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사상 최악의 사고로 기록된 지난 4월의 소련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사건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인간의 실수로 시작되었다.
체르노빌 원전에는 원자로의 비상용 펌프와 다른 시스템들을 가동하기 위한 보조용 디젤 발전기가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이 발전기들이 발동이 늦게 걸렸다. 그래서 기술자들은 예기치 않은 단전이 일어날 경우 이 발전소의 증기가동 터빈이 얼마나 오랫동안 발전을 계속할 수 있을까 알기 위한 실험을 하기로 했다. 이를테면 단전하는 동안 터빈이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가를 가려내기 위한 실험이었다.
일부러 냉각시스템 차단
마침내 1986년 4월 25일 상오 1시, 비극의 서막은 올라갔다. 기술자들은 실험을 준비하기 위해 로의 발전수준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날 하오 2시 운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첫번째 조치가 취해졌다. 이들은 원자로를 식히는 비상용 냉각 시스템을 일부러 차단했다. 그 순간부터 이 발전소는 위험이 도사린 비보호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배전담당자는 발전로를 가동하여 계속 이웃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기를 바랬다. 그래서 발전소 운전자들은 비상용냉각시스템을 차단한 채 9시간동안이나 본래의 용량의 50%수준으로 발전을 계속했다.
그동안 방사성 크세논개스가 발전로속에 축적되었다. 이 크세논 개스는 연쇄반응에서 나오는 중성자를 흡수하여 발전 수준을 크게 저하시켰고 따라서 로는 더욱더 불안정한 상태가 되었는데 바로 이때 실험을 중단했어야 했다고 미국 원자력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그동안 발전량은 본래의 용량의 1%까지 떨어졌기 때문에 발전량을 올리기 위해 기술자들은 제어봉을 불과 몇개만 남겨두고 모두 제거했으며 자동식 봉 제어시스템의 연결을 끊었다. 그런 상태에서도 운전자들은 발전량을 안정시키기가 어려워 끝내는 이 실험에서 요구하는 수준인 7백메가와트보다 훨씬 못미치는 2백 메가와트를 유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당황한 운전자가 조작하면 할수록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기 시작되었다. 물의 수준이 너무 낮아 2개의 주냉각 펌프를 가동했는데 다시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시스템속에 너무 많은 양의 물이 흘러 들어 가서 증기의 농도가 짙어지자 로의 상태는 더욱더 불안정해 졌다. 물과 압력의 수준이 갈팡질팡하자 운전자는 발전로가 안전을 위해 스스로 가동을 멈출까봐 걱정을 했다. 가동이 중단되면 실험을 하지 못하게 되므로 미리 비상용 물-압력 수준 경보를 봉쇄해 버렸다. 이렇게 해서 이들은 발전소를 최악의 위험상태로 몰아 넣은 채 바로 실험을 시작했다는 것이 미국의 한 원자력 전문가의 평이다.
이런 준비과정을 거쳐 만 하루가 지난 4월 26일 상오 1시 23분 4초, 마침내 실험은 개시되었다. 기술자들은 증기가 실험 상상인 터빈 발전부에 도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밸브를 잠궈버렸다. 이 순간부터 비극에서 빠져 나갈길은 완전히 막혀버렸다. 종말은 곧장 다가왔다. 불과 몇초 지난 뒤 펌프의 작동이 느려지고 로심사이로 보내는 냉각수의 양이 줄어들면서 열과 증기가 축적되기 시작했다. 실험이 시작된지 40초가 경과한 뒤 관리책임자는 사태가 매우 위급하다는 것을 깨닫고 제어봉을 로속에 다시 삽입하여 연쇄반응을 멈추려고 시도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다시 몇초가 지난 상오 1시 24분 두번에 거쳐 천지를 뒤흔드는 대폭발로 이 발전소는 박살이 났다.
핸들에 손떼고 운전 하는식
첫번째의 폭발은 엄청난 수준의 증기와 압력이 로심속의 튜브를 파열시켜 로의 천장이 찢기면서 일어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두번째는 수소의 폭팔로 로의 건물 지붕이 날아갔다. 흑연으로 된 로심은 공기에 노출되자 격렬하게 타기 시작했다. 이 지옥의 불길은 무서운 방사성 동위원소를 대기중으로 뿜어 냈으며 이것은 바람에 실려 수천마일 밖으로 날아 갔다.
이것은 지난 8월말 비엔나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 임시회의에 보고하기 위해 소련 당국이 처음으로 밝힌 체르노빌원전사고의 진상이다. 이 보고를 접한 서방원자력전문가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 그것은 흡사 차가 얼마나 빨리 달리는가 알아보기 위해 핸들을 놓고 차를 전속력으로 모는 것이나 다를바 없었다는 것이다. 사고가 났을때의 필요한 안전장치를 모두 차단해 버리고 실험을 하는 사람들에게 원자로와 같은 복잡하고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장비의 운영을 어떻게 맡길 수 있었을까고 이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소련 원자력 평화이용위원회 위원장인 '안드로니크 페트로시안츠'는 체르노빌 원전이 1983년 가동을 시작한 이래 너무나 순조롭게 가동해 왔기 때문에 태만한 직원들이 자기도취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하고 있다. 소련당국은 이 원자로의 설계자들이 운전자가 일부러 그렇게 많은 안전장치와 경고장치를 못쓰게 만들리라고는 미처 생각도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서방측 전문가들은 운전자의 실수가 이 사고의 주요 원인이기는 하지만 설계에도 잘못이 있었다고 보고있다. 이들은 미국이나 서방측에서 설계된 원자로였다면 운전자가 이와 꼭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도 로는 파괴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설계상 가장큰 실수중의 하나는 로를 수용하는 격납빌딩이 없었다는 것을 들고 있다.
5천명 이상 죽는다
이 사고의 피해는 사고당시 발전소근처에 있던 31명이 사망했다고 밝혔으나 미국전문가들은 이 보고서의 인간오염수준에 관한 정보에서 5천명 이상이 방사선으로 생긴 암으로 일찍 죽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비엔나에서 IAEA주최로 열린 62개국임시회의 참가자들은 사고피해에 대하 서로 엇갈린 주장을 했다. IAEA 핵안전국장 모리스 로젠과 국제방사선보호위원회 위원장인 '댄 베니슨'은 당초 이 사고로 앞으로 70년간 2만4천명이 사망할 것이라고 추정했으나 소련의 자료를 검토한 뒤 그 숫자를 반으로 줄였다. 이에 대해 참석했던 과학자들은 이들이 결국 원자력산업계의 압력에 굴한 것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뉴욕의 자연자원보호위원회의 '토머스 코크란'은 처음에 제시한 2만4천명이라는 숫자도 오히려 너무 낮게 잡은 숫자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이 보고서는 체르노빌 발전소를 둘러싼 이웃지방은 정상보다 2천5백배나 더 많은 수준의 방사능을 가지고 있어 앞으로 오랜 세월을 두고 위험 지대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소련당국은 이 보고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전소를 둘러싼 3백여평 방마일의 지역으로부터 13만5천명의 주민이 철거했다고 밝혔는데 종전에 추측한 철거민수는 10만명이었다. 철거민들은 거의가 키에프서쪽 마카로프지구의 52개 촌락에 정착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발틱해 연안의 소비에트 '에스토니어' 공화국의 한 신문은 그곳 예비군들이 체르노빌 정화작업에 강제로 동원되어 하루 14시간동안 빌딩과 나무의 오염을 씻어내리고 오염된 표토를 파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들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하고 있다'고 보도 하고 있다. 당초 2개월로 예정되었던 동원기간이 6개월로 연장되자 불만과 실망의 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고 공식 보도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사태는 더욱 심각한 것으로 짐작된다.
토양과 물의 오염을 어떻게 해결할것인가
체르노빌 사고조사는 이제 완결되었으나 정화작업은 언제쯤 끝날지 예측할 수 없다. 최근 몇주째 일련의 기술적인 장애로 작업은 난관에 부딪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아직도 위험한 방사능 입자를 방출하고 있는 로를 콘크리트 무덤으로 뒤집어 씌우는 작업이다. 소련은 시멘트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또 로의 열이 축적되어 새로운 화재와 폭발이 일어나는 것을 막자면 환기장치를 설치해야 한다.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체르노빌 발전소의 다른 3개 핵로가 이 제4발전로를 봉쇄할 때까지 운전을 재개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작업의 지연을 비판하고 있다.
한편 과학자들은 망가진 토양의 오염을 제거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칼슘화합물, 물, 인을 땅에 뿌리자고 제의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론상 흙으로 스며들어 나무뿌리 밑의 방사성 원소를 끌어내자는 것이다.
물의 오염은 더욱 중대한 걱정거리로 남아 있다. 체르노빌 발전로에서 남쪽으로 80마일 떨어진 인구 2백40만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시는 상수용 물의 반을 '드니에페르'강에서 공급받고 있다. 그래서 체르노빌 근처의 하천과 저수지의 오염된 물이 이 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콘크리트 차폐물을 건설하고 있다. 현재 키에프시의 제빵공장과 우유공장들은 최근에 새로 지하 깊이 뚫은 구멍에서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다.
체르노빌 철거민들은 계속 치밀한 검진을 받고 있다. 이들은 암과 그밖의 방사능질환의 징후를 찾기 위해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있다. 또 로에서 1백마일 이내를 여행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방사능 검사를 받게 되어 있다.
한편 체르노빌 여파로 피해를 입고 있는 유럽 여러나라는 이번 소련의 보고에 대해 매우 심각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 주요한 식량원인 농작물과 순록(馴鹿) 떼들의 오염으로 피해액은 적어도 1억4천4백만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보고 있다. 칼손수상은 '핵발전을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서기 2010년 이전에 스웨덴이 보유하고 있는 12개의 핵발전소를 폐기할 계획이다. 44개의 핵발전소를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과학자, 농민, 의사들의 집단이 염소치즈. 부추와 그밖의 식품에서 아직도 상당수준의 방사성 세슘을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보건사회부 대변인은 보건 문제에 관한 한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영국의 웨일즈, 스코틀랜드, 컴브리나지방의 목축업자들은 가축들이 오염된 풀을 먹었기 때문에 출하를 금지당하자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고 요구 하고 나섰다. 영국 외무성은 이들을 대신하여 소련을 상대로 국제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소련 당국의 믿을 수 없는 장담
서방측전문가들은 소련의 원자로는 근본적으로 설계에 결함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소련 당국은 사고의 원인을 사람의 실수로만 돌리고 있다. 비엔나회의에 나온 소련의 수석대표 '발레리 레가노프'는 "이 시스템의 결함은 설계자가 운전자의 어리석은 행동을 미리 내다보지 못한 것 뿐'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소련은 현재 14기의 RBMK-1000체르노빌 형 원자로중에서 반은 가동을 중단하고 개선작업을 하고 있다. 레가노프에 따르면 이 작업에는 핵분열을 완화시키기 위해 제어봉의 수를 늘이는 일이 포함된다고 한다.
이밖에도 운전자가 마음대로 제어봉을 철수할 수 없게 제한을 가하고 보다 안전한 블렌드의 우라늄 연료를 개발중이다. 그러나 서방 전문가들은 이런 새로운 조치를 취한다고 해도 RBMK로가 서방측 안전수준에는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서방측 비판에 대해 모스크바 핵발전연구소의 소장인 '아르멘 아바기안'은 이번의 개선으로 사고방지를 '절대보장'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방측이 체르노빌형 원자로의 설계가 잘못되었다고 아무리 비판해도 소련은 이 원자로 설계에 대한 아집을 쉽게 버릴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