.3점이나 높으며, 경기도내 I고교보다는 33.9점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과별목표도달률은 수우미양가의 5단계중 '우'이상의 성적을 얻었을 때 교과목표에 도달한 것으로 집계한 결과 전교생평균이 과학교과 86.4%, 수학교과 68.5%, 어학교과 82.4%로 나타났다. 그러나 85학년도 입학생은 전과목에 걸쳐 84.3~98.5%의 도달률을 기록, 집단속진(集團速進)이 가능한 그룹임이 입증됐다.

또 내신성적산출을 위한 비교평가에서는 비교집단(경기도내 일반고교의 1등급해당학생들)보다 10점 이상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평가결과로 과학고출신은 거의 모두가 내신1등급 자격을 인정받아 대학입시를 치르고 있다.

경기과학고의 홍창기교장은 이같은 평가수치보다도 "과학탐구논총과 같은 학술발표지를 만들만큼 과학기초소양을 갖추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며 과학적이나 컴퓨터경진대회에서 항상 우수상 특상 종합우수상등을 수상해오고 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4개 과학고교의 교육방식이나 학생생활을 살펴보면 모두 대동소이하다는 사실을 쉽게 느낄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들 4개교는 하나의 모델에 맞추어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83년에 처음 개교한 경기과학고를 모델로 다른 3개교가 커리큘럼을 만들고, 기숙사생활을 하도록 했으며 거의 비슷한 학생생활지침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과학영재교육의 소프트웨어가 같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모든 과학고가 첫졸업생을 배출시킨 현시점에서는 기존의 선례를 답습만 할 게 아니라 문제점들을 밝혀내 해결책을 모색하고, 나아가 질적 비약을 위한 새로운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영재교육의 이념·실천이 정립돼야

과학고가 당면한 현안문제는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영재교육에 관한 이론적 뒷받침이나 경험이 미약하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현재의 선발기준은 '상위3%이내인 자'로 요약되는데 이것이 불합리하다는 의견이 많다. 공부 잘 하는 학생이 반드시 과학자가 될 소질을 타고 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으며 상위3%는 초과하더라도 과학에 소질있는 학생이 있을 수 있다는 논리다.

또 과학에 적성있는 학생을 교장이 추천토록 하고 있고, 적성검사도 실시하고는 있으나, 그것으로 과학영재 여부를 결정하기에는 미흡하다는 것. 따라서 다른 과목은 다소떨어지더라도 수학이나 과학에서 두드러진 성적을 내는 학생이라면 3%이내에 들지 못하더라도 선발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견해도 있다.

대학조기진학문제도 그동안 혼선을 빚었던 대표적인 사례. 작년말의 87학년도 과기대신입생선발고사에 과학고 2년생들이 대거 합격하고, 1학년생도 8명이나 합격하자 조기진학문제가 심각히 거론됐다. 그 결과 앞으로 1학년 학생에게는 원서를 써주지 말자는 쪽으로 4개 과학고간에 의견일치를 보았다는 소식이다. 고교교육을 충실하게 받지 못할 뿐 아니라 대학생활의 적응에 문제가 예상된다는 것 등이 지적됐다.

1학년의 조기진학억제는 물론, 2학년의 조기진학도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비록 과학고가 과학영재를 조기배출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조기진학을 할 경우 실험·실습의 기회가 줄어들게 되므로 과학기초교육이 소홀한 채 대학에 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2학년때 누구나 원하면 과기대에 응시토록 하기 보다는 극소수의 뛰어난 학생만을 엄선해 조기진학시키되 대다수 학생들은 정상적으로 3년과정을 밟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수학생을 일찍 대학에 보내는 데는 고교과정의 단축보다는 중학과정을 1년쯤 단축시키는게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최근의 20대박사 배출과도 관련되는대학조기진학문제도 깊은 연구를 해보아야 할 것 같다.

과학영재교육에 걸맞는 교재개발도 당면한 과제로 지적된다. 현재는 학교 자체에서 만든 교재로 수업에 임하고 있으나 좀더 체계적인 교재개발이 시급하다는 게 일선교사들의 일치된 견해다. 과학과목의 경우 우리나라의 고교교과서와 미국의 과학교과과정(PSSC물리 BSCS생물 등)을 담당교사가 적당히 편집해서 쓰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복지와 관련된 것으로는 장학제도의 확충을 들 수 있다. 학교간에 다소 차이는 있으나 대략 20% 정도의 학생들이 장학금혜택을 받고 있는데, 이들이 일반고교에 진학했다면 대부분이 장학금을 탈 수 있는 실력의 소유자임을 감안할 때 현재 수준은 크게 미흡한 셈이다.

과학영재교육에 관한 국가적인 지원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현재 과학고의 운영은 해당 교육위원회에서 예산지원 등을 받고 있는 실정이어서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는 것. 과학영재배출의 필요성은 '국가적 차원'으로 강조되지만, 예산이나 제반운영은 '도교육위원회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과학기술처의 풍부한(?) 예산중 일부라도 지원을 해준다거나 정부 출연연구소에서 장학금혜택을 확대하는 등의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과학고출신들을 교육시켜 반드시 과학기술대에 진학시켜야만 과학영재교육이 되는가도 의문이다. 영재교육의 이념정립와 실제운영에 있어서의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깊이 있게 논의될 시점이다.

1987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정경택 기자
  • 황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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