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지야! 고딱지! 어딨어?”
루띠가 큰 소리로 딱지를 불렀습니다. 딱지는 무슨 급한 일이 있나 싶어 얼른 뛰어갔습니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자 루띠가 우주선 벽을 뜯어내고 뭔가 고치고 있었습니다.
“왔어? 내가 망치를 잃어버려서 말이야. 망치 나와라, 뚝딱!”
도망칠 새도 없었습니다. 금세 딱지의 코가 부풀어 오르더니 망치가 쑥 튀어나왔습니다.
“됐다! 그것 좀 깨끗이 닦아서 갖다 줄래?”
“아이 참, 저랑 도깨비방망이 좀 분리해 주면 안 돼요? 언제까지 이렇게 살라는 거예요?”
딱지가 화를 냈습니다.
“어, 연구 중이야. 조금만 기다려.”
루띠는 조금도 미안하지 않은 표정으로 성의 없이 대답했습니다. 딱지는 투덜거리며 망치를 닦으러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아, 잠깐!”
루띠가 뭔가 생각난 게 있다는 듯이 불렀습니다.
“왜요?”
“얼마 뒤에 우주순찰대 플래닛 5종 경기 대회가 있는 거 알지? 우리는 너를 대표선수로 내보내기로 했어. 혹시 그때 쓸모가 있을지 모르니 그때까지는 그냥 있는 게 좋을 거야.”
“네? 제가 선수로요?”
우주순찰대 플래닛 5종 경기는 매년 은하계의 우주순찰대가 한자리에 모이는 축제입니다. 우주선마다 한 명씩 대표선수를 내고, 선수들이 우주순찰대로서 임무를 수행하는 능력을 서로 겨루지요. 특징이 서로 다른 다섯 행성의 환경을 본뜬 경기장에서 목표를 먼저 달성하면 이기는 방식입니다. 딱지도 사관학교 생도 시절에 구경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 우리는 너를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어느새 뒤에 다가온 해롱 선장이 말했습니다. 그 뒤에는 용용과 프로보도 서 있었습니다. 딱지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언젠가 그 무대에 꼭 서보고 싶었거든요.
“정말로, 막내인 제가 나가도 되는 거예요?”
“그럼. 선장인 내가 그런 시시한 대회에 나갈 수는 없잖냐.”
“난 팔도 없고, 추운 행성에선 얼어붙기 때문에 나가기 싫어.”
“우리 중 누군가 나가서 우승할 확률은 코딱지를 파서 튕겼는데 마침 지나가던 무당벌레에 들러붙어서 무당벌레가 땅으로 추락해서 마침 지나가던 개미 위에 업힐 확률과 같….”
“아니 아니, 됐고. 특별히 너를 위해서 내보내려는 거야. 페가수스 선장도 경기를 보러 올 텐데, 눈에 확 뜨일 수 있지 않겠어?”
루띠가 프로보의 말을 끊으며 끼어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 딱지는 더욱 의욕이 불타올랐습니다.
‘페가수스 선장님이 지켜보실 거야!’
마침내 대회 날이 되었습니다. 비상시에 대비해 계속 근무하는 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모든 우주순찰대원이 한곳에 모였습니다. 경기의 진행과 심판을 맡은 건 우주순찰대 최고의 인공지능 컴퓨터 ‘깊은 생각’이었습니다. 딱지도 잘 모르는, 고대 지구 행성에 전해지는 이야기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했습니다. 깊은 생각은 우주순찰대가 모은 모든 정보를 처리하고 판단할 수 있는 초강력 컴퓨터로, 그 크기는 작은 행성만 했지요.
“잘 놀다 와라~. 우리는 편히 구경이나 해야겠다.”
“큰 기대는 없으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
딱지는 동료들의 응원 같지 않은 응원을 들으며 경기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래도 조금은 열심히 응원해 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살짝 들었습니다. 경기장에서는 수많은 드론이 하늘을 날며 참가자를 안내했습니다. 대기실에서 첫 번째 경기를 준비하고 있는데, 마침 아는 사람이 보였습니다.
“로렌스 선배!”
“응? 어, 고딱지로군.”
로렌스 선배는 딱지보다 1년 먼저 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모범생이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페가수스 호에 배치되어서 근무하고 있었지요. 그때 로렌스 선배를 보며 미래를 꿈꾸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페가수스 선장님은 정말로 그렇게 훌륭하신가요? 정말 부러워요.”
“으, 응? 부럽긴 뭐. 페가수스 선장님이야 물론 훌륭하시지만….”
로렌스 선배는 몹시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자, 이제 첫 번째 경기가 시작됩니다. 참가자는 모두 입장해 주십시오.”
깊은 생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로렌스 선배가 심호흡을 하며 주먹을 불끈 쥐고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로렌스 선배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왔구나. 이렇게 쟁쟁한 사람들 틈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는 쉽지 않겠어.’
딱지는 약간 의기소침해졌습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만약 로렌스 선배를 이긴다면 페가수스 선장의 눈에 확 뜨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딱지도 속으로 기합을 넣고 경기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우와아~!”
선수들이 입장하자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수많은 우주순찰대원이 관중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허공에 커다란 홀로그램으로 떠 있었습니다. 그 압도적인 모습에 순간 딱지의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그때, 깊은 생각이 경기 내용을 설명했습니다.
“대회 때마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제가 극비리에 경기 종목을 선정합니다. 여기 계신 참가자 64명 중 누구도 이번 대회에서 어떤 경기를 치를지 모릅니다. 그러니 설명을 주의 깊게 들으십시오. 매 경기에서 선수가 절반씩 탈락하게 됩니다. 자, 첫 번째 경기를 위해 앞에 있는 네모칸 중 하나를 골라 그 안에 들어가십시오.”
경기장에는 가로와 세로가 각각 8칸씩, 총 64칸인 네모 격자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하나둘씩 칸을 골라 들어갔습니다. 딱지도 남아 있는 칸 중 하나를 골라 들어갔습니다. 모두가 칸 안에 들어가자 바닥에서 울타리가 올라오며 각각의 칸을 분리했습니다. 동시에 바닥에서 무릎 높이의 초록색 풀이 자라나 칸 안을 빼곡히 채웠습니다.
“자, 첫 번째 경기 시작합니다. 우주순찰대로서 어딘가 이상한 점을 알아채는 능력을 겨루는 ‘눈썰미 경기’! 배경은 행성 전체가 풀로 뒤덮여 초록색을 띠는 ‘그린 행성’입니다. 여러분이 서 있는 칸 안에는 풀과 똑같은 초록색의 바늘이 한 개씩 있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바늘을 찾아내십시오. 늦게 찾아내는 절반은 탈락입니다! 준비, 시작!”
‘초록색 풀밭 속에 초록색 바늘이 하나 있다고? 그걸 어떻게 찾으라는 거야?’
딱지는 당황스러웠습니다. 네모 한 칸의 크기는 가로세로 각 10m 정도였습니다.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은 딱지는 일단 엎드려서 손으로 풀숲을 헤쳤습니다. 어디를 봐도 초록색이라 초록색 바늘이 쉽게 눈에 띌 리가 없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외쳤습니다.
“찾았다!”
깜짝 놀라서 돌아보니 누군가 초록색 바늘을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몇 명이 더 초록색 바늘을 들고 일어섰습니다. 그중에는 로렌스 선배도 있었습니다.
‘저 사람들은 눈에 뭐가 달리기라도 한 건가?’
딱지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이러다간 페가수스 선장에게 인상을 남기기는커녕 첫 경기에서 떨어질 판이었습니다. 그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자석 나와라, 뚝딱!”
딱지의 코에서 작은 자석이 빠져나왔습니다. 루띠 말대로 몸에 결합한 도깨비방망이가 쓸모가 있었습니다.
“삐빅! 외부 도구 사용은 반칙입니다. 고딱지 대원 경고 하나 받았습니다. 경고 셋이면 실격입니다.”
드론이 날아와 말하며 자석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그 와중에도 더 많은 사람이 바늘을 찾아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떨어지면 창피해서 어쩌지? 수석 졸업이라고 그렇게 자랑했는데….’
이판사판이었습니다. 최후의 수단을 떠올린 딱지는 풀밭 위에 벌러덩 드러누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