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먼 옛날 우리 조상이 부여와 고구려, 발해를 세워 크게 번성했던 옛땅 중국대륙 동북부. 기원전부터 여러 민족과 국가가 흥망을 거듭했던 이 광활한 평원과 산림지대가 지금은 농경지대와 중공업기지로 변해가고 있다.
한반도 북쪽의 중국대륙 동북부-요녕(遼寧·랴오닝)·길림(吉林·지린)·흑룡강(黑龍江·헤이룽장)의 3성(省)으로 이루어지고 면적 1백23만㎢에 인구 5천여만명이 살고있는 땅이 동북(뚱뻬이)지방이다.
중국 청대(清代)에는 동삼성(東三省)으로 불렸고 일본은 20세기 들어 대륙진출을 꾀하던 때 만주(滿卅)라고 불렀다.
북쪽에는 흑룡강과 우수리강이, 남쪽은 압록강과 두만강이 흐르고 서쪽에는 대흥안령산맥(大興安嶺·따싱안링)이 있어 자연경계가 이루어져 있고 동남쪽은 소련 연해주를 넘어 동해를 건너보고 있다.
남부에는 한반도의 북쪽과 소련 국경에 걸쳐 장장 1천3백㎞나 되는 장백산맥(일명 동부산지)이 뻗어있고 북부에는 북서에서 동남으로 소흥안령산맥(小興安嶺山脈·샤오싱안링)이 걸쳐 있으며 북서쪽 끝이 대흥안령산맥과 이어져 있다. 대흥안령산맥은 북북동에서 남남서로 쭉 뻗어 동북쪽에서 보면 산지로 보이나 서쪽 몽고에서 보면 구릉지에 지나지 않는다. 장백 산맥의 최고봉은 해발2천7백44m의 백두산이고, 소흥 안령산맥에서는 1천1백50, 대흥안령산맥에서는 1천7백47m가 최고봉이다.
대흥안령산맥 동남쪽에는 열하산지(熱河山地·최고봉 5천50m·오룡산)가 있고 이 산지와 대흥안령산맥에 둘러싸인 분지모양의 평야가 동북분지(일명 동북평원)이다.
동북평원은 중국 최대의 평원으로 송화강(松花江·쑹화강·슨가리강)과 요하(遼河·랴오허) 유역을 장춘(長春·창춘) 부근에 있는 표고 3백m 정도의 흑요분수령(黑遼分水嶺)이 남북으로 갈라놓고 있다. 송화강과 연강(㜛江) 유역의 북부는 송연 평원, 요하유역의 남부는 요하평원으로 불린다. 남북이 1천㎞, 동서는 넓은곳이 4백㎞에 이르는 광활한 평원이다.
송화강은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発源)하여 북서로 흐르다가 길림성 북서부에서 연강을 합친 뒤 북동으로 유로를 바꿔 목단강(牧丹江·무딴강)과 합치고 다시 흑룡강성 동부에서 흑룡강과 합류된다.
한편 우수리강은 동부 국경을 북류하여 흑룡강에 합류되는데 우수리·송화·흑룡의 세강이 합류되는 일대는 표고 50m 이하의 낮은 평지와 습지 소택지로 이뤄져 있다.
요하는 한민족의 발상지로 지목되는 대흥안령산맥에서 발원하는 서요하(西遼·시랴오)와 장백산맥에서 발원하는 동요하(東遼河·뚱랴오)가 요녕성 동북부에서 합류하여 하류부에서 넓은 충적평야를 형성한다.
호소(湖沼)는 광활한 면적에 비해 적은편이다.
동북지방은 북위 39도에서 53도 사이에 자리하여 시베리아 기단의 중심부에서 가깝기 때문에 겨울은 추위가 혹심하여 1월 평균 기온이 북부에서는 -30℃ 전후이고 최남단의 뤼따(옛날의 여순과 대련)에서도 -5℃이다. 그렇기 때문에 길림 시내를 흐르는 송화강에서 이른 아침 기온이 -22℃~-33℃나 되는 겨울에 피어 오르는 수증기가 강변에 늘어선 가로수에 얼어붙어 얼음나무가 되는 자연현상은 '길림의 명물'로 이름나 있다. 또 겨울 기간이 길어 하얼삔(哈爾濱) 이북에서는 8개월이나 되고 하천이 얼어버리는 기간도 6개월이나 된다. 이런 시기에 하얼삔 자유시장의 완탕등 뜨거운 음식을 파는 노점에 추위를 이기려는 주민들이 몰리는 광경도 유명하다. 그런가 하면 여름은 그 기간이 짧고 7월 평균기온이 겨우 20℃를 넘고 또 기온의 남북격차가 작아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미작(米作-쌀농사)지대이다.
겨울에는 고기압의 영향으로 삼한사온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4월에는 몽고풍이라는 강한 서북 또는 남서풍이 불어 거의 연일 풍진이 일어난다.
연간 강수량은 남동부 산지에서 1천㎜, 치치하얼(斉斉哈爾)에서 약 5백㎜이고 서부로 갈수록 적어진다. 연간 강수량의 약 60%가 6~8월에 집중되고 11월~3월에는 10%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증발이 심하기 때문에 건조농법(乾燥農法)이 쓰이고 있다. 토양을 냉대의 침엽수림 아래에 발달한 포드졸(Podzol)이 산지에, 평원북부에는 흑토가, 평원남부에는 갈색토가 깔려있다.
동북지방의 민족 구성은 한족(漢族)이 총인구 5천여만명의 90%를 넘는다. 그 대부분이 청조시대 3백년 동안에 이주했다. 19세기말경 총인구가 3백만정도이던 것이 그후 매년 50만~1백만명씩이 화북(華北)과 산동(山東) 지방에서 유입했다.
소수민족으로는 만주족(滿卅族) 약2백10만명이 요녕성을 중심으로 살고 있으며 한민족(韓民族) 약1백20만명이 길림성 동북 국경지대에 연변(延辺·옌뼨) 한족자치주를 형성하여 살고있고, 내몽고 쪽엔 몽고족 30여만명이, 후이족(回族) 20여만명은 대도시에 분산하여 살고 있다. 그밖에 다구르족, 오로촌족, 시보족, 오웽크족 및 러시아인이 약간씩 살고 있다. 일본이 만주괴뢰정권을 세운뒤 2차대전 종전 까지는 일본인이 약 1백만명 살았으나 패전후 거의 모두 철수했다.
동북지방에서 가장 일찌기 역사의 각광을 받은 지역은 일찍부터 전작농업이 발달한 요하의 하류유역 요동이다.
원주민은 맥(貊)족으로 알려졌다. 맥족은 아시아대륙 북방에서 구석기시대를 지낸 고아시아 민족으로 오랜 생활근거지를 떠나 차츰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신석기시대 초기에서 중기에 동북평원지대와 요동에서 터전을 잡았다. 그러나 한족(漢族)이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요동만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거나 요하 상류의 송화강 유역을 따라 가다가 압록강 유역으로 진출했다.
동북에서 번영했던 나라는 기원전1세기에서 기원7세기에 이르는 고구려(668년간), 7세기부터 10세기에 이르는 발해(926년간), 12세기에서 13세기에 걸친 금(金), 17세기 이후의 청이었다. 고구려는 길림성 동쪽 졸본(卒本)에서 일어나 세력을 크게 넓혀 광개토대왕(재위기간 391~412)과 장수왕(재위 413~491) 때는 요동반도와 한반도 북부, 연해주를 차지하였고 이어 한반도 남부로 진출하여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427년에는 도읍을 현재의 평양으로 옮겼다. 중국의 수(郁),당(唐), 그리고 한반도 남부의 백제, 신라와 싸우다가 신라와 당에 패해 멸망했다는 것은 우리의 상식으로 돼있다. 이때 고구려의 왕족이나 귀족의 일부가 동북부로 흘러가 발해를 세웠으며 또 일부는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알려져있다.
발해의 수도는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즉 현재의 흑룡강성 영안현의 동경성(東京城)이며 당의 수도 장안을 본따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전성기에는 서북부에서 연해주까지 세력이 미쳤고 불교문화가 크게 일었으며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렸다. 몽고계의 요(遼)에 의해 멸망되기까지 일본과도 교역이 활발하였으며 영향을 크게 미쳤다.
17세기에는 청이 일어났으나 19세기 후반에 쇠퇴하기 시작했고 러시아가 한때 진출을 꾀했다. 청조의 발상지였던 고도 심양(瀋陽·셴양)은 지금 중국대륙 제4의 대도시로 중공업 중심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또 하얼삔에서는 러시아식건물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하얼삔 중앙시장에서 바라보이는 러시아정교사원 '소피아 천주교당'도 그중의 하나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일본이 남만주철도를 경영하면서 남부지역의 경제지배를 추진하던 중 1931년 소위 만주사변 이후 괴뢰정권만주국을 세워(수도 長春) 동북부 전역을 완전히 일본 식민지로 만들었다.
일본이 패하고 물러간 전후, 처음에는 소련이 침공하여 철도를 장악했으나 1952년 소련과 중공의 협정으로 양도된 후 중공 최대의 중화학공업지대로 변하고있다.
광활한 평야지대에서는 밭농사중심의 농업이 발달되어 수수, 콩, 조, 옥수수가 많이 나며 쌀은 한국인이 재배하기 시작하여 곡창지대를 이루었다. 요하평원에서는 면화가, 하얼삔 부근에서는 아마가, 흑룡강성에서는 사탕무우가 많이 난다. 그밖에 양잠과 유축농업도 성하다. 동북분지는 겨울이 길기 때문에 작물 재배기간이 짧으나 비옥한 토양과 여름의 적당한 온도 및 강우량으로 농작물 수확이 많다. 수확기에 일방무제한 대평원에서 콩을 말리는 작업은 온 누리를 누렇게 물 들이는 장관을 이룬다.
동부와 북부 산지에서는 목재가 많이나 펄프와 제재업이 발달했고 여우, 수달 등의 모피도 많이난다.
철, 석탄, 유모혈암, 석유, 구리, 납, 금, 은, 보크사이트 등 광물자원의 매장량도 많다. 동서 약 7㎞, 남북 2㎞에 이르는 유명한 푸순(撫順)의 노천탄광에서는 지금도 석탄을 활발히 캐내고있다. 또 발해만 연안의 천일제염과 펑만(豊満)발전소등 수력발전의 개발과 함께 중화학공업이 다져지고 있다. 안산(鞍山)의 철강 콤비너트에서 내뿜는 굵은 굴뚝의 연기가 이런 것을 상징하고 있다.
교통은 철도망이 조밀하게 발달되어 중국대륙 철도 총연장의 40%가 동북지방에 깔려 있다. 삔창선(濱長線·하얼삔~장춘), 창따선(長大線·창춘~뤼따)이 대동맥이다. 이 간선은 중앙 요충지 셴양(瀋陽·옛날 奉天)에서 뻬이징(北京)으로 이어지는 국제 철도와 한반도로 이어지는 국제철도로 갈라지며, 하얼삔에서는 시베리아 철도와 이어진다.
항만은 1만톤급의 선박 50척이 동시에 접안 할수있게 시설되어있는 뤼따(旅大) 항이 국제무역항으로 활기를 띄고 있으며 항공로의 중심지는 셴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