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의 1할이 간염바이러스 보유자. 어떻게 하면 간질환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간은 우리 몸에서 가장 큰 장기로서 1천 2백g 내지 1천 5백g의 무게를 가지는데, 그 역할을 한마디로 말하면 신체내의 거대한 화학공장이다.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물질을 무수히 생산하고 저장하며, 장에서 무분멸하게 흡수된 성분을 몸에서 적절히 이용할 수 있도록 가공하기도 하고, 쓸데없는 물질은 정화조를 거치는 것처럼 처리하여 배설시키기 때문이다.
이처럼 막중한 기능을 하는 간은 그 능력에도 상당한 여유가 있어서 가령 3분의 2를 잘라내도 나머지로 정상기능을 해낼 수 있다. 또 간세포는 일단 손상을 받더라도 재생능력이 왕성하기 때문에 쉽게 원상태대로 복구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간은 간염이나 간경변증 심지어는 간암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목숨까지 잃게 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간과 그 질환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있어야만 간으로 인한 질병에서 피할 수 있고 또 불필요한 공포에서도 해방될 수 있다. 무엇이 우리의 간을 위협하며, 그 작용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간질환에 가장 현명하게 대처하는 길은 무엇일까를 알아보자.
간질환을 세분하면 선천적 기형, 유전질환, 대사질환, 기생충성 질환 등 무척 많고 까다롭지만 일반적으로 간염 간경변증 간암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질환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하고도 흔한 원인이 B형간염바이러스의 감염이므로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특히 간질환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간염의 주범, 바이러스
간염이란 한마디로 간세포 전반에 걸친 염증을 말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질병의 핵심이 간의 염증인 경우이다. 따라서 폐염이 심하여 그 염증이 간에 영향을 미치거나 또는 장티푸스 등이 경과중에 간에 염증을 일으키는 경우는 증상이나 간기능검사성적이 간염과 같더라도 이는 폐염이나 장티푸스로 취급되지 간염으로 보지는 않는다. 이것은 그 질환의 경과나 치료가 본래의 간염과는 판이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간에 염증이 있을 때 혈액검사를 하면 그 수치가 몹시 상승되는 효소(SGOT, SGPT)가 있어서 이를 간염의 진단과 경과 및 관찰에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위에 언급한 대로 간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역시 동일하게 상승될 경우도 있으며 또 간과는 전혀 무관한 심장질환 근육질환 갑상선질환 등에서도 상승할 수 있으므로 환자의 진찰이 선행되지 않으면 판독하기가 불가능한 검사라고 할 수 있다.
간염은 미생물 특히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하는게 대부분이다. 세균(박테리아)진균(곰팡이) 등은 간에 전반적인 염증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곪는다든지(간농양) 육아종(양성 미세종양)을 형성한다든지 하므로 간염으로 불리우지 않는다.
미생물에 의한 간염 이외에 가장 많은 것은 약물 또는 유독물질에 의한 간염이다. 물론 음주에 의한 간염도 여기에 속한다. 그러므로 간염으로 진단된 경우 이것이 약물이나 음주 또는 유독물질에 의한 감염일 가능성이 없는 환자는 잠정적으로 바이러스에 의한 간염이라고 취급해도 무방하다.
3개월 안팎에 완치되는 급성간염
간염은 크게 급성과 만성으로 분류된다. '급성'이란 단기간 동안만 앓고 완전히 치유되거나 극히 일부는 사망하거나 하는 경과를 의미하는 용어이다. 만성은 간염이 수년, 수십년 또는 일생동안 호전과 악화를 되풀이하면서 유지되며, 치유라는 개념이 없는 용어이다. 그러므로 만성간염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치유되었다고 하는 대신 호전되었다는 용어를 사용한다.
간염은 3개월 내지 6개월의 관찰로서 완치되지 않으면 만성으로 판정하게 되는데 이는 앞으로도 완치가 불가능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일단 급성간염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모두 3개월 내외에 완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약물이나 유독물질 또는 술에 의한 간염은 그 원인을 제거하면 질환이 호전되고 또 치유된다. 그러나 원인이 무엇이든간에 간염의 증상이나 소견 또는 검사성적 때로는 조직검사까지도 비슷하기 때문에 원인을 찾기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약물에 의한 간염은 어느 특정인에게만 일어나며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약제에 의해 유발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결핵약에 의해 유발되기도 하고 또다른 사람은 혈압 강하제나 항생제에 의해 유발되기도 하며, 단순히 아스피린에 의해 유발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약물성 간염은 사람에 따라, 또는 영양상태 연령 성별 종족 등에 따라 간에서의 약물대사가 조금씩 다르므로 어떤 사람은 간염이 발생하지만 전혀 안전한 사람도 있는 등 개인차가 나타나게 된다. 이처럼 생화학적인 구조식까지 모두 알고 있는 약제에서도 간염이 발생하는 것을 감안하면 그 내용이 전혀 과학적으로 분석된 바 없는, 민간요법에 사용되는 약제들의 잠재적인 간염 발생가능성은 매우 크다 하겠다. 이러한 이유로 의사들은 간염이 심하게 진행되는 환자들에게 생약이나 민간약제의 복용을 금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구미제국과는 달리 환자가 의사처방없이 약을 취득하고 복용할 수 있으며 또 효과가 불확실한 여러가지 생약이나 민간요법이 많아 이러한 약물성 간염이 특히 많으리라 생각되고 실제로도 자주 경험하고 있다.
거의 모두가 걸리는 A형간염
바이러스 간염은 A형, B형, δ(델타)형 및 비(非)A 비B형 들이 알려져 있는데, 이중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A형과 B형이다.
A형간염은 아주 작은 RNA 바이러스가 환자의 대변으로 배설되므로 대변에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먹으면 감염된다. 국민소득이 낮은 나라는 대부분이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 까닭에 어린시절에 거의 모든 국민이 A형간염에 걸리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약 6년전의 통계에 의하면 15세 이하 인구에서 97% 가량이 A형간염을 앓고난 후 나타나는 항체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고, 15세 이상에서는 보기 힘든 병으로 인정되었다. 이 병은 한번 앓고 나면 영구면역이 생겨서 다시는 앓지 않는 질환이며 만성간염이나 간경변증 또는 간암으로 진행될 위험이 전혀 없는 간염이다. 예를 들어 1백명이 걸렸다 하면 95명은 본인도 모른채 증상없이 지나가버리고 단지 5명만 증상을 나타내는 질환이다.
또 1982년 서울의 아파트지역을 대상으로 한 통계를 보면 15~25세 사이에서 이러한 A형간염이 자주 발생되고 있음이 관찰된 바 있다. 이러한 사실은 도시지역의 일부계층에는 상당히 좋은 환경 속에서 자라난 젊은이들이 많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며 앞으로 우리나라가 발전할수록 이 병은 소아의 질환으로부터 성인의 질환으로 자리바꿈 할 것으로 짐작된다(그림1).
여하튼 간염에 걸렸더라도 그것이 A형간염이라고 진단되면 일시적으로 고생만 하면 완쾌되는 아주 가벼운 질환이며 후유증도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면 된다.
우리나라에 많은 B형간염
그러나 B형간염은 문제가 다르다. 이는 급성간염도 일으키고 만성간염 간경변증 나아가서는 원발성 간암까지 유발하는 골치아픈 간염이다. 이 B형간염바이러스는 온갖 방법으로 전파될 수 있다. 즉, 수혈, 오염된 주사침, 각종 사람간의 접촉, 음식물, 출산시 모체에서 태아로의 전염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염경로가 있다. 전염원은 물론 간염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이다.
그러므로 인구중에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의 빈도가 많을수록 간염이 쉽사리 확산되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그림 2).북유럽이나 북아메리카 지역은 1천명당 1명내지 2명꼴로 나타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어떤 섬에서는 인구의 50% 이상이 간염바이러스 보유자인 지역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간염바이러스 보유자가 바로 감염원이므로 바이러스만을 박멸하기란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실정이고, 따라서 감염원을 제거할 수도 없다. 다만 B형간염의 예방이 강조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만성간염 간경변증 원발성 간암이 점차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B형간염도 역시 급성간염으로 진단되면 2,3개월내에 거의 완치되고 약5~10%만이 만성간염으로 변화는데, 사망률도 1% 이내로 극히 미미하다. 그러나 만성 B형간염은 사정이 다르다.
B형 간염 바이러스 장기 보유자가 문제
위에 언급한 바대로 6개월 이상 B형간염 바이러스를 보유한 것이 증명되면 그 다음부터는 검사를 하지 않더라도 수년 또는 수십년간 간염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으리라 판단되는 장기보유자로 진단된다.
이 장기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중에는 끝없이 염증이 발생되었다가 호전되고 다시 재발되는 경과를 되풀이하는 만성B형간염이 있으며, 간세포는 완전히 정상적이고 다만 간염바이러스만을 보유하는 건강보유자도 있다.
이들 건강보유자는 자신은 간염바이러스에 의해 피해를 보지 않기 때문에 일생을 통하여 타인에게 간염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역할만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강보유자는 남자보다 여자에게 훨씬 많으며 만성간염은 남자가 많은데, 이 차이가 무엇때문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모자감염이 큰 문제가 되는 것도 이렇게 여성중에 건강한 바이러스 보유자가 많기 때문이다.
동일한 B형간염바이러스에도 감염되어도 어떤 사람은 일시적으로 급성간염이 발생되었다가 완치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만성으로 진행되고 또 일생동안 염증없이 바이러스만 보유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은 B형간염바이러스가 직접적으로 간에 염증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감염된 환자측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바이러스가 일단 간세포에 침입하여 번식하게 되면 그 자체로서는 염증을 일으키지 못하고 우리 체내의 일종의 레이더 장치인 면역감시기구에 침입이 감지된다. 그러면 면역감시기구에서는 면역세포를 출동시켜 바이러스가 감염되어 있는 간세포를 공격하게 된다. 이렇게 공격받은 세포의 바이러스는 박멸되나 이때 간세포마저 함께 파괴되는 결과를 초래, 간염이 발생되는 것이다.
만일 1백개의 간세포가 바이러스를 포함하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면역감시기구가 완벽하여 1백개 세포를 모두 공격하였다고 가정하자. 이 공격으로 인해 염증이 심해진 환자는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황달을 보이게 된다. 또 간기능검사에서도 심한 이상소견을 보이지만 결국 바이러스가 모두 박멸, 완치된다. 이것이 바로 급성간염이다.
반대로 면역감시기구가 허약하거나 체내에 면역감시기구의 활동을 방해하는 물질이 있을 경우 1백개의 감염세포 중 일부분인 70~80개밖에 공격을 할수 없었다 하자. 그러면 급성간염의 경우보다는 훨씬 증상도 덜하고 간기능검사성적도 좋겠지만 공격받지 않은 20~30개의 나머지 간세포들이 그동안 인접한 간세포에 다시 바이러스를 침입시키게 된다. 그러면 면역기구는 다시 그 일부분만을 공격하는 끝없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이것이 바로 만성간염에 해당된다.
출생직후의 감염을 막아야
한편 면역감시기구가 간세포에 감염된 바이러스를 전혀 이물질로 생각지 않는다면 바이러스는 면역세포의 공격을 받지 않고 계속적으로 간에서 번식할 수 있을 것이며 간세포도 염증없이 건강하게 보전될 수 있을것이다. 이런 상태가 바로 건강보유자인 셈이다.
건강보유자가 되는 경로는 많지만 가장 흔하고 중요한 경로는 출생 직후의 감염이다. 출생 직후는 면역감시기구가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때이므로 간세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이에 대한 면역세포가 방출되지 않고 마치 바이러스도 자기 자신의 일부인양 잘못 인식하게 된다. 일단 이렇게 인식되면 일생동안 계속되므로 장기 건강보유자가 되거나 염증이 가벼운 만성간염상태로 지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간염바이러스의 만성보유상태가 B형간염바이러스 간염의 가장 중요한 문제이므로 만일 엄마가 보유자라면 자녀에게 출산당일 특별한 예방조치를 취해야만 만성보유자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한집안에서 형제들이 모두 보유자인 가정은 어머니가 외견상 건강하더라도 출산시에 감염된 결과라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도 확인되고 있다(그림3).
동일한 간염바이러스 보유자라도 타인에게 전염시키는 힘이 강력한 사람도 있고 거의 전염시키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전염력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인종적인 차이도 있다. 구미의 여성들과 극동지역의 여성들을 비교해보면 같은 간염바이러스 보유자라도 구미의 여성들은 전염력이 약해서 출산시 감염이(모자감염) 큰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극동지역의 여성들중 임신가능 연령층에 장기보유자는 반수 이상이 강력한 전염력을 가지고 있어 모자감염이 큰 문제로 되고 있다. 결국 이러한 모자감염 경로만 차단할 수 있다면 장기보유자의 발생을 현저하게 낮출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산모에게 출산 직전 B형간염바이러스 검사를 받게 해서 보유자로 판명되면 출산당일 아기에게 특별한 예방조치(B형간염면역글로브린 및 B형간염백신)를 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아기가 감염되는 것은 출산 당시이며(태아시기에는 거의 감염되지 않음) 간염백신이 예방능력을 발휘하려면 주사후 1개월 이상이 지나야 하므로 이 1개월동안은 일시적으로 예방효과가 있는 고단위의 B형간염바이러스 항체가 함유된 감마글로브린을 함께 주사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왜 이토록 B형간염바이러스의 보유율이 높을까. 이는 물론 우리나라를 비롯한 극동지역이 세계에서도 가장 심한 인구밀집지역이며 개인위생이 아직도 미흡하다는데 연유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아마도 그외의 다른 조건도 관여하리라 생각된다.
즉, 우리나라는 단일민족이며 조상의 피를 대대로 물려받고 있으므로 혈액에 의한 전파가 특징인 이 질환의 빈도가 혼혈이 심한 구미제국과는 차이가 날 것이다. 또 동양의 특징인 대가족제도도 가족내 전파를 쉽사리 이루어지도록 하는 여건이 되었으리라고 여겨진다. 물론 위에 언급한 종족간의 전염력의 차이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원인치료가 불가능한 B형만성간염
만성간염은 간염이 6개월 이상 지속되었음을 의미하며 이러한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간염이 있으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만성간염은 원인이 B형간염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면 B형만성간염, 약물에 의한 것이면 약물성, 술에 의한 것이면 주정성, 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면역구조의 이상으로 생기는 것이면 자가면역성 만성간염 등으로 분류된다.
만성간염도 북아메리카 북유럽 또는 오스트레일이아에서는 자가면역성 만성간염이 많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아프리카 남부유럽 등지에서는 B형만성간염이 대부분이다. 만성간염을 많이 일으키는 비A비B간염도 있으나 아직까지 바이러스의 정체가 확실치 않고 그 경과도 B형간염보다는 훨씬 가벼워서 아직 B형에 비하여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일단 우리나라 만성간염의 대부분을 점유하는 B형만성간염은 원인제거를 할 방법이 없으므로 원인치료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경과는 사람마다 몹시 다양하다. 간염의 검사수치가 일시적으로 상승되었다가 하강하는 현상만 되풀이될 뿐 환자의 건강에는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며 간경변증으로 변화되지도 않는 양성형태(만성지속성간염)에서부터 반드시 간경변증이 되거나 이미 간경변증이 일부 되어 있는 심한 만성간염(중증만성활동성간염)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이 만성간염은 환자의 증상이나 혈액검사 또는 각종사진(X선 동위원소 초음파 컴퓨터)에서 비슷한 양상을 보이므로 아직까지는 간조직검사에 의해서만 그 형태를 진단할 수 있다.
결국 상당수의 B형만성간염환자는 일생을 별탈없이 지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의 나쁜 경과(중증만성활동성간염) 만을 연상하여 정확한 진단을 받기도 전에 공포심을 갖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간경변증은 왜 생길까
간경변증은 만성간염과 같이 수많은 원인을 갖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것은 역시 B형만성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며, 그 다음이 습관성 음주에 의한 형태이다. 그러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간경변증이 초래되면 간의 형태나 이로 인한 결과는 동일하다.
간 전반에 걸쳐 만연되어 있던 염증이 치유되는 과정에서 흉터를 남기면 흉터 사이에 살아있는 간세포들도 위로 솟아오르게 돼 마치 간이 검붉은 자갈길과 같은 형태를 보이는 것이 경변증이다. 이러한 형태의 변화는 간의 미세구조까지 영향을 주어 혈관분포의 이상, 임파관의 변화와 함께 간세포의 절대수가 감소하여 간기능장애를 나타낸다.
간으로 유입되는 혈관은 간동맥과 문맥 두종류로 이루어지며 대량의 혈액이 이를 통하여 간을 경유, 심장으로 유입된다.
간이 경변증에 의하여 혈관의 주행이 바뀌고 압력이 커지면 압력이 낮은 문맥의 혈류는 간에서 저항을 받아 상당수가 심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다른 길을 모색한다. 어떤 경우에는 소량의 혈류밖에 흐르지 않던 복부의 표면혈관을 이용하기도 하는데 이때 환자의 복부에 시퍼런 핏줄들이 유난히 두드러져 보인다.
또 어떤 경우에는 식도정맥을 이용, 식도정맥이 커다랗게 부풀어서 일종의 정맥류를 형성하기도 한다. 일반인의 종아리에서 정맥이 지렁이같이 울퉁불퉁 솟아나온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와 똑같은 모양이 식도내에 형성되기도 한다(식도정맥류).
항문에 있는 직장정맥을 이용하는 경우 직장정맥에 대량의 혈액이 모여서 울퉁불퉁한 혈관덩어리를 형성하는데 이것이 바로 치액 또는 치질이다(물론 치질에 다른 원인도 많다). 식도정맥류는 출혈을 보이기도 하는데 일단 출혈되면 응급조치를 요하는 상당한 대출혈을 보이는 수도 많다.
또 문맥의 압력이 높아지고 간의 섬유화로 인하여 간에 임파액이 많이 고여서 복강안으로 모이면 뱃속에 수분이 고이기도 한다.
문맥혈압의 항진은 비장에서 문맥으로 유입되는 혈류에 저항을 주어 비장이 몹시 확대, 왼쪽 상복부에 손으로 만져지기도 하고 가끔 몹시 커진 비장이 기능도 함께 증가되어 혈구를 파괴하는 등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물의 대사과정중의 해로운 산물들(특히 단백질대사의 산물)은 정상인에게서 문맥을 통하여 간에 도달, 처리된다. 만일 간기능히 저하되고 또 문맥혈류의 대부분이 간을 통과하지 못하는 상황이 초래되면 이러한 유독물질은 직접 전신혈류로 순환하게 되며 중추신경계에 장애를 일으켜 환자의 정서적·이지적 판단능력에 장애를 일으키거나 성격을 변화시키기도 하며 심하면 혼수상태를 초래하기도 한다(간성뇌증 간성혼수).
개인차가 심한 간경변증
그러나 간경변증은 정도의 차이가 몹시 심하여 아주 심한 사람만이 위에 말한 장애를 일으킨다. 또 일단 장애가 와도 쉽사리 치료되는 사람이 많다. 더우기 일생동안 외견상으로 정상인과 다름없이 활동하다가 천수를 누리는 간경변증 환자도 얼마든지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우연한 기회나, 정밀검진을 통하지 않으면 병원을 찾지도 않기 때문에 생전에는 잘 진단되지 않는다.
간경변증을 진단해주는 혈액검사는 아직까지 신뢰할만한 것이 전혀 없다. 간경변증만 있을 때에는 혈액을 이용한 간기능검사가 대부분 정상으로 나타난다. 다만 간염이 합병되어 있는 경우만 염증 수치가 증가하므로 피검사를 가지고 간경변증을 진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우기 간경변증이 심하지 않으면 전혀 증상도 못느끼기 때문에 증상으로도 판별이 불가능하다.
B형간염바이러스로 인한 간경변증이라도 간경변증이 되고 난 후에는 상당수에서 B형만성간질환에서 혈액내의 B형간염바이러스가 소실된다 해도 반드시 질환의 치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또 소실 되지 않는 것이 질환의 악화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40~50대 남자에게 많은 간암
간의 악성종양의 대부분은 원발성 간암이다. 위암이나 다른 장소의 암이 간에 전파되었다면 이를 간암으로 부르지 않는다. 꼭 불러야 될 경우 전이성 간암이라고 부른다.
간암의 원인이 되는 암유발인자는 여러가지가 많이 제시되고 있으나 가장 연관성이 깊고 중요한 것은 역시 B형간염바이러스의 감염이다.
우리나라의 통계 및 간암이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발생하는 세네갈의 통계를 보면 원발성 간암환자의 어머니는 거의 모두 B형간염바이러스 장기보유자임이 학계에 보고되어 있다. 또 원발성 간암환자는 대부분이 B형간염을 앓았거나 B형 간염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고,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자가 많은 가족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B형간염바이러스 보유율이 낮은 나라에서는 원발성 간암환자가 별로 없다.
근래에는 간암조직내에서도 간암세포의 DNA와 B형간염바이러스DNA가 혼합되어 있는 것이 유전공학적 조작으로 밝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원발성 간암환자는 B형간염바이러스의 장기보유자에서 주로 발생되며(간염이 있든 없든 간에), 주로 모자감염으로 형성된 보유자에게서 30~40년 정도 경과하면 바이러스 유전자가 간세포 유전자에 모종의 변화를 초래, 암을 발생케 하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원발성 간암환자는 약 7대1내지 8대1의 비율로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주로 40~50대의 남자에게 많이 발생하는데 과거의 간질환 병력이 있든 없든 간에 간경변증이 80~90%정도로 합병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B형간염바이러스 장기보유자이며 남자이고 중년이면 간암발생의 위험률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증상에 관계없이 간경변증이나 만성간염이 있으면 위험성이 좀더 증가되며, 가족중에 동일한 사람이 있으면 좀더 증가된다.
간암은 일단 증상이 나타날 때는 대부분이 치료할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된 상태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암종도 초기에는 미세한 덩어리에서부터 시작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근래에는 일단 간암발생이 우려되는 집단(B형간염바이러스 장기보유자, 40~50대, 만성간염 또는 간경변증, 특히 남자, 가족력)을 미리 선정한 후에 이들을 대상으로 건강할 때 1년에 약4회씩 혈액검사 및 초음파검사로 미소간암(직경 약2cm내외)을 발견하기 위한 조기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조기에 발견되는 환자는 외과적으로 제거할 수도 있고 그 이외의 방법으로 치유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간질환의 효과적인 예방책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간질환이 많은이유는 B형간염바이러스의 장기 보유자가 많기 때문이며 다음 세대에 동일한 유산을 물려주기 않기 위해서는 예방만이 최선책이다.
예방은 특히 신생아를 중심으로 소아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를 위해서는 이 질환의 본태에 대한 계몽이 가장 중요하다. 또 임산부의 사전검사와 저렴한 예방주사의 개발 등이 절실히 요망된다.
일단 본인이 장기 바이러스 보유자이면 우선, 타인을 위해 개인위생에 신경을 써야한다는 것은 상식이라 하겠다. 염증이 동반되어 있는 사람(만성간염)은 극히 일부분만이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질환임을 명심하고 자신의 생활과 질병을 동시에 공존시켜가는 지혜를 키워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사람은 평소 건강할 때라도 1년에 3,4차례씩은 정기검진을 받아 위험에 대비하는 게 현명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