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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사람이 좋은 수학자, 천정희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교수

 

2018년 12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은 천정희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교수가 받았다. 이달의 과학기술인상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에서 매달 우수한 연구개발성과를 낸 과학기술인에게 주는 상이다. 수학자는 물론 과학자와 공학자를 통틀어 주는 상이다 보니 역대 261명의 수상자 중 수학자는 천 교수를 포함해 5명뿐이다. 다섯 번째 주인공인 천 교수를 만나기 위해 서울대학교를 찾았다.

 

 

Q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소감을 부탁드려요.

 

제 연구 결과를 좋게 평가해줘서 감사해요. 우리 사회가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 기쁘고 앞으로도 수학이 과학, 공학 및 산업 현장에서 더 많이 활용될 수 있도록 애쓰겠습니다. 수학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수학이 흥미로운 학문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도 잊지 않고요.

 

Q 어떤 연구로 상을 받았는지 쉽게 설명해 주세요.

 

 

‘다중선형함수’라는 암호 기법에 관한 연구예요. 유료 소프트웨어를 설치할 때 ‘시디키’를 입력하죠? 정품을 샀는지 판단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안에 숨겨놓은 비밀 값을 입력하도록 하는 건데, 해커들이 소프트웨어를 파헤쳐서 이 값을 몰래 알아내곤 하죠. 다중선형함수는 정보(함수)를 감춘 상태에서도 계산할 수 있게 만든 함수예요. 이걸 이용하면 어려운 수학 문제에 비밀 값을 숨길 수 있어요. 이 문제를 풀지 않으면 정보를 알아낼 수 없게 만드는 거죠. 보통 새로운 암호 체계를 만들려면 0에서 연구를 시작하는데 이 기술로 대부분의 암호 체계를 만들 수 있어서 암호 분야의 ‘마법 지팡이’라고 할 수 있죠.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도 관심이 많아서 2016년부터 많은 연구비를 지원받고 있어요.

 

● ‘소설 마니아’에서 ‘수학자’까지

 

Q 교수님은 어떤 학생이셨나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려서부터 소설 읽는 걸 좋아했어요. 중·고등학생 때까지 세계문학전집 30권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었고, 대학에 입학해서는 제3세계 문학을 주로 읽었죠. 최근에는 SF 소설을 읽고 있어요.

 

고등학생 때는 수줍음이 많고 말수가 적은 편이었는데, 대학교에서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재밌어서 과대표를 할 정도로 활동을 많이 했어요. 사실 제가 수학동아 ‘킹앤카’에 수학 문제를 내주는 KAIST 수학문제연구회 창립 멤버입니다.

 

 

Q 인문학을 전공할 생각은 없었나요?

 

보통 잘 하면서 재밌는 일을 하라고 하잖아요. 인문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인문학 못지 않게 좋아하는 물리학을 전공해서 물리학자가 되려는 꿈을 꿨어요.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고전 물리학, 상대성이론, 선형대수학 같은 과목을 찾아 공부했죠. 그런데 선형대수학을 공부하다보니 수학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제서야 알았어요. 물리를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물리에서 나오는 수학 문제를 잘 푸는 거고, 그걸 즐긴다는 걸요.

 

Q 수학의 어떤 부분이 매력적이었나요?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보면 수학자 존 내시가 숫자로 가득한 암호판 앞에 서서 별다른 도구 없이 생각만으로 암호를 풀잖아요. 수학 정리를 증명할 때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생각하는데, 이렇게 복잡한 생각을 간결한 증명으로 나타낸다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짧지만, 전세계 누가 봐도 증명을 알 수 있고 논리적으로 완벽해서 절대 뒤엎을 수 없죠. 푸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답은 딱 하나라는 것도 좋았어요.

 

Q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수학 연구에도 영향을 줬나요?

 

 

가만 생각해보면 ‘사람들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서 소설을 좋아했고, 그래서 사람과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연구에 매력을 느낀 것 같아요. 많은 수학 분야 중에서 정수론을 전공한 이유 중 하나가 정수론 문제는 대부분 증명은 어려워도 문제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제 박사 논문 주제도 10분만 주면 수학을 모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어요. 암호론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새로운 암호 체계를 만들거나 암호 관련 문제를 풀면 세상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아마 무인도에 갇혀 연구를 해야 한다면, 또 그 연구 내용을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다면 연구가 무척 재미없을 거예요.

 

● 수학, 현실 문제에 답하다

 

Q 수학을 공부하는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수학 문제의 정답을 찾는 게 공부의 30%, 문제의 뜻을 파악하는 게 70%라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 더하기 빼기 문제는 어려워해도 돈을 더하고 빼는 건 재밌게 하는 것처럼, 정답을 찾은 뒤에 문제가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시간을 더 투자하는 편이에요. 어려운 수학 문제일수록 직관적으로 이해해야 더 어려운 걸 풀 수 있으니 문제만 많이 풀기보다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잘 이해했는지 알고 싶으면 수학을 잘 모르는 동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Q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학교, 특히 대학교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해요. 커서 교수나 박사가 돼도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요. 공부뿐 아니라 인생에서 필요한 경험을 모두 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연구를 할 때도 다른 연구자들과 교류하면서 연구 주제를 찾고, 협력해서 풀어야 해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소통하는 경험을 해봐야 하죠. 실제로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이 좋은 연구자가 되기도 하고요.

 

학부모님께는 이런 말을 전하고 싶네요. 학생들이 스마트폰만 한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려는 성향은 다 있는데 소통하는 수단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스웨덴 수학자 군나르 칼슨은 위상수학 이론을 데이터 분석에 활용한 ‘위상적 데이터 분석’을 개발해 산업 현장에 활용했고, 그가 세운 회사는 가치가 1조 원에 달한다. 이처럼 수학 이론으로 산업 현장에서 쓸 수 있는 원천 기술을 만들고 이 기술이 실제로 쓰이는 걸 보는 게 천 교수의 꿈이다. 학계나 산업 현장에 있는 사람을 만나면 연구 의지가 생긴다는 천 교수. 앞으로 어떤 연구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지 기대된다.

2019년 02월 수학동아 정보

  • 김우현 기자
  • 기타

    [디자인] 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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