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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말하는 허준이 교수 ②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아내가 틀어놓은 랜덤 플레이리스트에서 패닉의 '냄새'가 흘러나온다. 준이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자리에 앉자마자 벌어진 일인데 신기하다. 우리 기억의 첫 줄에는 그 앨범이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준이는 과학부장이자 농구를 좋아하는 소년이었고, 나는 두꺼운 책을 학교에 가져와 읽는 척하는 이상한 아이였다. 우연히 뒷자리에 앉게 된 나에게, 그는 빌려달라고 한 적도 없는 가요 CD를 건넸다. 그리고 무심하게 한 마디 던졌다. “들어봐, 이건 좀 다를 거야.” 아, 정말 달랐다. 건내 준 CD 속 ‘냄새’라는 곡의 가사는 매우 특이했다. 뭔가 썩는 냄새가 난다며 코를 킁킁대는 가사라니.

 

그때의 준이는 대체로 교과서에 없는 것들을 좋아했다. <데미안>의 저자 헤르만 헤세, <마지막 잎새>의 저자 오 헨리, <토니오 크뢰거>의 저자 토마스 만, 영화 ‘아멜리에’의 감독 장 피에르 주네, 김건모, 퀸, 바흐, 조지 윈스턴, 비틀즈에서 넥스트까지. 공부는 시험 전날에 하는 것이었고, 막상 시험 전날엔 집중을 위해서 볼링을 치자고 하는 친구였다. 나와 함께 나란히 수학 시험에서 60점을 받고 충격을 받았던 준이는 당시 유행하던 게임기를 침대 밑에 집어넣었다고 했다. 다시 꺼내느라 애를 먹었다는 말과 함께.

 

 

아무튼 준이가 CD를 건넸던 그 날 이후 우리는 예술에 빠졌다. 크리스마스 카드도 전위적으로 만들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어느 국어 시간, 내가 연습장에 되는대로 끄적인 글을 본 준이가 제안했다. “너는 시를 쓰고 나는 소설을 써서 바꿔 읽자.”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손에 땀을 쥐도록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것도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라면!

 

나는 공장 돌리듯 어설픈 시를 양산해 준이에게 ‘납품’했고, 준이는 매번 놀라운 소설을 ‘발표’했다. 중학생이 하룻밤 사이에 썼다고는 믿을 수 없이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준이가 시도 쓰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그가 당연히 글 쓰는 사람이 되리라고 믿게 되었다.

 

우리는 학교 문을 나서면 매일 같이 성당으로 이어지는 뒷산에 올라 세계를 관찰했다. 그는 작고 바람에 흔들리는 것들을 사랑했다. 집 근처 나무들을 가리켜 ‘쟤네들’이라 불렀고 다리 위로 기어오르는 풀벌레를 ‘얘’라고 불렀다. 성당으로 내려오면 준이는 아무도 없는 강당에서 어젯밤에 작곡한 곡을 연주했다. 밤이면 집 옥상에 올라 별을 보며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과 앞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이야기했다. 이가 부딪히도록 매섭게 추운 날 사자자리 유성우를 보러 뒷산에 올랐다가 길을 잃어 겨우 빠져나왔던 기억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게 꼭꼭 채운 시간이 나와 그의 한 시절이었다니. 나는 세상의 모든 중학생이 우리처럼 하루를 보내는 줄 알았다.

 

우리가 좋아했던 소설 중에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이 있다. 성실한 학자 ‘나르치스’와 예술가 ‘골드문트’의 우정을 그린 소설이다. 그 시절 나는 준이를 나르치스라고 생각했는데 잘못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골드문트였다. 내 안에 아직도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면 그에게서 왔을 것이다.

 

우리가 함께 뒷산에 오르던 날에서 한참 멀리 왔다. 내가 아는 모습만큼이나 모르는 모습도 많아졌을 것이다. 수학도 예술처럼 푹 빠져 했으리라 추측해 본다. 준이가 이 글을 읽는다면, 수학도 예술이라고 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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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수학동아 정보

  • 박준택
  • 진행

    김미래 기자 기자
  • 일러스트

    정윤미
  • 디자인

    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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