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의 대만과 남쪽의 보르네오 사이에 원시자연이 보존된 많은 섬들로 이루어진 필리핀군도는 아름다운 산호초가 둘러싸고 있다.
7천개가 넘는 섬
필리핀의 국민학교 교과서에는 이나라의 섬의 수가 모두 7천1백3개라고 쓰여있다. 이 많은 섬 중에서 이름이 붙어있는 섬은 2천7백73개 뿐이며 사람이 정착한 섬은 8백80개다. 나머지는 이름없는 암초이거나 산호초이다.
그 가운데 루손섬(10만6천㎢)과 민다나오섬 (9만 6천㎢)이 가장 크고 그밖의 주요섬은 양대섬 사이에 있는 비사야제도의 7개섬(사마르, 파나이. 레이테, 세부, 보홀, 마스바테, 네그로스)과 민도로, 팔라완섬등이다.
지질학적으로 이나라의 지질은 아직 발전과정에 있어 때로는 산의 융기상태를 측정할수 있을 정도로 활발히 변동하고 있다.
재미있는 현상은 선신세에 아메리카 대륙 서쪽연안을 형성한 융기와 꼭 닮은 융기현상이 이 필리핀에도 생겼다는 지질학자의 설이다. 그것을 뒷받침 하듯 이 두지역에는 태평양이라는 광대한 대양이 사이에 가로 놓여 있는데도 이상하게도 닮은 암석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자연의 특징은 환태평양화산대와 환태평양지진대가 걸쳐있어 화산이 많고 지진과 태풍이 잦으며 해안선이 복잡한 것이다.
젊고 불안정한 화산이 언제 분화를 일으킬지 모른다. 루 섬의 타르산과 마욘산, 높이 2천9백65m로 필리핀 최고봉을 과시하는 민다나오의 아포산과 카탄라트산등은 언제 대폭발을 일으킬지 모르는 화산이다.
타르산은 마닐라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다. 타르호수 가운데에 뾰족 튀어나온 산으로 작지만 화산 활동은 활발하다. 1965년9월의 대분화 때는 가까이 있던 마을하나가 전멸되었다. 화구에서는 항상 분화가 솟고 있다.
태풍도 주기적으로 엄습해온다. 수도 마닐라가 있는 루손섬도 태풍의 재난을 피할수는 없다. 그러나 익숙한 대비태세가 갖추어져 있다. 태풍이 발생하면 그 진로가 각 일각으로 알려지고 해안 가까운 민가나 호텔, 상점등이 재빨리 문과 창을 굳게 닫는다. 강한 바람이 야자나무를 흔들기 시작할 무렵이면 거리는 껍질속에 몸을 움츠린 거북처럼 만전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태풍이 지난 뒤에는 곧 피해상황조사가 시작된다. 가장 피해가 큰것은 언제나 톤도지구라 불리는 슬럼가다.
그러나 이 태풍의 위협도 사마르섬 이남의 섬들에는 미치치 않는다. 민다나오섬 남쪽 기슭의 다바오는 태풍이 오지않는 마을로 유명하다.
해안지대에는 산호초가 발달되어 있다.
사마르섬 북동에서 핼마헤라섬 북쪽 까지 이어져있는 길이 1천40백km, 폭 60km의 필리핀 해구는 깊이가 6천m 이상으로 민다나오섬 북동에는 엠덴해연(깊이 1만4백m)이, 레이테섬 동쪽엔 케이프존슨해연(1만4백97m)이 있다.
가는 곳마다 각종의 난이 많이 자라고 있으며 1934년 국화로 제정된 자스민의 일종인 산파기타의 향이 그윽하고 인동 덩굴이 햇살에 우아하게 반짝이는 모습은 필리핀 특유의 자연의 평화로운 정경이다. 관광객이 자주 찾는 파구산한 폭포주변의 열대림도 진풍경의 하나다.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로 2시간쯤가면 파구산한 마을이 있다. 이곳에서 '방카'라는 작은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1시간쯤가면 높이 1백m의 시원한 폭포가 있다. 그 주변에 열대식물이 가득차 있는 것이다.
북위 4도에서 21도에 걸쳐 있는 필리핀은 열대권이어서 전국을 통틀어 연 평균기온이 섭씨 27도이고 기후에 변화를주는 요인은 주로 강우이다. 강우 형태에 따라 7가지 기후형으로 구분된다.
이 나라의 총면적은 30㎢이고 인구는 5천2백만명이며 수는는 매트로 마닐라다(인구 6백만명).
복잡한 인종과 1백가지 방언
아시아 대륙과 필리핀이 연결되어있던 빙하기(1백50만~50만년)에 이곳에 살았던 인류는 피테칸트로푸스(호모 에렉투스)였다고 고인류학자들은 풀이하고있다. 그뒤 대륙과 분리되고 나서는 인도네시아와 인도차이나, 말레이에서 14세기경 까지 계속 이주해왔다. 이렇게 필리핀은 오랜동안에 걸친 여러차례의 이주로 이루어진 종족이며 주류는 말레이계이다.
이들은 이주해온 뒤 각각 고립된 정착생활을 계속했음이 현재도 부족언어(방언)가 1백가지를 넘는 사실에서도 알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언어는 타갈로그, 일로코, 팜팡코, 비콜, 세부아노, 일리가이논(일롱고), 와라이와라이, 마긴다나오, 팡가시난등 말라야-폴리네시아 어파의 9개 자매어다. 1946년 독립후 타갈로그어를 기초로하여 필리핀국어로 정해 쓰고 있으며 영어도 공용어로 쓴다.
근세에 들어와 스페인인들이 몰려왔다. 스페인 식민지가 된뒤에는 중국인의 유입이 본격화되어 상인, 기술자로 식민지경제에 큰 역할을 했으며 필리핀인과의 혼혈도 활발했다. 지금 그들의 후예는 유력한 경제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약9만명의 등록된 중국인을 귀화시킬 방침을 세우고 추진중이다. 스페인인도 식민지지배와 기독교 포교과정에서 원주민 상류층과의 혼혈이 빈번히 이루어졌고 미국인을 비롯한 외국인과의 혼혈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는 메스티조(혼혈인)를 많이 낳게되어 필리핀 독특한 사회계층이 형성되었다. 종교적으로도 아시아에서 유일한 기독교국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원주민에 속하는 부족의 민속관습은 건재하고 있다. 마닐라 공항 가까이에 있는 '나욘 필리피노'(필리핀촌)에는 각지에서 모은 원주민의 민가를 복원해 놓고 각종 민예품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 여기에 전시된 각 부족의 전통예술품은 루손섬 북부 주민이 쓰던 제사용구나 수르제도의 이슬람계 주민이 만든 청동기, 비사야제도의 등세공 등등 각양각색이다.
필리핀에는 이런 원주민을 위한 민간기관인 '파나민'(민간소수민족협회)이 있다. 파나민의 조사로는 필리핀 전인구의 약 10%가 이런 소수민족이라는 것. 그 중에는 수르제도의 이슬람교도들처럼 문화 수준이 높은 민족에서 이후가오족, 이고로토족, 카링가족, 틴기안족등 문명이 뒤떨어진 부족도 있다.
루손섬에 사는 네그리토족은 체격이 작아 1m50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피부는 검고 머리칼은 곱슬머리로 짧다. 식물섬유로 만든 허리에 걸치는 짧은 옷을 입고 수렵채집생활을 한다. 그들은 지금도 이빨을 줄로 쓸어 날카롭게 하고 있다. 2차세계대전 때는 일본군과 용감하게 싸운 유명한 부족이다.
민속학자들이 주거나 의복, 신앙등으로 조사한 이후가오족과 아파야오족의 풍속은 별나다.
이후가오족의 거주지는 혹서기간 동안 마닐라의 정부업무가 이동되는 사실상의 여름수도 바기오에서 산길을 자동차로 6시간이나 올라간 바나웨 일대다. 그들이 몇세기 동안에 걸쳐 힘들여 이루어 놓은 계단식농지의 훌륭한 경관은 필리핀 굴지의 가관을 이룬다. 산의 경사면을 계단식으로 가다듬어 계단마다 작은 논을 만든 것이다. 1천년도 더 넘는 옛날부터 이후가오족은 이 계단식 논에서 수확한 쌀을 쌓아놓고 있는 고간에 수호신 '부르루'의 목상을 모셔놓고 하루하루의 무사함을 빌며 지낸다.
이후가오족의 북쪽 이웃에 사는 본토크족도 별난 풍습을 갖고 있다. 처녀들이 '오로그'라는 합숙소에서 팔에 문신을 새기고 지내고 있다. 노인들이 중요한 문제를 의논하거나 독신남성이 지내는 장소는 '아토'라하여 어두운 동굴속에 있다.
또 루손섬 다음으로 큰 민다나오섬의 산악지대나 다바오 데르 노르테주의 삼림지대에는 만다야, 만사카 족이 살고있다. 그들은 이빨을 검게 물들이고 자수를 한 푸른바지를 입은 모습으로 작은 그룹을 이루고 산다.
이미 알려진 이런 부족과는 달리 민다나오섬에서 혈거생활을 하는 타사다이 족은 1971년 '파나민'회장 마누엘 에리사르디가 처음 보고하기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존재였다. 이 발견 보고는 세계에 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켜 각국에서 민속학자와 인류학자, 고고학자들이 절벽에서 혈거생활을하는 현장으로 몰려들었다. 조사결과 타사다이족은 모두 24명이고 흑요석으로 칼을 만들고 나무토막을 마찰시켜 불을 일으키며 채집경제를 영위하는 신석기시대 그대로의 생활을 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 종족의 행동범위는 주거지인 동혈에서 발경 수km 이내에 한정되어 있는것이 오랜동안 몸에 배어있어 외부세계를 본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 조사단에 이끌려 숲의 바깥쪽으로 나가 봤을때 그들은 처음으로 보는 평탄하고 넓은 세계에 놀랬다는 것이다. 몸에 두르는 것은 나무잎 뿐이고 나무뿌리나 수분이 많은 과실과 유충, 개구리, 가재등이 식료품이었다. 식료품 채집에는 하루 2시간 정도 쓰며 나머지 시간은 숲속의 나무를 바라보고 지내거나 어린이들과 놀면서 지낸다. 걱정거리는 아무것도 없다. 일부일부제이나 결혼때의 의식은 없는것 같다.
에리사르디가 타사다이 족과 나눈 대화에서 "부부는 언제까지 함께 지내는가?" 라는 질문에 "머리칼이 희게 되기까지" 라 대답했고 "싫어질때는?" 이라는 질문에는 날카로운 눈매를 하고 괴상한 고함을 질렀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수장은 필요없는 것 같았다. 다른 부족과의 전쟁도 없고 부족안에서의 다툼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이 땅을 떠나지 말라는 선조의 가르침을 지켜왔다"고 그들은 되풀이 했다.
필리핀 정부도 그들의 지금까지의 생활을 그대로 지킬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 가끔 큰새(헬리콥터)를 타고 대예언자(마누엘 에리사르디)가 찾아 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을 즐거움으로 지내고 있다.
세계일주에 나섰던 항해가 '마젤란'이 비사야제도의 사마르섬에 상륙한 것은 1521년이었다. 이때 비로소 서부태평양의 섬이 많은 이지역이 유럽에 알려졌다. 곧 뒤이어 스페인의 항해가 '빌리야로보스'가 1543년 민다나오섬에 상륙, 스페인 황태자 '필리페 2세'의 이름을 따서 필리핀제도라고 명명했다.그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연은 거의 변화함이 없이 보존되고 있고 주민들의 생업도 쌀농사와 사탕수수재배를 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인공위성이 찍은 루손섬
필리핀의 최대도시이며 주요항구인 마닐라는 필리핀군도 제일 북쪽에 있고 가장 큰 섬인 루손섬의 남서쪽에 있다.
이 도시는 마닐라만 동쪽 가장자리에 있으며 원형을 이룬 만이 남지나해로 부터 밀려오는 거치른 파도를 막아 도시를 지키고 있는 방파제처럼 되어있다. 6백만명이 넘는 인구가 사는 이 도시는 내륙부로 향해 10km 정도로 펼쳐져 있다.
침전물 때문에 밝은 청색으로 보이는 라그나데이호와 마닐라만을 잇고 있는 실같이 가는 선의 파시그강 양쪽에 마닐항의 시가지가 펼쳐져 있다. 마닐라의 동남쪽 교외에는 필리핀의 공식수도 케손시가 있으나 지도사진으로 보아서는 마닐라의 중심부와 구별하기 어렵다.
마닐라만의 왼쪽에 회록색으로 펼쳐져 있는 부분은 개펄이다.
그 북쪽에 밝은 적색으로 나타나 있는 곳은 농업지대로 주로 쌀과 사탕수수가 나는 습지대다.
필리핀군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목재생산국의 하나인데 군도 전지역의 34% 이상이 삼림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계곡 동쪽에 보이는 밝은 적색으로 나타나 있는 부분이 해발 30m 정도로 계속하여 이어진 유명한 삼림지대이다.
여기서 더 남쪽(오른쪽)으로 가면 라그나데바이호 오른쪽에 산 파브로 마을이 있는데 사진에서는 푸른색가까운 점 정도로 나타나 있다.
또 마닐라시의 오른쪽에는 타르호가 어두운 색으로 나타나 있고 그 한가운데에는 작은 섬이 보인다. 이것이 함몰된 활화산의 크레이터이다.
환태평양화산대의 바로 서쪽에 있어 화산활동이 활발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또 하나의 휴화산 마크이링산은 라그나데바이호의 바로 오른쪽에 우뚝 솟아있는 것이 보인다.
섬의 동쪽(사진의 위쪽) 포리료 해협을 지나면 해저가 필리핀해구를 향해 급격하게 깊어져 수심이 5천m 이상이 되며 그 동쪽은 1만km 떨어진 남부 멕시코에 이르기까지 큰 육지가 거의 없는 망망한 태평양이다.
이 사진은 지구자원탐사위성 랜새트가 9백20km 상공에서 찍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