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면적 600cm2 남짓의 작은 집, 하지만 이 집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집이 주는 안정감과 안락함은 절대 작지 않았습니다. 특히 입구부터 코를 찌르는 향긋하고 달콤한 냄새는 이 집의 자랑거리죠.
생의 절반 가까이 살고 나서야 자신의 취향을 깨닫고 아카시아가 흐드러진 이곳, 강원도까지 내려온 여왕벌 허니 씨. 허 씨에게 이렇게 완벽한 집을 지을 수 있었던 비법을 들었습니다.
Q집이 가족들로 바글바글합니다. 도대체 몇 명이 함께 살고 있나요?
한 2만 마리쯤 되는 것 같아요(기자 놀람). 하지만 우리 집이 좀 작은 편이라 이 정도지, 더 큰 집에는 4만~6만 마리까지 살기도 한답니다. 지금 일부 공간을 보수하는 중이라 다들 동서남북 모든 방향에서 동시에 집을 짓고 있어요. 우리 집은 정육각기둥 형태의 방이 여러 개 합쳐진 구조예요. 딱 붙어있는 방과 방 사이를 구분하는 벽의 두께는 0.07mm 정도로 아주 얇아요. 그 두께를 유지하면서 정육각기둥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두가 정확한 수학적 감각을 가져야 합니다.
Q 방의 구조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우리 집을 가로로 잘라 위에서 내려다보면 정육각형이 이어져 있는 모습이에요. 간단한 구조처럼 보이지만 3차원으로 보면 조금 복잡합니다. 윗면과 아랫면이 정육각형으로 이뤄진 정육각기둥에서 기둥이 되는 변을 일정한 각도로 잘라 위로 올려붙인 구조입니다. 세 개의 마름모가 만나 각뿔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뾰족한 지붕을 가진 정육각기둥인 셈이죠. 이런 구조로 만든 건 최소한의 재료를 이용해 가능한 큰 부피의 방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저희 나름의 ‘최적화’ 과정이죠.
Q 여러 마리의 벌들이 어떻게 동시에 똑같은 방을 지을 수 있죠?
먼저 저희의 작업 방식을 소개할게요. 저희는 몸 안에 ‘밀랍 샘’이라는 곳이 있어요. 여기서 가장 기본적인 집의 재료인 밀랍이 비늘조각처럼 분비됩니다. 건물로 치면 철골과 같은 존재죠. 이 밀랍을 분비하며 천천히 360° 회전합니다. 그럼 벌 한 마리를 중심으로 밀랍으로 만들어진 둥근 원이 생기겠죠? 이것을 쭉 이어 붙여 방을 만듭니다.
여기서부터는 저희의 영업 비밀인데요, 사실 저희는 정육각기둥 구조로 방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기자 동공 지진). 저희는 그냥 원통 구조로 만들죠. 여기저기에서 각자 따로 집을 짓는데 어떻게 정확하게 같은 크기의 정육각형을 만들겠어요. 다들 비슷한 크기로 원기둥을 만들면 저절로 정육각기둥이 되더라고요.
Q 왜죠…?
그게 자연의 신비 아니겠어요(뻔뻔)? 그런데 언뜻 듣기로는 계속 방이 만들어지면서 방 안에서 바깥쪽으로 미는 힘 때문에 육각기둥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하더라고요. 김준석 고려대학교 수학과 교수가 우리 집이 만들어지는 구조를 수학적으로 분석했어요. 우리 집의 일부를 격자에 옮겨놓고 ‘가상경계법’으로 각각의 방에 가해지는 합력을 구한 거죠. 합력은 여러 힘이 동시에 작용할 때와 같은 효과를 나타내는 하나의 힘이랍니다.
가상경계법은 흐르는 물질, 즉 유체가 움직이면서 경계가 변하는 경우에 사용하는 수학적 기법이에요. 우리 집은 탄성이 있는 밀랍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경계가 변할 수 있어요. 이처럼 경계가 움직일 때는 가상경계법을 사용해 합력을 구한답니다.
Q가상경계법이 정확하게 뭔가요?
3차원으로 생각하면 복잡하니까 2차원으로 생각해볼게요. 원은 점으로 이뤄진 선이에요. 원의 경계(선)가 고정됐다고 가정하면, 각각의 점에 가해지는 합력을 쉽게 구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선이 움직인다면 변수가 그만큼 많아지니 합력을 구하는 공식이 너무 복잡해지겠죠?
그래서 수학자들이 꾀를 낸 거예요. 원을 격자에 올려놓고 원의 안쪽에서 가해지는 힘을 각각의 점의 접선에 수직인 벡터로 표현합니다. 그러고 난 뒤 힘의 크기와 점 사이의 거리를 고려해 점에 근접한 16개의 격자점에 힘을 뿌려줍니다. 바깥에서 미는 힘도 같은 방법으로 16개 점에 힘을 분산시킵니다.
그럼 격자점에서 안쪽에서 발생하는 힘과 바깥에서 가해지는 여러 힘의 합력을 구할 수 있죠. 마지막으로 격자점이 가진 벡터 합을 다시 원 위의 점들로 돌려줍니다. 신기하게도 무작위적인 방향에서 힘이 가해져도 원이 받는 힘은 거의 일정했습니다. 즉 우리가 원형으로 방을 만들면 이 방은 무조건 정육각형에 가까워진다는 의미입니다.
Q 무척 흥미롭네요. 혹시 꿀벌 집이 인간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나요?
물론입니다. 이미 많은 건축물이 우리 집을 본 따 만들어졌죠. 서울의 신논현역 근처에 있는 ‘어반하이브’라는 건물은 외관이 특이하기로 유명합니다. 건물 외벽에 수천 개의 작은 원이 뚫려 있거든요. 그런데 더 특이한 건 건물의 안쪽 구조예요. 어반하이브의 뼈대는 철근을 정육각형으로 엮어서 만들었거든요.
그 이유는 정육각형은 외부의 힘이 쉽게 분산되는 안정적인 구조이기 때문이에요. 더구나 정육각기둥으로 만들어진 우리 집은 집 무게의 30배에 달하는 꿀을 저장할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하답니다. 그러니 인간들이 집을 지을 때 우리 집을 참고할 수밖에요. 집뿐만 아니라 매트리스, 타이어 등 안정성과 튼튼함을 요구하는 많은 분야에 우리 집의 구조가 쓰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허니 씨의 집을 알아봤습니다. 의외로 허니 씨는 수학을 잘 몰랐지만, 역시나 자연은 그 누구보다 수학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수학적으로 궁금한 게 있으면 집 앞의 나무를 관찰하는 게 답을 빨리 찾을 수 있는 지름길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저는 허니 씨가 준비해준 달콤한 꿀차를 마시러 떠나보겠습니다. 모두들 안녕~!
※ 도움. 김준석(고려대학교 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